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_인도의 카스트 제도(2)
“세계 대통령님 음료 한 잔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네. 그럼 편안한 비행되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주세요.”
“그렇게 하지요.”
미소 지으며 말하는 승무원에게 나 또한 미소를 지어줬다.
승무원이 떠나자, 미소를 감추고, 표정을 굳혔다.
지금은 한시가 바쁜 시기였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간이동 게이트를 대신에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향하는 거였다.
“세계 대통령님. 교황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요? 서둘러 바꿔주세요.”
“그게 일방적인 통보만 왔습니다.”
교황청이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에 화도 마음대로 내지 못하자,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고 따질 수도 없었다.
지금 이 일이 잘못되면,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권력 기반을 잃을 상황이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가장 유명한 검이 먼저 가서 기다리겠답니다.”
“가장 유명한 검이요?”
교황청에서 말하는 가장 유명한 검은 하유신이고, 기다리겠다는 건 인도에 먼저 가서 하유신이 자신을 배웅해주겠다는 말이었다.
즉, 요청했던 경호에 과한 인력을 보내주겠다는 소리였다.
“저 그런데, 그 후에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초보자는 들고 있는 검이 성검이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요.”
“알겠습니다.”
비서에게 미소를 지어줬지만, 비서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자신의 옆에서 꽤 오랜 시간 보좌했던 비서였다.
그도 분명 교황청이 하는 말을 알 것이다.
교황청에서 경고를 보냈다는 걸.
“이건 교황청이 세계 대통령님을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그래도 교황청에서 하유신을 보내줬다는 건, 인도와의 일을 잘 마무리하기를 바라는 거니까요.”
“그렇지만.”
“그만 하세요. 아시다시피 지금 인도의 독립으로 인해, 몇몇 국가에서 자신들도 독립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 인도의 독립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비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평소라면, 그런 비서를 한 번 더 다독였겠지만, 지금은 다른 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
‘조쉬 히라니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막아야 해.’
***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인도의 한 야산에 푸른 게이트가 열렸다.
“어우~ 어지러워. 게이트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되네…”
마나석 좀 아끼겠다고, 게이트를 탄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머리를 부여잡으며, 잠깐 시간을 보내자, 울렁증이 가셨다.
GPS를 확인해보니, 인도 방갈로르 국내선 근처의 야산이었다.
“국내선 공항인데, 이곳으로 토마스가 온다는 거지?”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여유가 있었다.
천천히 공항으로 향하려는데, 귓가에 급하게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보니, 어린 소년과 그보다 더 어린 소녀가 도망치듯 뛰고 있었다.
그 뒤로는 젊은 장정들이 소년과 소녀를 뒤쫓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년과 소녀는 장정들에게 붙잡혔다.
“언제까지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았냐?”
“한 번만 살려주세요. 제발 한 번만요.”
“이렇게 잡힐 거면서 도망은 왜 친 거냐?”
남성이 단검을 꺼내서는 소년을 위협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새나라의 새싹이 될 어린아이들에게 흉기를 들이미는 어른이 착한 놈은 아닐 것이다.
주먹을 말아쥔 후 앞으로 뛰어나갔다.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쿠에엑~”
방금 내게 얻어맞은 남성은 틀니를 하기 전까지 죽만 먹어야 할 것이다.
“당신 누구야?”
그래도 멍청한 놈들은 아닌지 한 명이 당하자마자, 모두가 단검을 꺼내서 내게 겨눴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왜 이 아이들을 괴롭히는 거지?”
“타지인은 알 필요 없어!”
그들이 한 번에 내게 달려들었다.
이런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포스를 사용할 필요까지도 없었다.
그저 상체를 몇 번 비틀어서 공격을 회피한 후, 주먹을 내지르고, 발을 뻗었다.
“쿠에엑!”
내 공격에 두들겨 맞은 놈들이 오크처럼 괴성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제압을 끝낸 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소년은 소녀가 자신의 동생인지, 자신의 뒤로 소녀를 숨겼다.
“그렇게 겁낼 필요 없단다. 난 너희를 해치지 않아.”
아무리 내가 좋은 말로 달래도, 아이들의 경계심은 쉽게 흩어지지 않았다.
물론 방금까지 저 뒤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할 뻔한 걸 알고 있었다.
아이들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빈 양손을 쫙 펼쳤다.
“봐봐. 애들아. 손에 아무것도 없지?”
빈 손바닥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며, 양손을 열심히 교차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그러면서 조금씩 빠르게 움직이면서 아공간에 있는 초코바 하나를 꺼냈다.
“짜잔!”
트릭과 약간의 손재주였지만, 처음 보는 마술에 아이들은 신기한지 두 눈을 크게 떴다.
“어? 그런데 너희가 둘이네. 잠깐만.”
초코바를 양손으로 감싸 쥔 후, 손에다가 바람을 후~하고 불었다.
그런 다음, 손을 펼쳤지만, 초코바는 하나였다.
“이런, 내가 힘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은데, 너희가 좀 도와줄래?”
아이들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초코바를 감싸 쥐고는 손바닥에다가 몰래 초코바를 하나 더 만들었다.
그다음, 바람을 불고, 아이들에게 감싼 쥔 손을 내밀었다.
“힘을 빌려줄래?”
“…어…어떻게요?”
“여기에 바람을 불어 넣어주면 돼.”
소년은 미심쩍어하더니, 이내 ‘후’하고 바람을 불었다.
그리고 난 손바닥을 펼쳤고, 두 개가 된 초코바를 보여줬다.
“짜짠~!!”
“우와~”
소년의 뒤에 숨어있던 소녀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초코바를 소년과 소녀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아이들은 처음에 받지 않았지만, 배가 고팠는지 이내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초코바를 다 먹은 아이들은 언제 내게 경계심을 드러냈는지, 더 달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더 먹고 싶어?”
아이들은 고개를 끄떡였다.
역시 단음식은 아이들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더 줄 수 있어. 대신에 왜 쫓겼는지 말해 줄 수 있어?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너희를 도와주고 싶은 거지.”
머뭇거리던 소년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떡이며 입을 열었다.
“저희도 몰라요. 그저 동생이랑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눈을 뜨니까 이상한 동굴에 갇혀 있었어요.”
“그래? 근데 어떻게 탈출한 거야?”
내 질문이 잘못된던 걸까?
갑자기 소년의 눈에서 다시 경계심이 피어올랐다.
“아니. 의심하는 게 아니야. 보통 그런 곳은 경계가 삼엄한데, 도망친 게 대단해서 그래.”
“…동굴에 있다가 어떤 차에 저희를 태울 때, 저 사람들이 잠깐 한 눈 팔았거든요. 그때 몰래 도망쳤어요. 얼마 가지 않아서 잡혔지만요.”
“그래? 그럼 그곳이 어디인지 알려줄 수 있겠니?”
심경 변화가 다채로운 아이였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다른 아이들도 갇혀 있었을 거 아니야. 그래서 그 아이들도 구해야 하지 않겠니?”
“저쪽으로 조금만 가면 있어요. 얼마 도망치지 못하고 잡혔거든요.”
“그래?”
소년이 말했던 곳으로 가기 전에 기절해 있는 장정들의 수혈을 짚었다.
“너희는 혹시 모르니까 저기에 숨어있을래?”
내가 가리킨 곳은 큰 바위가 있었고, 거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어? 방금까지 없었는데.”
“급하게 도망치느라 못 봤을 거야. 아까부터 있었어.”
사실은 몰래 땅의 축복을 시켜서 아이들이 숨을 만한 곳을 마련해 둔 거였다.
나는 아공간을 열어서 초코바와 물을 꺼내, 소년에게 넘겨줬다.
“금방 갔다 올 거기는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것들 먹고 있어.”
“네. 감사합니다.”
소년은 내가 준 것들을 받아서는 소녀와 함께 작은 동굴로 들어갔다.
아이들을 숨기고 소년이 말했던 곳을 향해 움직일 때였다.
자신들의 동료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자, 총을 든 장정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들도 날 발견했는지 내게 총을 겨눴다.
“누구냐?”
“아.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여행객인가?”
날 바라본 그들은 자기들끼리 쑥떡이다가 말을 끝내고는 총으로 날 위협하면 말했다.
“혹시, 여기로 지나오다가 누구 본 적이 있나?”
“아. 어떤 어른들이 애들을 괴롭히기에 흠씬 두들겨 패주고 가는 길입니다.”
“뭐?”
“당신들도 한패 같군요.”
내가 주먹을 말아쥐며 공격할 준비를 하자, 그들은 그 어떤 신호도 없이 총을 발사했다.
팅팅팅팅팅
총이라는 무기가 아무리 살상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호신강기를 뚫진 못했다.
그렇게 모든 총알을 튕겨낸 후, 그들에게 다가간 후, 권각을 움직였다.
모두 한 방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렇게 정리가 끝내고, 그들의 수혈까지 짚고는 더욱 빠르게 목표 지점으로 향했다.
“누구냐!”
역시나 총소리가 문제였다.
놈들은 다양한 화기로 무장한 채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말없이 상대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현대 화기를 든 악당들 사이로 덥수룩한 수염에 시가를 물고 있는 남성이 앞으로 나섰다.
손에 창을 쥔 걸 보아하니,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길래 우리의 일을 방해하지?”
“어린아이들을 납치했으니까.”
“납치? 크하하하하”
남성은 갑자기 허리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뭐가 웃기지?”
“오해가 있었군. 뭐 우리가 착한 놈들은 아니지만, 여기에 있는 아이들 모두 납치하지 않았어.”
거짓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들이 우세하다고 착각하는 상황에서?
“납치가 아니라고?”
“그래. 이 아이들 모두 부모가 우리에게 팔았지.”
자식을 팔았다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방인이라서 잘 모르나 본데,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라는 계급이 있지.”
“그거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사라지긴 뭘 사라져? 더욱 활성화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최하층의 수드라야. 인도에서 수드라는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거래도 가능하지.”
능력의 시대인 지금에도 악습이 남아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걸 당연시하는 저들의 행태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본인이 영웅이라도 된 줄 알았어? 우리는 합법적으로 움직이는 것뿐이야. 뭐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줄 생각은 없어. 여기는 사람 한 명 다니지 않는 조용한 숲속이지. 본인의 잘못된 선택을 지옥에서 후회하라고.”
남성이 뒤로 물러나자, 현대 화기로 무장한 이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을 쭉 둘러봤다.
왜? 가이아는 이런 자들까지 사랑하는 것일까?
마족과 마족 숭배자들이 지구로 침입한 바이러스라면, 이들은 지구가 키운 암세포로 느껴졌다.
“자네는 영웅이 될 수 없어. 분수도 모르는 젊은이.”
남성의 말이 끝나자, 발포가 시작됐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호신강기만 일으켰다.
역시나 화기는 내 호신강기에 막힐 뿐이었다.
그렇게 내가 티끌 하나 다치지 않자, 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대체 정체가 뭐야?”
“원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지. 난 말이야. 사람들이 이렇게 부르더라. 젊은 영웅이자, 교황청의 검이라고.”
내 말에 남성의 입이 벌어지더니 시가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부들부들 떠는 손을 들어 날 가리켰다.
“하…유신?”
“그걸 이제 알았어? 악마보다 못난 놈들아?”
이제는 내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어진 칠성검을 꺼내 들었다.
“신분이라는 이름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너희들이나 분수를 알아. 지금부터 내가 가이아의 이름으로 지구의 암세포를 처치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