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4화_물의 여신 벨라(1)
처음에는 단체로 달려들어도 하급 마족 한 개체를 겨우 상대하던 이들이었다.
그렇게 마기에 적응하면서 전투에 익숙해질 때쯤 변화가 찾아왔다.
“윽…냄새가 우…우웩~”
쟌 아르켄시스가 하급 마족을 다 잡아갈 때쯤 코를 부여잡다가, 속을 게워냈다.
“유신. 이게 무슨 냄새야?”
“냄새?”
“응. 코를 뜯어내고 싶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우욱…”
헛구역질하는 그녀를 보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축하해.”
“축하?”
“헛구역질했잖아. 이제 너도…”
“그만! 너 지금 처녀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화를 내는 쟌을 보며, 그녀가 내 말을 오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슨 소리야? 새로운 능력을 얻어서 축하한다고 한 건데.”
“능력?”
“응. ‘마족탐지’ 나는 다른 식으로 얻었지만, 듣기로는 수많은 마족을 상대하면, 자연스럽게 터득한다고 하더라.”
“그…그러면 냄새가 안 나게 하는 방법은?”
“그런 건 없어. 그저 많이 맡아서 익숙해져야지. 나처럼.”
내 말에 쟌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 냄새를 맡으면서 마족이랑 싸워야 한다고?”
“응.”
일단 쟌을 냄새에 적응시켜야 했다.
그래서, 더는 전투에 참여시키지 않고, 훈련장 한쪽 구석에 있도록 했고, 그녀의 미간에서는 내 천(川)자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쟌 아르켄시스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마족탐지’ 능력을 얻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두 명씩 능력을 얻네.”
아무리 마신석을 통해서 마족들을 이들에게 밀어준다고 하지만, 이렇게 빨리 얻을 줄은 몰랐다.
“나는 가이아께 받았는데, 이들은 자연스럽게 깨우치는구나.”
이들이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서 가이아의 눈에 띄게 되고, 그렇게 가이아를 만나게 되면, 어떤 능력을 얻을지 부러우면서 기대가 됐다.
하급 마족과의 다대일 전투가 한 달 반 정도 이어지고 있을 때, 모든 이들이 ‘마족탐지’를 습득했다.
“이제 다음 단계입니다. 여기 표에 나와 있는 인원들끼리 뭉쳐주세요.”
종이에는 같은 소속끼리 뭉치게 했다.
예를 들어서 수호기사단이라면, 쟌 아르켄시스를 중심으로 두 명의 수호기사단이 모여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잡았다.
“이제부터 각 조에서 한 개체의 마족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수호기사단에서 최하급 마족을 상대할 겁니다. 수호기사단은 앞으로 나오세요.”
쟌 아르켄시스를 필두로 그들이 앞으로 나서자, 일부 정화된 마신석을 꺼냈다.
“참고로 모두가 피해 없이 5분 안에 잡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럼.”
마신석을 깨뜨린 후, 수호기사단 앞에 던졌다.
보랏빛 마기가 피어오르며, 거대한 입을 가진 마족이 나타났다.
“수호기사단 정렬!”
두 명의 수호기사단원들이 삼각형 모양으로 쟌의 뒤에서 방패를 들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그들은 같은 포즈로 마족을 노려봤다.
“실드 차지.”
쟌의 외침에 그들은 빛의 꼬리를 만들며, 최하급 마족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세 명이 발휘하는 실드 차지에 최하급 마족은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벽까지 날아갔다.
“견제!”
매직 애로우
수호기사단원들의 마법에 최하급 마족은 크게 피해를 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의 마법은 오금이나, 팔꿈치 안쪽 등의 관절 부위를 공략해서, 마족이 제대로 일어서지 못하게 했고, 그러면서 천천히 다가갔다.
“체인지.”
몸을 가릴 정도로 큰 방패를 들고 있던 그들은 방패를 등에 메고 양손에 작은 소형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런 다음, 제로 차지로 최하급 마족을 가격했다.
다구리에 장사 없듯이 최하급 마족은 쟌의 방패에 머리가 쪼개져서는 짧은 생을 마쳤다.
“2분 27초. 수호기사단은 오늘 쉬고, 다음에는 하급 마족을 상대합니다.”
“알겠습니다.”
수호기사단을 시작으로 모든 조가 최하급 마족을 5분 안에 물리쳤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생 많았습니다. 내일부터 사흘 동안 휴가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휴가라는 말에 훈련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리우가 대표로 살짝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휴가요?”
“그래. 리우야. 휴가다. 그동안 재정비하도록 해라. 대신에 휴가가 끝나면, 하급 마족을 상대해야 하니까. 그렇게 알아두고.”
말을 끝낸 후, 몸을 돌려 훈련장을 나섰다.
조금 떨어졌을 때, 훈련장 쪽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지금이 좋을 때라고 생각하며, 마리 선배에게 향했다.
“마리 선배. 큰일입니다.”
루카스와 이야기 중이었던 마리 선배가 인상을 찡그렸다.
“왜? 훈련 도중에 누가 죽기라도 했어?”
“그런 불상사는 아니고요.”
“그럼 뭔데?”
“마신석이 부족합니다.”
훈련생들에게 휴가를 주고 싶어서 준 게 아니었다.
마신석이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준 거였다.
“그 많은 게 벌써?”
전세계에서 매주 백 개가 넘는 마신석이 교황청에 들어온다. 그중 내가 훈련용으로 쓰는 게 일주일에 약 구십 개 정도였다.
그런데, 훈련생들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그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이제 일주일에 내가 사용하는 마신석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보급은 사흘 뒤에 들어오고, 이제 가지고 있는 마신석이 없었다.
“훈련과 교육을 하다 보니, 순식간에 사라졌죠. 그래도 전원 모두 ‘마족탐지’를 깨우쳤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마리 선배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훈련 교관이 적당히 써야 하는 마신석을 대부분 자신이 썼다는 말이네.”
“그게 그렇게 되나요? 헤헤.”
“휴우~ 어쩔 수 없지.”
역시 마리 선배였다.
후배의 부족함을 알고, 따로 마신석을 챙겨주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니 말이다.
그런데, 서랍을 연 마리 선배는 내게 서류 하나를 건네줬다.
“이게 뭔가요?”
“뭐긴 뭐야? 네가 직접 구해와야 하는 마신석이 있는 곳이지.”
“제가 구하러 가면 훈련은 누가합니까?”
“듣기로는 오늘부터 사흘 동안 휴가라며.”
“그…그렇기는 하죠. 근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귀찮다는 듯 마리 선배가 손을 휘저었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며, 받았던 서류를 읽어봤다.
서류에는 마신석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문구가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라 미국에서 도움을 요청해?”
아스본 레스넌, 리암, 벨라까지 총 세 명이나 되는 전설이 있는 곳에서 도움을 요청했다는 게 아이러니였지만, 지금은 마신석이 먼저였다.
“땅의 축복. 여기로 날 보내줘.”
[알겠습니다.]
땅의 축복이 이동을 시작하려고, 바닥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다시 떠올랐다.
[람이시여. 이곳으로 바로 이동할 수 없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알려주신 곳을 확인해보니, 더럽혀진 대지가 있어서 지정하신 숲 바깥으로 밖에 이동이 안 됩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이 조금 늦더라도 게이트를 타야겠다.”
교황청에서 운영하는 게이트 관리실로 이동한 후, 미켈 모르네에게 좌표가 적힌 종이를 건네줬다.
“여기는 미국 올림픽 국립 공원이군요.”
“아 그렇군요. 그럼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제가 시간이 없어서요.”
“하유신님 죄송합니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내가 어리둥절할 때였다.
미켈 모르네가 내게 다시 서류를 건네주며, 사정을 설명했다.
“이곳은 마계화가 이루어진 곳입니다. 즉, 대기의 마나에 마기가 섞여 있어서 게이트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아…”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숲 외각이라면 지금이라도 바로 가능합니다.”
“숲 외각이요?”
“네. 목표까지 거리가 250킬로미터는 되겠네요.”
고속도로가 뚫린 널찍한 길이었다면, 저 정도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그런데, 내가 가야 하는 올림픽 국립 공원은 마계화가 이루어진 숲이었다.
복잡한 길과 수많은 몬스터가 앞을 가로막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준비해주세요.”
“넵.”
게이트가 준비되는 동안 잠시 숙소로 돌아가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이것저것 준비했다.
그렇게 시간이 되어서 게이트 관리실에 도착하자, 이제 막 게이트가 열렸다.
“하유신님.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오랜만에 게이트에 발을 내디뎠다.
***
“벨라님 마신석 회수가 끝났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 남은 저 마신석은 어떻게 하시려는지 알 수 있을까요?”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서 일단 교황청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연락이 되신 겁니까?”
“전파 방해가 있었지만, 되기는 했습니다.”
이곳은 마계화로 인해 위성 전화도 되지 않았고, 수정구로 연락도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나마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최대한 하늘 높이 솟아오른 다음 사용한 위성 전화가 부정확하지만, 어떻게 연락이 되기는 했다.
“다행이네요. 그러면 교황청은 언제 오는 건가요?”
“바로 출발한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이삼일 내로 오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네요.”
톰 레너는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지만, 내게는 쓴웃음이 지어졌다.
“아무 일도 없어야죠.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해도 제가 지켜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벨라님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애써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누군가 내게 거울을 들이밀면 어색한 미소일 것이다.
그렇게 씁쓸한 침묵이 감돌았다.
가끔 이렇게 사람들에게 무력적인 면에서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게 불쾌했지만, 이런 분위기가 더욱 싫었다.
“그런데, 톰 레너씨. 오늘 저녁 메뉴는 뭔가요?
너무나 뻔한 말 돌림이었지만, 톰 레너는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오늘 저녁은 제가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 톰 레너의 특제 음식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네. 그럼 기대해 볼게요.”
그렇게 톰 레너가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동안 혹시나 무슨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홀로 주변을 정찰했다.
특별한 문제는 없는지 그리고 몬스터가 다가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면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대체 왜 숭배자들은 이 깊은 숲속에 마신석을 넣었을까?’
어떤 원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간을 마족으로 만드는 마신석이었다.
마신석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그 안에 든 마족은 강해졌다.
단지, 팔뚝만 한 마신석에서 나오는 마족이 하급 마족이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저 안에 든 마족이 하급일 리는 없고…”
누가 봐도 최소 상급 마족이 들어 있을 게 분명했다.
중급까지야 자신이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고, 피해를 각오한다면, 상급 마족 한 마리까지는 상대가 가능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 위의 존재가 저 안에 있다면, 자신을 포함에 여기에 있는 모두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가이아시여. 아무 일도 없게 도와주십시오.”
생각을 정리하면서 주변의 위협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야영지로 돌아갔다.
도착한 순간, 입안에서 침이 돌게 만드는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톰 레너씨 말대로 오늘 정말 기대해도 되겠네요.”
“물론입니다. 이제 거의 다 됐으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때였다.
끈적끈적하고 위험한 기운이 온몸을 덮쳐왔다.
“모두 제 주위로 모이세요!”
갑작스러운 외침이었지만, 탐험대원들은 베테랑이어서 서둘러 내 곁으로 몰려들었다.
아쿠아 실드
방어막이 만들어지자, 보랏빛 광선이 날아왔다.
상급 마족부터 사용할 수 있는 파괴 광선을 물의 굴절을 이용해 튕겨냈다.
그런 다음 파괴 광선이 날아온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상급 마족 두 개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