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_조쉬 히라니(4)
뇌전에 기절하고, 신성력의 고통에 눈이 떠졌다.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눈은 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얼음에 갇히게 된 걸 알게 됐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조쉬 히라니를 감히 이딴 곳에 가둬?!’
힘을 폭발시켜서 얼음덩어리를 깨고 나자, 교황청의 인형이 보였다.
화풀이를 할겸, 냅다 주먹부터 날렸다.
쌓여 있는 게 약간 풀리기는 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성녀가 와 있었다.
‘날 이렇게 만든 건 모두 성녀의 신성력이었군.’
고작 회복이나 시키는 성녀를 충분히 죽일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13기동 타격대는 내가 처음으로 죽이겠군.”
한손으로 마리를 다른 한손은 유신을 가리켰다.
“죽엇!”
손끝에서 발사되는 가시의 위력에 마리와 유신이 금세 온몸에 구멍이 뚫릴 걸 예상했었다.
그런데, 겨우 힐이나 주는 마리가 채찍으로 가시를 쳐내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분수도 모르는 게!”
유신도 유신이지만, 일단 앞에 있는 마리를 빨리 처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때, 지금까지 채찍으로 가시를 쳐내던 마리가 성호를 긋더니, 보호막이 생성됐다.
“그게 과연 얼마나 갈까?”
한껏 비웃음을 흘리며,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그 어떤 공격도 마리에게 닿지 못했다.
그렇게 마리와 나 사이의 거리가 지척에 달하자, 마리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아가리. 꽉 다물어라.”
가시를 쳐낼 때는 설마 마리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거칠게 말하는 걸 보니, 자신이 아는 성녀 마리가 맞았다.
그녀는 보란 듯이 주먹을 내게 휘둘렀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기보다는 차라리 저 솜 주먹을 한 대 맞아주고, 치명타를 가할 생각이었다.
“컥…”
복부에 꽂힌 주먹에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내가 알던 성녀의 파워가 아니었다.
“크…대체 어떻게…”
“어떻게는 내 손이 매운 거지.”
그때부터 무차별 폭행이 가해졌다.
주먹이 닿는 곳의 가시는 부러졌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아무리 13기동 타격대에 성녀가 들어갔다고 하지만, 자신이 알던 성녀는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고작 힐이나 쓰던 X이!!”
울분에 찬 외침이었지만, 이내 얼굴을 얻어맞고 뒤로 날아갔다.
쓰러진 상태에서 갑자기 강해진 성녀를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고, 호흡이 거칠었다.
‘역시 무리하고 있었군.’
성녀가 13기동 타격대를 대변한다고 해서 13기동 타격대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예전보다 강해졌지만, 자신은 그 이상 강해져 있었다.
단지, 신비석에 당하고, 신성력에 당해서 본연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뿐.
‘내가 이런 치욕을 당하는 건 모두 저놈 때문이야.’
고개를 돌려 하유신을 바라봤고, 어이없는 상황을 보게 됐다.
“게이트를 닫는다고?”
자신도 멀쩡한 컨디션에 꽤 힘을 쓰면 게이트를 닫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전설의 경지에는 들어야 가능한 게 게이트를 닫는 거였다.
“무슨 개수작이냐!”
성녀는 어떻게 해서든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 현재 약화 되어 있고, 자신과 상반되는 신성력을 쓰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하유신은 아니었다.
‘절대 인정할 수 없어.’
저놈이 어떤 술수를 써서 게이트를 닫고 있을 게 뻔했다.
일단은 성녀를 무시하고, 하유신에게 쏘아졌다.
지금도 불리한데, 게이트까지 닫히면, 최후의 탈출구까지 잃게 되는 거였다.
“자존심이 더럽게 높은 인도의 왕께서 어딜 가시나?”
성녀가 호흡을 고르고 앞을 막아섰다.
그동안에도 게이트는 서서히 닫히고 있었다.
“비켜라!”
“조쉬. 그건 날 이기고 할 소리야.”
옆으로 몸을 날려서 성녀의 주먹은 피했지만, 서늘한 감각이 남았다.
이대로 계속 당하기만 하는 건 나와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군. 후회하지 마라.”
몸에 돋아난 모든 가시를 일시에 방출했다.
성녀와 유신이 가시를 막기 위해 방어에 돌입한 순간, 게이트를 향해 뛰었다.
“조쉬!!”
뒤에서 성녀의 외침이 들렸다.
이제 저 눈앞에 보이는 유신만 처리하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꺼져라!”
오른팔 자체를 가시로 바꾼 후, 유신의 복부를 향해 찔러 넣었다.
이대로 유신을 꿰뚫고, 게이트에 들어가기…어?
자신의 오른팔이…그 어떤 금속보다 단단한 오른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역시. 이렇게 변이를 하면 변하지 않는 지점과 변한 지점이 약하네. 안 그래? 고슴도치?”
유신의 비아냥이 들렸지만, 머릿속은 그저 멍했다.
‘인도의 왕인 내가 이런 애송이에게 당했다고? 그것도 반마족이 되었는데?’
죽음의 사신은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왕답게 이곳을 벗어날까 생각했다면,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했다.
“크아아아악!!”
팔이 잘려서 오는 쓰라린 고통을 괴성과 함께 날려 버리며, 미뤄왔던 마족화를 진행했다.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마족화로 변하며 생긴 파장에 유신이 뒤로 물러났다.
지금이 기회였다.
마족이 되어도 유신과 마리를 같이 상대하는 건 위험했다.
“이놈들 기억하마!”
***
그때 뒤로 물러서면 안됐다.
오히려 파장에 파고들어서 조쉬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어야 했다.
“내가 이대로 보내줄지 알아?”
아직 게이트는 열려있었기에 따라서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
흠칫.
등 뒤로 위험한 감각이 들었고, 서둘러 몸을 돌려서 다가오는 무언가를 쳐냈다.
날아온 것을 검으로 쳐내고 보니, 고작 돌멩이였다.
“뭐하는 짓이야?”
마리 선배가 손에 다른 돌멩이를 들고 날 바라보고 있었는데, 잔뜩 화난 표정이었다.
“선배가 던지셨어요?”
“뭐하는 거냐니까?”
“당연히, 조쉬 히라니. 저놈을 잡으려고요.”
“죽고 싶어서 그래? 저기로 넘어가면 어떤 놈들이 나타날 줄 알고?”
“지금 잡지 못하면…”
“하유신.”
낮게 깔린 마리 선배의 목소리에 저절로 입이 다물어졌다.
마리 선배는 그런 날 보고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열정적인 건 알겠지만,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건 무모한 거야.”
“빨리 잡기만 하면 되죠.”
“유신아 넌…일루시안에 있는 13기동 타격대만큼의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 물론 나도 없고, 거기다가 지금 우리의 몸 상태도 멀쩡하지는 않지.”
그때서야, 마리 선배의 몸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손끝을 떨고 있으며,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선배 괜찮으세요?”
“이제야 주위를 둘러보는 거야? 괜찮아. 좀 무리를 했을 뿐이야.”
“무리요?”
다른 사람도 아니라, 마리 선배였다.
아무리 다리우스 선배가 데리우스를 억제하기 위해 제대로 힘을 못 쓰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다리우스 선배를 두들겨 팼던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그날 데리우스를 패던 모습은 절대 잊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오실 때 무슨 일 있었어요?”
마리 선배는 눈을 흘기며 날 노려봤다.
눈치를 보면,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더는 묻지 못했다.
그렇지만, 마리 선배가 먼저 내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신성력으로 신전 만드는 게 쉬운 줄 알아?”
“아…그래서 지금 기운이 없으시군요.”
잠깐 멈칫한 마리 선배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신들을 위한 신전은 파괴되면, 마기를 가진 자에게 피해를 주고, 그 파괴력만큼 내게 신성력이 돌아와. 그런데, 누가, 파괴되어서 몬스터를 잡아야 하는 그 기술의 신성력을 다 가져가 버렸거든.”
“아… 저 때문이었군요.”
말없이 날 바라보는 마리 선배를 보며, 속으로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지금까지 열려있던 게이트가 순식간에 닫혔다.
그렇게 전투는 끝이 났다.
마이소르의 고궁은 완벽한 폐허와 수백이 넘는 대형 몬스터의 시체가 널리게 되었다.
“그럼 선배. 이제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마족 숭배자와 전쟁이지.”
“전쟁이요?”
“그래. 그들이 생각 외로 너무 깊숙이 들어왔어. 지금부터 전세계는 전력을 다해서, 그들을 막아야지.”
“많은 피해가 생기겠죠?”
“피해는 어쩔 수 없는 거야.”
나는 고개를 들어서 게이트가 닫힌 공간을 바라봤다.
“제가…제가 조쉬를 잡았다면, 앞으로의 전쟁에서 피해가 덜했겠죠?”
“그럴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건 가정일 뿐이야.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두지 마.”
미련이 갈 수밖에 없었다.
벌써 몇 번째 같은 생각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때,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니라, 앞으로 한걸음 더 걸었다면, 조쉬는 게이트를 타고 도망치지 못했을 거다.
“선배. 게이트가 열렸던 흔적으로 좌표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마리 선배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 남아 있는 흔적으로 좌표를 파악하려면 최소한 다크 연합의 최상위 능력자들이 와야 할 거야.”
“그래요?”
다크 연합과 인연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인맥은 묵혀두는 것도 아니고, 정말 필요할 때는 써야 했다.
곧장, 위성 전화기를 들어서 전화를 걸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선배.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전화가 몇 번 울리지 않았는데,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유신. 오랜만이야!]
“네. 디에고씨. 잘 지내셨어요?”
[자네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다네.]
말을 들어보면, 예전에 한 마나석 계약 때문에 다크 연합에서 어깨에 힘 좀 넣고 다닌다고 한다.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인가? 자네가 안부 인사를 하려고 전화하지는 않았을 텐데.]
“절 잘 아시네요. 다름이 아니라…….”
꽤 긴 설명이 이어졌고, 그렇게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마리 선배는 신성력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됐습니다. 어떻게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허허. 자네 부탁이니, 내가 힘 좀 써 보겠네. 지금 좌표가 어떻게 되나?]
“네 잠시만요.”
아공간에 GPS를 꺼내 좌표를 불러줬다.
[한 시간 안에 자네를 도와줄 사람이 갈 거네.]
“네. 감사합니다.”
꽤 긴 통화가 끝나자, 마리 선배도 기도를 끝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크 연합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해야 했니?”
“네. 그래야지, 이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그들은 우군이지만, 믿을 수 없는 존재야.”
“하지만, 가장 능력 있는 단체이기도 하죠.”
“그런 능력 있는 단체가 과연 그냥 도와줄까?”
“이번에 다크 연합에서 상급 마나석을 50개 정도 낙찰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개인적으로 거래한 것은 약 20개 정도고요. 그걸로 거래를 해봐야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마리 선배의 이마가 찌푸려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이나마 13기동 타격대가 활동하고, 교황청의 이름이 가장 높아질 수 있는 이유는 마나석이 큰 작용을 했을 거다.
그런 마나석을 사용한다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거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협상은 한가닥합니다.”
“으흠…”
마리 선배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지금까지 내가 그렇게 선배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나 잠깐 생각해봤다.
머릿속으로 여러 일이 지나갔고,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나 같아도 못 믿겠네.’
이제부터라도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심판자와 다크 프리스트들이 온몸에 피를 묻힌 채 다가오고 있었다.
[람이시여. 덕분에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미안한데, 여기 좀 정리할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몬스터의 사체들을 에너지로 변환하겠습니다.]
순간 JK무역회사가 떠올랐다.
“아니 잠깐만. 혹시 여기에 있는 몬스터들을 이 아공간 주머니에 담을 수 있어?”
[가능합니다.]
혹시나 하고 물어본 말이었는데, 긍정적이 답변이 나오자, 아공간 주머니를 땅의 축복에게 건네줬다.
“그래? 그럼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람이시여.]
대답과 동시에 땅이 꿀렁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수백이 넘는 몬스터 사체가 사라졌다.
몬스터들이 아공간 주머니에 담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내외.
땅의 축복의 새로운 능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교황청의 사람들이 도착했다.
“허허. 역시 내가 인정한 자군.”
다크 프리스트의 수장이 다가와 건넨 말에 나는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이했다.
“할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나는 실수한 게 없는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날 바라봤다.
“허허. 우리 교황청의 검께서 무사하시니 이 노인네의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하유신. 넌 대체…”
노인과 내 대화에 마리 선배가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근데 선배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