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_부당한 거래(3)
지금 내가 에반 히스터에게 줄 수 있는 거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다.
물론, 누구나 원하는 가장 최상의 거래 품목이기도 했다.
“마나석을 드리겠습니다.”
“마나석? 좋지. 자네가 교황청을 통해서 마나석을 거래한다는 것도 알고 있네. 거기다가 마법 스크롤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나석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면, 스크롤은 얼만큼 필요하나?”
예상하고 있었지만, 마나석은 역시나 혹할 수밖에 없을 거다.
마나석은 독과점이고, 마법사들의 실험에 아주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이트 추척 및 강제 오픈 스크롤을 각기 다섯 장씩 사고 싶습니다.”
“그 정도면 최상급 마나석 1개를 주면 되네.”“네?”
설마 이렇게 높게 부를 줄은 몰랐다.
“뭘 그렇게 놀라나? 내 마법 스크롤과 최상급 마나석이면 충분히 거래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최상급 마나석을 몇 개 가지고 있기는 했다.
하나 정도야 충분히 줄 수 있지만, 마리 선배는 절대 최상급 마나석은 거래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다짐하듯 말했다.
그것도 그거지만, 너무 비싼 것 같았다.
“생각과 다르게 너무 비싸네요.”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만들었네. 바로 에반 히스터의 최신작이자, 히트작이지.”
아무리 에반 히스터라고 하지만, 바가지를 씌우는 것 같았다.
“최상급 마나석의 희귀도를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물론 나도 알고 있지.”
“제가 거래할 수 있는 거라고는 상급 마나석일 뿐입니다.”
“이해하네.”
이해한다고 하고선 웃는 모습이 꽤나 얄미워 보였다.
“제가 오늘 거래할 수 있는 양은 상급 마나석 10개가 최고입니다.”
“그러면 스크롤들을 각기 한 장씩 살 수 있네.”
비싸도 너무나 비쌌다.
상급 마나석 10개에 겨우 각기 한 장씩이라니. 이건 해도해도 너무 했다.
“적정 가격을 맞추기 어려운 것 같네요.”
“마법 물품은 원래 비싸다네. 거기다가 에반 히스터의 이름이 들어갔고.”
“흠…”
아무리 전략적 가치가 있는 마법 스크롤이라고 해도 이렇게 비싸게 파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전략적 가치로 따지면 마나석도 만만치 않는데 말이다.
가만히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가 뭘 원하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상대가 원하는 걸 들어주는 멍청한 짓을 할 필요 없다.
그렇게 끌려다니게 되는 순간.
‘영원한 호구가 되는 거지.’
지금은 원하는 데로 해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좋습니다. 상급 마나석 열 개로 마법 스크롤을 각기 한 장씩 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네.”
“대신에 절대 불량이 있으면 안 될 것입니다.”
“내 이름을 걸고, 그럴 일은 없을 거네.”
“알겠습니다.”
아공간에서 상급 마나석 열 개를 꺼내서, 에반에게 건네주고, 마법 스크롤이 담긴 상자를 받았다.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에반 히스터는 만족스러운 거래라고 느꼈는지, 희희낙락한 표정이었다.
군자의 복수는 기다림입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조심히 가게.”
나는 몸을 돌려 응접실을 나섰다.
손해가 많은 거래였지만, 그건 이제부터 메꾸면 되는 거였다.
이제부터 치졸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당하고 사는 건 내 성격이 아니기에 나도 최대한 이득을 취해야겠다.
***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유신은 무표정이었다.
이번에 아버지가 개발한 스크롤이 대단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런 식으로 거래를 할 줄은 몰랐다.
“괜찮…느냐?”
한동안 가만히 있던 유신이 뒤늦게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괜찮아요. 근데 저 물어볼 게 있어요.”
“그래.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다 알려주마.”
아버지의 잘못이 마냥 부끄럽기에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와주기로 했다.
“찰스 형. 혹시 형도 마나석이 필요하나요?”
“마법사라면 누구나 마나석이 필요하지. 단지 나는 전투 마법사라서 연구를 하는 다른 마법사에 비해 크게 필요하지는 않지.”
“그렇단 말이죠. 그럼 혹시 여기에 공간이동 게이트를 만들어도 되나요?”
“공간이동 게이트?”
“교황청의 인원 중 한 명을 불러야 할 것 같아서요. 아주 잠시만요. 물론 성녀님이 오시는 건 아닙니다.”
뭘 하려는 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면 자신의 역량 안에서 충분히 가능했다.
“알겠네. 잠시만 기다리게.”
다크 연합 게이트 관리국에 전화를 걸어서 장거리 게이트 허가를 받았다.
그동안 유신은 포스로 기막을 만들어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한 후,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디에고가 집으로 찾아왔다.
“무슨 일이기에 급히 날 만나야 한다는 것이냐?”
“잠시만요. 아직 다 안 와서요.”
챙그랑
교황청 특유의 게이트 열리는 소리와 함께 거실에 푸른색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교황청의 인원이 한 명 걸어 나왔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여기 부탁하신 거 가지고 왔습니다.”
“네. 그럼.”
교황청 인원은 유신에게 아공간 주머니를 건네고는 다시 게이트를 타고 돌아갔다.
유신은 아공간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평소와 달리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보는 그 모습에 불안감이 치솟았다.
“디에고 아저씨. 저와의 계약 생각나시나요?”
“물론이네. 그 마나석 계약 덕분에 다크 연합에서 내 위치가 많이 높아졌네.”
“계약 기간이 앞으로 8년 남았죠?”
“그렇지.”
“8년 치를 한 번에 드리겠습니다.”
“응? 한 번에?”
디에고 장로를 통해 거래하는 마나석의 양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번에 모든 거래를 끝내려고 했다.
“유신아. 혹시 우리와의 연을 끊으려고 하는 것이냐?”
“찰스 형. 그렇게 말하면, 제가 서운한데요.”
“그럼.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이냐?”
“형과 디에고 아저씨의 인연은 제게 소중합니다. 하지만, 다크 연합과의 거래는 이것으로 끝내려고요.”
디에고 장로는 유신이 준 아공간 주머니를 서둘러 열어봤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유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급 마나석? 어떤 건 하급 마나석이라고 부르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질이 떨어지는구나. 설마…”
“네. 그 설마가 맞습니다. 계약상으로 무게만큼 마나석을 드리기로 했지, 마나석의 등급은 적혀 있지 않았죠.”
“그게 말이 되니! 그건 피치 못해서 생산되는 마나석이…”
“네 피치 못하죠. 에반 히스터님 덕분에 정말 피치 못할 상황이 생겼죠.”
대체, 뭘 꾸미길래 저런 말을 할까라고 생각했지만, 금방 알 수 있었다.
다크 연합과 계약하는 상위 등급 마나석을 조절하겠다는 거였다.
“크하하하핫!”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른 그 어떤 전설들의 단체보다, 마나석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마법사였다.
그리고 유신이 하급 마나석으로 준 양이면, 지금처럼 사용하면, 2년도 되지 않아서 마나석은 고갈되고 말 것이다.
“그래. 유신아 잘했다.”
“찰스. 너까지 왜 그러는 것이냐?”
내 칭찬에 디에고 장로가 눈을 흘기더니, 유신을 바라보며, 애원하듯 말했다.
“이러지 말고, 내가 연합장님께 잘 말해놓겠다.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봐라.”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방금 받은 물건의 대금은 한 번에 주셔도 좋지만, 그게 안 되면 남은 8년 동안 분할 납부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선, 문을 나서려고 했다.
“벌써 가려고?”
“네. 찰스 형. 며칠 동안 잘 지냈습니다.”
“그래. 이건 알아두거라. 나 또한 다크 연합의 인원이고, 아버지의 자식이라서, 유신이 네 편이 되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나 널 응원하마.”
“그거면 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땅의 축복.”
순간 유신의 주위로 땅이 솟아오르고, 가라앉더니, 상급 마나석 한 개와 메모지가 있었다.
[형. 이건 숙박비이자, 오랜만에 만나서 주는 선물입니다. 다른 사람 주지 말고, 형이 쓰세요.]
상급 마나석과 메모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다크 연합과 유신의 사이는 틀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개인적인 인연으로 이런 선물까지 챙겨주는 모습이 고마웠다.
‘방금 어떻게 이동했지?’
어떤 마법적인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도 원소력도 그렇다고 포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스크롤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는데, 유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역시,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동생이었다.
“유신. 유신은 어디 갔나?”
뒤늦게 밖으로 나와서 유신이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한 디에고 장로가 나와서는 유신을 찾았다.
“이미 떠났습니다.”
“이런…!”
“그 마나석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아버지와 협상을 하실 겁니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네! 제발…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언제나 당당했던 디에고 장로의 모습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유신이가 다리우스한테 절대 말하면 안 되는데…”
“다리우스요? 그…유신이 한 번씩 말했던 선배라는 사람이요?”
“그래. 이 일이 다리우스에게 넘어가면, 우리 다크 연합은 끝장이네.”
대체 그자가 누구이기에 아버지인 에반 히스터를 제외하고, 안하무인에 가까운 디에고 장로가 저렇게 무서워하는 걸까?
거기다가 아무리 그자가 무서워도 디에고 장로는 다크 연합의 장로였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치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리우스라는 사람은 대체 누구입니까?”
내 질문에도 디에고 장로는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본인 말만 내뱉었다.
“찰스. 미안한데, 날 연합장님께 보내주게. 지금 바쁘다네.”
“이유를 알려주시면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그건 자네도 가서 들으면 되네. 서둘러 주게.”
“알겠습니다.”
에반 히스터.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면 해결될 것 같기에 일단은 잠시 기다리며, 공간이동 게이트 마법을 만들기 시작했다.
***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평야.
그곳을 사이에 두고, 인간과 엘프, 드워프 등의 이종족 연합이 모여 있었다.
반대편에는 수많은 상위 마족과 마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알프레도 켄트 경. 당신의 말대로 병력을 이곳으로 모았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의 동료들은 보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당신이 강대한 마법사라고 해도 이대로 붙게 되면 저희는 지리멸렬할게 분명합니다.”
인간들의 대표로 이곳에 온 소드 마스터인 콘웰 공작이 못미더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그때서야 졸린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봤다.
인간들의 눈빛은 불신으로 가득했고, 이종족들은 불안한 눈빛이었다.
“하암~ 그렇게 불안하면, 왜 제 말을 믿었습니까?”
“……”
아무도 할 말이 없을 거다.
일루시안은 자신들의 세계이면서, 이계에서 온 우리 13기동 타격대에 모든 걸 걸고 있으니 말이다.
“병력 파악은 됐습니까?”
내 말에 큰나무줄기 엘프족의 대표가 일어나 보고하기 시작했다.
“하급 마물 32만, 중급 마물 7만, 상급 마물 9천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그 외에 마족들은 하급 2천이며, 중급 이상은 능력 부족으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대략 50만이군요. 우리가 모인 수가 70만이지만, 역시 평야에서는 불리하겠죠?”
“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때 파발 병이 안으로 들어왔다.
“마물 군단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파발 병의 말에 천막 안은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조용!”
회의 테이블을 손으로 치며, 마력을 퍼뜨렸다.
마력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몸으로 흡수되어서, 심적 안정을 유도했다.
“예상보다 적들이 빨리 움직이네요. 일단 오늘 저녁에 우리 부대원들이 오기로 했는데, 그동안 버텨야겠죠? 모든 인원을 최대한 뒤로 뭉치게 해주세요.”
명령을 내리자마자, 이종족들은 한 마디의 이견도 내지 않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인간들이 문제였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콘웰 공작. 당신에게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죽기 싫으면 빨리 뒤로 물리세요.”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콘웰 공작이 대답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떠난, 천막 안에서 혼자 있어봤자, 해야 할 일은 하지도 못하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마물들이 있는 곳 앞까지 다가갔다.
끝없이 다가오는 마물들과 인간도 발길질 한 번에 깔아뭉갤 수 있는 대형 마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 계산 잘못해서 이렇게 고생할 줄이야.”
온몸으로 원소력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불, 물, 나무, 쇠, 땅의 기운이 넓게 퍼졌다.
그 상태에서 높게 날아오른 후, 모든 원소력을 인간들의 병력이 몰려있는 곳에 쏟아부었다.
마법사의 성
대기의 마나가 요동치고, 땅이 울렸다.
그 상태에서 70만 대군을 지킬 수 있는 성이 생겨났다.
“모두 각자의 자리로 가서 마물들을 막아라!!”
이종족 연합들이 서둘러 방어를 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방어만 하면 충분히 작전 시간까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분명 피해는 생기고 말 것이다.
지금 여기 모여 있는 인원들은 일루시안의 마지막 전사들이었다. 그들의 생명을 하나라도 지키려면 며칠 앓아눕더라도, 조금 더 분발해야 했다.
다크 클라우드
하늘 위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싸이클론
먹구름이 팽이 모양으로 돌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바람을 일으켰다.
라이트닝
태풍이 번개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물들 사이에 강림한 뇌전을 뿜어내는 태풍은 마물들을 감전시키고, 날려버렸다.
어마어마한 위력이었지만, 50만에 가까운 마물들을 모두 몰살시킬 수는 없었다.
그때, 마물들이 있던 곳에서 다섯 개의 파괴광선이 날아왔다.
서둘러 보호막을 일으켜서 모든 파괴광선을 튕겨냈다.
다행히 무사했지만, 그로 인해, 태풍이 사라졌다.
“마왕급이 다섯이나 있다고?”
단 한 번의 계산 실수가 목숨을 걸어야 할 판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