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_마검 히페리온(1)
“콜린 단장 말이야. 예전이랑 조금 다른 것 같지 않아?”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니?”
“그레드가 지멋대로 던전에 들어가서 죽었잖아. 우리 단장이 또 단원들 챙기는 건 최고잖아. 그때 그레드를 지키지 못한 거 때문에 화가 많이 났을 걸. 그래서 저렇게 몬스터들한테 화풀이를 하는 거지.”
“그렇구나.”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고, 몬스터와 싸우고 있어도, 단원들이 속닥이는 소리가 다 들렸다.
마검 히페리온은 몸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몬스터들을 상대하는 게 예전보다 쉬웠다.
그렇지만, 감정을 컨트롤하기는 어려웠다.
‘날 믿고 따르는 동료다. 절대로 마검에 잡아 먹히지 않겠어.’
히페리온을 움직일 때마다 아라크네의 겉껍질이 쉽게 갈라졌다.
그게 또다른 희열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이 흥분에 빠져서는 안됐다.
일단 작전대로 지금은 물러설 때였다.
“탱커. 앞으로.”
몸을 뒤로 날리며 외치자, 방패를 든 용병들이 벽을 만들었다.
탱커들이 방패와 방패 사이에 약간의 틈을 만들어졌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화가 난 아라크네들의 몸통 박치기가 시작됐다.
“지원!”
원소술사들과 마법사들은 탱커가 다치지 않게 소형 마법 위주로 공격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차례 공격이 끝나자, 명령하지 않아도, 용병들이 근접 무기를 들고는 아라크네의 다리를 잘랐다.
아라크네들은 불리함을 느꼈는지, 뒤에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다.
“발사!”
화살과 단창 그리고 손도끼가 아라크네의 후퇴를 막으면서 피해를 줬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을 때였다.
“돌격!”
원래는 이때 광역기술로 아라크네를 쓸어버리면 됐다.
그게 아라크네를 잡는 우리 용병들만의 전술이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광역기를 쓰는 순간 이 숲의 지배자 엔트가 깨어나 버릴 수도 있었다.
엔트. 나무형 마수로. 평소에는 조용히 있지만, 소음에 몸을 일으키는 보스형 마수로 깨어나게 되면, 임무가 문제가 아니라, 꽁지 빠져라 도망쳐야했다.
“정지! 더 안으로 들어가면 허니비들의 영역이다.”
아라크네를 뒤쫓으려고 하는 용병들이 자리에서 멈췄다.
허니비 영역으로 들어간 아라크네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허니비들과 싸우다가 공멸하게 될 거다.
“이만 전투를 마무리하고 정리한다.”
“알겠습니다. 단장.”
용병들은 크게 대답하며, 아라크네 사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살아 있는 아라크네의 생명을 끊기 위해서였다.
여러 용병들이 움직이고 있을 때였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용병 단원이 무방비하게 아라크네 사체를 휘젓기 시작했다.
“거기 조심해!”
“아. 죄송합니다.”
용병 단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과할 때였다.
죽은 줄 알았던 아라크네가 방심한 용병에게 마지막 남은 다리를 휘둘렀다.
이대로 용병의 머리가 아라크네의 발에 꿰뚫리고 말거다.
“안 돼!!”
외침과는 다르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어쩔 수 없이 아껴두었던 검을 사용하기로 했다.
소닉붐.
굉음과 함께 압축된 공기가 터져나가며, 아라크네의 발을 날려버렸다.
겨우 목숨을 보존하게 된 젊은 용병은 방금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한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몬스터의 사체는 포기한다. 모두 빠르게 이 숲을 벗어나도록.”
용병들은 군말하지 않았다.
소닉붐은 빠르면서 강한 공격이지만, 그만큼 거대한 충격파 때문에 꽤 커다란 소음을 일으켰다.
쿵!
숲이 울릴 정도의 지진이 일어났고, 나무에 앉아서 쉬고 있던 새들이 날아오르고, 몬스터들이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다.
“엔트다! 모두 도망쳐!”
거대한 나무 괴수 엔트가 잠에서 깨어났다.
엔트는 굉음을 일으킨 이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란 칼트님. 단원들을 부탁합니다.”
부단장에게 콜린 용병단을 맡기고, 검을 꽉 쥐었다.
여기서 내가 용병단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야 했다.
“콜린 단장. 보통 이럴 때는 가장 늙은 용병이 남는다네. 그러니 우리 단장도 이만 뒤로 물러서게.”
언제나 묵묵히 의견을 따라주던 부단장 아란 칼트가 처음으로 내 의견을 거부했다.
못 이기는 척 아란 칼트의 의견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건 용병단장으로서 긍지 없는 행위였다.
“이건 콜린 용병단의 단장으로서 명령입니다. 어서 용병단원들을 데리고, 도망치세요.”
“엔트는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야. 자네보다는 내가 더욱 시간을 벌 수 있어.”
“저 또한, 시간을 버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을 생각 없습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젊은 사람이 고집이 심하군.”
“그래야. 용병단을 이끌죠. 명령입니다. 아란 칼트. 어서 가주세요.”
“…알겠네.”
피식 미소를 지은 아란 칼트는 용병들을 억지로 끌고 이곳을 벗어나며 외쳤다.
“꼭 살아야 하네.”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용병단들이 떠나기가 무섭게 엔트가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쿵!
100미터가 넘는 엔트가 한 걸음을 걷자, 거리의 격차가 짧아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용병왕에 도전한다고 단원들에게 큰소리라도 쳐보는 건데.”
쿵!
단 두 걸음에 그 먼 거리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봐야. 엔트에게 짓밟힐게 뻔했다.
단원들이 도망치게 하려면 최대한 30분은 버텨야 했다.
“실상은 1분도 못 버틸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야.”
엔트가 다른 발을 움직이기 전에 앞으로 쏘아졌다.
조금이라도 엔트와 단원들이 떨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소닉붐 – 다연발
이 기술로 엔트가 내게 시선을 돌리기 바라며 검을 내질렀다.
굉음과 함께 쏘아진 소닉붐들이 엔트의 껍질을 벗겨냈다.
그러자, 도망치던 용병단을 바라보던, 엔트가 내게 시선을 돌리더니, 그대로 채찍처럼 손을 휘둘렀다.
소닉붐.
간발의 차이로 기술을 활용해 손을 피했다.
이대로 땅에서 피하기만 한다면, 죽는 건 시간문제였다.
엔트의 손을 타고 몸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렇게 순식간에 엔트의 얼굴에 도착해서는 검을 들어서 눈을 공격하려고 할 때였다.
“어…?”
엔트의 몸을 뒤덮고 있던 넝쿨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서 내 몸을 공중에 띄웠다.
즉, 지금 나는 넝쿨에 잡혀서 엔트와 마주보게 됐다.
“죽기 싫은데…”
공격보다는 회피했다면, 더 오랜 시간을 끌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을 밝힌 후, 침묵하고 있던 마검 히페리온이 말을 걸었다.
[나와 계약하겠나?]
계약이라는 말에 아버지의 당부가 떠올랐다.
‘마검은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최고의 무기가 되지만, 지금까지 마검에게 먹히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마검을 든다면, 최소 1.5배는 더 강해질 것이다. 대신에 마검에 먹히고 말 것이고.’
아버지 로저 시거는 마검에 위험성에 강조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다르게 들렸다.
누군가 해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계약하겠다.”
그날 덴마크의 엔트가 토벌되었다.
***
작전 회의를 진행하는 천막 안.
불의 용사 리암이 피곤한 기색으로 앉아 있고, 자신이 데리고 온 헌터들도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아스본님. 이 지지부진한 싸움도 벌써 육개월째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대로는 소모전만 계속될 뿐입니다.”
부하의 외침에 자신도 해답을 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처음 멕시코와 전쟁을 선포했을 때, 불의 용사 리암과 자신 그리고 거인 크리스가 함께했다.
이 세 명이면 충분히 베드 미다스를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실상은 자신과 리암은 겨우 도망치고, 크리스는 중상을 입고, 아직도 치료 중이었다.
“다른 전설들에게는 연락이 없습니까?”
“그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유가 없었다.
평화를 즐기고 있는 사이, 마족 숭배자들은 세계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몸을 일으켰다.
회의는 언제나처럼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을 때, 회의실 구석에 앉아 있던 제이미가 손을 들고 발언을 요청했다.
“제가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안?”
“네. 이번에 새롭게 용병왕이 된 콜린 시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떠십니까?”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로저 시거도 아니고, 그의 자식 중 하나인 콜린 시거가 이 전쟁의 판도를 바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딴 애송이한테 도움을 요청하라고?”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리암이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제이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네. 콜린 시거는 용병왕이 되기 전, 덴마크의 문제인 엔트를 해결했습니다. 그 정도의 강함이라면 지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가 현재 용병들은 전쟁에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용병왕의 참전은 다른 용병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설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하는 딸을 보고 있으니 언제 저렇게 컸나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그래. 리암. 나쁘게 생각하지 말게. 지금 우리는 작은 손길이라도 필요할 정도야.”
“제길…!”
짧게 분노를 표출한 리암은 이내 화제를 돌렸다.
“대체 교황청은 뭘하고 있는 건데? 이렇게 사건만 벌리고 모르쇠하는 거야?”
교황청을 생각하니, 성녀와 하유신의 얼굴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것에 대해서 오늘 오전에 교황청에 답이 왔다. 인원을 파견해준다고 하더군. 대신에 지금 교황청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소수의 인원만 보낸다고 말했다.”
“소수? 그럼 고작 몇 명의 성직자만 파견해서 생색을 내겠다는 거야?”
“그건 나도 모르지. 단지 오늘 도착한다고 했으니 도착해봐야 알 것 같아.”
불평불만이 가득한 회의가 지속되고 있을 때, 회의실 천막이 열렸다.
“적들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베드 미다스는?”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남몰래 안도의 한숨이 나오다가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누구인가? 세계헌터협회의 협회장이자, 카피 마스터이며, 13인의 전설이었다.
그런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13인의 전설 중 최약체였던 베드 미다스가 출전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안도를 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일단, 방어 태세를 취해라. 그리고 콜린 시거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청하도록.”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적들에게 이번에는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천막을 열며 밖으로 나왔다.
저 멀리 괴생물체와 몬스터 군단이 다가오고 있었다.
“충분하군.”
광역기를 사용하기에 충분한 힘을 모을 정도의 거리였다.
그런데, 리암이 내 팔을 잡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스본 레스너. 네 기술은 대인전에 특화되어 있어. 이번에 내가 나설 테니까, 혹시라도 베드 미다스가 나타나면, 그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
리암은 말을 끝내고는 불의 화신으로 변해서는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전장은 리암의 폭주로 불타올랐고, 그 어떤 몬스터와 괴생물체도 다가오지 못했다.
“어디냐?”
선전하고 있는 리암의 모습에 더욱 긴장감이 차올랐다.
이제 슬슬 베드 미다스가 등장할 때였다.
그때, 리암의 왼쪽 편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검을 쑤셔 박고 싶었지만, 혹시 함정일 수도 있기에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림이 길어질 때, 베드 미다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구나!”
카피 : 사신 – 죽음의 발걸음
순간이동하듯 베드 미다스의 뒤로 이동해서 지금까지 모았던 기운을 베드 미다스에게 내질렀다.
오리지널 섬
피륙을 뚫고 박히는 느낌이 확실히 왔다.
그 상태에서 몸을 회전해 주위에 있는 몬스터까지 한 번에 휩쓸었다.
“됐…이런!”
방금 내가 죽인 건 베드 미다스가 아니라, 그가 부리는 소환수 중 하나인 슬라임 킹이었다.
“리암! 뒤로 물러서!”
고개를 돌려 리암을 바라봤을 때에는 이미 베드 미다스의 공격에 리암이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