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_상급 마족(4)
단조로운 동작의 찌르기였지만, 이 안에 모든 힘을 담았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찌르기와 가오청융의 주먹이 부딪혔다.
거대한 폭발음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기운이 부딪힌 후 서로 힘자랑하기 바빴다.
바드득.
처음으로 기술은 성공했지만, 가오청융에게 힘에서 밀리자, 이가 갈려왔다.
포스와 원소력이 파괴광선에 저항했지만, 잡아 먹히기 바빴고, 절단검의 위력은 제대로 살리지도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위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기술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지금의 대치에서 변화가 생기면, 온몸이 갈려 나갈 것 같았다.
지금만 봐도 오른손의 전투 슈트가 버티지 못하고 가루가 되었다.
‘어떻게 하지?’
포스는 아직 절반 이상 남았지만, 원소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후회가 몰려왔다.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가오청융에게 야금야금 피해를 줬어야 했다.
‘익숙하지 않는 기술을 사용하다니…’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렇게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죽을 둥 살 둥 수련하고, 그 험한 전장을 돌았던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원소력도 포스도 모두 내가 상상한 대로 움직이는 기운이다.
‘그러니까 이제 움직여!’
중단전에서 가만히만 있던 황금빛 기운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황금빛 기운은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그래. 그렇게 가만히 있어. 그러다가 내가 죽으면 너도 집을 잃고 사라질 테니까.’
단지 기운일 뿐이고, 인지 능력이라고는 가지고 있지도 않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물론, 황금빛 기운은 미동도 없었다.
그 사이 가오청융의 기운이 더욱 거세져서는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말을 듣지도 않는 너 따위 기운 다 필요 없어!’
그때, 황금빛 기운이 꿈틀거렸다.
“응?”
중단전을 벗어난 황금빛 기운은 회전하고 있는 포스와 원소력을 잡아먹어서 기운을 키우고는 칠성검을 향해 내달렸다.
“크으윽!!”
붉은 포션 덕분에 남들보다 고통을 참는 것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황금빛 기운이 움직이자, 뇌전이 온몸을 헤집어 대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 몰려왔다.
푸스스스
바깥으로 나온 황금빛 기운이 가오청융의 파괴광선을 말 그대로 잡아먹었다.
“끄아아악! 이…이게 뭐야!!”
가오청융이 비명을 내지르며, 황금빛 기운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황금빛 기운은 한번 물면 놓지 않는 투견처럼 가오청융을 조금씩 잡아먹었다.
“꺼져 버려!!”
발악하는 가오청융은 왼손으로 황금빛 기운에게 잡힌 오른손을 절단했다.
그런 다음, 잠시 방심한 황금빛 기운을 향해 파괴광선의 힘이 담긴 주먹을 내질렀다.
퍼펑
황금빛 기운의 앞부분이 터져나갔다.
그렇지만, 황금빛 기운은 가오청융의 잘린 오른손을 순식간에 삼켜 버리고, 부족했는지 하단전에 있는 대부분이 포스까지 먹고는 원상태로 돌아갔다.
회복한 황금빛 기운은 이번에 가오청융의 왼손을 물었다.
콰직콰직
괴생물과 다름없는 황금빛 기운이 가오청융을 씹어 먹는 소리였다.
그렇게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오청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식사를 끝낸 황금빛 기운이 날 바라봤다.
흠칫
나로 인해 태어난 기운이어도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다.
슬금슬금 내게 다가온 황금빛 기운이 내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다시 날 바라봤다.
그 모습이 흡사 칭찬을 바라는 모습이어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어루만졌다.
“옳지. 착하지. 잘했어.”
칭찬에 아양을 떠는 황금빛 기운의 모습에 위기감이 많이 사그라졌다.
“어? 그러니까 널 뭐라고 불러야 할까?”
중단전에 자리 잡은 이 황금빛 기운을 지칭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태극과 태극 사이에서 태어난 것을 기억하고는 황금빛 기운이 기분 나쁘지 않게 조심히 입을 열었다.
“널 미르라고 불러도 될까?”
끄덕끄덕
미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황금빛 기운이 방방 뛰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와 연결되어 있는 이 기운의 모습이 황금색으로 빛나는 고스트 같기도 했지만, 애써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냈다.
“이제 다시 돌아올래?”
미르는 고개를 내저은 후, 우리를 감싸고 있는 태극천하를 바라보며 입을 벌렸다.
“아니. 아니. 저건 안 돼!”
내 말에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은 미르가 이내 중단전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는 예전 그 자리에 다시 자리를 잡고는 잠이 들었는지 조용해졌다.
“휴~ 이제 다 끝났네.”
급박하게 돌아간 전투였고, 목숨이 위험했었다.
물론, 안전한 싸움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이 싸움을 통해 하나는 확실히 배웠다.
“아무리 강한 공격이라고 해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한 공격을 사용하는 건 멍청한 짓이야.”
거기다가 미르가 아니었다면, 죽는 건 가오청융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아무리 몸속에 있는 기운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요행은 두 번 다시 바라면 안 된다.
그렇게 생각 정리를 끝냈다.
중단전에 있던 미르가 왜 인지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힘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했지만, 애써 무시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생각해봤자, 답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충 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다시 수련해야겠어.”
아직 부족한 걸 느끼고,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그거면 됐다.
이제 다시 강해지기 위해 노력할 때였다.
“근데, 태극천하는 대체 언제 열리지?”
***
마계에서도 마왕이라는 호칭을 쓸 수 있는 마족은 자신을 포함한 72악마뿐이었다.
72악마들도 그 안에 서열이 있고, 그중 최고의 악마이자, 대마왕의 칭호는 단 한 악마에게만 허용됐다.
“하찮은 악마 파이몬이 마계의 주인이자, 유일한 대마왕이신 바알님을 영접합니다.”
양손과 양발 그리고 고개까지 숙인 오체투지.
언제든지 상대에게 목숨을 맡기겠다는 극존칭의 자세였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바알은 단칼에 내 목을 자를 것이다.
“나의 오른팔이자, 군단장 파이몬은 일어나거라.”
“감사합니다.”
최대한 바알에게 책잡힐 일을 만들면 안 되기에 누가 보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파이몬.”
“네. 마계의 주인이신 바알님 하명하십시오. 바알님의 명이라면, 천국의 저 간악한 천사들에게 달려가 그들의 피로 도시를 채울 수도 있습니다.”
“그딴 쓰레기는 필요 없다.”
“네. 맞는 말씀이십니다. 천사의 피는 쓰레기가 맞죠.”
다른 악마들은 내게 아첨과 아부가 몸에 배었다고 한다.
물론, 자신 앞에서 그 말을 하는 순간, 그 악마를 오체분시될 거다.
바알에게 이런 것은 진정한 충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지금 일루시안의 전장이 지지부진한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때 제가 당하지만 않았으면…”
“알고 있다. 네가 아무리 강하고, 너의 군단이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김무혁 그자가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많은 수가 몰려가더라도 소용없다는 것을…”
일루시안에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군단을 뚫고, 나타난 존재.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을 꿰뚫은 존재가 바로 김무혁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자라서 이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널 추궁하기 위해서 부른 게 아니다.”
바알이 말하는 동안 더욱 허리를 숙이며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알의 입이 열렸다.
“이번에 지구에서 널 소환하는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떤 악마가 바알에게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물론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그 소환에 응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구는 다른 누구도 아닌, 13기동 타격대의 본진과 다름없었다.
제대로 힘을 갖추지도 못하고 소환되면, 저번과 다름없이 온몸이 찢겨 죽을 게 뻔했다.
“네. 그렇습니다.”
“소환 의식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제물의 자질이 부족해서 다른 식으로 메꾸려고 하는 것 같지만, 이대로는 소환에 실패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네가 힘을 빌려준다면?”
바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짓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최대 지금의 십분의 일 정도의 힘을 가져갈 수 있으며, 지구에서 힘을 키우는 데만 집중하면 절반의 힘까지 사용 가능할 겁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그 소환 의식에 응하라.”
“알겠습니다.”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물론, 이 결정 자체가 자신에게 불합리하고 위험한 건 사실이었다.
자신과 같은 악마들이 타 세계에서 죽고, 마계로 돌아오게 되면, 가지고 있는 힘의 절반이 사라진다.
마계화가 절반 이상 진행된 일루시안에서도 그렇게 되는데, 지구에서 죽게 되면, 악마의 자격까지 박탈될 수 있었다.
“궁금하지 않느냐? 내가 이런 무리한 명령을 내리는 게?”
“저는 바알님의 충성스러운 부하입니다. 명령을 내리면 그저 따를 뿐입니다.”
“그래. 그래서 내가 널 오른팔로 두고 있지.”
“언제나 영광입니다.”
바알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절을 올렸다.
무심한 듯 바알은 그 모습에 웃음을 지을 거다.
“잘 들어라. 이제 곧 난 일루시안에게 갈 것이다.”
“감축드립니다.”
“감축이라…감축!!”
순간적으로 바알에게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솟구쳤다.
아무리 자신이 72악마 중 상위권에 있지만, 바알의 기운에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파이몬!”
“네. 대마왕이시여.”
“이 상처를 보아라.”
고개를 들어서 바알이 가리키는 상처를 바라봤다.
오른쪽 가슴부터 왼쪽 배까지 길게 이어진 흉터가 깨끗하고 완벽한 몸을 지닌 바알에게 오점처럼 남아 있었다.
“감히! 하위 차원의 인간 따위가 내게 이런 상처를 주었다. 김무혁 그자를 용서할 수 없지.”
“맞습니다. 인간 따위가 감히…”
“파이몬 너는 지구로 가서 김무혁과 그 동료들의 고향별인 지구를 처참하게 부숴버려라. 그렇게 그들이 분산되거나 흔들릴 때! 내가 그들을 사냥할 테니.”
“그런 깊은 뜻에 저까지 동참시켜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몸을 숙일 때였다.
바알이 자신에게 주먹만 한 구슬을 던졌다.
구슬은 데굴데굴 굴러서 자신의 눈앞에서 멈췄다.
“그걸 가지고 가라.”
“이…이것은!”
“그래. 봉인의 구슬이다. 그 안에 너의 자랑스러운 군단 중 하나의 군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만 가보도록.”
허리를 숙인 채 뒷걸음질로 바알의 방에서 나왔다.
그런 다음 서둘러 자신의 영지로 돌아왔다.
바알을 영접하는 건 언제나 기운 빠지게 만드는 것 중 하나였다.
일단 자신의 몸을 더듬어 봤다.
“멀쩡하군. 멀쩡해. 처음 있는 일이야.”
바알은 성군이 아니었다.
물론, 마계에서 성군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지만, 바알의 공포 정치는 도를 넘어설 정도였다.
한 번 배알 할 때마다, 몸의 일부를 두고 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잘린 신체를 복구하는 건 금방이지만, 그로 인해, 소모되는 마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바알이 이 일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이군.”
자신도 김무혁이라는 인간에게 죽어봐서 안다.
얼마나 치욕적이고, 화가 나는지에 대해서.
바알 또한 같을 것이다.
죽지는 않았지만, 인간을 피해 마계로 도망쳤다는 건 영생을 사는 악마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줬다.
“소환 의식 전까지 바쁘게 움직여야겠군.”
지구에서 봉인의 구슬을 풀기 위해서는 수많은 제물이 필요하지만, 자신이 소환만 되면, 그건 순식간에 준비할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이 안에 데리고 갈 부하들을 선별하는 거였다.
“그래도, 아주 재미있게 돌아갈 것 같아.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