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_콜린 시거
아론이 날뛸 때부터 지켜봤다.
역시나 싸움 구경은 너무 재밌지만, 아론이 살수를 펼치다가 한 번씩 멈칫했다.
그로 인해 진즉에 죽어야 할 저런 하찮은 것들이 아직까지 목숨을 유지하는 거였다.
“그래도 한때는 영웅이라고 불렸던 자 답군. 이성이 어떻게든 저항하지만, 그래봤자, 소용없을 텐데.”
옅게 남아있는 아론의 이성은 이제 곧 날아가리라. 그리고 셀마의 심장을 쥐고 잔인하게 미소 지을 걸 기대하고 있었다.
“응?”
언제 나타났는지, 교황청의 검 하유신이 아론과 싸우기 시작했다.
분명 하유신을 처리하기 위해 대폭발을 일으켰다.
자신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었을 상황이었다.
“폭발이 일어나기 전에 도망친 건가?”
감옥과 이곳의 거리를 계산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상황이었다.
괜히 애꿎은 부하들이 죽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 또한 그들의 운이었다.
“일단 자리를 떠야겠어.”
하유신은 장로인 조쉬 히라니를 죽인 자였다.
자신이 지금 나타나서 아론과 협공을 해도 이길 가능성이 없었다.
그렇게 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검을 놔?’
아론을 얼리는 데까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하유신의 지친 모습이 보였다.
지금이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공격을 하고 싶어서 손가락이 간지러웠지만, 일단 참았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목숨을 거는 건 바보나 할 짓이지.’
거기다가 하유신은 마족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강자인 게 분명했다.
싸움이 끝났는데도, 경계심을 버리지 않았다.
‘교황청에 연락하는 건가?’
마지막 남은 티끌 같은 미련을 버리고 몸을 돌렸다.
‘일단 루이스님께. 보고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군.’
***
“오늘은 이곳에서 야영한다.”
“네. 콜린 시거님.”
용병단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콜린 용병단.
용병왕인 아버지가 실종되어도 흔들림 없이 자신을 믿고 따라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이번 임무만 끝나면, 용병 축제 때까지 쉬자고. 그러니 모두 힘내도록.”
“그거 힘이 나는 소리군요.”
단원들이 더욱 힘차게 야영지를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현재 상황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덴마크에서 요청한 몬스터 퇴치 임무도 벌써 거의 모두 끝나갔다.
아버지인 용병왕 로저 시거가 실종된 후로 내외부적으로 많은 문제가 생겼지만, 자신은 그저 아버지의 말대로 용병으로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콜린님.”
그레드의 부름에 주위를 둘러봤다.
생각이 깊었는지 어느새 야영지 건설이 끝나 있었다.
“모두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그런데, 콜린님 단원들이 모두 궁금해합니다.”
“응? 뭐가 말이지?”
“이번 용병 축제 때 용병왕에 도전하실지 말입니다.”
“그레드.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콜린님이시면, 충분히 그 자리를 노려 볼만하실 겁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기에 저런 말을 하는 걸 거다.
“형들과 누나. 그리고 원로들이 있는데, 내가 나설 수나 있겠어?”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콜린님이 그 분들에 비해서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한 사정도 모르면서 그리고 아직 시작되지 않는 일에 가슴 설레는 건 하수나 하는 짓이었다.
“됐어. 이 이야기는 거기까지.”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남아돌면, 그레드. 자네 조원들이 야영지 근처를 정찰하고 오게.”
“…네.”
정찰을 위해 움직이는 그레드를 보며, 한숨이 나왔다.
자신이라고 그레드의 말처럼 욕심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신만큼 본인을 잘 아는 그리고 형제자매에 대해서 많은 걸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용병왕의 자식 중 가장 최약체가 본인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용병은 끝까지 살아남는 거. 그게 더 중요하지.”
그렇게 살아남아서 더 많은 여성을 만나는 게 자신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감투보다는 이성을.
명예보다는 사랑이.
그게 인생의 모토였으며, 빨리 이 임무가 끝내고 데이트를 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대충할 수도 없지.’
연애와 용병 일. 둘 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그때였다. 정찰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레드가 돌아왔다.
“콜린님. 대박입니다. 대박.”
“응?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저기 저쪽에 던전이 있습니다.”
“던전?”
마왕강림 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던전.
던전에는 많은 부귀영화를 줄 보물이나, 아티팩트가 숨겨져 있다고 사람들은 알고 있다.
던전의 위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그렇지만, 인류는 그 욕심 때문에 수많은 던전을 점령하기도 했다.
그 뒤에 흘린 피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지금 우리가 그 던전을 빨리 클리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단원들을 모으겠습니다.”
“잠깐. 기다려!”
“이럴 시간 없습니다. 그 사이 근처에 있는 다른 용병단에서 던전을 가져가면 말짱 꽝입니다.”
“그럼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던전 클리어가 아니라, 몬스터 퇴치야.”
“그건 나중에 해도 되는 일입니다.”
손을 들어서 그레드의 말을 멈추게 만들었다.
“용병에게는 신뢰가 먼저야. 이번 한 번만 용병 일하고 끝낼 게 아니라면, 몬스터 처치 임무가 먼저야.”
“아니. 평소에 여자들한테는 유도리 있게 일을 진행하면서, 용병 일할 때는 왜 그렇게 꽉 막히셨습니까?”
“여자들과 일은 다른 거야.”
“그럼. 저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옆에 놔둔 검을 잡았다.
지금 그레드 또한, 욕심에 사로잡혔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철저히 혼을 내야 했다.
아버지인 용병왕 로저 시거처럼.
“지금은 임무 중이다.”
“아니. 지금도 임무 중입니까? 지금은 그냥 쉬는 중입니다.”
“네 임무는 오늘 동료들이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게 정찰을 하는 거지. 던전을 찾아오는 게 아니다.”
“아니, 찾았다고 상을 주지도 못…”
검을 뽑아 그레드의 목젖 앞에 갖다 댔다. 그러자, 그레드가 놀리던 입을 멈췄다.
“요즘 내가 좋게 대해주니까. 용병단의 규율도 잃어버린 거냐?”
“…죄송합니다. 제가 보물에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 빨리 가서 자라. 내일도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
“알겠습니다.”
그레드는 절대 던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성격도 그렇지만, 눈빛에서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여기서 더 말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게 약간의 소동이 지나고 밤이 깊고, 아침이 되었다.
“콜린 단장님!”
“무슨 일이지?”
“그레드가 자리에 없습니다.”
욕심 많은 그레드는 분명 홀로 던전으로 향했을 것이다.
“멍청한 놈. 던전은 부귀영화보다 위험이 더욱 심하게 도사리는 곳인데.”
예전에 아버지, 로저 시거와 함께 몇 번 던전을 공략한 적이 있었다.
그때 열다섯 곳을 클리어하고, 고작 한 곳에서 작은 아공간 주머니를 발견했었다.
그만큼 보물이 있는 던전은 소수라는 거였다.
“이제,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대부분이 우리 인류가 만들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뭘 말이냐? 그레드 말이냐?”
“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레드를 그대로 두고, 원래하던 몬스터 퇴치 임무만 진행하고 싶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고, 명령을 어겼다고 해도, 자신의 부하였다.
그 부하가 위험하다는 걸 알기에 지나칠 수 없었다.
“부단장님을 불러주게.”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콜린 용병단의 부단장이자, 아버지가 붙여준 아렌 칼트가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아렌님의 지혜를 빌리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레드 때문에 그렇군요.”
“네. 사실은 알다시피 그레드가 홀로 던전으로 간 것 같습니다.”
아렌 칼트는 거대한 근육을 움직이며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콜린 단장은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아무리 부족한 단원이라고 해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바로 용병의 의리입니다.”
“하하하. 맞습니다. 역시 로저 시거님이 만드신 용병 철칙을 가장 잘 지키는 분은 콜린님이십니다.”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그럼 제가 약간의 의견을 내겠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내어준 부단장 아렌 칼트.
평소에는 조용히 있지만, 이렇게 문제가 생겼을 때, 조언을 구하면, 언제나 아낌없이 정답에 가까운 말을 해주는 책사이자, 콜린 용병단의 강자 중 한 명이었다.
“소수의 인원이 그레드를 구하기 위해 던전으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들이 몬스터 퇴치 임무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병력을 나누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소수라는 겁니다. 던전 경험이 있는 소수로요.”
던전 경험이 있는 소수는 자신과 아렌 칼트뿐이었다.
그만큼 던전은 희귀하기도 하고 찾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되면, 용병단이 혹시 모를 변수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콜린님께서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은 콜린님 홀로 던전으로 가는 겁니다. 저는 콜린님이 오시기 전까지 용병단을 이끌어서 몬스터 퇴치 임무를 진행하겠습니다.”
“흠…”
“뭘 고민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던전 클리어가 목적이 아니라, 그저 상처 입은 그레드를 빼오는 거라면, 콜린님 홀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렌 칼트가 내놓는 방법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부하를 위해 목숨을 거는 건, 언제나 멍청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그레드는 자신의 명령을 어겼다.
“콜린님이 뭘 생각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욱 부하들을 위해 움직여야 하는 거죠.”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용병단을 잘 부탁합니다.”
생각 정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레드와 함께 던전을 찾았던 용병을 수소문해서 던전으로 향했다.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도록.”
“알겠습니다.”
단원들을 뒤로하고,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카이트 실드를 앞세우고, 기감으로 던전 내부를 파악하며 전진했다.
그런데, 자신이 알던 던전과는 달랐다.
“그레드의 실력으로 여기까지 전진했다고?”
조잡한 함정만이 다였고, 그레드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던전의 중심부로 점점 다가갔고, 미라가 된 그레드의 사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아무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싸운 흔적도 함정이나, 마법진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데, 그레드가 죽어 있었다.
“수상해…”
일단은 주위를 경계하며 확인해봤지만, 특별한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라가 되어버린 그레드의 사체라도 수습하기 위해 손을 뻗을 때였다.
사체가 가루로 변하며 그대로 무너졌다.
그리고, 거기서 한 자루의 장검을 발견했다.
“응?”
장검을 바라보고 있으니,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무기의 매력에 빠진 적이 없었는데, 장검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 어떤 여인보다 이 장검을 취하고 싶다고.
그렇게 손을 뻗어서 장검을 쥐게 되자, 장검이 내게 말을 걸었다.
“히페리온. 그게 네 이름이구나.”
***
땅이 솟구치고, 가라앉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원흉 가엘 캄파가 있다는 멕시코의 정부 청사였다.
“유신이 혼자서 가능하겠어?”
“네. 알프레도 선배. 뒤에서 지켜봐 주시면 됩니다.”
“그래. 어디 막내의 능력을 한번 볼까?”
알프레도 선배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아론을 교황청에 넘기면서 알프레도 선배는 칠성검에 박혀 있는 신비석에 호기심을 느끼고는 나를 따라왔다.
그래서 칠성검을 허리춤에 착용한 상태에서 흑색창 두 자루를 꺼내든 후, 포스를 천천히 집어넣었다.
“왼쪽은 바람. 오른쪽은 불.”
포스와 함께 신비석의 기운을 흑색창에 집어넣었다.
달란의 정보로는 정부 청사부터 시작해서 이곳 근처에 민간인은 없다고 했다.
마족화된 놈들은 폭력적인 성향으로 인해, 일반인들을 모두 학살했다.
“선배. 쾌속으로 가겠습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난 알프레도 선배가 신비석의 기운을 관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스 미사일-더블(풍,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