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_베드 미다스(4)
게이트를 타고 도착한 곳에는 이제는 완연한 마족의 모습을 한 베드 미다스가 있었다.
“뭐야? 멀리 도망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
“하유신? 네가 여기까지 따라왔다고? 13기동 타격대와 함께 다닌다고 그들과 같은 진정한 전설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선배들과 비교하는 거 자체가 나한테는 영광인데?”
“어린놈이 단단히 미쳤구나.”
“그걸 이제야 알았어?”
13기동 타격대에 들어온 이후로, 맨정신이면 안 된다는 걸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무언가에 미치지 않았다면, 선배들의 훈련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의 이 책임감이라는 무게에 짓눌렸을 거다.
“미친개까지 내가 상대할 필요는 없지.”
말을 끝낸 베드 미다스가 날개를 펼치고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뭐야? 지금 나한테 도망치는 거야?”
“도망이라? 참 기분 더러운 말을 내뱉는군. 넌 나한테 오기 전에 죽을 거다.”
“설마 이딴 놈들을 믿는 거야?”
나는 칠성검으로 주위에 있는 수많은 몬스터와 베드 미다스의 소환수를 가리켰다.
그들에게서 어두컴컴하면서 칙칙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설마 내가 널 상대해줄거라고 생각했나? 분수를 알아야지?”
“분수라…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수부터 맞춰볼까?”
칠성검을 왼손으로 쥔 후, 오른손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리고, 핑거 스냅을 하자, 내 뒤로 꽤 높은 땅이 솟구쳤다.
땅은 이내 다시 가라앉았고, 삼백의 거인들이 무기를 꺼내든 채 도열해 있었다.
“람을 뵙습니다.”
“람을 뵙습니다!!”
프란시스코의 선창에 뒤에 있던 모든 거인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동시에 외쳤다.
덩치에 맞는 거인들의 외침에 이성이 없는 몬스터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거인들은 들어라!”
삼백의 거인들이 몸을 일으키며 내 명령을 기다렸다.
칠성검을 꺼내, 몬스터와 타락한 소환수를 가리켰다.
“지구의 해충을 박멸하라.”
“명을 받듭니다.”
타이탄, 티탄, 네피림이 무기를 꺼내 들고는 해충들에게 달려들었다.
거인들의 무기와 능력이 해충들을 박멸할 때, 고개를 들어 베드 미다스를 바라봤다.
알프레도 선배가 일루시안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게 했던 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남들에게 특히, 전설들 앞에서 본연의 모든 힘을 보이지 말라는 거였다.
그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나 또한 질시와 함께 제재받을 수 있다는 말도 해줬다.
그런데, 지금은 전설들도 그리고 관객도 없었다.
“아까와는 다를 거다.”
땅의 축복의 도움으로 온몸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그때, 신비석에 깃든 원소력들이 내게 힘을 주기 시작했다.
오직 땅의 축복이 버프를 해야만 쓸 수 있는 최강의 전투 단계였다.
“일단 내려와!”
비기 – 절단검
천천히 내려그은 검이 멀리 떨어진 베드 미다스의 왼쪽 날개를 잘라냈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은 베드 미다스를 보고 검을 중단세로 들어 올렸다.
유성 찌르기
금빛 유성이 되어서는 순식간에 베드 미다스를 스치고 지나갔다.
“크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베드 미다스의 오른쪽 날개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대단하네. 그 짧은 시간에 몸을 틀었어.”
“이놈!!”
베드 미다스가 거칠게 손톱을 휘둘렀지만, 내가 보기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늦었다.
그렇다고 그를 가지고 놀 생각은 없었다.
재빨리 검을 움직여서 베드 미다스의 오른팔을 날렸다.
“크아아악!”
극에 달한 원소력을 땅의 축복을 통해 온몸에 담으니,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갖췄다.
그로 인해 떨어진 오른팔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걱정하지 마. 난 너희들과 달리 남을 죽이기 전에 괴롭히는 성격이 아니니까. 단번에 끝내주마.”
고통에 겨워하는 베드 미다스의 목을 단번에 날려버리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하늘에서 히드라가 떨어지더니, 내 검격을 대신 받았다.
순식간에 히드라의 목들이 떨어졌고, 그 짧은 틈에 베드 미다스는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 높이 도망갔다.
유성 찌르기 변형 – 유성 가르기
페가수스의 몸이 단번에 갈라졌지만, 베드 미다스는 그리폰에 옮겨 탄 후, 바로 게이트를 열어서 도망쳤다.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아?!”
땅을 박찬 후, 공중에 포스를 띄워서는 그걸 밟고 게이트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미 닫혀 버렸다.
단검을 꺼내서는 그대로 게이트가 있던 곳에 내리긋자, 아물어가던 차원이 열렸다.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그대로 게이트를 타고 넘어갔다.
새로운 공간에 도착했을 때는 베드 미다스가 그리폰을 타고 저 멀리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유성 찌르기 변형 – 유성 던지기
금빛 오러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여서 그리폰을 재로 만들었다.
추락하는 베드 미다스가 보였지만, 저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마족이 다치거나 하지는 않을 거다.
유성이 움직일 때 긴 꼬리를 만들 듯 내 몸이 금빛 꼬리를 만들어서는 베드 미다스가 있는 곳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끝내자!”
심장을 향해 검을 내리꽂았지만, 생존 본능이 강한 베드 미다스가 몸을 틀어서 고작, 하복부에 검이 찔렸다.
그 상태에서 검을 왼쪽으로 움직여서 길게 자상을 만들었고, 베드 미다스의 몸은 상하가 덜렁거리는 상태가 되었다.
누구든지 금방이라도 죽을 수 있는 상태였지만, 마족이라서 그런지 베드 미다스의 숨은 여전히 붙어 있었다.
“사. 살려줘. 제발 부탁이야.”
지금까지 만난 마족과 다르게 베드 미다스가 애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난 전설이었잖아. 세계를 구한, 이 지구를 구한 전설. 다시는 나쁜 짓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예전에 내가 세운 명예를 생각해서 날 살려줘. 제발 부탁이야.”
“정말 구차하군요.”
“구차해도 상관없어. 난 살기 위해 마족이 되었던 거뿐이야. 그래. 날 살려주면, 내가 알고 있는 숭배자들의 모든 정보를 말할게. 그러니까 제발.”
“정보라…”
마족이 된 베드 미다스를 살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정보라는 소리에 혹했다.
“일단 들어보고 생각해볼게.”
“마신 숭배자들은 장로가 모든 일을 하고 있다. 너도 알다시피 모험왕 트리오로 불리우는 우리 탐 탄데오, 시리 시온, 그리고 나. 거기에 전설이었던 조쉬 히라니 그 외에 릴라와 루이스가 있다.”
대부분이 아는 이름이었고, 루이스라는 이름은 처음이었지만, 특별히 티는 내지 않았다.
“그건 다 아는 정보야. 뭔가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가령 본진이라거나 말이야.”
“우리에게 본진은 따로 없다. 점조직으로 이루어졌다.”
믿어 달라는 베드 미다스의 눈빛을 왼손을 날려버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크아아악! 이 미친!”
“그러게 왜 도망갈 생각부터 해? 게이트를 열려고 하는 걸 내가 모를 것 같았어?”
“난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당신의 손을 날린 건 위험 요소를 없애기 위해서지. 더는 도망가는 적을 잡고 싶지 않거든.”
“죽여라. 더는 내가 아는 정보도 없다.”
베드 미다스는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크크. 역시 아무리 뒤늦게 들어왔다고 하지만, 13기동 타격대를 건드는 게 아니었어.”
“아니. 틀렸어. 인류를 그리고 지구와 가이아를 배반하지 않았어야지.”
“너는 이 세계의 진실을 모른다. 마신만이 우리의…”
더 들을 필요가 없어서 심장에 검을 박아넣었다.
어떤 이유와 변명을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잘못을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그 마신이라는 놈 때문에 지구의 인구 절반이 사라졌어. 사람의 목숨은 언제나 동등해.”
울컥 피를 토한 베드 미다스가 날 노려봤다.
“…세상…을 저주한‥다. 그리‥고…하…유신 너도…우웩.”
크게 피를 뱉어낸 베드 미다스가 모든 걸 포기한 눈빛으로 말을 뱉었다.
“너희는 모두 마신님의 제물이 될 것이다. 크하하하하……”
웃음을 터뜨리던 베드 미다스의 몸은 곧 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떨어뜨린 것은 마족의 뿔 세 개와 목걸이 펜던트였다.
펜던트를 집어서 열어보니, 그 안에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어떤 여인과 귀여운 소녀가 있었다.
“가족인가?”
베드 미다스가 펜던트의 있는 가족 때문에 마족이 되기를 원한 것 같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었다.
“그럼 마무리를 지어볼까?”
아무리 거인들이 잘 싸우고 있다지만, 최소한의 피해를 위해서는 나도 움직여야 했다.
“땅의 축복! 몬스터들이 죽으면 아공간에 넣어줘.”
[네. 람이시여.]
***
다양한 색상의 튤립이 정원 가득 향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무르익었군.”
정원의 튤립을 감상하기 위해 그리고 기대감을 숨기기 위해 천천히 걸어서 정원을 지나치고, 고즈넉한 저택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비릿한 혈향이 사방에서 풍겨왔다.
“흠~ 아주 좋군.”
주위에는 이곳의 사용인으로 보이는 자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그들의 피가 바닥을 질척질척하게 만들었다.
“아이야. 어디 있니?”
사방을 둘러보다가 2층에서 기운이 느껴졌다.
기운을 따라 낡은 계단을 오르다 보니, 작은 방이 보였다.
더 이상의 기다림은 내 안의 욕구가 터질 것 같아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러자, 한 소녀가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자신을 노려봤다.
“크르릉…”
소녀의 성대에서 짐승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주인을 못 알아보면 안 되지.”
손을 들어서 허공을 내리쳤다.
소녀가 그대로 패대기 처진 개구리처럼 납작 엎드렸다.
“크르릉…”
“주인에게 이를 드러내는 짐승은 그대로 죽을 뿐이란다.”
아무리 타일러도 짐승은 길들어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 상태에서 만족해야겠군.”
손을 들어 올리자, 소녀가 딸려 올라오더니, 그대로 목이 잡혔다.
그다음, 소녀의 눈을 매섭게 바라봤다.
“탐 탄테오의 이름으로 명한다. 이제 그만 주인 곁으로 돌아와라.”
“크아아아아악!!”
괴성을 내지르던, 소녀의 몸이 점점 압축되며 접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내 주먹만 한 크기가 된 소녀였던 존재가 붉은빛을 뿜어내더니, 요사스러운 붉은 빛을 내는 팔찌가 되었다.
“이번에는 기대했는데, 한이 부족했나 보군.”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인간의 한은 쌓기도 어려웠지만, 풀기는 너무 쉬웠다.
복수하고도 그 한을 유지하는 존재가 극소수였다.
“더 좋은 곳을 찾아봐야…”
갑자기 영혼의 일부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감각은 분명…
“베드?”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갔고, 쥐고 있던 팔찌가 비명을 지르다가 깨져나갔다.
들고 있던 팔찌를 대충 집어 던진 다음에 게이트를 연 후, 자신들의 안식처로 향했다.
그곳에는 시리가 미리 와서 기다렸다.
“탐. 베드가…베드가…”
말을 잊지 못하는 시리를 살짝 안아주며 말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알고 있으니. 시리. 루이스를 불러주겠어?”
“으응.”
얼마 지나지 않아서 루이스가 공간이동 게이트를 통해 넘어왔다.
“바쁜데, 갑자기 무슨 호출이야?”
루이스는 베드가 죽은 걸 눈치채지 못했고 그게 더욱 화를 부추겼다.
그대로 루이스의 목을 움켜쥔 후에 벽에 밀쳤다.
“호출?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지?”
“크…대‥체 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라고 널 장로로 만든 게 아니다.”
손에 힘을 줘서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부러뜨리고 싶었지만,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서 참았다.
그리고는 잡고 있던 루이스를 옆으로 집어 던졌다.
“베드 미다스가 죽었다. 지금 당장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알아봐라.”
“콜록 콜록. 베드가?”
“두 번 말하지 않겠다.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알아 오지 못하면, 네놈의 목숨도 사라질 것이다.”
“아…알았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루이스가 떠났다.
“탐…”
뒤에서 시리가 자신을 불렀지만,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시리. 난 말이야. 우리 가여운 베드를 죽인 놈을 가만둘 수 없을 것 같아.”
“그래도 참아야 해. 이제 약 1년만 있으면 마왕 강림이 가능할 거야. 알잖아. 모든 준비가 끝나가고 있다는 거. 조금 있으면 우리의 염원을 이룰 수 있어.”
“지금은 그냥 다 죽여 버리고 싶어.”
“이리 와.”
시리가 다가와서는 양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러자, 화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해가 지기 전에 루이스가 돌아왔다.
“찾았어. 베드를 죽인 건 교황청의 검 하유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