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_베드 미다스(1)
수련을 마치고 오랜만에 교황청으로 돌아오자마자, 마리 선배는 날 쫓아내듯이 멕시코 전선으로 보냈다.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루카스에게 대략적인 보고를 받았다.
그래서 스텔라 남매를 찾으려고 하는데, 강한 신성력이 솟구치는 곳이 보였다.
“이야~ 7급으로 올랐다고 하더니, 전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신성력이네.”
앤의 성장을 칭찬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세 달간 그 공간에 갇혀 있어서 답답했는데, 이렇게 밖으로 나오니 너무나 상쾌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알프레도 선배가 가지고 있는 마나석을 탈탈 털어가더니, 그대로 일루시안으로 돌아갔지.”
그때만 생각하면 화가 치솟기는 했다.
마나석이 아까운 게 아니라, 홀로 2개월을 버티는 게 너무 힘들었다.
‘뭐 그래도 이제 원소력을 다루는 게 능숙해지기는 했지. 근데 왜? 고약한 냄새가 나지?’
스텔라 남매가 있는 곳으로 갈수록, 미약하지만, 마기가 풍겨왔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얀과 제이미가 어떤 남자와 대치 중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는데, 저놈이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고,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지르듯이 말했다.
“그 말은 교황청과 대립하겠다는 말로 들리네요.”
“유신아…”
“안녕 제이미!”
반갑게 손을 들어서 인사할 때였다.
제이미가 다가오더니, 그대로 내게 안겼다.
갑자기 이런 행동에 당황스러웠지만, 뭐 때문에 이런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무서웠구나. 이제 걱정하지 마. 내가 왔으니까. 이 전쟁 내가 곧 끝낼게.”
“전쟁을 끝내겠다고? 누가? 네가?”
처음 보는 사내가 시비 걸듯 말했다.
“네. 제가 끝낼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죠?”
“어린놈이 오만방자하구나. 나는 제 2대 용병왕 콜린 시거다. 네가 전설들도 끝내지 못한 전쟁을 끝내겠다고?”
“용병왕? 그래서 교황청에 불매를 하네마네 하셨던 거군요. 네. 사지 마세요. 당신들한테 팔 포션도 부족할 것 같으니.”
“네가 교황청의 검이라고 해서 교황청을 대변하는 줄 아느냐?”
“충분히 대변할 지위에 있습니다.”
물론, 용병들에게 포션을 영영 팔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용병왕과 용병들의 포션 불매는 얼마 가지 못할 거다.
그들만큼 전투에 친숙한 존재들은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포션은 또 다른 생명줄이었다.
“원한다면, 지금부터 바로 포션 판매를 금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성 전화기를 꺼내서 콜린 시거 앞에서 흔들었다.
내가 이토록 콜린 시거를 냉대하고, 도발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에게 마족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났다.
“약팔이들이 포션 때문에 기고만장하군. 걱정하지 마라. 우리 용병들은 마나석으로 새로운 포션을 만들고 있으니, 너희들의 위세는 곧 꺾일 것이다.”
이 사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로저 시거님이 구해놓은 마나석에도 한계가 있을 텐데요?”“설마?”
“뭐가 설마입니까? 뭐 일단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나는 콜린 시거와 악수하기 위해 오른손을 앞으로 꺼냈다.
“교황청의 검. 하유신입니다. 반갑습니다. 용병왕님.”
콜린 시거는 내 손을 빤히 바라보다가, 마주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피식 웃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손에 땀이 좀 많습니다.”“검사가 손에 땀이 많다? 과장된 말만 하는 놈이었군.”
“그건 알아서 생각하시면 됩니다.”
“재미없군.”
손을 놓은 콜린 시거는 몸을 돌려서 이곳을 떠났다.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 일이 없는데…”
콜린 시거가 마족 또는 유사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악수하기 전에 손에 성수를 묻혔다.
마족이라면, 분명히 무슨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렇지 않았다.
“대체 뭐지…?”
처음으로 자신의 냄새가 틀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천막 안에 있던 신성력이 점점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제이미. 반가운 것은 알겠는데, 일단은 아스본 레스넌님을 좀 만나봐야 할 것 같아.”
“제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 아니에요?”
“아무리 반가워도 선후가 있잖아. 나중에 밥 한끼 같이 하자고.”
별거 아닌 말이었는데, 제이미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막이 열리고, 지친 표정의 앤이 나왔다.
“오랜만이야. 앤.”
“어? 유신이잖아? 나 지금 헛것 보는 거 아니지?”
“응. 아니야. 지친 것 같은데, 좀 쉬어. 뒤는 내가 해결할게.”
“뒤?”
“응. 마리 선배. 그러니까 성녀님께 부탁받았거든.”
“그렇군. 그럼 좀 마음 놓고 쉴게.”
앤은 얀의 부축받으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는 아직 나오지 않은 전설들을 보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아스본, 크리스, 리암 모두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아무리 앤에게 치료받았지만, 본질적인 치료가 되지 않았다.
“이거면 회복될 겁니다.”
아공간에서 ‘성녀의 축복 받은 포션’ 세 개를 꺼냈다.
몸에 들어간 마기는 일반적인 치유와 포션으로는 치료하기 어렵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성녀의 축복 받은 포션’이었다.
일단, 아스본과 크리스에게 포션을 먹였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연기처럼 새어 나오더니, 이내 흩어졌다.
“두 분은 됐고”
불의 용사 리암을 바라봤다.
그는 이번 전쟁을 통해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원래라면, 교황청으로 이동한 다음, 성녀의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이번에 새롭게 배합하게 된 포션이라면, 리암에게 새로운 다리를 갖게 해줄 거다.
“우선 필요한 게…”
아공간에서 13기동 타격대의 ‘붉은 포션’과 성수 그리고 트롤에게서 뽑은 초재생 물약을 꺼냈다.
루카스가 알려준 대로 배합을 끝내자, 포션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여기서 늦으면, 포션은 그대로 증발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재빨리 ‘성녀의 축복 받은 포션’을 먹이고, 새로운 포션을 짓뭉개진 오른쪽 다리에 뿌렸다.
“으아아아아악!!!”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곤히 잠들어 있던 리암은 천막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댔다.
여기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곳과 외부를 포스로 막아놔서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리암의 비명에 잠들어 있던 크리스와 아스본이 스프링이 튀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리둥절하는 그들에게 오랜만에 반가운 인사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
전쟁 전의 컨디션으로 모든 힘이 돌아왔다.
교황청의 능력이 대단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유신. 내 질문에 진실만을 말해야 할 것이다.”
“여기가 법정은 아니지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레스넌님. 제가 모든 걸 대답할 권한은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신의 딸인 제이미가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라서 그런지 괘씸해 보였다.
“그럼 대답할 수 있는 것만 답변해라.”
“네.”
“교황청은 예전부터 마족과의 싸움을 준비했던 것이냐?”
“정확히는 성녀님이 일루시안에서 돌아온 순간부터? 아니 13기동 타격대가 일루시안에서 목숨 걸고 싸운 순간부터가 맞겠네요. 그때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당차게 외치는 유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황청은 왜 그런 준비를 했지? 아니 왜? 우리에게 일언반구가 없었지?”
미리 귀뜸이라도 해줬다면, 그렇게 침묵을 유지하지 않았을 거다.
마족의 싹이 될 것 같은 모든 존재를 찾아 지운 후, 전쟁이 없도록 만들었을 거다.
그런데, 대뜸 유신은 화를 내듯 목소리의 고조가 올라갔다.
“일언반구요? 그게 지금 할 소리입니까?”
리암은 바락바락 말하는 유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구기며 경고했다.
“하유신. 말을 가려서 해라.”
“제가 지금 가려서 할 처지입니까?”
“아무리 우리를 치료해줬다고 하지만, 이곳은 세계를 구한 전설들의 앞이다. 묻는 말에나 답해라.”
유신은 한동안 리암을 바라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묻는 말에만 답하겠습니다. 우선 예전부터 교황청은 계속 말하고, 티를 냈습니다. 그런데, 전설인 당신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듣지 않았습니다. 무시했습니다. 거기다가, 족쇄까지 채웠습니다. 그 족쇄만 없었다면, 지금 저기 반대편에 있는 베드 미다스는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네 말에는 허점이 있다. 그건 바로 과정이라는 거지. 족쇄? 그건 거래였다.”
리암과 유신의 대화를 듣다 보니, 깨달은 게 있었다.
전설이라는 허명을 가진 후에 자신이 얼마나 나태하고, 아집에 빠져 있었는지.
“리암. 그만해.”
“뭘 그만해. 내가 틀린 말 했어?”
“맞는 말도 아니지.”
바드득 이를 가는 리암을 무시하고, 유신을 바라봤다.
그는 서늘한 한기가 도는 모습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교황청의 검. 하유신.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이제라도 전쟁을 일찍 끝내자는 말이고, 13기동 타격대의 모든 제재를 풀어 달라는 겁니다.”
“그 제재가 일루시안으로 들어가는 식량 보급과 관련 있다는 건 알고 있나?”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것도 좀 풀어주세요.”
황당했다.
너무나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현실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생각하는 대로 모든 게 다 이루어질 수 없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짜로 해달라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지?”
“이번 전쟁에서 베드 미다스를 죽여주겠습니다.”
호언장담하는 유신의 발언.
일 년 전만 해도 자신의 검에 패배했던 유신이었다.
그런데, 리암과 크리스와 협공을 했는데도 자신들은 베드 미다스에게 도망친 게 다였다.
“오만한 것이냐? 아니면 무식해서 자신의 능력을 모르는 것이냐?”
“오해하셨군요. 저 혼자 어떻게 저 몬스터 군단을 뚫고 베드 미다스를 잡겠어요? 제가 13기동 타격대 선배들도 아니고.”
13기동 타격대라면 가능하다는 소리가 심기를 자극했다.
“그건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요. 제가 베드 미다스를 잡을 수 있게 머리를 빌려드리겠습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다. 다시 묻겠다. 13기동 타격대라면 베드 미다스를 잡는 게 가능하다고?”
한편으로 알고 있으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며 헌터 협회 일을 등한시 한 건 모두 13기동 타격대의 콧대를 뭉개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유신의 말만 들으면 이미 그들과의 격차는 거인과 어린아이의 차이였다.
“하유신. 나 리암보다 그들이 강한 건 인정한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강하다고? 어디서 거짓을 말하려는 것이냐?”
성급한 리암이 먼저 유신을 꾸짖듯 말했지만, 유신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불의 용사 리암님. 옛날 이야기 하나 들어보시겠어요?”
“지금 내 말에 대답부터 해라.”
“아주 옛날에 장군님이 있었습니다. 아주 멋진 장군님이었는데, 전쟁 도중 사고로 발 하나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평생 한 발로 살아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두 발로 다시 걷게 했습니다. 그 사람은 장군님의 위대한 모습에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렇지만, 장군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보다 없어진 발을 만드는 능력에 대해서 추궁했답니다. 이야기 끝.”
상큼하게 리암을 무시하고, 본인의 말만 내뱉은 유신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크리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핫!”
크리스의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리암이 인상을 구겼다.
“크리스. 뭐가 그렇게 웃기지?”
“리암. 나는 말이야. 하유신이 참 정의로운 친구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 머리까지 좋아.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어. 역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을 사귀어야 해.”
“칭찬 감사합니다. 크리스님.”
“좋다. 호주의 거인 크리스는 하유신을 지지하마. 그리고 저번에 말했던 무혁의 비밀도 알려주지.”
“마음은 감사하지만, 그 비밀은 저 혼자 해결했습니다.”
“크하하하핫! 정말 멋진 친구야.”
크리스는 이미 유신에게 홀딱 넘어갔고, 리암은 입을 다물었다.
이미 판은 넘어갔다.
여기서 구차하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봤자,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 하유신. 네 작전은 뭐지?”
“상대의 방심을 노리는 작전입니다.”
“어떤 식으로 말이냐?”
유신은 고개를 돌려 우리를 쭉 바라봤다.
“일단 크리스님과 리암님은 지금처럼 계속 아파주세요.”
갑자기 유신이 아공간에서 긴 부츠 하나를 꺼냈다.
“적의 방심을 이끌어야 하니, 리암님은 이거를 오른발에 끼시고, 연기를 부탁합니다.”
부츠를 자세히 보니, 신발이라는 느낌보다는 보조기에 가까워 보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자세한 설명 들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