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_부당한 거래(1)
멕시코시티의 정부 청사가 보이는 높은 건물 앞에 아론 발데스가 자신의 검을 꽉 쥐며 앞을 노려보고 있었다.
솔직히,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아론. 우리 둘이 할 수 있을까?”
내 걱정에 아론은 멕시코 남성답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셀마. 걱정하지 마. 혹시 가엘 캄파한테 정이라도 남았어?”
자신과 아론 그리고 가엘 캄파는 한때 동료이자, 같은 삼천의 영웅으로 멕시코를 대표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느낌이 좋지 않아.”
“평소의 네 느낌을 높게 사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어. 오늘이 아니면, 저 미친 가엘을 막지 못할 거야. 우리의 고향 멕시코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야지.”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말하는 아론을 보니, 어쩔 수 없이 고개가 끄떡여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이번 일만 끝나면, 너한테 청혼할 거야. 그러니까, 서로 최선을 다하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애써 퉁명스럽게 답했다.
“누가 받아 준데?”
“받아줄 때까지 쫓아다닐 거야. 그러니까 조심해.”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아론이나 조심해. 난 후방이고, 넌 전위니까.”
“알았어. 벌써 이 서방님을 챙기다니.”
“장난 그만해.”
아론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서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느낌은 잠깐이었다. 이내 떨어진 아론이 서서히 표정을 굳혔다.
“이제 갈까?”
“…응.”
동료들이 미리 알아둔 길을 통해 서서히 정부 청사로 들어갔다.
이제 곧, 권력에 미친 옛 영웅이자, 자신의 동료인 가엘 캄파를 만날 것이다.
그를 죽여서 멕시코를 안정화 시켜야 했다.
그리고 그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같은 영웅인 자신들뿐이었다.
‘멕시코의 독립? 그건 전설들에게 멕시코를 집어삼켜 달라고 빌미를 주는 것과 같아.’
몇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카르텔들의 우두머리인 월리암 디아스가 사라졌다.
이때가 기회라고 느끼고, 아론과 함께 카르텔과의 전쟁을 벌였고, 승리까지 했다.
그리고 그사이, 가엘이 정권을 잡고 우리의 고국인 멕시코를 불행의 길로 빠뜨리고 있었다.
“도망가. 셀마.”“응? 그게 무슨 소리야?”
“빨리 도망가!”
아론의 외침과 함께 주변이 밝아졌다.
그리고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이족보행에 흉측한 괴생물체를 보게 됐다.
“도망갈 길도 없어.”
“어쩔 수 없군. 여기서 결판을 내야겠어.”
검을 빼든 아론이 주위를 경계하는 동안, 특수 제작된 쌍권총을 꺼냈다.
그걸 계기로 괴생물체들이 달려들었고, 전투가 시작됐다.
“와라!!”
아론이 크게 외치며, 검을 통해 화염의 기운으로 검기를 만들어서 괴생물체를 불태웠다.
이미 작전은 실패했다.
최상의 몸 상태에서 가엘과 싸워야 승산이 있는데, 벌써 원소력과 체력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타앙 타앙 타앙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원소력을 이용한 마력탄을 괴생물체들에게 쏘기 시작했다.
얼만큼 해치운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싸웠다.
이렇게 싸운 것은 예전 마왕 섬멸전 때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하아 하악. 아론 이번 작전은 실패했어. 도망가자.”
괴생물체들은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우리는 지쳤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그저 목숨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같은 짓이었다.
“알았어. 도망가…커헙!”
“아론!”
괴생물체와 싸울 때에도 상처 하나 없던 아론이 피를 토했다.
그러더니, 전투 슈트를 입었던 복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지 마!!”
아론은 왼손으로 피가 새어 나오는 자신의 복부를 가리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우리의 목표였던 가엘 캄파가 자신의 주무기인 깃털을 들고 있었다.
“아론. 셀마. 오랜만이야.”
“가엘!!”
“아론. 그렇게 크게 부르지 않아도 돼.”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서둘러 총을 가엘에게 겨냥하며 방아쇠를 당겼는데, 총이 폭발하고 말았다.
“에이~ 내 능력 다 알면서 내게 총을 겨눴네? 정말 오랜만에 동료들과 회포를 풀고 싶지만, 날 죽이려고 이를 드러낸 너희는 내 동료가 아니지.”
“크아아아악!!”
아론이 이성을 잊고 가엘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엘에게 다가가는 아론의 몸은 점점 피투성이가 되어갔다.
대신에 그만큼 가엘이 쥐고 있는 깃털의 개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렇게 한눈을 파는 동안, 다른 총으로 가엘이 쥐고 있던 깃털을 맞췄다.
“성공이야! 아론!!”
“죽어어엇!!”
아론이 기회를 살려서는 가엘의 복부의 검을 꽂아 넣었다.
데엥
검이 복부를 찌르는 소리가 아니라,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가엘의 몸이 강철로 이루어졌고, 송곳니는 길게 늘어났으며, 이마에는 한 개의 뿔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족?”
가엘이 아론의 얼굴을 잡고는 그대로 땅에 쳐박았다.
그렇게 아론이 침묵하자, 가엘이 날 바라봤다.
마족 특유의 눈동자에 꼼짝할 수 없었다.
“셀마. 넌 살려주려고 했는데, 내 이 모습을 보게 됐네? 어쩔 수 없지. 너도 죽어야 겠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의 그 악몽이 다시 떠오르려고 할 때였다.
땅에서 몸을 일으킨 아론이 혼신의 일격으로 가엘의 복부에 검을 찔러넣었지만, 쇠소리와 함께 튕겨났다.
가엘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아론은 입에서 피를 흘렸다.
“셀…마…도…망……”
아론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뜻은 제대로 전달되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몸을 날려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이곳에 오기 전에 아론과 함께 준비한 게 있었다.
예전 마왕 섬멸전 때처럼, 죽게 되면, 온몸이 터지더라도,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을 몸에 심고 싸우자고.
아무리 폭탄이 터졌다고 해도, 가엘을 해치우지는 못했을 거다.
이제 방법은 하나였다.
다른 곳에 이 상황을 전달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아론…….”
***
키메라.
여러 생물을 합쳐서 만드는 인공생물.
과연 이건 불법일까? 합법일까?
“인간이 재료로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불법이라네. 그래서 보통은 인간과 DNA가 일치한 동물을 사용하거나 몬스터를 사용하지.”
“그렇군요. 근데, 이시이 히로라고 아세요?”
“아…그 미친 의사? 당연히 잘 알고 있지.”
대수롭지 않게 말한 이철민은 오우거의 혈관에 바늘을 꽂았다.
“어떤 사람이었나요?”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네. 단지 자신의 능력을 철저히 숨겼지. 근데 그거 아나? 이시이 히로를 통해서 몬스터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은 1년 안에 폭력적으로 변하고, 3년 안에 다 죽었다네.”
“죽어요?”
“그렇지. 몬스터의 장기는 아무리 동기화를 걸고 정화를 해도 미약하게 마기를 가지고 있거든.”
이시이 히로는 끝까지 자신이 의학의 선두주자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실패한 의사일 뿐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스스로 새로운 종을 만들겠다고 착각에 빠져 있었다.
“자! 이제 준비가 다 됐네. 밖으로 나가세.”
“네.”
실험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조종실에 들어가자, 동기화 능력자가 실험실로 들어갔다.
그는 오우거와 트롤의 피에 동기화 능력을 사용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시이 히로도 참 대단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동기화를 그렇게 꽁꽁 숨겼는지. 요즘 이식외과에서는 다 사용하고 있는데 말이야.”
“그래요?”
“그렇지. 동기화된 장기는 이식된 사람의 본래 장기로 쉽게 인식하거든. 한 십 년 전에 나온 기술이야. 웃긴 게 뭔지 아나? 이시이 히로가 이식을 할 때 동기화를 걸면, 장기가 손상된다는 논문을 발표했어. 그렇게 별거 아닌 능력을 자신만의 실력으로 포장했지.”
내게 말하는 내내 이철민의 손은 빠르게 움직이며, 컴퓨터를 조작했다.
그때 동기화 능력을 사용한 인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기화. 완료되었습니다.”
“그럼. 나오게.”
“알겠습니다.”
그자가 밖으로 나온 걸 확인하자, 이철민은 목을 가다듬었다.
“57번째 실험. 56번째 실험과 동일한 상태에서 수혈 전, 동기화 능력을 사용함.”
말을 마치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모습이 꽤 긴장한 것 같았다.
“그럼 실험 시작하겠습니다.”
컴퓨터 자판의 엔터를 거침없이 누르자, 밖에서도 보일 정도로 트롤의 피가 오우거에게 들어갔고, 오우거의 피는 빠르게 빠져나가서 혈액통으로 들어갔다.
“이제 꼬박 하루 기다려야 하네.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다 하유신. 자네의 공이네. 정말 고맙네.”
“아직 성공한 것도 아닌걸요. 제대로 된 감사 인사는 실험이 성공하면 그때 들을게요.”
“그러지. 내 어떤 보상이라도 하겠네.”
“감사합니다.”
대화가 끝이 나자, 이철민은 화면을 통해 나오는 오우거의 심박수와 혈압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의 열정에 고개를 내저으며 조심히 자리를 떴다.
문밖으로 나오자, 긴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하유신님 모시겠습니다.”
“네.”
정복을 입은 운전기사가 내게 허리를 숙이며 리무진의 문을 열어주었다.
이자는 디에고 레비 아저씨가 붙여준 사람으로, 이 차를 타고 움직이면, 다크 연합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리무진은 어디서나 이목이 쏠려서 행동에 더욱 큰 제약이 생겼다.
“디에고 아저씨한테로 가주세요.”
“그럼, 디에고 레비님의 작업실로 모실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리무진을 돌려보내면, 운전기사 아저씨는 곤란해질 게 뻔했다.
직접 찾아가서, 이런 부담되는 호의를 사양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차량은 아주 부드럽고, 천천히 출발했다.
리무진 뒷자리의 푹신함이 너무나 좋았다.
“도착했습니다.”
“네? 벌써요?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밖에 있던 누군가가 문을 열어줬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니, 고풍스러운 느낌의 저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디에고 아저씨 집은 어디지?”
가만히 서서 저택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리무진의 문을 열어준 깔끔한 정장의 여인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하유신님이십니까?”
“네. 접니다.”
“디에고 레비 장로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들을 따라 걷다 보니, 여러 저택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이런 집들은 비싸겠지?”
별장으로 쓴다면 딱 좋을 집들이 눈앞에 보이자, 사심 섞인 혼잣말이 무심코 튀어나왔다.
친절하게도 날 디에고에게 안내하는 여성이 물음에 답해줬다.
“가격은 책정되지 않았습니다. 디에고 레비님께서는 이 저택들을 파실 생각이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주위의 저택들을 다시 바라봤다.
그 흔한 담도 없고, 하나의 마을인 것처럼 모두 길로 일어져 있었다.
“설마…여기 있는 집들이 모두 디에고 아저씨 집인가요?”
“네. 정원 포함 장로님 소유입니다.”
인세 부자라는 게 이런 거구나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아직도 팔리고 있는 책이 몬스터 대백과사전이었다.
“여기입니다.”
어느새 도착한 곳은 위엄 있어 보이는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문 앞이었다.
“장로님. 하유신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와.”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안내인들이 열어주는 문을 넘어서 안을 바라보니, 디에고 아저씨가 컴퓨터 앞에서 고뇌에 빠져 있었다.
“자네 왔나? 잠깐만 기다리게.”
“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아까 그 여성이 들어와서는 다과와 차를 내려놓고 나갔다.
간식을 먹으면서 디에고를 기다렸지만, 모두 다 먹을 때까지 디에고 아저씨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림이 지겨움으로 바뀌었고, 너무 심심한 나머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봤다.
방의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을 때, 디에고 아저씨의 컴퓨터 화면을 보게 됐다.
“어? 이 몬스터는…아귀네요”
“그래. 아귀지. 아무리 일본에만 있는 몬스터라도 해도 이번 몬스터 대백과사전의 개정판에는 제대로 된 설명을 넣어야 할 것 같아서 그러네. 근데, 이놈들이 일본을 벗어나면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죽게 되네.”
“그렇군요. 그럼 아귀 페이지는 없애도 되겠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아귀 여왕까지 아귀라는 몬스터들을 멸종시켰거든요.”
디에고 아저씨는 황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