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_준비된 대비(3)
안드레이가 떠드는 동안 숭배자들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내게 다가왔다.
그들은 내 양손과 양발에 능력 억제 구속구를 채웠다.
거기다가 부족했는지 어디서 쇠사슬을 가져와서는 내 몸을 칭칭 감았다.
“크하하하하핫. 꼴 좋구나. 교황청에서 찬란한 검하면서 띄워주니까. 본인이 정말 그렇게 잘났다고 생각하다니 말이야.”
안드레이의 웃음은 불쾌했다.
그렇다고,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깽판을 칠 수는 없었다.
‘중독 연기가 쉽지 않네.’
미약과 수면제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
칠성검을 쥐고 있었다면, 순식간에 독을 무효화 시킬 수 있었다.
거기다가 신비석의 기운을 일부 흡수한 후부터 칠성검이 없더라도, 느리지만, 독의 기운이 내 몸을 보호하고 독을 중화시켰다.
‘대체 언제 연락이 오는 거야?’
다크 프리스트들이 짜준 계획에는 잡힌 후, 연락이 올 때까지 대기해야 했다.
아무리 기분이 나쁘더라도, 참아야 하는데, 안드레이가 좋아하는 모습이 그냥 불쾌했다.
“아니지. 아니지. 차라리 이참에 마족으로 만들면 어떨까?”
이상한 소리를 내뱉은 안드레이가 품에서 보라색 알약과 파란색 알약을 꺼냈다.
“영광으로 알아라. 이 약들을 나보다 먼저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안드레이가 다가와서는 내 턱을 잡고는 얼굴을 들어 올렸다.
순간 손을 들어서 안드레이의 뺨을 올려 치고 싶었지만, 쇠사슬 때문에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곧 너도 우리와 한뜻이 되어 움직일 거다.”
계속 연기를 해야 할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둬야 할까?
고민에 고민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적들이 내 입을 벌리기 위해서 손가락을 내 입에 집어넣자, 그대로 물어버렸다.
“크아아악! 이거 놔. 이거 놔!!”
입 안에서 약간의 피맛이 느껴질 때, 입을 벌렸다.
그러자, 손가락을 넣었던 놈이 자신의 손을 부여잡으며 뒤로 물러났다.
놈들이 흉흉한 기세로 날 바라봤고, 나는 입안에 남아 있는 더러운 피를 뱉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락이 오든 말든 더는 못하겠다.”
“이놈이. 자신의 처지는 생각도 못 하고. 안 되겠다. 발 하나를 잘라라.”
“네. 알겠습니다.”
더는 이 장단에 놀아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냥 다 때려눕히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였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오케이. 타이밍이 예술이다.
조금 더 빨랐으면 내가 저놈의 손가락을 물지는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그런 사소한 것은 날려버리기로 생각하고, 포스를 일으켰다.
“그 쇠사슬이 그냥 일반적인 쇠사슬일 것 같으냐? 그건 바로 능력 억제 쇠사슬로…”
“뭐 어쩌라고.”
실체화된 포스가 쇠사슬을 빨갛게 달아오르게 했다.
그 상태에서 힘을 주자, 나를 구속하고 있던 쇠사슬이 끊어지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주위에 있던 놈들이 쇠사슬에 얻어맞아서, 피를 토했다.
그렇다고 나도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해독이 덜 됐네.’
머리가 어질어질거렸다.
“치사량 수백 배의 수면제를 먹였는데도 아직도 그런 힘을 발휘한다고?”
“날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니 고마운데.”
더는 어지러워서 안 되겠다.
아공간에서 칠성검을 꺼내 쥐자, 검을 타고 초록색 기운이 내 몸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몸 안에 남아 있는 독의 기운을 순식간에 정화했다.
“어…어떻게 이런 일이?”
“내가 말이야. 조건부 만독불침이거든.”
“이익…”
안드레이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신의 손에 쥔 약을 입에 넣으려고 했다.
중요한 증거물인데, 절대 먹게 할 생각이 없었다.
재빨리 검을 뻗어내서, 안드레이의 양팔을 잘라냈다.
“어…어…?”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안드레이는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다가 뒤로 쓰러졌다.
이대로 놈이 과다출혈로 죽어버리는 것도 좋지만, 다크 프리스트들은 절대 안드레이를 죽이면 안 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지.”
빙의 기운으로 잘린 부위를 그대로 얼려버렸다.
그렇게 지혈을 마친 다음, 안드레이의 몸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을 때였다.
“죽어!!”
남아 있는 놈들이 내게 쇄도했다.
일일이 상대하기에도 귀찮아서 몸속에 꽉꽉 채워져 있는 기운을 그대로 발산했다.
건물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고, 다가오는 놈들은 그대로 철푸덕 엎어졌다.
기운을 발산해서 모든 적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에 마저 안드레이의 몸을 뒤졌다.
“오~ 아공간 주머니.”
안드레이의 아공간에서는 수상한 약물들과 포션들이 있었다.
그 포션 중 일부를 꺼내, 앞에 있는 안드레이에게 먹였다.
포션의 효과는 좋았는지 안드레이가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지금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잡힌 건 내가 아니라 당신인데?”
“곧 후회할 것이다.”
“후회?”
팔이 잘린 상태에서 안드레이가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원래 계획은 내가 널 붙잡고 있는 동안 하유신. 네 가족들을 납치하는 거지. 그리고 지금쯤이면 계획에 성공했을 거다.”
“기분 나쁘네.”
“크크크. 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크아아악.”
시끄럽게 떠드는 안드레이의 입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숭배자들의 마혈을 짚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충 일을 끝내자, 다크 프리스트들이 나타났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자신들의 작전이 먹혔다고 생각하는 안드레이의 희망을 깨줘야겠다.
“내가 아니 우리가 그거 하나 몰랐을까 봐? 다 대비를 해놨어. 그리고 가족을 건드렸다는 건, 끝까지 가보자는 거지. 이제부터 너희들이 하는 일 하나하나 다 철저히 부숴버리겠어.”
땅의 축복이 내 의지를 느끼고는 그대로 공간이동을 시도했다.
***
적들이 다가오는 족족 관통을 발사했지만, 조족지혈이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적들의 수가 너무나 많았다.
“평아. 이만 피해야 한다.”
“용호 형. 그렇게 되면…”
“괜찮다. 유신님이 다 방법을 마련해놨다고 했어. 어서!”
용호 형이 내 어깨를 흔들었지만, 나는 발걸음을 떼기 힘들었다.
“뭐 하는 것이냐? 빨리 뒤로 물러서라.”
“스승님.”
“어서!”
“네…”
일단 물러서기로 한 거 최대한 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렇게 모든 인원이 유신의 집 근처로 들어설 때였다.
집에서 불투명한 기운이 솟구치더니, 반구형 막을 만들었다.
콰아아앙
다가오던 마물들이 막에 막혀서 더는 다가오지 못했다.
“이게 뭐지?”
내 의문을 옆에 있던 스승이 해결해 주었다.
“결계다.”
“결계요?”
“그래. 이 정도라면, 하루 이틀 준비했던 게 아니라는 거군.”
“그럼 이제 괜찮은 건가요?”
“아니. 결계가 언제까지 여기를 막아줄지는 모르지. 그동안 우리는 최대한 재정비를 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원소술사와 마법사들은 벌써 명상에 들어갔다.
명상이 필요 없는 나는 불안감에 그저 마물들이 결계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콰직.
결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긱
“응?”
이상한 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정원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던 강철 동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저게 뭐야?”
강철 인형들은 정원 이곳저곳의 땅에 손을 박아넣더니, 자신의 창과 똑같이 생긴 창을 꺼냈다.
그리고는 집을 빙 둘러섰다.
그때, 강철 인형 앞으로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로브로 온몸을 가린 거대한 사내가 나타났다.
“응?”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결계에 막혀 들어오지 못하는 마물들을 바라보며, 자신보다 큰 거검을 들어 올렸다.
“날 이런 식으로 부려 먹을 수 있는 건 하유신뿐이군.”
기세 때문일까? 아니면 분위기 때문일까?
마물이 있는 곳으로 걷는 사내의 모습에 4기동대는 홍해가 갈라지듯 옆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스승인 지(地)가 그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응? 날 아나? 나는 처음 보는데?”
“사신님과 함께 있을 때 몇 번 만났습니다.”
“아! 자네군. 그런데 어떻게 난 줄 알았지? 로브와 가면으로 날 가렸는데?”
“모습을 가려도, 그 검은 가릴 수 없으니까요.”
“그렇군. 일단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지금 내가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스승인 지(地)가 저렇게 격식을 차려서 이야기는 하는 사람은 본인이 알기로 유신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저 거대한 검을 든 사내에게는 평소 유신이를 대하는 것보다 더욱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검? 사람만 한 거대한 검?”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떠올랐다.
그렇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내는 아무렇지 않게 결계 밖으로 나가며 한마디 했다.
“자네들은 저 깡통 인형들과 함께 집을 지켜주게.”
“알겠습니다.”
보이지 않을 테지만, 스승은 꾸벅 고개까지 숙여서 대답했다.
나는 그런 스승 옆으로 다가갔다.
“스승님. 저분을 말려야 합니다.”
“평아. 누굴 말린다는 말이냐?”
“저분 말입니다.”
“그럴 필요 없다. 세상에서 저분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존재하지 않거든.”
“네? 설마…”
13인의 전설이자, 전대 용병왕 로저 시거.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된 사람이 여기에 있을 리 없었다.
거기다가 유신이 아무리 유명하지만, 자신의 집을 지켜달라고 전설을 불렀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
늦지 않게 집에 도착했다.
디에고 레비가 설치해준 결계는 약간 금이 가기는 했지만, 저 정도는 마나석만 갈아 끼우면 자가복구할 정도였다.
“그래도 약속을 잊지는 않았나 보네.”
용병왕 로저 시거가 결계 밖에서 마물들을 학살하는 중이었다.
“끝도 없이 몰려드네.”
이곳이 평지이거나, 아무것도 없었다면, 벌써 로저 시거가 저 마물들을 다 물리쳤을 거다.
그렇지만, 여기는 서울 한복판의 주택가.
광역 기술을 쓰게 되면, 일반인이 다칠 수 있었다.
“뭐하냐? 이 늙은이한테 다 맡길 것이냐?”
“그럴 리가요.”
칠성검을 꺼내 중단세 자세를 취했다.
유성 찌르기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로저 시거가 있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움직였고, 그 사이에 있던 마물들은 거대한 구멍이 뚫린 채 쓰러졌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게 온 것은 알고 있군.”
“다른 일 좀 처리하느라고요.”
거검을 휘둘러서 한 번에 세 마리의 마물을 잘라버린 로저 시거가 피식 웃어 보였다.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없네.”
뇌전의 기운을 끌어올린 후, 그대로 앞으로 뿜어냈다.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간 마물들의 몸이 터져서 죽어 나갔다.
“알고 있습니다. 단지, 용병왕이신 로저 시거님이 약속을 지킬 거라는 걸 믿고 있었습니다.”
바람의 기운을 날카롭게 벼려서 부메랑처럼 날렸다.
U자 모양으로 마물들의 몸이 양분되었다.
“그리고, 가족을 지켜달라고 했던, 저 친구들을 믿었거든요.”
“말은 좋군. 또 다른 피해가 일어나기 전에 우선 이놈들부터 빨리 처리해야 할 것 같군.”
“이제 본격적으로 처리해야겠죠.”
“어떻게 말인가?”
“이제 막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마물을 상대하던 로저 시거가 뒤로 몸을 날린 후, 주위를 둘러봤다.
“그렇군. 도착했어.”
검은 성직자 옷을 입은 수십의 사람들이 나타나서는 마물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특히, 한 노인이 눈에 띨 정도로 강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지팡이에 마물들이 몸을 가져다 댄 것처럼 백팔백중이었고, 두들겨 맞은 마물들의 몸은 터져나갔다.
“대단하군. 잠깐 교황청에 신세 질 때는 몰랐지만, 괜히 13기동 타격대의 비호를 받는 게 아니야.”
“뭔가 착각하신 게 있는데요. 교황청은 13기동 타격대의 비호를 받는 게 아니라, 가이아의 비호를 받습니다.”
내 말에 로저 시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네도 교황청 사람이 다 되었군.”
전투는 싱거울 정도로 빠르게 끝났다.
용병왕 로저 시거를 떠나보내고, 다크 프리스트들과 뒤처리를 한 후, 최실장을 만났다.
“최실장님. 가족들은 모르는 거죠?”
“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일찍 잠들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처리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도, 거리가 조용하네요?”
“교황청과 4기동대가 힘 좀 썼습니다. 일반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최실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그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만 쉬세요. 저도 들어가서 쉬어야 할 것 같네요.”
“네.”
그렇게 대화가 끝날 갈 때 집 밖에서 강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졌다.
이건 게이트 이동의 전조였다.
서둘러 밖으로 나오니, 때마침 게이트가 열렸고, 그곳에서 피투성이가 된 리우가 나왔다.
리우는 금방이라도 숨이 끓어질 듯, 호흡이 불규칙했다.
서둘러 아공간에서 최상급 포션을 꺼내 먹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리우가 눈을 떴다.
“리우야. 무슨 일이냐?”
“형님. 도와주십시오. 스승님이 위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