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261화 (261/300)

261화_일 대 백(1)

“리우야. 태극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태극이란 순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다. 해가 뜨고, 지기를 반복하고, 강한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태극이란, 음과 양의 순환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태극의 시작은 무엇이냐?”

사랑스러운 제자 리우에게 한 질문이지만, 다르게 보면, 자신에게 한 질문이기도 했다.

“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이라? 왜 그런지 말할 수 있겠느냐?”

“스승님께서 계속 원을 강조하신 것도 있지만, 시작과 끝이 맞붙는 것이 원이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허허. 맞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지 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더구나.”

원이라는 건 완벽에 가까운 도형이다.

그렇지만, 순환과 함께 비교해보니, 원이 단순하게만 보였다.

무언가 더 있는 것 같았지만, 가닥을 잡기가 힘들었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놀란 리우를 보니, 쓸데없는 말을 한 것 같았다.

“늙은이의 괜한 생각일 수도 있으니 괘념치 말아라.”

“알겠습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리우의 수련을 지켜보고 있는데, 익숙한 기운이 연무장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리우야. 오늘은 그만해야 할 것 같구나. 손님이 오셨다.”

“손님이요?”

연무장의 문이 거칠게 열리고, 마천리가 뛰듯이 들어왔다.

“노사께 인사드립니다.”

“그래. 마천리야. 무슨 일이냐?”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렇게 다급하게 말하는 것이라면,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

“무엇이냐?”

“마족 숭배자들을 찾았습니다.”

“그래. 전세계가 시끄러운데, 중국이라고 마족 숭배자가 없을 수는 없지. 그래. 어디이냐?”

“화산입니다.”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움직여서 숭배자들이 꾸미는 일을 저지해야 한다.

그렇게 마천리와 함께 연무장을 벗어나려고 할 때, 리우가 내 앞을 막아섰다.

“스승님.”

“리우야. 무슨 일이냐?”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안된다. 넌 여기에 있도록 해라.”

평소의 리우라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을 거다.

그런데, 오늘은 오히려 앞으로 한 발 더 다가섰다.

“스승님. 저는 온실 속의 화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잡초가 되어서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싶습니다.”

이제 약관을 넘어선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컸는지 참 대견스러웠다.

그렇다고 허락할 수는 없었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은 조금만 실수해도 목숨이 위험한 곳이다. 난 널 보살피면서 무언가를 할 수 없다.”

“제 목숨은 스스로 지킬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차하면, 이걸 사용하면 됩니다.”

리우가 꺼낸 것은 투명한 푸른 구슬이었다.

“이게 무엇이냐?”

“일회용이기는 하지만, 하유신 형님이 있는 집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마도구입니다.”

“잠깐 볼 수 있겠느냐?”

“네. 여기 있습니다.”

마도구 구슬을 받아서 이리저리 살펴봤다.

아무리 마도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 구슬 안에 어마어마한 마법 지식이 들어간 것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도 말이다.

“알프레도 켄트. 그자도 지구로 넘어왔었나 보군.”

“네?”

리우에게 마도구 구슬을 돌려주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다. 대신에 이거 하나는 꼭 약속하거라. 정말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이 스승을 생각하지 말고, 이걸 사용하도록 하거라.”

“…….”

“대답이 없으면 난 널 데려갈 수 없다.”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짧은 대화가 오고가는 동안 마천리는 흡사 화장실이 급한 사람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늦었으니 어서 가자꾸나.”

***

“그렇게 화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대체 화산에 뭐가 있기에 노사께서 위험하다는 거야?”

내 말에 리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스승님의 말대로라면, 하급 마족이라고 했습니다.”

“하급 마족?”

자신이 알고 있는 노사의 강함이라면, 하급 마족 때문에 위험하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네. 그 수가 근 백에 가까웠습니다. 거기다가 하급 마족을 통솔하는 상급 마족도 하나 끼어 있었습니다.”

“뭐?!”

백 마리에 가까운 하급 마족도 놀라울 지경인데, 상급 마족까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노사가 당한 것도 이해가 됐다.

“형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아무리 리우에게 최상급 포션을 먹였다고 해도 아직 치료가 다 되지 않았다.

얼마나 심하게 당했으면, 한동안 요양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 그가 조금의 움직임에도 고통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면서 내 소매를 붙잡고 애원했다.

“걱정하지 마. 처음부터 도와줄 생각이었어.”

“감사합니다. 형님.”

“그럼 갔다 올 테니까. 쉬고 있어.”

“아닙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리우가 다친 몸을 일으켰지만,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고, 강제로 다시 눕혔다.

“지금 네가 할 일은 빨리 몸을 회복하는 거야.”

“그렇지만, 부탁하는 입장에서 제가 어찌…”

확실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리우는 계속 가겠다고 고집을 피울 거다.

물론 예전에 나도 그랬지만, 말이다.

“리우야.”

“네. 형님.”

“지금의 넌 내게 방해만 될 뿐이야.”

리우는 충격이 심했는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되는데,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필요 없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렇다고 네가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아니야. 네가 멀쩡했다면, 데리고 갔을 거야. 하지만 그 몸 상태로는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잖아. 시간을 다투는 일에 환자가 같이 움직일 수는 없어.”

자신을 데려가지 못한다는 것에 리우도 인정하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서 화산이 위치한 섬서성으로 가기 위해, 땅의 축복을 부르려고 했다.

“형님. 가시기 전에 부탁이 있습니다.”

“응? 뭔데?”

“제게 예전에 주셨던 붉은 포션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갑자기 리우 이놈이 미쳤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그게 뭔지는 알고 있어?”

“네. 한 번뿐이지만 마셔보지 않았습니까? 순식간에 내외상을 치료하지만, 그만큼 고통을 주는 포션이지요. 제가 그걸 마시고 형님을 따르겠습니다.”

딱 잘라서 거절했어야 하는데, 괜히 뒷말을 붙였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둔 말이 있는데, 안 된다고 하기에도 그랬다.

어쩔 수 없이 아공간에서 붉은 포션을 하나 꺼냈다.

“그 의지는 높이 살게. 그렇다고 널 데려간다는 건 아니야. 대신에 이 포션을 마시고,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으며, 데려갈게.”

“하지만, 형님.”

“리우야. 이 포션은 고통 때문에 정신력이 사정없이 고갈돼. 육신은 멀쩡하다고 해서 정신력을 끝까지 버티는 건 어려워. 그러니 너도 의지를 보여줘.”

리우는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붉은 포션을 받아든 리우는 그대로 들이켰다.

고통이라는 건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로 리우가 신음 한 번 흘리지 않는다면, 데리고 갈 용의는 있었다.

단, 내가 예상하기로는 절대 그럴 일은 없었다.

“……까드득.”

고통을 참기 위해 리우가 이를 갈았다.

그런데, 리우야 그걸 알아야 한단다.

너처럼 중한 상처에 그걸 마시면,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거나, 기절한단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끄르릉…”

고통에 리우가 정신을 잃었고, 그 상태에서 발작까지 일으켰다.

혹시나, 혀라도 깨물면 안 되기에, 천을 둘둘 말아서 리우의 입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혼혈을 짚어줬다.

그대로 리우는 잠이 들었다.

“너도 참 독한 놈이다.”

리우를 뒤로하고, 땅의 축복과 함께 화산으로 이동했다.

구름이 달빛마저 가린 화산은 평온함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얼마나 평온하면,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역시 마족들이 숨어 있다는 소리군. 땅의 축복. 근처에 사람이 있을까?”

[람이시여. 근처에 인간의 생명 반응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탐색을 좀 해줄 수 있을까?”

상급 마나석을 꺼내 땅의 축복에게 건네줬고, 땅의 축복은 곧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약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오래 걸리네.”

[죄송합니다. 산세가 워낙 험해서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습니다.]

“아냐 괜찮아. 확실하게만 찾아줘.”

[네. 람이시여.]

이대로 가만히 서서 땅의 축복이 탐색을 끝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리우의 꼴을 보니, 상황이 급박했다.

“일분 일초라도 빨리 찾는 게 중요하지.”

바람의 기운을 끌어올려서 몸을 가볍게 한 후, 화산을 올랐다.

시각, 청각, 후각을 극도로 끌어올리고, 포스로 주위를 살피며 움직였지만, 느껴지는 거는 딱히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넘게 돌아다녔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람이시여.]

“왜 찾았어?”

[죄송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리우가 분명 화산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찾지 못했다는 말에 내가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한 곳을 한군데 발견했습니다.]

“이상한 곳?”

[네. 누군가가 대지의 기운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마기가 있는지 아니며,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땅의 축복이 말한 곳에 노사가 있을 거라는 감이 왔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동하는 것도 위험했다.

재빨리 전투 준비를 끝낸 후, 칠성검을 중단세로 들어 올렸다.

“땅의 축복. 이동시켜줘.”

***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동굴 앞에 서서 마족의 공격을 태극으로 흘렸다.

그렇게 한 명의 마족을 튕겨내자, 뒤이어 다른 마족이 쇄도했다.

마족이 찔러오는 손톱을 끝까지 바라본 후에 흡자결과 반동을 이용해 손톱을 튕겨냈다.

“인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허허허. 냄새나는 마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다니, 이거 미안하군. 그런데, 말이야. 아직 칠주야는 거뜬하다네.”

정말 이렇게 동굴 앞에서 마족들만 상대한다면, 일주일이 무언인가? 한 달도 버틸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마족들은 간간이 동굴을 무너뜨리기 위해 힘을 사용했다.

태극의 힘으로 이 일대를 다 보호하고 있어서 동굴이 무너질 일은 없었다.

‘계속 이 상태로 가면, 오늘 하루도 버티기 힘들겠군.’

겉으로는 멀쩡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렇다고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약점을 보이는 순간 마족의 날카로운 손톱이 내 심장을 파고들 것이다.

“인간. 그런다고 뒤에 있는 인간들을 다 지킬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건 두고 볼 일이지.”

양손을 휘저어서 태극의 문양을 만든 다음, 앞에 있는 마족을 뒤로 날려버렸다.

다음 마족이 다가오기 전까지 약간의 시간을 번 후, 재빨리 아공간에서 포션을 꺼내서 뒤에 던져줬다.

“빨리 먹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뒤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은 화산을 조사하기 위해, 마천리가 붙여준 인원들이었다.

그들과 화산에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족들을 만나게 됐다.

지키는 싸움이 어렵다는 걸 알기에 최대한 도망쳤지만, 막내 제자 리우가 다쳤다.

싫다는 리우를 강제로 유신에게 보내고는 이곳까지 오게 됐다.

“어떻게 해서든 이걸 전달해야 하는데…”

이곳에서 알게 된 것은 마족 숭배자들의 작전이었다.

이들은 단 한 번에 중국을 혼란에 빠뜨리려고 했다.

“감히 날 날려버리다니, 곱게 죽을 생각하지 마라!”

다가오는 마족과 손속을 교환한 후, 짧게 원을 그려서 마족을 뒤로 튕겨냈다.

“하아아아아…”

길게 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조절했다.

전설이 된 후에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십 년이 넘는 기간동안 제대로 된 실전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날카로움이 많이 사라졌다.

콰드드득

산 자체가 흔들렸다.

밖에 있는 마족 중 한 명이 화풀이하려는지 다시 한번 이곳을 통째로 공격했나 보다.

태극으로 보호하고 있어서 마족의 공격이 약간이지만, 몸에 타고 들어왔다.

목구멍에서 피가 넘어올 것 같았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자연스러운 목넘김을 표현하기 위해, 아공간에서 물을 꺼내 목까지 축였다.

‘어쩔 수 없군. 여기가 내 무덤이 되겠어.’

그때 보이지 않는 동굴 밖에서 전투소리가 들려왔다.

리우가 무사히 탈출해 도움을 요청했나 보다.

“지원군이다! 너희들은 움직일 수 있겠느냐?”

동굴 뒤에 있던 다섯 명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대답했다.

“네. 가능합니다.”

“그럼. 이제 탈출할 시간이다. 내가 길을 뚫겠다.”

원으로 태극을 만든 다음에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동굴을 벗어나자, 알 수 있었다.

“내가 속았구나.”

마족들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인간의 흉내를 내서 지원군이 온 것처럼 연기를 하고 있었다.

눈치를 채자마자 다시 동굴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이미 동굴 입구도 세 명의 마족이 가로막았다.

“드디어 저 인간을 잡을 수 있겠군.”

“사지를 찢어 버려야 해.”

“내가 찢을 거야. 넌 구경이나 해.”

마족들의 대화를 들으며,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