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_용병왕(1)
“지금 당장 교황청을 친다.”
“그…그게 무슨?”
탐 탄테오가 미쳤다.
지금까지 어떻게 준비했는데, 한순간에 모든 것을 망치려고 한다.
“저기 탐.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루이스. 내가 잘못 들었나? 다시 생각하라고?”
이미 눈이 돌아버렸다.
어쩔 수 없이 시리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시리도 탐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아는지, 탐의 손을 잡았다.
“탐.”
“시리. 말리지 마. 감히, 교황청 따위가 우리 일을 방해해?”
“…알았어. 말리지 않을게. 대신에 조금만 기다려줘.”
“그게 무슨 말이지?”
“아까도 말했지만, 1년이면, 우리의 대업이 완성돼. 그때 네가 원하는 대로 아니, 모두가 다 같이 베드의 원수를 갚자. 지금은 최대한 변수를 없애야 해.”
무슨 말장난 같은 말이었다.
그렇지만, 탐은 길게 숨을 내쉬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루이스. 대업이 오기 전까지 교황청을 괴롭힐 수단을 생각해둬라.”
“지금 쓸 건 아니지만, 교황청에 우리 인원이 한 명 들어가 있어. 그를 이용해 내부 분열을 일으킬게.”
“그걸로는 부족하다.”
교황청과 동일하거나, 유사할 정도의 단체만 건들지 않는다면, 다 좋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마신석을 이용하는 건 어때?”
“마신석? 그건 나중에 파이몬님이 쓰실 군사다.”
“마계에서 가장 많은 군단을 거느리고 계신 분이 파이몬님이셔. 그러니, 마신석으로 전세계가 정신을 못 차리게 해야지.”
고민하던 탐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시작할 거지?”
“마신석은 시리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교황청에게 간접적으로 피해를 주려면 한 달 정도 걸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부족할 테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부족하다. 일주일 그 안에 교황청을 해결해라.”
“일주일이면, 너무 턱없이 모자라…”
“자꾸 무능하다는 걸 보여주는군.”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그렇다고 명령을 어길 수도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탐. 잠깐만.”
시리가 탐을 말리고 앞으로 나섰다.
“루이스. 혹시, 교황청에 하유신과 친한 존재들이 있나요?”
“네. 우선 성녀 마리와…”
“아니. 내가 하는 말은 그게 아니야. 하유신과 친한 다른 인원만 노리고 함정을 파주세요.”
좋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하유신의 가족은 한국에 있었다.
***
[베드 미다스는 하유신과 성녀님 그리고 교황청의 최정예가 함정을 파서 잡았다고 보고했습니다.]
“잘했다 앤. 그럼 지금 아스본 레스넌은 어떻게 하기로 했지?”
통신 수정구에서 잠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앤이 실수할 걸 대비해서 얀이 대본을 넘기는 소리였다.
[아 찾았다. 아스본 레스넌님은 북쪽을 리암님이 서쪽을 맡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콜린 시거 그러니까, 용병단에게는 멕시코 북서쪽의 몬스터 퇴치와 함께 거기서 나오는 모든 부산물을 받기로 했습니다.]
“알았다. 너희도 임무가 끝나면 복귀하도록.”
[네. 성녀님.]
수정구의 통신이 끊기자, 수정구가 쩍하니 갈라졌다.
원래는 위성 전화를 통한 연락이 최근에 도청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급하게 수정구로 연락하게 됐다.
안전성은 확실하지만, 급하게 만든 거라서 그런지, 쉽게 망가졌다.
“루카스. 이것 좀 치워주고, 지금 유신은 뭘 하고 있나요?”
“방에서 쉬고 있습니다.”
“유신이 좀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루카스는 깨진 수정구를 치운 후, 밖으로 나갔다.
대외적으로 교황청은 베드 미다스를 죽이기 위해, 전력은 3분의 1이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물론, 유신이 처리했기에 교황청에는 타격이 전혀 없었다.
“대체 무슨 수련을 받았기에…”
사흘 전, 유신이 갑자기 교황청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베드 미다스였다는 마족의 뿔 세 개와 펜던트를 내려놓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깜짝 놀라서 유신의 상태를 확인해봤는데, 그저 탈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선배. 불렀어요?”
아무리 생각에 빠져 있었다고 해도 유신이 온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는 최소한 자신 수준으로 유신이 올라갔다는 거다.
“부르셨는데 왜 말씀이 없으세요?”
“아니다.”
생각을 접어두고,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 정보가 들어왔어.”
“정보요? 아! 용병대가 움직이는 경로요?”
“그래. 그런데 그건 왜 궁금한 건데?”
유신이 갑자기 강문을 연상케 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로운 용병왕이 교황청에 시비를 걸어서요. 그래서 좀 괴롭혀주려고요.”
지금까지 교황청과 용병대는 서로를 대우하면 잘 지내는 사이였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다면, 자신에게 보고가 들어와야 하는데, 들어온 정보가 없었다.
“앤과 얀이 말 안 했나 보네요. 사실은…….”
길고 긴 유신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열이 뻗쳐왔다.
“감히 마검 사용자 따위가 우리 교황청을 압박해?!”
“너무 그러지 마세요.”
“뭘 그러지 마!”
“그래서 제게 다 생각이 있어요.”
“어디 한번 말해봐.”
***
용병들에게 용병왕은 절대적인 존재라고는 하지만, 그들을 멋대로 부릴 수는 없었다.
철저한 손익 계산 하에 움직이는 존재가 용병이었다.
반대로 그들에게 막대한 이득을 주게 되면, 용병들은 날 따를 수밖에 없었다.
“멕시코 북서쪽의 기간테우스 스콜피온과 블루 크로커다일을 우리가 가지기로 했다.”
“역시. 용병왕님이십니다.”
“콜린 시거님이 다른 이들을 제치고 용병왕이 되신 건 저희 용병들의 복입니다.”
순수하게 축하하는 자들도 있지만, 아첨하는 자들도 옆에서 기웃거렸다.
기간테우스 스콜피온과 블루 크로커다일이 비싼 가격을 하는 만큼 잡는데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고가의 몬스터를 포기할 용병들도 아니었다.
“내일 세 조로 나뉘어서 가도록 하지. 기간테우스 스콜피온에게 갈 용병단과 블루 크로커다리에게 갈 용병단.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후방을 지원할 용병단이 필요하다.”
절대 자신과 함께 후방에 남고 싶지 않을 거다.
그만큼 욕심나는 몬스터가 기간테우스 스콜피온이고, 블루 크로커다일이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사냥터가 정해진 후, 대부분의 용병이 몬스터들을 잡기 위해 서둘러 떠났다.
떠나는 용병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란 칼트 부단장이 다가왔다.
“용병왕님 정말 잘하셨습니다.”
“이게 정말 잘하는 걸까요?”
“네. 그렇습니다.”
인자하게 웃고 있는 아란 칼트를 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살심이 생겨났지만, 재빨리 감추었다.
“고생은 제가 다 했는데, 실질적인 보상은 저들이 다 가져가네요.”
“단기적으로 보면, 막심한 손해가 맞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런 소문이 돌 겁니다. 용병왕을 따르면, 상상 이상의 보상이 생긴다고요.”
“그건 벌써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용병단원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가지 않잖아요.”
“물론 계속 이러면 용병왕님의 용병단도 마음이 떠날 겁니다. 그렇지만, 저번에 엔트를 잡고 나온 부산물을 골고루 뿌린 후에는 한동안 그런 말은 안 나올 겁니다.”
누구보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움직인 건 나였는데, 다른 이들에게 보상이 넘어가는 게 정말 싫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참지 못하면 안 된다.
최대한 가슴 속 깊은 분노를 잠재우고, 얼굴은 웃으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쉴 테니, 나머지 일을 잘 부탁합니다.”
“네. 쉬십시오.”
트레일러로 들어간 후, 마검 히페리온을 침대에 집어 던졌다.
“적당히 해! 시도 때도 없이 살심을 품게 하지 말란 말이다!”
그때, 마검 히페리온이 스스로 몸을 띄워서는 아양을 떨 듯 내게 달라붙었다.
그러자, 지금까지의 모든 화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내가 널 집어 던진 건 정말 미안해. 그렇지만… 아란 칼트는 건들지 마. 그는 내가 널 사용하는 걸 알면서도 눈 감아 줬고, 십 년 넘게 내 지낭이 되어왔던 존재야.”
조심히 마검 히페리온을 어루만졌다.
손끝을 시작으로 극상의 만족감이 온몸을 자극했다.
정신적인 쾌락을 주는 존재, 마검 히페리온.
그 어떤 여자가 오더라도, 나를 이렇게 만족시킬 존재는 마검 히페리온밖에 없었다.
“하아…하악…”
만족감에 젖어 거친 숨을 몰아쉴 때였다.
“콜린 시거님. 잠시 나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헝클어진 머리를 반듯하게 정리한 후, 마검 히페리온을 옆구리에 착용했다.
그리고는 굳게 닫혀있던 트레일러의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그게…떠났던 용병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는데…그게…”
“뜸 들이지 말고, 말해라.”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네. 지금 블루 크로커다일과 기간테우스 스콜피온의 초입에 들어왔는데, 단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욕심 많은 용병들이 안달이 났나 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
“네?”
“멕시코에서 가장 비싼 몬스터들이 그 둘이다. 그런데, 마족 숭배자들이 그 두 몬스터를 그냥 그대로 뒀을까? 최소한 초입 부분에 있는 몬스터들은 잡았을 거다.”
“아! 그렇군요. 지금 당장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통신병이 떠난 후, 왼손으로 마검 히페리온을 어루만졌지만, 아무런 느낌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마검 히페리온이 원하는 게 있다는 거였다.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말로 해줘. 그래야 네가 날 만족시켜주듯 나도 널 만족시켜주지.”
[신선한 여자의 피를 먹고 싶어.]
“여자?”
주위를 둘러봤다.
민가는 존재하지 않았고, 야영을 준비하는 용병들만 있었다.
물론 용병 중에서 여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부하의 피를 보는 건 아직 찝찝했다.
거기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때, 뒤늦게 아란 칼트가 다가왔다.
“콜린 시거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요?”
지금은 용병들의 일을 해결하기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부단장님.”
“네.”
“제가 지금 깨달음이 올 것 같습니다.”
“추.축하합니다.”
“그래서 그러는데, 한 며칠 수련을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여기를 잘 돌봐주세요.”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좋은 성과를 내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유였지만, 아란 칼트는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렇게 몸을 움직여서 도착한 곳은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여관이었다.
여관에는 총 다섯 명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늘은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이들로 입가심만 해.”
마검 히페리온을 뽑은 후,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
오랜만에 온 집은 너무나 편안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잠을 잘 수도 없기에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좋은 아침.”
“아들. 일어났어?”
평소와 다름없이 엄마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가족들이 보이지 않았다.
“근데, 아빠랑 유민이는?”
“벌써. 출근했지.”
“그렇구나.”
벽에 붙어 있는 시계를 보니, 벌써 오전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 나도 출근할게요.”
“아침은?”
“늦어서요. 이따가 저녁에 봐요.”
“그래. 늦지 마라.”
“네.”
대충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그런 다음 주위를 둘러보고는 땅의 축복과 함께 멕시코 북서쪽으로 갔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있을 때,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땅의 축복이 알아서 다음 임무를 진행했다.
“람을 뵙습니다.”
삼백의 거인을 보며,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든든한 이들과 함께라면, 충분했다.
“오늘 잡을 블루 크로커다일의 가죽은 비싼 가격에 팔립니다. 성체가 된 블루 크로커다일은 모두 죽이고, 새끼와 알은 챙겨두세요. 우리도 농장이라는 걸 한 번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