277화_초월자(2)
하급 마족과 중급 마족이 있는 마신석을 깨뜨리면, 보랏빛 기체가 나와서 마족이 되었다.
전설들을 수련시키기 위해, 힘들게 구한 상급 마족들이 나오는 마신석에서는 기체가 나오지 않았고, 액체가 흘러나왔다.
거기다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마신석보다 더 큰 거대 마신석에서는 끝없는 보랏빛 액체가 흘러나와서는 천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뭣들 하는 겁니까? 이런 일이 한두 번이에요?”
“모두 원거리 공격 준비!”
내 말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스본 레스넌이 다른 전설들을 둘러보며 외쳤고, 그제야 전설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일제 공격!”
마법과 원소력 그리고 검강과 오러까지 전설들이 자신의 특색에 맞는 공격을 퍼부었다.
콰콰콰콰쾅
일차 폭격이 끝나고,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았을 때였다.
“이럴 수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제대로 공격하지 못한 훈련생 중 한 명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꽂혔다.
그곳에는 핏빛 방패가 모든 공격을 막고는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발끝부터 만들기 시작한 액체는 어느새 허리까지 차올라 있었다.
“너희들도 공격을 퍼부어라.”
아스본 레스넌의 말에 훈련생들이 뒤늦게 공격에 가담하려고 할 때, 잠시 그들을 막아섰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매서운 눈빛을 한 아스본 레스넌가 날 바라봤다.
“지금 저것이 완벽한 몸을 형성하기 전에 최대한 피해를 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걸 제가 알려준 건데? 그걸 모르겠어요? 일단 제가 저 방어막을 찢을 테니 그때 공격하세요.”
“찢을 수 있다고?”
당황하는 그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는 말했다.
“아스본 레스넌님 저 하유신입니다. 13기동 타격대의 대원.”
“아직 정식 대원은 아닌 걸로 안다.”
그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짜증이 솟구쳤다.
이 짜증을 검에 담기 위해서 칠성검을 꺼냈다.
그러는 사이 보랏빛 액체는 가슴까지 채워졌다.
“넌 뭔가 다르기는 한 것 같은데, 일단 그 거추장스러운 것부터 없애자.”
칠성검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리그었다.
절단검 – 세로 베기
무형의 기운이 날아가서 마족의 방패에 닿았다.
아무런 타격음이 들려오지 않았고, 스펀지를 흡수하듯 검격이 방패에 파고들었다.
쩌적
방패가 갈라지자, 방어막이 수줍게 문을 열었다.
“지금입니다.”
내 외침에 아스본 레스넌이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그보다 먼저 아까부터 캐스팅하고 있던 에반이 준비해둔 마법을 발사했다.
헬파이어
농구공 크기의 구체가 방어막의 열린 부분으로 들어가서는 마족의 사체를 태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마족을 생성하는 액체가 턱을 넘어서 입을 막 만들었다.
“크아아아아악!!”
마족의 비명과 함께 헬파이어의 폭발력이 쪼개진 방패를 날려버렸다.
“지금이다. 모두 공격!”
아스본 레스넌의 외침에 전설들과 훈련생들의 공격이 마족에게 쏘아졌다.
피격당할 때마다 마족은 비명과 함께 몸을 들썩였다.
그럴 때마다 마족의 몸을 태우는 지옥의 불이 주변에 뿜어졌다.
훅하고 지옥의 불길이 우리에게 혀를 내밀 때였다.
아쿠아 실드
벨라가 불길의 접근을 막았다.
완벽한 호흡이었지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에반 히스터님. 아직도 헬파이어 조절을 못 해요?”
“…내가 너무 흥분했군.”
“아직도 청춘인 줄 아세요? 제가 저번에도 말했죠? 차가운 머리로 흥분하지 않아야. 마나를 조정할 수 있다니까요.”
내 외침에 에반 히스터는 애써 고개를 돌렸고, 훈련생들은 하던 공격을 멈추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보라, 다른 사람도 아니라 대마왕전까지 겪은 전설들은 전투의 베테랑인데, 그를 내가 혼내니 말이다.
“지금 훈련생들은 뭐합니까? 설마 수료하기 싫어요? 저랑 더 같이 있고 싶어요? 빨리 공격하세요!”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훈련생들이 다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족을 중심으로 전설들이 작은 원을 만들어 포위하고, 그 뒤로 훈련생들이 둘러쌌다.
완벽한 포위가 만들어지자, 나는 뒤로 몸을 날렸다.
“유신아 난 여기 있어도 되는 거니?”
포위망의 뒤편에는 마리 선배가 전투 복장을 한 채 서 있었다.
“네. 마리 선배가 끼어들면, 그건 훈련이 아니게 되니까요. 여기서 저와 같이 위험에 처한 사람들만 구하면 됩니다.”
“알았어. 그런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구나. 저 마족. 몸이 만들어지기 전에 죽겠는데?”
마리 선배의 말대로 마족은 헬파이어에 심한 화상을 입고, 오러와 검강에 몸이 베이고 꿰뚫렸다.
마족은 마지막에 머리카락까지 만들어졌지만, 헬파이어에 순식간에 불타 없어졌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다가 이내 쓰러졌다.
지금까지 잡은 마족과는 달랐다.
그 어떤 마족도 헬파이어에 이런 심한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걸 상기하자 수상함이 몰려왔다.
“끝난 건가?”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고, 그때 쓰러진 마족 머리 위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그 빛을 보자마자 아스본이 위험을 느꼈는지 내렸던 검을 들어 올렸다.
“아직 안 끝났다. 공격!”
처음과는 달리 전설들과 훈련생 모두 차근차근 공격을 퍼부었다.
폭발하는 공격 사이로 붉은빛의 건틀릿이 튀어나오더니, 다가오는 공격 중 일부를 반사 시켰다.
훈련생 몇몇이 반사된 공격에 당황했다.
그렇지만, 이자벨 로메가 방패로 반사된 모두 공격을 별 무리 없이 막았다.
“모두 조심해라.”
마족에게 퍼붓던 공격이 잠깐 약해졌다.
그때, 마족의 머리 위에 주먹만 한 붉은 구슬이 떠오르더니, 다가오는 공격과 아직도 불타고 있는 헬파이어를 빨아들였다.
그 모습에 전투는 소강상태가 되었고, 마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탐 탄테오?”
“다들 오랜만이군.”
13인의 전설 중 한 명이자, 모험가 트리오의 리더.
마왕과의 전투가 끝난 지 벌써 30년이 넘어가는데, 그는 교과서에 실린 모습 그대로였다.
아니 더욱 젊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설이 한 명만 걸려도 좋다고 생각해서 판 함정인데, 운이 좋았어. 여기에 다 모였군.”
미소를 지은 탐 탄테오는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유신?!!”
“절 아시나요?”
“모를 일 없지. 내 친구 베드 미다스를 죽인 놈을 말이야.”
“베드 미다스요? 아! 그 도망 잘 치던 마족?”
“이 씹어 삼켜도 부족할 놈!!”
탐 탄테오는 금방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처럼 굴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좋다. 여기에 하유신도 있으니,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마. 하유신을 잡아서 내게 데리고 오면, 이곳에 있는 모두를 살려주지.”
방금 탐 탄테오는 실수를 했다.
그가 마족으로 변이한 후, 강해진 것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지만,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전세계의 최강자들이었다.
즉, 이들의 자존심은 높았고, 탐 탄테오는 그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냈다.
“이 쳐 죽여도 모자랄 배덕자가 감히!!”
지금만 봐도 전설 중 가장 참을성이 없는 리암이 탐 탄테오에게 불을 뿜어냈다.
그때 탐 탄테오의 머리 위에 기마용 랜스가 만들어지더니, 리암의 불을 갈라버렸다.
“리암. 나는 예전부터 궁금했네. 어떻게 가장 폭급하고, 안하무인이면서 가장 약한 자네가 아직 살아 있는지 말이야.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니 알겠더군. 자네는 말이야. 바로 겁쟁이라서 그런 거야. 안 그런가 리암?”
온몸이 불꽃으로 변한 리암이 탐 탄테오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벨라가 리암의 팔목을 잡았다.
치이이익
벨라의 오른손이 불타오르자, 아무리 화가 난 리암이었지만, 불꽃을 꺼뜨렸다.
“뭐 하는 거야?”
“진정해.”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진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바드득
리암이 이를 갈다가 길게 숨을 내쉬고는 탐 탄테오를 노려봤다.
그 모습에 벨라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런 아깝군. 전설 중 한 명을 죽이고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럼 장난은 이만 끝내고 시작해 볼까?”
탐 탄테오가 양손을 머리 위로 들더니, 양옆으로 천천히 내렸다.
그러자, 다양한 무기가 그의 등 뒤에 만들어졌다.
아스본 레스넌은 그 모습을 보더니, 자신의 검을 더욱 꽉 쥐며, 외쳤다.
“모두 잘 들어라! 지금부터 마족 사냥을 시작하겠다. 전투 준비!”
전설들이야 아스본 레스넌의 말이 떨어지기 전부터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고, 훈련생들도 의지를 다지며 자세를 취했다.
“모두 공격!”
다시 한번 날아드는 마법과 원소력 그리고 검강과 오러가 탐 탄테오에게 쏘아졌다.
“이자벨!”
이자벨 로메가 아스본 레스넌의 뜻을 이해하고, 탐 탄테오를 향해 실드 차지를 전개했다.
그 뒤로 크리스와 로저 시거가 따라붙었다.
콰아아앙
실드 차지는 탐 탄테오에게 닿지 못했다.
그 전에 집채만 한 핏빛 방패에 막혔지만, 뒤에 있던 크리스와 로저 시거가 솟아나며 탐 탄테오에게 주먹과 거검을 휘둘렀다.
“마리 선배. 저기에 끼어들 생각하지 마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건 전설들과 훈련생들의 마지막 훈련입니다.”
“탐 탄테오가 나타났는데, 아직 훈련을 고집한다고?”
“네. 저들이라면 탐 탄테오를 이길 수 있으니까요.”
마리 선배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네가 탐 탄테오에 대해서 몰라서 그래. 그는 인간과 싸울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해”
“저들을 믿으세요.”
“그러다가 누가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에이~ 전 그렇게 약하게 훈련 시키지 않았어요.”
길게 한숨을 내쉰 마리 선배가 입을 열었다.
“유신아.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지금 탐 탄테오는 예전 지구에 강림했던 마왕보다 더 강한 마기를 가지고 있어.”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지금 저들이 얼마나 거대한 적과 싸우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거니?”
“그래봤자, 일루시안에 넘어가 있는 선배들보다 약하잖아요.”
“…대체 네가 생각하는 강함의 기준은 뭐니?”
강함은 당연히 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정한 강함의 기준은 최소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였다.
“13기동 타격대?”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나도 참전할 거니까 말릴 생각하지 마라.”
“그러니까, 마리 선배 말은 지금 저들이 탐 탄테오에게 진다는 거죠?”
“그래.”
“일단 보세요. 저게 지고 있는 건지.”
미심쩍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마리 선배가 다시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세상에…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을 하긴요? 열심히 훈련 시켰고, 지금 그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거죠.”
탐 탄테오는 당당하게 등장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낭패를 보고 있었다.
입고 있던 갑옷은 넝마가 되었고, 꺼내 둔 무기들은 절반이 파괴되었으며, 나머지 절반도 잔뜩 금이 가 있었다.
“크아아악! 죽여버리겠다!!”
괴성을 내지르는 탐 탄테오가 더 많은 무기를 꺼내서 공격했지만, 대부분이 이자벨 로메가 이끄는 수호기사단의 방패에 막혔다.
백열
리암의 불꽃이 하얗게 변하더니, 그대로 탐 탄테오와 부딪혔다.
콰아아앙
지금까지 대부분의 공격을 막아왔던 탐 탄테오의 붉은 방패가 깨져나갔다.
그 뒤로 로저 시거가 거검으로 탐 탄테오에게 올려치기를 해서 하늘 높이 띄웠다.
하늘로 떠오른 탐 탄테오는 날개를 펴며, 파괴광선을 난발했다.
아쿠아 미러
벨라가 파괴광선을 전부 튕겨냈고, 에반 히스터의 캐스팅이 끝났다.
헬파이어 변형 – 지옥의 칼날
지옥의 칼날이 탐 탄테오의 날개를 잘라냈다.
그때 압축된 근육을 이용해 하늘 높이 떠오른 크리스가 내려찍기로 탐 탄테오의 머리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얼마나 강하게 떨어졌으면, 사막에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 순간 노사의 태극천하가 탐 탄테오를 구속하자, 훈련생들이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그때, 다시 한번 탐 탄테오의 머리 위로 붉은 구슬이 떠오르더니, 공격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모두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겠어!!”
자리에서 일어나 악을 내지르는 탐 탄테오의 뒤로 아스본 레스넌이 나타났다.
오리지널 섬
아스본 레스넌의 검이 탐 탄테오의 가슴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