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_멕시코 해방군(2)
“왜…왜 그러십니까?”
“왜인지는 당신이 더 잘 알 텐데요.”
“당신이 아무리 교황청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도 저한테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그건 차차 밝혀지겠죠. 그럼 묻겠습니다. 왜 당신에게서 마기가 풍겨오는 겁니까?”
내 말에 회의실은 침 넘어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일반적인 사람은 마기의 향을 맡을 수 없었다.
자신도 가이아를 만난 후에야 맡을 수 있게 된 마기의 고약한 향. 그게 지금 로스 멘초에게서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하유신씨. 하나 묻겠습니다.”
질문이 들려온 것은 로스 멘초가 아니라, 달란의 옆에 서 있는 사내였다.
“로스에게서 마기가 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실 겁니까?”
“당신의 이름은 어떻게 되죠?”
“조웰 차포입니다.”
비웃듯이 말하는 조웰의 모습에 유신은 숭배자들이 세계 곳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알게 됐다.
“냄새가 나거든요.”
“냄새는 무슨 냄새가 납니까? 우리는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는데요?”
“당신이 약해서 맡지 못하는 겁니다. 일정 경지 이상에 들어가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힘에 대한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런 소리는 처음 들어봅니다. 설마…? 여기에 오자마자 로스를 붙잡아서 기선 제압을 하시려는 겁니까?”
확실히 로스 멘초에게서 마기가 풍겼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 중 그 누구도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저 옆에서 가만히 서 있는 삼천의 영웅 셀마 샌즈 또한 마찬가지였다.
“증명해 보이죠.”
칠성검을 더욱 바짝 로스 멘초의 목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조웰이 버럭 화를 냈다.
“지금 중세시대에나 있었던 마녀사냥을 하려는 겁니까?”
마기를 가진 자를 죽이면, 그의 시체는 마기의 농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보통 검게 변하고, 강한 마기를 가진 자는 보라색 광택이 난다.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죠. 하지만, 제가 하려는 방법은 그게 아닙니다.”
나는 아공간에서 작은 분무기를 꺼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분무기 아닙니까?”
조웰이 띠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걸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죠. 제가 하는 말은 이 안에 든 내용물에 관한 겁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쫑알쫑알 시끄럽게 하는 조웰에게 노려보며 말했다.
“잘 보세요. 그리고 조웰이라고 했죠? 냄새나니까, 입 좀 다무세요.”
간단히 조웰의 입을 다물게 한 다음, 분무기를 눌렀다.
미세하게 변한 작은 물방울들이 로스 멘초의 얼굴에 뿌려졌다.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로스 멘초의 얼굴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불에 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비명이 울려 퍼졌고,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로스 멘초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얼굴은 성수로 인해 불에 타기 시작했고, 몸은 부들부들 떨더니, 검게 변해버렸다.
“이걸로 확실해졌죠? 로스 멘초는 숭배자들의 첩자입니다.”
내 확언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구석에 있던 셀마 샌즈의 눈빛이 분노로 뒤바뀌었다.
“이 살인자, 그 분무기에 든 물이 마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
확실한 증거를 보여도, 조웰은 믿지 않았다.
오직 의심만을 할 뿐이었다.
간혹 저런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어떻게 해서는 무시하고, 부정하려고 하는 사람.
그로 인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다운시키는 자.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으세요?”
“책임은 네가 져야지. 교황청 인원이면 다야?”
“다른 사람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본인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
“말 돌리지 말아라!”
조웰을 어떻게 할까? 고민한 후, 분무기를 조웰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크아악!! 저리 치워!! 지금 뭐하는 짓이야?!!”
“뭘 그리 놀라실까? 이건 마기를 가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냥 맹물일 뿐인데. 자 잘 봐요.”
분무기를 내 얼굴에 조준한 후, 뿌렸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 모습을 보며 긴장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에 들어가 있는 물은 정확히 성수입니다. 마기에 상극인 성수죠. 마기를 품고 있는 자는 이 물에 닿으면, 불에 타는 고통을 아니 불에 타게 되죠. 저렇게요.”
모두의 시선이 로스 멘초의 머리였던 재를 바라봤다.
“여러분. 저도 가지고 있는 양이 많지는 않지만, 제 냄새를 피한 숭배자가 여기에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얼굴에 한 번씩 뿌려보죠.”
레이지씨가 내게 따로 챙겨준 성수도 지금 분무기에 들어 있는 양이 다였다.
그만큼 교황청에서 돈이 있다고 쉽게 구하는 물건도 아니었다.
그래서 아끼기 위해 분무기에 넣었는데,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처음에는 이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로스 멘초가 죽은 이후에도 이 회의실에 아주 옅은 마기가 풍겨왔다.
“전 했으니까. 다음에 누가 해보실래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고,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때, 구석에 있던 삼천의 영웅 셀마 샌즈가 앞으로 나섰다.
“나부터 해보겠어.”
“셀마 샌즈님이요? 알겠습니다. 얼굴에 뿌리기는 좀 그렇고, 손을 내미시면, 손에다가 뿌리겠습니다.”
“아니. 얼굴에 뿌려. 죽은 로스 멘초와 같은 상황에서 멀쩡해야지 다른 사람들이 믿을 거야.”
“알겠습니다.”
분무기를 셀마 샌즈의 얼굴로 향했다.
그런데, 셀마 샌즈는 평온한 얼굴인데,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빠르게 하는 게 좋았기에 서둘러 분무기를 눌렀다.
“피부가 촉촉해지셨습니다.”
셀마의 얼굴은 분무기로 인해 작은 물방울이 맺혔다.
“셀마. 정말 괜찮아?”
달란의 말에 셀마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도움이 되었는지, 이번에는 달란이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내가 하지.”
그렇게 한동안 분무기를 이용해서 성수를 사람들의 얼굴에 뿌렸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당신만 남았네요. 조웰 차포씨.”
성수를 쓸 필요도 없었다.
내가 분무기를 겨누자마자, 조웰은 도망쳤다.
하지만, 이곳은 지하 비밀기지에 있는 회의실이었고, 문은 고작 하나였다.
문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삼천의 영웅이자, 멕시코의 자랑 셀마 샌즈였다.
“자. 그러면 이제 뿌립니다.”
분무기를 당기려고 할 때, 조웰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전 이대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한 번만요.”
난 그런 조웰을 보면, 미소 지은 다음 분무기를 당겼다.
***
교황청에서 마리 선배에게 부여받은 임무는 셀마 샌즈를 도와 멕시코에서 숭배자들을 물리치라는 것이었다.
일단, 그녀를 돕고 있으면, 차후에 다른 곳에서도 지원이 갈 거라고 했는데, 아직도 지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지금 멕시코 인원들과 함께 예정에 없는 임무를 하러 움직였다.
“그러니까. 저기가 흉악범들을 모아놓은 감옥이라는 거죠.”
“네. 정보에 따르면 저곳의 심층에 폐인이 된 아론이 있습니다.”
이들은 왜 아론이라는 자를 구하려는 걸까?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달란이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어서 말해 보라는 듯 날 빤히 바라봤다.
이렇게 바라보고 있으니, 더욱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운까지 띄워놓고는 말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아론이라는 분이 삼천의 영웅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함정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굳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그를 구하려는 하는 거죠? 제 생각에는 가엘 캄파를 잡은 후에 아론을 구해도 되지 않나요?”
“유신님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폐인이 된 아론을 전력으로 삼기 위해서는 최소한 성녀의 축복의 깃든 포션이 있어야 하고, 그 포션을 먹는다고 바로 낫는다는 보장이 없기도 합니다.”
내 말이 그 말이었지만, 맞장구 칠 수는 없었다.
그만큼 달란의 표정이 잘못 쓴 연애편지처럼 구겨져 있었고, 씁쓸했기 때문이었다.
“전력을 소비하고, 위험을 무릅쓰면서 달란을 구하려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가 우리의 구심점이기 때문입니다.”
구심점이라고 말하니, 쉽게 이해가 갔다.
이들이 흩어지지 않고, 숭배자들에게서 멕시코를 끝까지 구하려면 구심점이 중요하고, 어떤 식으로든 남아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하유신님.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로스와 조웰이 설마 숭배자였다니… 미리 알았다면, 아론이 저렇게 잡힐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죠.”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언제까지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죠. 그만큼 더욱 발전하면 되는 겁니다.”
“네. 유신님 말이 맞습니다. 그래서 더욱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수락한 거니. 그렇게 마음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전 말했던 대로 미끼가 되어 시선을 끌면 되는 거죠.”
“도움을 주로 오셨는데, 이런 부탁이나 하고.”
이번 작전은 달란이 설계했고, 위험한 작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자신감이 있기에 수락했다.
“대신에 다른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달란 월리엄님의 타코 소스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이 작전이 끝나면 맛이나 좀 보여주세요.”
“네. 원하시는 만큼 해드리겠습니다.”
“저 많이 먹습니다. 많이 준비해주세요.”
숨어 있던 곳에서 일어났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준비해주세요.”
“무운을 빌겠습니다.”
달란에게 미소를 지어준 후, 감옥을 향해 걸었다.
이들은 내가 어떤 식으로 미끼가 되어 달라고 딱히 말하지 않았다.
그저 최대한 시끄럽게 해서 시선을 끌어달라고만 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화끈하게 가야지.”
칠성검을 소환한 후, 감옥을 향해 그냥 걷기만 했다. 그러자, 달란과 숨어 있는 다른 인물들의 놀란 기척이 느껴졌다.
저들이 숨은 몸을 일으키기 전에 일을 저질러야겠다.
오랜만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감옥을 향해 사자후를 내뱉었다.
“크아아아앙!!”
그렇게 감옥에 있는 간수들의 이목을 한 번에 집중 받았다.
물론, 사자후를 내뱉은 것은 혹시나, 최면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깨기를 바란 마음도 있었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탄검기를 날려서 감옥을 가로막고 있는 강철문을 수십 조각냈다.
그렇게 강철문이 열리자, 수십 명의 사람이 대열을 맞춰서 총을 들고 서 있었다.
“발사!”
지휘관의 외침에 방아쇠가 당겨졌고, 무수히 많은 총알이 내게 다가왔다.
탄창에 든 총알을 다 소모할 때까지 내게 단 한 발의 총알도 닿지 않았다.
호신강기에 총알들이 가로막혀 모두 튕겨 났다.
그때 감옥 쪽에서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섰다.
“여기는 흉악범들이 수감 되어 있는 감옥입니다. 당신이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더 다가오시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하유신.”
“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여기가 흉악범만 가두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저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이곳은 말만 흉악범을 가둔다고 하면서, 마족 숭배자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둔다는 걸 알고 있다.”
“오해입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칠성검을 고쳐 잡고는 그들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총격을 가했던 인원들에게서 웅성거림이 들리더니, 내가 다가가는 만큼 뒤로 물러섰다.
타앙.
저격총이 내게 발사되었고, 호신강기가 깨져 나갔다.
“크윽…”
내가 저격을 받은 곳을 움켜쥐고, 비틀거리자, 뒤로 물러났던 지휘관이 웃으며 앞으로 나왔다.
“알면 조심히 있을 것이지. 뭐 떨어질 게 있다고 여기에 온 거야? 뭐해? 빨리 가둬라.”
지휘관의 명령에 네 명의 인원이 각자 긴 봉을 들고 와서는 내 주위로 사각형으로 땅에 봉을 박아 넣었다.
“아무리 교황청의 찬란한 검이라고 해도 이제 어쩔 수 없을 거다. 거기서 고통스러워하면서 죽어라.”
지휘관의 웃음이 울려 퍼졌다.
시선을 끌만큼 끈 것 같으니, 이제 연기는 집어치워야겠다.
“네 목소리 너무 거슬린다.”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 내 모습에 지휘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고,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내 연기력이 얼마나 뛰어났으면, 모두 감쪽같이 속지? 뭐 간단해. 총알이 날아올 때에 맞춰서 호신강기를 해체해서 맞아준 척을 했지.”
옷은 뚫었지만, 전투 슈트를 뚫지 못해 찌그러진 총알을 바닥에 버렸다.
“그럼 이제 끝내볼까?”
간이 감옥 앞에 섰다.
예전에 간이 감옥에 갇혔을 때, 손도 대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칠성검을 허리에 패용한 후, 감옥의 자기장에 양손을 집어넣고는 그대로 찢은 후 빠져나왔다.
“항복? 아니면 죽음?”
부들부들 떨고 있는 지휘관에게 칠성검을 겨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