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_부당한 거래(2)
아귀는 내가 일본 규슈 지방에 도착한 후, 제일 먼저 만난 몬스터였고, 제일 처음으로 멸종시킨 몬스터이기도 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세히 좀 말하게.”
디에고의 눈빛은 지식욕에 불타는 학자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광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아주 일부만 알려줬다.
“그러니까 자네 말대로면, 아귀랑 오르그 둘다 이시이 히로가 만들었고, 자네가 다 죽였다는 거지?”
“네. 그 외에도 많았고요.”
“알겠네. 그럼 아귀와 오르그의 특징에 대해서 잘 아나?”
“당연하죠. 며칠 동안 그 녀석들만 잡았는걸요.”
“나한테 빨리 설명해주게!”
“맨입으로요?”
광기에 번뜩이는 학자는 좋은 호구가 될 수 있었다.
“자네가 원하는 게 뭔가?”
미끼를 물었다.
당연히 매력적인 미끼였기에 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니 적당히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디에고 아저씨 주 능력이 결계라고 하셨죠?”
디에고 아저씨와 만족할 만한 거래를 끝내고, 훈련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찰스 형이 자신과 닮은 사람과 같이 서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유신이 자네 왔군.”
“네. 근데 형…뒤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요?”
내 귀엣말에 찰스 형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버지시라네.”
“아버지요? 찰스 형의 형이 아니라, 아버지요?”
“아버지가 맞다네.”
너무나 닮아서 형제인줄 알았다.
거기다가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젊어 보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찰스 형의 아버지에게 다가간 후, 90도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찰스 형에게 신세지고 있는 하유신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요즘 찰스와 대련을 한다고?”
“네. 형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내가 둘의 대련을 참관해도 되겠나?”
“전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허락했다고 하지만, 가족 앞에서 능력을 사용하는 걸 꺼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찰스 형을 바라봤다.
“저도 상관없습니다.”
“찰스도 상관이 없다고 하는군. 그럼 구경 좀 하겠네.”
“좋은 모습 보여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깨를 풀며 훈련장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다음 어제 다크 연합 무기상점에서 새롭게 구한 세컨 검을 뽑았다.
“형. 아버지 계신다고 해도 안 봐 드립니다.”
“그건 내가 할 소리지. 그리고 우리 아버지 눈이 까다롭네. 어제와는 달라야 할 거야.”
찰스 형은 말이 끝나자마자 한 번에 다섯 자루의 마나검을 만들어서 내게 쏘아 보냈다.
조쉬와의 싸움 때도 그렇지만, 이럴 때일수록 앞으로 한 발 나서야 한다.
유성 찌르기
제대로 된 자세를 잡지 않아서일까?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기술 하나로 마나검을 지나치고는 찰스형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콰아앙
언제 만들어놨는지, 찰스 형 주위로 마법 트랩이 깔려 있었다.
재빨리 포스막을 만들어서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전투는 타이밍이었다.
그사이 지나쳤던 마나검이 다시 돌아왔고, 앞에 새로운 다섯 자루의 마나검이 만들어졌다.
“준비를 많이 하셨네요.”
“마법사니까.”
마나검이 간격 안에 들어오자, 팽이처럼 몸을 회전해서 모든 마나검을 쳐냈다.
사방으로 튕겨지는 마나검들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찰스 형에게 탄검기를 날렸다.
검기는 보호막에 막혀 소멸되었지만, 그사이 앞으로 달려가서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마나검과 검기가 부딪히자, 폭발을 일으켰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나검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날카로운 검이었는데, 오늘은 폭발을 일으켰다.
하루 사이에 마나검의 배열을 바꾼 거였다.
그렇다고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쾅 쾅 콰앙
멀리 떨어진 마나검에게는 탄검기를, 가까운 마나검은 일일이 쳐내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찰스 형 앞에 서자마자, 높게 점프했다.
역시나 땅에 있던 저것은 마법으로 만들어진 환영일 뿐이었다.
눈에 포스를 집중하니, 찰스 형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
검을 내리찍어서 공중에 떠있는 찰스 형을 바닥에 내려서게 만들었다.
신발 밑창 바로 밑에 실체화된 포스를 만든 후, 그걸 밟고 빠르게 찰스 형에게 쏘아져서는 목에 검을 겨눴다.
“오늘은 진짜 장군입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네.”
마나검들이 내 요혈 곳곳을 노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찰스 형의 왼손이 내 심장을 겨누고 있었는데, 거기서 거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오늘은 정말 무승부네요.”
“그렇군. 오늘은 무승부야.”
나는 검을 치우며 찰스 형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어떠셨어요?”
찰스 형의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옆에 놓여있던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인이나 된 것들이 대련이라 하고선 애들 장난이나 치고 있었군.”
방금까지 찰스형과 내가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대련을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내 말이 틀렸나? 대련이라 말하고, 서로가 10프로도 안 되는 힘으로 싸우고 있는데, 내 말이 틀렸느냐?”
스스로의 힘에 제한을 두기는 했었다.
찰스 형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만큼 힘에 제한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이걸 파악했다는 건 앞에 앉아 있는 찰스 형의 아버지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소리였다.
“아무리 힘에 제한을 주고 한 대련이라지만, 그렇게 비하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나요?”
찰스 형의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검사가 마법사처럼 원거리 공격에 집중하고, 마법사는 전사처럼 근접에만 집중하니 그렇지.”
“제 탄검기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시나 본데요.”
하나하나 반박하려고 했지만, 찰스 형의 아버지가 손을 들어서 내 입을 막았다.
“맞네. 일반 검기보다, 탄검기가 더욱 날카롭더군. 전사의 검기가 일정하지 않고 변한다? 그건 좋지 못한 일이지.”
내 공격의 대부분이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 원거리 위주로 되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대련을 한 번 구경해서 이 모든 걸 알게 됐다는 것에 다시 놀랐다.
찰스 형의 아버지는 내가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괜한 오기를 부려서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되기에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묻나? 난 찰스와 같은 마법사지. 자네 같은 검사가 아니야.”
“그…그렇군요.”
쉽게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대놓고 거부하자, 괜히 기운이 빠졌다.
“그럼 가기 전에 자네에게 전할 말이 있네.”
“저한테요?”
“내일 오전에 연합장님께서 보자고 하시더군.”
“연합장? 앗! 네 알겠습니다!”
드디어 다크 연합의 연합장 에반 히스터를 보게 됐다.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도 중요하지만,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찰스 형의 아버지는 걸음을 옮겨서 훈련장을 벗어났다.
“살펴 가십시오. 아버님. 떠나기 전에 인사드리겠습니다.”
내 우렁찬 말에도 상대는 그저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떴다.
“헤헤~ 드디어 내일이네요.”
“자네 괜찮나?”
“응? 왜요?”
찰스 형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아니네. 내일 연합장님을 만나면 잘 말하도록 하게.”
생각해보니, 앞에 있는 찰스 형도, 디에고 형도 모두 다크 연합의 연합장을 만나봤을 거다.
그렇다면, 연합장의 성격을 알 수도 있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상대를 알면,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찰스 형. 연합장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괴팍한 사람.”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나온 대답이었다.
이런 식이라는 특징에 대해서 듣고 싶었는데, 괴팍하다는 말은 말문이 막히게 만들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자, 찰스 형이 다가와서는 내 어깨를 두드려줬다.
“내일 힘내게.”
***
“사…살려주세요.”
“말이 많군.”
수드라 주제에 자신들의 왕인 나에게 죽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지, 살려달라는 소리를 내뱉자,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다른 수드라와 다르게 앞에 있는 수드라의 허벅지에 잘린 오른손을 대신에 왼손으로 허벅지를 꿰뚫었다.
“크윽…”
“너는 내가 특별히, 천천히 흡수해주마.”
수드라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점점 미라가 되어갔다.
“괴…괴물…….”
죽기 직전까지 기분 나쁜 말을 내뱉고, 상대가 죽자, 미라가 된 놈의 사체를 가루가 되도록 찢어발겼다.
수드라만 살고있는 세 곳의 마을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흡수했지만, 오른팔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유신!!”
아무리 방심했다고 하지만, 그런 놈한테 팔이 잘린 것은 치욕 중에 치욕이었다.
자신은 지구에서 만인에게 존경받는 전설이자, 마신 숭배자들의 여섯 기둥 중 하나인 장로였으며, 인도의 왕. 조쉬 히라니였다.
“그런 내가 감히 그딴 놈에게…바드득!!”
이가 갈리는 상황이었다.
그때의 전투를 떠올리며, 분노를 삼키고 있을 때였다.
자신이 미끼만 되어준다면,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겠다던, 루이스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고작 몬스터 몇 마리 보낸 게 다였지.”
최소한 작전대로 루이스만 나타났어도, 자신이 이런 치욕을 겪을 일은 없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어. 아무도.”
이미 마족화 되어 버린 이 몸으로는 대중들 앞에 나설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조쉬 히라니가 아니라 그저 지구에 나타난 마족으로만 볼 것이다.
“내가 힘만 다시 회복한다면, 하유신과 교황청 그리고 루이스까지 가만두지 않겠어!”
이러나저러나 회복이 최우선이기에 다음 마을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
최대한 단정하게 복장을 점검하고 방을 나왔다.
오늘 드디어, 다크 연합의 수장인 에반 히스터를 만나러 간다.
며칠 더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약속이 빠르게 잡혔다.
“준비는 끝났어?”
거실에 공간이동 게이트 준비를 끝낸 찰스 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 이제 가면 될 것 같아요.”
“알겠네.”
찰스 형이 살짝 눈을 감고 주문을 외웠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실에 게이트가 열렸다.
“들어가게.”
“형은 안 가세요?”
“유신이 자네가 들어가면 바로 뒤따라 들어가지.”
“알겠습니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게이트에 몸을 던졌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어지러움을 느끼고 있을 때, 바닥에 발을 짚을 수 있었다.
“후욱. 후욱~”
어지러움을 날리기 위해 짧게 숨을 내쉬고 있을 때, 찰스 형도 게이트를 넘어왔다.
“괜찮나?”
“네…뭐 버틸만 합니다.”
“보통 사람도 자네만큼 공간이동 게이트를 사용하면 멀미하지 않는데, 자네는 나아지지 않는군.”
“그래도 예전에는 토했는데, 지금은 안하잖아요. 이제 좀 진정됐어요. 어디로 가면 되나요?”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되네.”
손가락이 향한 곳은 드래곤이 악마에게 브레스를 뿜어내는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문이었다.
머릿결을 정돈하고, 문 앞에 선 후에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수백 명이 파티를 열어도 될 거대한 응접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다크 연합의 연합장이 앉아 있어…?
“아버님?”
찰스 형의 아버지가 연합장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실수를 하신 건가? 생각했지만, 아닌 것 같았다.
다른 단체들도 그렇지만, 특히, 다크 연합의 수장은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님이 다크 연합의 연합장이자, 13인의 전설 에반 히스터님이었다니.”
“그래. 내가 바로 에반 히스터네.”
13인의 전설이자, 다크 연합의 연합장인 에반 히스터가 자신을 밝혔다.
“그렇군요. 그럼?”
나는 고개를 돌려서 찰스 형을 바라봤다.
“찰스 히스터. 누가 봐도 내 아들이 맞지.”
딱히 배신감이 들지 않았지만, 서운함이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거래에 영향을 줄 것은 아니었다.
“역시 찰스 형이 괜히 강한 게 아니었군요. 다 아버님을 닮아서 그랬어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지. 이번에 개발한 공간이동 추적 및 강제 오픈 스크롤을 사고 싶다고?”
어떻게 본론을 말할까? 어젯밤 늦게까지 연습했는데,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주니 의외로 마음이 편했다.
“네. 사고 싶습니다.”
“좋네. 그럼 묻겠네. 자네는 내게 뭘 줄 건가? 참고로 그 스크롤은 내가 만들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