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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22화 (222/300)

222화_천지의 세례(2)

강한 인력으로 인해 몸이 이리저리 휘둘렸다.

그때 귓가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신규 방문자 확인 중… [노오력가] 확인 완료. 가이아의 관심을 받는 자. 환영합니다. 통과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자, 내가 이상한 방에 누워 있었다.

방은 어둡지도 그렇다고 밝지도 않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방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벽이 없네?”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지만, 뻥 뚫린 공간일 뿐이었다.

예전 스마일을 만났던 내면 같은 곳이었지만,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이곳에서는 엄마의 따뜻한 품 같은 포근함과 함께 신성함이 느껴졌다.

“아무도 없으세요? 여보세요~!”

크게 외쳤지만, 소리에 울림도 없었다.

“저기요. 전 천지의 세례를 받기로 했는데, 여기 어딘가요? 그냥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천지의 세례인가요? 여보세요? 누가 좀 알려주세요!”

계속 외쳤지만, 대꾸는 들려오지 않았다.

예전 내면에 처음 들어갔을 때처럼 돌아다니면서 확인해보려고 발을 움직였다.

분명 걷고 있다는 느낌이 있지만, 제자리 같았다.

“어?”

그러다가 깨달았다.

분명 이곳에 오기 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었는데, 지금은 하얀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예전 그리스 시대 전통 옷 같네.”

이 수상한 공간에 대해서 골몰히 생각했다.

이곳이 정말 내면세계라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였다.

“나와라 칠성검!”

손은 역시나 허전했고, 아무도 없는데,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예전에는 당당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부끄러움을 알게 됐다.

“초심. 초심을 유지해야 해. 그래! 상상력과 간절함이 부족했을 거야.”

다시 한번 집중해서, 칠성검을 소환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면 세계가 아니라는 건가? 그러면 여기는 대체 어디지?”

그렇게 의문에 빠져 있을 때였다.

전방에서 신성하게 느껴지던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이 집결된 것 같은 여자가 나타났다.

얼굴은 그냥 예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고, 머리는 금발인지, 흑발인지도 모르는 그 여성은 내게 씽긋 미소를 지었다.

“아이야. 오래 기다렸느냐?”

“와… 예쁘다.”

지금까지 많은 미인을 봤다.

그런데, 앞에 있는 여인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 예쁘다는 표현이 입밖으로 나오게 했다.

미인의 얼굴을 두 눈에 담아 기억하려고 할 때였다.

“응?”

아무리 생각해도 그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빤히 보고 있어서 이목구비가 확실히 보였지만,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려고 하니, 그저 하얀 백지가 될 뿐이었다.

이게 바로 미인계를 통한 환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계심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단다.”

“누구십니까?”

“나는 너희 인간들이 가이아라고 부르는 존재란다.”

“가이아? 설마…지구의 주신 가이아님이세요?”

머리로는 의심스러운 상황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거기다가 가이아가 미소를 짓자, 머릿속의 의심도 눈 녹듯 사라졌다.

“그래 맞단다.”

“여신님이셨군요.”

내가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가이아 여신을 바라봤고, 가이아는 내게 한 발 더 다가오며 말했다.

“네 눈에는 내가 여신으로 보이나 보구나. 그런데 말이다. 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인단다.”

“네?”

“어떤 이에게는 내가 남신으로, 다른 이에게는 여신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나는 너희들이 보고 싶은 데로 보이는 존재란다.”

“아…!”

그래서 지금까지 가이아의 동상도 없었고, 여신이네, 남신이네 말도 없었구나.

스스로 이 상황을 납득하고, 고개를 끄떡이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그럼 전 죽은 건가요? 천지의 세례를 실패하면 죽지는 않고, 백치만 된다고 했는데…”

가이아는 이제 내 옆으로 와서 내 손을 잡고, 앞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전혀 그렇지 않단다. 그러니 일단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단다.”

“네.”

대답이 끝나자마자 공간이 바뀌었다.

그곳은 천지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천지는 내가 있는 곳으로 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이란다. 너는 오늘 그 문을 열고 이곳으로 왔고.”

“천지의 세례가 그 문을 여는 방법이군요.”

“천지의 세례는 백각과 땅의 축복이 말한 그대로 삿된 기운을 없애는 게 맞단다. 단지, 선택된 자가 이곳으로 오게 되면, 문이 열리는 거란다.”

선택된 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내가 특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가이아의 말을 들으니 괜시리 기쁜 마음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전 지금까지 그저 지나가는 인물인 줄 알았는데, 가이아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네요.”

“나는 모든 이를 사랑하지. 그게 신이란다.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야. 넌 이곳을 온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서 들어온 것이니까.”

“네? 개척이요?”

“노력으로 이곳까지 도달했다는 거지.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단다. 그래. 평범함에서 벗어나기 힘든 운명을 개척한 아이가 바로 너 하유신이란다.”

지금까지의 고생과 노력들이 허무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 도움이 되었고, 그로 인해 오늘 가이아도 만났다.

“그래서 그러는데,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단다.”

“부탁이요?”

다른 누구도 아닌 신이 내게 부탁하겠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금 지구는 위기에 처해 있단다.”

“위기요?”

“그래. 일루시안에서 13기동 타격대 아이들이 마족들을 처치하고 있어서 차원의 틈이 여유가 생겨 방비는 확실히 하였지만, 지구에 남아 있는 마족들이 문제란다. 그들이 새로운 마왕을 부르려고 해. 그들을 막아주겠니?”

간단한 부탁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스케일이 컸다.

그뿐만 아니라, 마족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에 지금까지의 싸움이 떠올랐다.

쉽지 않았고, 죽을 뻔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즉, 자신감이 사라졌다.

“그걸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마리 선배나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을 지구로 다시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13기동 타격대는 일루시안에서의 임무가 더 중요하단다. 그리고 마리 그 아이에게는 너무 많은 짐을 떠안겼어.”

“그렇다면…백각님은요? 백각님의 강함을 느껴보니 상상 이상이던데, 마왕이 나타나도 백각님이면 가능할 것 같아요.”

백각을 거론하자, 가이아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천지였던 곳은 이내, 은하수가 있는 우주 공간으로 바뀌었다.

“여기가 바로 차원의 틈이란다. 그리고 저기와 저기 그리고 저기를 보겠니?”

가이아가 가리킨 곳에는 거대한 용과 몸이 불길에 휩싸인 주작 그리고 거북이의 몸에 뱀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현무가 보였다.

그들 모두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어서 가리키기 전에는 그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청룡, 주작, 현무로 이들이 차원의 틈을 통해 다가오는 마족들을 막고 있단다. 그리고 저기.”

마지막으로 가이아가 가리키는 곳에는 빛이 번쩍였다.

포스를 집중해서 봐도 그저 번쩍이는 빛만 보일 뿐이었다.

“죄송한데, 잘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가이아가 그곳을 확대해서 보여줬다.

그곳은 수천, 수만이 넘어가는 도깨비들이 마물들과 싸우고 있었다.

“백각은 이제 현계를 떠나서 저곳을 수호해야 한단다. 백각은 기억 못 하겠지만, 크게 다친 적이 있어서 현계에서 치료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제 사신수로서 본연의 업무를 할 때지.”

공간은 다시 바뀌어서 처음 내가 왔던 곳으로 바뀌었다.

“아이야. 너에게 큰 짐이 될 수도 있지만, 내 부탁을 들어주겠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이루는 진실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생겨났다.

이 정도만 되어도 머리가 복잡한데, 가이아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가이아님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이니?”

“왜? 많은 사람 중 저인가요? 지금 지구에는 전설들도 있지 않습니까?”

나를 비하하려는 목적은 아니었지만, 무력적으로 따져보면, 나보다 강한 사람이 열 손가락으로 다 세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물론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이야. 너는 운명을 개척하고, 비트는 존재란다. 그뿐이면, 내가 너에게 이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 거란다. 거기에 너는 다른 사람들의 운명도 바꾸고 있단다.”

“다른 사람들의 운명이요?”

“그래. 잘 보렴.”

공간이 막시우스와 데리우스를 비췄다.

“원래 다리우스는 널 만나지 않았다면, 부두교로 갈 일이 없었지. 그리고 네가 가게 되어서 죽을 운명이었던 막시우스가 살아났단다. 그뿐이니? 데리우스는 원래 부활하지 못했을 거란다.”

이번에는 1리터짜리 물에다가 정화를 쏟아붓고 있는 레이지의 모습이 비췄다.

“레이지 쉐도우는 원래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을 거란다. 그런데, 네 덕분에 새로운 성녀가 탄생하게 되었지.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네가 바꿨지.”

영화관의 영상기가 돌아가듯 여러 사람이 비췄다.

그곳에는 리수진, 리진수 남매와 북한 사람들, 노사의 막내제자 리우, 친구 신평과 4기동대의 용호와 거인들, 러시아의 얼음술사까지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대부분 죽었을 운명이었단다. 그걸 바꾼 게 너고, 이제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니?”

호기롭게 하겠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깊게 생각해야 했다.

얼마나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가이아는 말없이 기다려줬다.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나자, 가이아의 두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말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가이아께서 주신 [노오력가]라는 능력에 맞게 노오력 해보겠습니다.”

가이아는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췄다.

아주 짧은 입맞춤이 끝나고, 가이아는 아찔할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내 선물이란다. 운명을 개척하는 아이. 내가 유심히 바라보는 아이. 하유신 너에 앞날에 언제나 축복만 가득하길 바란다.”

말이 끝나자, 다시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간에서 벗어나면서 난 오른손으로 내 입술을 만지며 생각했다.

‘첫 뽀뽀였는데…’

***

천지의 세례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보다 천지의 세례가 길다고 느끼고 있을 때, 불현듯 모든 것이 떠올랐다.

“나는 백각이 아니라, 백호였구나. 이제 때가 되었어.”

옆에 있던 땅의 축복이 자신의 혼잣말에 의문을 표했지만, 지금은 머리가 복잡했다.

그때 천지의 중심에서 유신이 튕겨지듯 나왔다.

유신은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며, 자신의 앞에 착지했다.

“천지의 세례를 받고, 하유신 복귀했습니다. 이제 절 믿어주시는 거죠?”

믿고 말고가 필요 없었다.

나의 주인이신 가이아께서 하유신과 있었던 모든 정보를 줬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도 알려줬다.

“수고 많았네.”

“어? 이제 절 믿어주시는 건가요?”

“그래. 믿을 수밖에 없지. 운명을 개척하는 자.”

유신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찌 보면, 자신의 운명도 하유신을 만난 후 약간이지만 변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운명을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운명을 거스를 필요도 없고,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명이 있었다.

“내가 오해했군. 그래서 그러는데, 내가 선물을 주려고 하네.”

선물이라는 말에 유신이 자신의 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자네의 칠성검을 강화해 주려고 하네.”

“아! 칠성검이요. 잠시만요. 땅의 축복. 칠성검 좀.”

땅의 축복이 칠성검을 내게 건네줬다.

“자네 신비석을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네.”

“어? 어떻게 아셨어요?”

“가이아께서 내게 알려주셨지. 그걸 줄 수 있나? 신비석을 강화하는 데 필요할 것 같군.”

“그래요?!”

유신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더니, 이런저런 모든 신비석을 꺼냈다.

칠성검을 힘으로 띄운 후, 불, 뇌전, 바람, 독, 물, 얼음의 신비석을 칠성검에 박아넣었다.

이제 거의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백호로 변한 다음, 앞발톱 중 가장 날카롭고 단단한 발톱을 뽑아서 칠성검에 올려놨다.

번쩍

칠성검이 잠깐 황금빛으로 빛나더니, 이내 다시 평범하게 변했다.

순식간에 칠성검의 강화를 끝냈다.

유신은 칠성검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내 몸이 떠오르더니, 아직 빛을 내고있는 천지를 향해 움직였다.

“나는 이만 가이아께 돌아가겠네. 그러니, 지구를 잘 부탁하네.”

그렇게 차원의 틈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유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뀐 칠성검의 사용 설명서는 없습니까?”

그냥 애써 무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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