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_조쉬 히라니(1)
1년 전만 하더라도, 존경에 마지못한 13인의 전설 중 한 명인 조쉬 히라니를 만났다면 설레발부터 쳤을 거다.
즉, 조쉬 히라니가 마족 숭배자와 결탁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그대로 당했을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일본 규슈에서 인도 복장을 한 마물을 봤고, 오늘 또 그들을 보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마족과 연계된 자 또는 마족에게는 특유의 향기가 났다.
‘고약해.’
가이아가 내 첫 입맞춤을 빼앗고, 무언가 능력을 준 건 알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오늘 알게 됐다.
“여기 마이소르 궁전에 오자마자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더군요.”
앞에 쓰러진 안내인의 냄새가 더 강한 향에 덮였다.
주위에서 고약한 향이 풀풀 풍겼고,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조쉬 히라니에게서는 썩은 시체의 향이 맡아졌다.
“우리 안내인이 실수를 했나보군.”
조쉬는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까지 지었고, 난 그런 조쉬의 두 눈을 마주 바라봤다.
“네.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땅의 축복. 내가 신호하면, 세계 대통령과 다른 사람들을 교황청으로 보내줘.’
나는 조쉬와 대화하면서 속으로 땅의 축복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래? 젊은 영웅인 자네의 말대로라면, 이자가 악마의 파수꾼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말해주겠나?”
“당신이 아끼니까요.”
“아껴? 내가? 이자를?”
“네. 소문으로 듣기에 자신에게 거슬리는 존재는 그냥 치운다고 했는데, 이자는 지금까지 멀쩡하군요.”
피식 미소를 지은 조쉬가 말을 이었다.
“그건 너무 억측이군. 설마 오늘 회담에서 우선권을 갖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면 잘못 짚었네. 이자는 나 조쉬 히라니의 충성스러운…”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이자한테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풍긴다고 했습니다.”
냄새. 몇몇 강자만 맡을 수 있다는 그 냄새.
주관적이지만, 강자들에게는 신빙성 있는 말에 조쉬의 표정이 굳었다.
“세계 대통령님. 지금까지의 대화를 모두 전해주십시오.”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한 세계 대통령의 주위로 땅이 솟구쳤다가 가라앉았다.
그러자, 세계 정부에서 나온 인원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하하핫. 내가 하유신 자네를 너무 쉽게 봤군. 듣기에는 무작정 돌진만 하는 무식한 황소라던데, 꼭 그렇지는 않군.”
“인도에서 소는 신성시되니,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때 조쉬의 검지가 날카롭게 변하더니, 안내인의 머리를 꿰뚫었고, 이내 미라가 됐다.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보게 되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렇게 나쁘게 보지 말게. 능력 없는 자는 폐기 처분해야지. 그럼 어디 자네가 세계 대통령을 위해 목숨을 걸만 했는지 두고 볼까?”
조쉬의 말이 끝나자, 사방에 있던 근위병들이 변이를 시작했다.
그동안 나 또한 칠성검을 꺼내 들고는 그대로 조쉬에게 치켜들었다.
유성 찌르기
주위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마물로 변한 호위병들을 지나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조쉬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으려고 했다.
검이 조쉬의 심장을 파고들기 직전, 가만히 있던 조쉬가 히죽 미소를 지었다.
불안감이 몸을 휘감았고, 마지막에 검을 비틀어서 휘둘렀다.
카카캉
칠성검과 조쉬의 손가락이 부딪히며 뒤로 튕겨 났다.
“방심하라고 기다려줬는데, 그걸 막을 줄 몰랐군.”
갑작스럽게 바뀐 검초 때문인지, 조쉬의 손가락을 막아서인지, 오른손이 잠깐 경직됐다.
그렇지만, 칠성검을 다시 움켜쥐자, 떨림이 가라앉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자네의 기운을 먹고 싶지만, 일단 오랜만에 유희도 즐겨야 할 것 같아.”
딱!
조쉬가 손가락을 튕기자, 완벽하게 마물화 된 근위병들이 내게 달려들었다.
몸을 팽이처럼 회전하며 검기를 사방으로 뿜어냈고, 다가오던 마물들이 뒤로 밀려났다.
그렇게 다가오는 마물들을 저지한 후, 이번에는 내가 마물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급하게 상체와 얼굴을 옆으로 비틀었다.
“아쉽네. 머리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을 수 있었는데.”
언제 뻗었는지 조쉬의 손가락 중 하나가 볼에 생채기를 냈다.
수많은 마물 사이에서 조용히 다가오는 조쉬의 손가락은 위험했다.
차라리 일대일로 싸운다면, 어떻게 비벼 볼 만했지만, 이 상태로는 불리할 뿐이었다.
“전설이라던 자가 부하들 틈에 숨어서 기회나 노리다니.”
제발 통하기를 바라고, 외친 도발이었지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런 도발이 나한테 통할 것 같아? 그런 어리석은 놈들과 난 다르지.”
조쉬가 손을 휘젓자, 멈췄던 마물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꽤 넓었던 회의장이 마물들로 인해 꽉 차 보였다.
그렇다고 마물들에게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다.
소리소문 없이 다가오는 조쉬의 손가락이 문제였다.
“오호~ 이제는 잘 피하네?”
길게 늘어난 손가락이 땅에서 솟구친 걸 피하자, 조쉬의 조롱이 들렸다.
그때, 피했던 곳으로 마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내 어깨를 물려고 했다.
왼손을 들어서 마물의 턱을 가격해 냄새나는 입을 다물게 하고, 조쉬를 바라봤다.
그는 이 상황이 재미있는지 그저 웃고만 있었다.
순간 짜증이 치솟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넘실넘실 불타는 화염을 상상하며 칠성검을 휘둘렀다.
칠성검의 검신이 붉게 변하며, 화염의 파도가 앞으로 뿜어지면서 마물을 불태웠다.
“네놈! 신비석을 가지고 있구나!!”
불에 타오르는 마물 사이로 조쉬가 불같이 화를 내며 왕좌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런 조쉬를 향해 미소 지었다.
“이제야 긴장이 되나 봐?”
얼마나 화가 많이 났는지 조쉬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오늘 조쉬와 사생결단을 낼까? 생각했지만, 역시나 내가 불리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무리 화염으로 마물들을 불태웠지만, 죽은 마물은 극히 드물었고, 목숨을 건 무모한 도전은 할 필요가 없었다.
‘여차하면 도망가야겠다.’
마음속으로 땅의 축복에게 준비하라고 할 때였다.
조쉬의 분노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살아서 갈 생각은 버려라!!”
“땅의 축복! 이동!”
흙이 솟구치고 있는데, 조쉬의 손가락이 흙을 파고들었다.
[람이시여. 실패했습니다.]
“응?”
평소와 다르게 흙이 무너져 내렸고, 공간이동은 실패했다.
조쉬가 보였고, 마물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나 조쉬 히라니가 말했지? 이곳이 네 무덤이라고.”
나는 칠성검을 더욱 꽉 움켜쥐며 마른 침을 삼켰다.
***
트롤의 피와 태양꽃의 꽃잎. 그리고 달빛초의 잎사귀 진액을 섞었다.
“이렇게 한 후에 하루 동안 놔두면 트롤의 피가 정제되어 위에 뜨게 돼. 그걸 따로 걸러둔 후에 성력을 집어넣으면 포션 원액이 완성되지. 자 여기서 관건은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일정하게 신성력을 집어넣어야 정제된 트롤의 피의 순도가 올라가. 자 이제 너희들 차례야.”
“네. 성녀님.”
앤은 크게 대답한 후, 거침없이 약품들을 들어 올렸다.
반대로 옆에 있는 얀은 침을 삼키고, 날 바라봤다.
“얀. 왜 하지 않지?”
“이번에도 실패할까봐 그렇습니다.”
“그렇게 부담 가지지마. 지금은 수업일 뿐이야.”
“…네.”
누가 봐도 진지한 얀이 포션을 더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계량 따위는 하지 않고 오직 감으로 하고있는 앤의 포션 원액이 더 등급이 높았다.
“얀. 손에 신성력을 일정하게 유지해.”
“넵.”
그렇게 스텔라 남매가 포션을 만드는 모습을 본 후, 뒤를 바라봤다.
스텔라 남매 외에도 서른 명이 넘는 성자, 성녀 후보자들이 포션을 만들고 있었다.
‘트롤의 피 정화를 레이지에게 맡겨 볼까?’
지금까지 많은 정화 능력자에게 트롤의 피를 맡겼지만,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그렇지만, 성수까지 만드는 레이지라면……
“나중에 한 번 부탁해 봐야겠어.”
홀로 생각을 정리한 후에 다른 후보자들이 실수하지 않나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포션 제조 수업 중에는 절대 열려서는 안 되는 교실의 문이 열렸다.
“성녀님!”
“루카스. 수업 중이야.”
“지금 세계 대통령이 교황청으로 왔습니다.”
“응? 그가 왜?”
정제 작업은 집중력이 생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후보자들의 집중력이 깨지고 있었다.
“지금 너희들 앞에 놓여 있는 재료들의 대부분은 지구에서 구하기 힘든 것들이다. 순간의 실수가 앞에 있는 그 귀중한 재료를 쓰레기로 만들 수 있어.”
후보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는 다시 포션 원액을 만드는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시 집중하는 모습을 훑어 보고는 루카스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게 무슨 말이지? 세계 대통령이 왜 여기에 있어?”
“세계 대통령의 말대로는 하유신이 본인을 이곳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응?”
세계 대통령과 유신이 인도에서 만났다는 걸 연락을 통해 들었다.
공간이동이 아니라면, 세계 대통령은 지금 인도에서 조쉬 히라니와 회담을 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모를 테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유신이 비싼 값을 치루면, 공간이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저도 자세한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금 어디 있지?”
“응접실에 있습니다.”
수업도 수업이지만, 일단 세계 대통령을 만나 봐야 했다.
“어린아이들에다가 세계 대통령까지 이곳으로 보내다니, 대체 하유신 무슨 생각인 거야.”
하유신의 행동에 두통이 쏟아졌지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 대통령을 만나야 했기에 응접실로 향했다.
그렇게 대면하게 된 세계 대통령은 평소와 다르게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녀님.”
“어떻게 된 일이죠?”
“그…흙이 솟구치고, 가라앉으니 여기 있었습니다.”
확실히 유신이 이곳으로 보낸 게 맞았다.
땅의 기운으로 공간이동이 가능한 사람은 자신이 알기로는 하유신이 유일했다.
“그러니까, 왜 당신이 여기 있냐는 겁니까?”
“어……”
토마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세계 대통령이나 되어서 현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그를 보니 말이 거칠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계 대통령 토마스 피어스. 당신 간댕이가 이것 밖에 안돼? 제대로 설명하라고. 왜 유신은 이 자리에 없고, 당신과 세계 정부 인원들만 있는 거야! 빨리 여기 오기 전의 모든 상황을 설명해!”
아무리 전설이라고 하지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여자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도 정신을 놓고 있다면, 지금까지의 정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죄송합니다. 성녀님. 제가 못 볼 꼴을 보였군요.”
“이제야 대화가 통하는군. 그래.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토마스는 길지도 짧지도 않게 핵심만 짚어서 말해줬다.
“그러니까 유신이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고?”
“네. 그렇습니다.”
마족의 냄새를 맡게 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수도 없이 많은 마족과 마물을 죽였을 때다.
두 번째는 전설들의 경지가 됐을 때나 가능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마족들을 많이 만나봐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가이아와의 대면을 통해서 가능했다.
“최악의 상황은 세 번째인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에는 그만큼 유신이 강해진 것이기에 조금이지만, 걱정을 덜 수 있다.
그런데, 세 번째 상황이라면… 유신의 목숨이 위험했다.
“루카스. 지금 당장 인도 마이소르로 갈 수 있는 공간이동 게이트 활성화시키고, 심판자들에게 출동 대기 시켜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루카스는 눈치로 하유신이 위험한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밖으로 향하며, 휴대전화를 들어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세계 대통령님은 일단 다른 인원들과 함께 여기서 쉬고 계십시오.”
“성녀님.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모든 게 정리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세계 대통령의 궁금증을 뒤로하고, 응접실을 나와,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자신의 직책과는 어울리지 않게 간소화된 방 한쪽에는 꽤 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걸 여는 날이 올 줄이야.”
상자를 열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성력이 필요하고, 지체없이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열린 상자에는 전투 슈트와 매듭으로 엮어진 허리띠가 있었다.
“전쟁의 시작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