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_베드 미다스(3)
바람의 자유로움과 불꽃의 폭발력이 유성 찌르기를 더욱 강하게 하였고, 단번에 베드 미다스에게 닿았다.
심장을 노려서 단번에 끝내려고 했지만, 베드 미다스가 위험을 감지하고는 몸을 피해서 허벅지 관통으로 끝났다.
“크으윽…”
상처 입은 베드 미다스가 신음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났다.
“치사한 짓을 다 하는군.”
“들어보니, 지금까지 어쌔신처럼 상대가 방심할 때마다 나타나셨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따라 해봤습니다.”
“하유신!”
“절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게 허벅지를 관통당했으면서 베드 미다스는 내게 집중하지 않았다. 무언가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알프레도 선배를 찾는 거군.’
이 자리에 있지 않는 선배를 찾는 게 어이없었지만, 이 상황을 확실히 노려야 한다.
주위에 오러를 띄운 후, 집중하지 못하는 베드 미다스에게 날려 보냈다.
“이런 잡다한 걸로 내 발목이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없는 알프레도 선배를 경계하고, 상처 입은 상황에서도 베드 미다스는 손쉽게 오러를 막았다.
“환영 인사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제대로…”
내가 베드 미다스에게 말을 하는 도중에 리암이 불꽃으로 베드 미다스를 공격했다.
원래 작전은 리암은 일반 몬스터를 공격하다가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베드 미다스가 다쳐서 그런지, 기회라 여기고는 달려들었다.
“크헉~”
베드 미다스가 들고 있는 몽둥이를 휘두르자, 리암의 불꽃이 사라지고, 그대로 타격당한 후, 뒤로 날아갔다.
짧은 순간 불꽃이 무언가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서, 오러에 다양한 원소력을 넣어서 날려 보냈다.
“이딴 저질스러운 공격이 내게 통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몽둥이가 오러와 부딪칠 때마다, 원래 없다는 듯이 기운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검에 오러를 씌운 후, 달려들었다.
검과 몽둥이가 부딪칠 때마다, 오러가 있던 부분이 사라졌다.
‘사라지는 오러. 그리고 그걸 복원하기 위해 미약하기는 하지만, 평소보다 포스 소모가 있어.’
전투 중에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일단은 저 몽둥이부터 어떻게 처리해야 할 상황이기에 칠성검 자체를 쇠의 기운으로 보강한 후, 그걸 안에 가뒀다.
그 상태에서 베드 미다스에게 달려들었다.
“전설들도 파악하지 못한걸. 네놈이 이 짧은 시간에 알게 됐다고?”
공격 스타일이 변한 걸 다른 누구도 아니, 베드 미다스가 먼저 파악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고, 그저 묵묵히 칠성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칠성검과 세계수 몽둥이가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지금까지 내 전투는 언제나 강한 힘에 대한 대결에 가까웠다.
서로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에서 더 능력이 강한 자가 상대에게 유효한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오직 원시적으로 상대의 몸에 무기를 박아 넣는 게 목적이었다.
몽둥이를 비스듬하게 막아서 떨어뜨리며, 검을 들어서 어깨를 베어갔다.
허벅지가 뚫려서 운신이 어려운 상황에서 베드 미다스는 상체를 트는 것으로 검을 피했다.
그 상태에서 몽둥이가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졌다.
왼손으로 몽둥이를 막고 공격하는 선택지가 떠올랐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나도 그렇지만, 베드 미다스는 아직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처를 입히기 위해 내가 상처를 입게 되면, 차후에 베드 미다스가 마족으로 변했을 때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몰랐다.
그래서 몸을 회전하듯 돌며 몽둥이를 피했다.
그로 인해 거리가 벌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성급하게 움직이는 것보다, 차근차근 진행하자.
서로의 약점을 파고들기 위해 검격을 교환했다.
처음에는 몽둥이와 싸우는 게 어색했지만, 지금은 점점 익숙해졌고, 조금씩이지만, 베드 미다스에게 생채기를 내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꼬맹이가!”
허벅지가 꿰뚫려도 화를 내지 않던, 베드 미다스가 약간의 생채기에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뛰었다.
흥분한 상대를 공격하다 보니, 지지부진하지만, 조금씩 승기를 잡아갔다.
거인의 주먹
벌써 크리스가 참전을 시작했다.
원래 크리스는 베드 미다스가 지쳤을 때, 아스본 레스넌과 교대하기로 했었다.
그다음 아스본과 나 그리고 리암이 협공으로 베드 미다스를 공격하고, 크리스가 소환수들을 맡기로 했다.
“그래. 이제 알았어. 알프레도 켄트는 여기에 없는 거군.”
“난 있다고 한 적이 없는데?”
“이거 제대로 당했어. 인정하지.”
“당신의 인정 따위 받고 싶지 않아.”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그저, 베드 미다스가 도망치지 못하게 최대한 붙잡았다.
타이밍은 맞지 않았지만, 크리스는 자신의 임무를 충분하게 진행했다.
아스본과 자리를 교대하고, 아스본이 내 옆으로 오게 되자, 리암이 우리 주위를 불로 뒤덮었다.
그렇게 3대1의 구도가 되었다.
“아시다시피 저 몽둥이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가이아께서 주신 능력의 발현을 저 몽둥이가 사라지게 합니다.”
“그래서, 능력이 통하지 않았군.”
“레스넌님 순수 검술로 상대하시면 됩니다. 기운은 오직 검에만 집중하시고요.”
“걱정하지 마라.”
리암은 베드 미다스의 약점을 듣자, 더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화염의 능력은 저 몽둥이에 너무 쉽게 갈라졌다.
실질적으로 2대1의 구도였지만, 충분했다.
순수 무기술의 대결이 시작됐다.
엎치락덮치락 싸우다 보니, 어느새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서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베드 미다스가 몽둥이를 크게 휘둘러서 우리와의 거리를 벌렸다.
“지겨운 것들!”
말을 하는 베드 미다스는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유효타는 없었다.
그는 들고 있던 몽둥이를 잠깐 바라보더니, 하늘 높이 집어 던졌다.
“모두 꺼져라!”
처음에는 베드 미다스가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몽둥이를 놓은 순간 강한 마기가 이 공간을 뒤덮었다.
“저 몽둥이가 당신의 마기를 잠재우고 있었군요.”
베드 미다스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게 더욱 위험하다고 느껴졌다.
그때였다.
베드 미다스의 등 뒤에서 박쥐처럼 생긴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공중으로 몸을 띄운 그는 하늘을 향해 손톱을 내리그었고, 붉디붉은 게이트를 열어서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도망친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힘이라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를 찢어 죽일 수 있는데, 홀로 사라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서 공중으로 집어 던졌던 몽둥이가 운석처럼 이곳을 향해 떨어졌다.
“저거 때문이었군.”
지금이라도 당장 알프레도 선배가 만들어준 마도구로 베드 미다스를 쫓아가서 죽일까? 아니면 저 위험한 몽둥이를 막을까? 짧게 고민했다.
그리고, 몽둥이를 향해 전력으로 힘을 쏟아부으려고 할 때였다.
“크하하하하! 리암! 마지막일 수 있으니 부탁한다!”
크리스가 크게 외치며, 리암에게 달렸다.
리암은 크리스를 잡아서는 폭발력과 함께 몽둥이를 향해 던졌다.
몽둥이와 크리스가 부딪히기 직전 크게 펌핑되었던 크리스의 근육이 작게 아주 작게 압축되더니, 그대로 몽둥이와 부딪혔다.
“크리스님!”
목소리가 뒤덮일 정도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크리스는 몸을 바쳐서 이곳의 사람들을 구했다.
그리고 시커멓게 숯이 되어 떨어지는 크리스를 향해 달려갈 때, 리암이 날아서 크리스를 받아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잘게 부서진 몽둥이 파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카피: 쉴드 마스터 – 신성한 방어막
아스본 레스넌이 검으로 펼친 거대한 방어막이 모든 파편을 막았다.
그때쯤 리암이 크리스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힐러! 의무병!”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크리스 앞에 내려섰다.
“크리스님?”
크리스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저 하유신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행히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크리스를 살릴 수 있다는 소리였다.
아공간에서 급하게 ‘성녀의 축복 받은 포션’을 꺼내 크리스의 입에 흘러 넣었다.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포션이 밖으로 흘러나오자, 애가 탔다.
“유신. 비켜.”
“앤? 얀?”
언제 다가왔는지 스텔라 남매가 뒤에 서 있었다.
앤이 우선 남은 ‘성녀의 축복 받은 포션’을 빼앗듯이 가져가서는 자신의 손에 부었다. 그리고 짧게 기도를 올리자, 포션이 밝게 빛났다.
그다음, 얀이 앤의 손바닥 위에 있는 포션을 신성력으로 움직여서 크리스의 입에 넣었다.
그렇게 강제로 포션을 마시게 한 후, 그들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유신. 붉은 포션 있어?”
“붉은 포션? 가지고 있기는 하지.”
“열 개만 줘봐.”
“열 개나?”
“빨리!”
나는 아공간에서 급하게 포션을 꺼내 건네줬다.
앤은 뚜껑을 딴 후, 다른 병에다가 붉은 포션을 전부 붓더니, 성수를 꺼내 섞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포션은 우주와 닮은 모습으로 반짝였다.
“이제 먹여.”
앤은 그 한마디를 내뱉고, 그대로 쓰러졌다.
나는 포션을 크리스의 입에 천천히 먹였다.
포션을 다 먹은 크리스의 온몸이 밝게 빛나더니, 초재생하는 트롤보다 더욱 빠르게 몸을 회복했다.
그리고는 크리스가 두 눈을 번쩍 뜬 후, 상체를 일으켰다.
“왜 다 여기에 있는 거야? 무슨 일 있어?”
아무런 기억도 없는 건지 크리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 일도 없어요. 고생 많으셨으니까 좀 쉬고 계세요.”
“힘이 넘치는데? 근데 베드 미다스는 어디 있어?”
자신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다는 걸 기억하지 못하나 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크리스가 멋있어 보였다.
“전 일이 있어서 어디 좀 갔다 올게요.”
바람의 힘으로 몸을 띄운 후, 베드 미다스가 게이트를 열었던 곳으로 다가갔다.
게이트가 열렸다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아공간에서 알프레도 선배가 만들어준 마도구 단검을 꺼냈다.
단검을 천천히 허공에 내리긋자, 붉디붉은 게이트가 열렸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 주마.”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
전장은 승리로 끝났다.
그렇다고, 전쟁에서 이겼다는 건 아니었다.
“이제 겨우 여기에서 승리한 거지.”
“응? 제이미. 뭐라고 했어?”
“아냐. 소피. 근데 무슨 일이야?”
“회의가 열려서 참석해야 해.”
무슨 일 때문에 회의가 열린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전장 정리도 필요하고, 갑자기 게이트를 열고 떠난 유신 때문일 것이다.
“응. 가자.”
소피와 함께 회의실로 들어가자, 전체적인 분위기가 복잡 미묘했고, 그 분위기 그대로 회의는 진행됐다.
대부분의 일은 손쉽게 결정됐다.
“마지막 안건으로. 하유신이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베드 미다스가 열었던 게이트를 타고, 들어갔다. 여러분의 의견을 묻고 싶다.”
“어떤 의견 말입니까?”
“유신을 찾으러 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기다릴 것인가?”
아버지 아스본 레스넌의 말에 회의장이 어수선해졌다.
그때, 크리스가 몸을 일으켰고, 사람들의 술렁임이 멎었다.
“당연히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번 대승의 주역이다.”
압도적인 눈빛을 뿜어내는 크리스의 모습에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콜린 시거가 입을 열었다.
“크리스님의 말이 맞지만, 구하는 건 별개의 문제입니다.”
“별개?”
“네. 그가 저번 전투의 임시 총사령관이었고, 그 덕분에 이겼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그는 홀로 적을 쫓아갔습니다. 그가 아무리…”
자신의 의견을 말하던 콜린 시거가 거슬렸다.
뭐가 거슬리는지는 얼마 안 돼 알게 됐다.
“하유신.”
“네? 제이미양? 뭐가 말입니까?”
“그가 아니라, 하유신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이미양 어쨌든 그는 아! 또 실수할 뻔했군요.”
방긋 미소 짓는 콜린 시거를 보니, 억지로 저러는 게 확실했다.
“그럼 계속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유신이 아무리 성과를 냈다고는 하지만, 마지막에 멋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거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새로운 용병왕은 동료애가 없군.”
크리스의 도발에 주위 용병들이 발작적으로 무기에 손을 얹었다.
“그거 뽑아봐. 머리통을 뽑아줄 테니.”
서로 으르렁거리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모두 그만! 지금부터 투표하도록 하겠다. 유신을 구하러 가자는 사람은 손을 들도록.”
오십 명이 넘는 인원 중 고작 열 명도 들지 않았다.
그 모습에 크리스가 흥분하려고 할 때였다.
회의에 참석한 후, 계속 가만히 있던 몽골 인원 중 네르구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함부로 의견을 낼 자리가 아니라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네르구이가 목을 가다듬었다.
“우선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몽골의 기마부대를 맡고 있는 만인장 네르구이라고 합니다.”
몽골의 만인장은 그 나라의 4성 장군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몽골이라지만, 여기에 있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 제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저는 하유신. 그분을 믿으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이미 레스넌양?”
“네. 맞습니다.”
“하유신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시면, 곧 돌아오실 겁니다.”
너무나 밑도 끝도 없는 신뢰가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