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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59화 (259/300)

259화_준비된 대비(2)

공항의 편의로 안드레이 추기경과 내가 인천국제공항의 VIP라운지에 단둘이 앉았다.

우리의 테이블 위에는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휘핑 가득한 칼로리 폭탄 음료가 올려졌다.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하유신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가이아를 모시는 안드레이입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을 한 안드레이 추기경이 미소를 지으며, 에스프레소의 잔을 들었다.

그리고는 그윽하게 향을 맡은 다음, 옆에 놓여 있는 초콜릿을 들어서 에스프레소에 넣고는 휙휙 저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한국에 오셨습니까?”

내 질문에 안드레이 추기경이 티스푼을 내려놓으며 미소 지었다.

“대외적으로는 그저 간단한 방문 행사일뿐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다른 이유는요?”

“교황청의 찬란한 검 하유신님.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지만, 앞에 있는 자가 배덕자라는 걸 알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어설프면 안 된다. 그리고 흥분해서도 안 된다.

“안드레이 추기경님 앞에서 제가 못난 꼴을 보였군요.”

“아닙니다. 연락도 없이 온 제 잘못이기도 하고요. 사실은 지금 하유신님이 임무 때문에 외부로 돌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교황께서도 하유신님을 키워낸 이곳이 궁금하시다고 해서 돌아보려고 왔습니다.”

“그렇군요.”

교황청은 지금 내가 한국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겉으로 휴식이지, 매일 바쁘게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나를 떠보는 거였다.

최대한 침착하게 다크 프리스트들이 짜놓은 작전대로 움직여야 한다.

“이렇게 한국에 오셨는데, 저와 함께 다니시는 건 어떠십니까?”

“하유신님과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을 보니, 안드레이의 연기력이 좋다고 생각했다.

“네. 일정을 보니, 이틀 동안 계시는 건데, 그 정도는 저도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 또한 영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움직이기로 하셨습니까?”

“교황청 한국지부에서 차량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움직이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그럼.”

앞에 놓여 있는 칼로리 폭탄 음료를 들이켰다.

달디단 음료가 입을 통해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미묘한 맛이 느껴졌다.

혹시 몰라, 포스를 이용해, 칼로리 폭탄 음료를 감싸서는 위 한 쪽에 가둬뒀다.

“다 먹었는데, 움직일까요? 저 때문에 이렇게 시간까지 내주셨는데, 늦으면 안 되니까요.”

“네.”

자리에서 일어난 안드레이 추기경은 끝내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않았다.

그게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유신님. 그쪽이 아니라, 이쪽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저도 이런 곳은 처음이라서 길을 잘 몰라서요.”

“처음이면 다 그럴 수 있죠. 하하하.”

일정은 평범하게 돌아갔다.

교황청 한국지부를 들러서 이런저런 덕담을 진행했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에 지부 사람들과 회의가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졸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차량을 타고 다시 이동했다.

“지겹지 않으십니까?”

차량에 같이 타자, 안드레이 추기경이 내게 대뜸 던진 말이었다.

아까 회의할 때 뒤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모습을 봤나 보다.

“죄송합니다. 갑자기 몸이 좀 피곤한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안드레이 추기경의 눈이 빛났다.

물론, 아주 짧은 시간이라서 남들은 눈치채지 못했을 거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

“피곤하시면, 다음 장소까지 쉬시면 됩니다.”

“아닙니다. 제가 경호를 약속했는데, 졸면 안 되죠.”

“하유신님이 아무리 우리 교황청의 찬란한 검이라고 해도, 사람입니다. 그리고 설마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말씀만은 감사합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교황청에서 관리하는 고아원이었다.

고아원의 규모는 컸고, 아이들의 몸 상태도 좋아 보였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이런 행사에 자신들이 동원되었다는 게 싫었는지, 약간은 어색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도, 하루에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쫓아다니기만 했는데요.”

“이렇게 도와주신 것도 있는데 제가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저녁 식사요?”

다크 프리스트들이 말한 대로 안드레이 추기경은 날 초대했다.

이대로 이 초대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됐다.

“네. 싫으십니까?”

“아뇨아뇨. 메뉴가 궁금해서요.”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 상황에서 음식을 따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본능이었다.

저녁까지 먹어야 하는데, 그래도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하하하. 그렇네요. 비서진이 꽤 괜찮은 이탈리아 음식점을 예약했다고 하는데, 괜찮으십니까?”

“한국에서 이탈리아 정통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좋죠.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가시죠.”

누구나 한 번쯤 그런 날이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이 딱 꽂히는 그런 날.

솔직히, 오늘은 삼겹살이 너무나 땡겼지만, 작전을 위해서 이탈리아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음식점이 조용하네요.”

“제가 번잡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말입니다.”

“네. 그런데, 이 파스타 맛있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괜찮으십니까?”

“네? 뭐가요?”

“파스타까지 먹었으면 이제 슬슬 약 기운이 돌 텐데 말이죠.”

안드레이의 말이 신호가 되었을까?

갑자기 레스토랑 이곳저곳에서 무장한 인원들이 나타났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그래도 교황청에서 찬란한 검이라고 치켜세워주는 이유가 있었군. 약빨이 잘 안 먹히네.”

순간 머리가 핑하고 돌면서 어지러웠다.

“…역시…독인가?”

“독이라니. 그저 미약과 수면제를 섞었을 뿐이네.”

고개를 들어서 안드레이 추기경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약간은 일그러지게 보였다.

“배…덕자?”

“알면 이제 쉬게. 나는 자네를 사로 잡음으로서 꽤 큰 상을 받을 것 같으니 말이야 하하하.”

***

“평아.”

“네. 스승님.”

“어깨를 펴고, 긴장감을 조절하거라.”

“알겠습니다.”

아무리 스승인 지(地)의 말이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얼마나 긴장이 되는지, 처음 헌터 일을 할 때보다 더욱 가슴이 두근거렸다.

“너는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다. 그러니, 본인의 능력을 믿어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심하게 긴장하면, 근육이 수축되어서 기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알겠습니다.”

“지금 내 말이 귀에 들어오느냐?”

“알겠습니다. 죄.죄송합니다. 스승님.”

평소에 이런 모습을 내가 보였다면, 타박하실 스승님이었을 테지만, 오늘은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스승님 오늘 정말 숭배자들이 나타날까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래도 이곳을 꼭 사수해야 한다.”

“물론입니다.”

지금 내 뒤에는 유신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 있다.

유신이 나와 내 가족을 지켜주고, 베푼 것들을 꼭 보답하고 싶었다.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야 일부라도 보답할 수 있게 되었다.

“하유신님과는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다고?”

“네. 아카데미 동기였습니다.”

“그분은 아카데미에서 어떤 분이셨느냐?”

지금이야 누구보다 잘난 유신이지만, 아카데미에서는 이론만 강한 친구였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하고 정직한 놈이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냐?”

“사람은 일주일을 일하면 어떻게 해서든 하루는 꼭 쉬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유신은 365일 쉬지 않고, 본인이 목표로 한 것들을 달성해왔습니다. 남들과는 다른 능력. 그리고 놀림이 있더라도 꾸준하게요.”

“그래. 그게 맞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어떻게 하면 편하게 갈 생각을 하지 말고, 묵묵히 달려 나가야 하는 거. 그게 맞는 것이다.”

“맞습니다.”

“그래. 이제 긴장이 좀 풀렸나 보구나.”

“그렇네요.”

가만히 서서 지키고 있을 때는 불안감과 함께 긴장감이 가득했는데, 대화하다 보니, 긴장감이 풀렸다.

“우리가 이렇게 대비를 해놨지만, 적들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너희 나이대에는 호승심 때문에라도 영웅을 꿈꾸지 않느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다치는 것보다는 조용히 넘어가는 게 좋으니까요.”

그때, 스승의 표정이 굳었다.

“제가 뭐…실수라도 했나요?”

“적들이 오고 있다.”

스승의 말에 한껏 풀어졌던 몸이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부터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타난 적들은 흉측한 외모에 이족 보행을 하고있는 마물이었다.

“나는 앞으로 갈 터이니, 너는 여기서 배운 대로만 하면 된다.”

“……”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스승님. 몸조심하십시오.”

“그래. 너도 조심해라.”

쌍검을 꺼내든 스승이 빛살 같은 속도로 앞으로 쏘아졌다.

그리고는 마물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작전대로만 하면 된다. 작전대로만.”

4기동대의 견제. 그리고 스승인 지(地)를 포함해서 뛰어난 능력자들의 공격.

그리고, 혹시나 적들이 한곳에 모여서 몰려오면 적들을 향해 내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면 된다.

“할 수 있을까?”

훈련할 때도 매번 성공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아니 실패할 확률이 높은 기술이었다.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적들이 몰려오거나 기회가 생겼을 때 이 기술을 사용해야 했다.

훈련 때야 실패하면, 다시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지금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다.

실패하는 순간 마물들에게 온몸이 찢겨 죽을 거다.

죽음을 생각하자,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괜찮아?”

전방에 있던 용호 형이 온몸에 마물의 피를 묻히고, 서 있었다.

“네. 괜찮아요.”

“이제 슬슬 준비하라고, 지(地)께서 말씀하셨어.”

낚시 바늘에 꿰인 망둥어처럼 날뛰는 심장을 위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조금 진정되자, 내 친구 유신이 건네준 흑창을 거세게 쥐며, 바라봤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훈련했다는 증거가 이 흑창에 남아 있었다.

아무리 관리했다고는 하지만, 군데군데 흠집 나고, 손때가 탄 흑창이 오늘따라 손에 더욱 착 달라붙었다.

“평아. 지금이라도 못할 것 같으면 말해. 다음 작전도 준비되어 있으니까.”

날 걱정하는 용호 형을 바라보며 최대한 굳건한 표정을 지어줬다.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해 보이겠습니다.”

“그래. 그럼 준비해. 이제 곧, 이쪽으로 온다.”

“네.”

길게 숨을 토해낸 후, 창의 중간에서 약간 뒷부분을 잡았다.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낮춘 후, 상체를 최대한 뒤로한 후, 오른팔의 근육이 비명을 지를 때까지 창을 뒤로 최대한 들어 올렸다.

“준비해라. 카운트 다운. 삼.”

스승인 지(地)가 나의 이 기술을 보고, 작전을 만들었다.

그런 스승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해내야 했다.

“이.”

지금까지의 부족한 신평이 아니라, 새로운 나로 거듭나기 위해 준비해왔다.

“일.”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유신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해낼 거다.

“지금이다!”

비스듬하게 앞으로 일어나며 흑창을 앞으로 뻗어냈다.

창끝에서 시작된 회전은 기운이 되어 뭉쳤다.

관통(貫通)

소형 토네이도라고 불려도 될 기운이 창끝에서 뿜어졌다.

다가오던 마물들이 소형 토네이도에 휩싸였고, 그 뒤에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모든 마물까지 토네이도에 휩싸여서는 분쇄됐다.

“…성…공 했습니다.”

앞에서 뭉쳐오던 대부분의 마물이 잘게 썰린 고기처럼 조각났다.

지금까지 고작 몇 번 성공했던 기술이 오늘은 대성공을 이루었다.

“용호 형. 제가 성공했어요.”

“그래. 잘했다. 잘했어.”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 한 번의 공격을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기운을 다 쏟아부었다.

이제 남은 잔당만 처리하면 모든 일이 끝나는 거다.

그때, 스승인 지(地)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모두 집중해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목소리에 나약해지던 마음을 다잡고, 창을 지팡이 삼아 일어났다.

그런데, 다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이게 뭐야?”

내가 죽인 마물의 수는 고작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보다 몇 배나 많은 마물이 이곳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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