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_노사의 각오
태극이란 양과 음이 서로를 따르는 것.
몸속에 있는 기운은 오직 뇌전뿐이었다.
뇌신강림을 사용하기 위해 대부분의 포스를 사용했다.
거기다가 남아 있는 포스는…
‘방금 다 사용하고 없지.’
이대로는 태극을 펼치기가 애매했다.
두 가지 기운이 서로 호응해야 무언가라도 해볼 텐데, 몸 안을 헤집고 있는 기운은 오직 뇌전뿐이었다.
‘정말 죽는 건가?’
살기 위해, 티끌의 희망이라도 얻기 위해, 뇌전을 몸속에서 태극의 원리에 맞게 원을 그리며 돌리고 있지만, 그게 다였다.
어떻게 해서든 뇌전과 합일할 기운이 필요했다.
지금 뇌전은 지칠지 모르는 야생마처럼 몸 안을 돌았다.
‘한 줌. 단 한 줌만 있다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그때였다.
몸속 세포와 뼈 안에서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포스가 흘러나왔다.
저 포스를 어떤 식으로든 돌려야 했다.
이대로 놔두면 뇌전이 저 미약한 포스를 순식간에 태워 없애 버릴 거다.
‘일단 움직이자.’
뇌전을 피해 포스를 돌렸다.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포스가 뇌전을 피해 몸을 돌았다.
‘뇌전아 천천히 천천히. 포스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빨리.’
포스와 뇌전이 각각 아홉 바퀴를 돌았을 때였다.
갑자기 뇌전이 먹이를 발견한 굶주린 들짐승처럼 포스를 잡아먹기 위해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아무리 포스가 빨리 움직이더라도, 순식간에 뇌전에 잡아 먹힐 상황이었다.
‘먹힐 바에는…’
옆구리를 막 지나서 올라가던 포스를 명치쯤에서 방향을 틀게 했다.
뇌전은 자신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위로 돌았다.
그렇게 몸 안에서 명치를 사이로 두고, 태극 문양이 그려졌고, 내 몸을 뚜렷이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이지만 다른…태극.’
뇌전과 포스가 자기들끼리 겹칠 듯 겹치지 않고 회전했다.
포스가 하단전을 돌아 중단전을 거쳐 회전했고, 뇌전은 상단전을 돌아 중단전으로 회전했다.
그렇게 서로 겹치지 않고 있던 두 기운이 서로가 겹치는 중단전에서 만나 부딪혔다.
‘어?’
고통에 대비했다.
그런데, 중단전에서 만나 두 기운은 중단전을 기점으로 하단전과 상단전을 관통하는 길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몸이 상쾌해지면서 고통이 뒤따라 몰려왔다.
의식의 끈을 놓치려고 할 때였다.
중단전이 뇌전과 포스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땅의 축복?’
지금까지 조용했던 땅의 축복이 날뛰는 기운을 흡수했다.
흡수를 끝낸 기운을 땅의 축복이 다시 뱉어냈다.
그렇게 충돌, 흡수, 방출을 반복하던 힘들이 서로의 힘겨루기를 끝내고, 고유의 영역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원소력과 뇌전은 상단전. 포스는 하단전 그리고 그 두 힘을 흡수한 황금빛 힘은 중단전에 자리를 잡았어.’
그렇게 또다시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자, 이제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입에서 피를 흘리며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사의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몸은 괜찮으세요?”
“자네 정말 뭔가?”
“네?”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사는 본인이 뭘 실수했는지 파악하고는 이내 말을 쉽게 풀었다.
“방금 자네는 주화입마의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환골탈태했네.”
“환골탈태요?”
그때야,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 어어?”
***
마왕과의 대전쟁이 끝나고, 수많은 제자가 죽거나 떠났다.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마왕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단 걸 깨닫고는 인생 최대의 목표를 바꿨다.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어.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 손으로 지구를 지킬 녀석을 키우겠어.”
그렇게 해서 중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기재와 신동이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한걸음에 달려갔다.
물론, 대부분이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괜찮은 애들도 있었지만, 눈에 차지 않았다.
“김무혁. 그자를 본 이후로 눈이 너무 높아졌어.”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기재를 찾아 인류 최고의 방패를 만들어야 하는 게 본인의 사명이었다.
그렇게 십 년이 넘는 기간을 찾아 헤맸다.
그날도 원하는 기재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저리 꺼져라!”
작은 아이가 구걸하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야박하게 아이를 쫓아내며 악담을 퍼부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저 아이를 그렇게 타박하는 것이오?”
사람들은 내가 노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곧장 아이를 괴롭히는 걸 멈췄다.
그렇지만, 저주를 퍼붓는 말은 더욱 심해졌다.
“노사님. 귀신 들린 아이입니다.”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악운을 불러들입니다.”
저런 꼬마 아이가 어떤 해악이 있다고 그러는지…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무시하고 아이에게 다가갔을 때, 흠칫 놀랐다.
“아이야.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다섯 살 정도 된 아이는 입을 꾹 닫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허! 이놈이 노사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어서 말하지 못할까?!”
“노사님. 그 아이랑 더 이야기를 해봤자, 귀신 붙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천고의 기재가 앞에 있는데, 그저 천대할 뿐이었다.
“부모님은 계시니?”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지만, 대답은 뒤에서 들려왔다.
“모두 죽었습니다.”
“죽어?”
“네. 몬스터들에게 모두 죽고 저 저주받은 아이만 살아남았습니다.”
불안에 떠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작 굶주린 배를 채우고자 하는 아이를 이렇게 박대하는 게 너무나 각박하다고 느꼈다.
“아이야. 내가 너의 맥문을 잠시 잡아봐도 되겠느냐?”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잡기만 해도 분질러질 것 같은 앙상한 손목을 살짝 잡은 후, 조심스럽게 진기를 집어넣었다.
‘찾았다.’
천무지체.
골격만 봐서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내공을 흘러 넣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천고의 기재를 찾은 것이다.
“나와 함께 가겠느냐?”
“……”
아무리 마을사람들이 천대하더라도, 이 마을에서 자고 나란 아이에게 다른 곳으로 떠나자는 소리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어떤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는 약속하마. 내가 너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마. 널 보살피고, 내 자식처럼 대하며, 그리고 나의 마지막 제자로 삼고 싶구나.”
말이 어려웠는지 아이는 대답 없이 그저 큰 눈망울을 깜박일 뿐이었다.
“쉽게 말해서 내 모든 걸 너에게 주마.”
얼마나 고초가 심했는지, 최대한 부드럽게 말한다고 했지만, 아이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그러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내가 너무 성급했구나. 우선 밥부터 먹자구나.”
그날 그렇게 리우를 만나서, 마지막 제자로 삼았다.
물론, 리우는 만족스럽게 컸고,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받고 있었다.
앞으로 이삼십 년만 지나면 완벽한 무인이 되어서 지구의 방패가 될 것이다.
“그런데, 오직 스스로의 노력으로 재능을 능가하는 아이가 있었을 줄이야.”
리우도 약관이 넘은 최근, 환골탈태를 겪었지만, 앞에 있는 유신처럼 다음 환골탈태가 언제가 될지 기약은 없었다.
“천고의 기재라는 건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들어가는 거였군.”
“그게 무슨 소리세요?”
유신이 자신의 혼잣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하유신. 자네를 말하는 거네.”
“저요?”
“그래. 그 젊은 나이에 벌써 두 번이나 환골탈태를 겪지 않았나? 이건 지구의 그 어떤 이보다 빠른 성장이네.”
칭찬을 많이 못 받고 지냈는지 유신은 곤혹스러워하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다른 곳도 아닌, 13기동 타격대라면, 유신의 성장 속도가 평범하기 그지없을 수도 있었다.
“자네는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사람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렇게 어색해하지 않아도 된다네.”
“저…그게…그러니까. 노사.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든 물어보게.”
자신의 사랑스러운 막내 제자 리우가 지구의 방패가 되기까지 아직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 옆에서 지켜주고 싶었지만, 깊은 내상 때문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리우가 커가는 동안 유신이 방패 역할을 해주면, 충분하기에 마지막으로 자신이 아는 선에 대해서 답변해 줄 마음을 먹었다.
“두 번 환골탈태했는데, 세 번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너무 놀라서 아주 잠깐이지만, 내상을 입었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세 번째 환골탈태를 했다는 건가?”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안도하고, 흠칫 놀랐다.
이제 곧 죽을 몸인데, 리우를 지켜줄 유신이 강하면 좋아야 할 것이지, 다 늙어서 질투했던 거였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더니… 나도 늙었구나.’
다시 끊어지듯 아파오는 내상을 다스렸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그건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네.”
“네?”
“알려주고 싶지 않은 건 아니라네. 단지, 나도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해서 알려줄 수 없는 거지.”
유신은 이해했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 정말 갈 시간이 다가왔다.
몸에 힘이 풀리고,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쓰러진다면, 다시는 눈을 뜰 수 없을 거다.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사랑스러운 제자인 리우와 가슴 아픈 제자인 신무가 보고 싶어졌다.
‘다 이 늙은이의 욕심이었어.’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려고 할 때였다.
유신이 내 몸을 받치더니, 강제로 가부좌를 틀게 하고는 등에다가 기운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다 부질없는 일이야.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알아.”
“가만히 있으세요.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지금 유신이 하는 이 모든 행위가 헛고생이 될 것이다.
당장 옆에 마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치료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백여 명의 마족의 공격을 하루 종일 막고 있었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유신이 도착했을 때는 선천진기까지 끌어다 쓰고 있던 상황이었다.
‘기가 없는 육신은 그저 영혼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것을.’
그렇게 유신이 무의미한 짓을 하고 있을 때, 유신의 기운이 몸속을 한 바퀴 휘돌았다.
‘아주 잠깐 태극에 대해서 알려준 게 다였는데, 태극을 돌렸어.’
리우의 장성한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의지와 교육이 또 다른 이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내심 뿌듯했다.
그렇게 이제 여한이 없다고 생각할 때였다.
유신에게서 따뜻하고, 어머니의 품처럼 푹신한 느낌의 기운이 들어왔다.
그 기운은 두 갈래로 나뉘어서, 상체에 작은 원을 하체에 작은 원을 그렸다.
그렇게 두 개의 원이 서로 빠르게 돌면서 중단전에서 부딪히자, 몸속 가득 기운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이게 무슨?’
미약하지만, 사라졌던 선천진기가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으로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선천진기가 회복된다고? 두 개의 태극이 맞물려서 중단전에서 부딪힐 때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믿을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겨우 몇 년 사이에 유신은 자신이 일평생 발전시켜왔던 무학을 더욱 발전시켰던 것이다.
‘아아. 내가 지금까지 아둔했던 것이구나.’
방금까지 삶에 미련이 없었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살고 싶었다. 살아서, 이 젊은 영웅 하유신의 행보가 궁금했다.
덤으로 이 두 손으로 지구를 지키는 방패가 된 리우와 아픈 손가락인 신무. 그리고, 마천리 등 아직 살아남은 제자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이제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