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_규슈 지방 정화(2)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떴을 때부터 미친 의사, 이시이 히로의 비서였다.
처음에는 아무 의문 없이 이시이의 말을 들었고, 그를 도왔다.
그렇지만, 점점 이 실험과 수술들이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다.
“주인님. 이런 어린아이까지 개조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응?”
처음 낸 의견이었고, 이시이는 날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사오. 지금 내게 네 의견을 내는 것이냐?”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 아이가 불쌍해서 그렇습니다.”
“으흠…신기하군. 철저하게 복종하도록 만들었는데, 이렇게 의견도 낼 수 있을 줄이야.”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실패작이라면, 폐기되는 것은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가 버릇없이 나댄 것 같습니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오호~ 생존 본능까지 있다라…”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겁이 났다.
이제 다른 실패작들처럼 산 채로 해부된 후, 죽음을 맞이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시이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좋다. 아사오 네가 원한다면, 이 소녀를 가만히 두겠다. 대신에 네가 이 소녀 대신에 수술을 받을 것이냐?”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 실험은 일본의 목이 긴 요괴인 로쿠로쿠로를 만드는 실험이었다.
지금까지 이 실험은 실패했었다.
“물론 아사오. 너도 알다시피 지금까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에는 고작 10cm만 늘릴 거야. 적응되면 재수술로 목을 더 늘릴 거지 마.”
지금까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천천히 목을 늘리기로 했다.
목이라는 부분은 연약해서, 실험을 받은 인간들은 대부분 하반신 마비나, 경추 골절로 사망했기에 그런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대신 하겠습니다.”
“결정도 내릴 줄 알다니…좋다. 이 소녀는 이번 실험에서 빼도록 하겠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소녀 대신에 실험을 받게 되었고, 목이 1m가 될 때까지 3개월에 한 번씩 수술을 받았다.
“그 후에는 제가 이시이 히로에게 눈 밖에 날 때마다 한 번씩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우리가 그걸 어떻게 믿죠?”
따져보면 맞는 말이었다.
갑자기 나타나서 과거 이야기를 하는데, 한 번에 믿어 줄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전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모든 게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거랑 우리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함정을 발동 시킨 거랑 무슨 상관이 있죠?”
순간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물론 대답하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로 거짓말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듣겠습니까?”
유신은 고개를 끄떡였고, 앞에 있던 방패를 든 거인이 창을 거꾸로 잡고는 투창 준비를 했다.
“제가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함정을 해제만 했다면, 시간이 짧습니다. 물론, 가만히 둔다고 해도 순식간에 해결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전 여기 오기 전에 이시이에게 명령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끄라고요. 그래서 함정을 발동시키고, 대화한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함정을 빠져나오는 것보다, 당연히 많은 시간을 잡아 둘 수 있으니까요.”
“그 말은 지금 대화를 통해서 시간을 끌었다는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거인들의 무기에서 에너지가 피어올랐다.
이제 저들의 무기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가면, 이 고통스러운 삶은 끝나고, 마지막으로 이시이 히로의 명령까지 완수하게 된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통이 오지 않았다.
눈을 떠서 앞을 바라보니, 하유신이 거인들을 말리고 있었다.
“아사오 마호라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몇 가지 좀 물어보겠습니다. 대답해줄 수 있으실까요?”
지금까지 만났던 인간들과 달랐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 슬퍼하거나, 또는 내게 분노했다.
그런데, 앞에 있는 하유신은 냉정했다.
“제가…아는 거라면 말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우선 지금 이시이는 뭘하고 있습니까?”
“오로치마루에게 독의 기운이 담긴 신비석을 이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겁니까? 그리고 신비석은 무엇입니까?”
“네. 이식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신비석이라는 것은 자연의 특정 기운이 담긴 돌입니다.”
하유신이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이게 그 신비석인가요?”
목을 길게 늘려서 하유신의 손 위를 확인하니, 청적오니와 뇌신풍신을 죽이고 얻은 신비석이 놓여 있었다.
“네. 맞습니다.”
그 후로도 질의응답은 이어졌다.
대부분 이시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곳의 방어와 공격은 어떻게 되는지와 요괴들에 대한 질문이었다.
“당신의 말을 듣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드는군요. 대체 그 많은 실험체는 어디로 가는 겁니다.”
“마신 숭배자들이 데리고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저도 잘 모르고요.”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네.”
“당신은 왜 울고 있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눈물이 납니다.”
“제가 묻는 말은 왜 눈물을 흘리고 있냐는 겁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하유신은 거인들이 자신을 지나쳐서 가려고 하자, 손을 들어서 앞을 막았다.
“왜요?”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라…네 뭔가요?”
“이시이 히로에게 가기 전에 절 죽여주십시오.”
“네?”
***
아사오의 부탁에 내가 머뭇거리자, 프란시스코와 타르가 의문을 표했다.
그래서 사실을 말하자, 그들이 무기를 들었다.
나는 그들을 말렸다.
“내가 직접 할게.”
아사오 마호는 목이 길 뿐이지 몸의 구조는 인간과 다를 게 없었다.
“다음 생애는 행복하게 사세요.”
“감사합니다.”
그녀가 고통을 느끼지 않기 바라며, 우선 수혈을 짚었다.
쓰러진 그녀를 포스로 편안하게 눕힌 다음, 사혈을 짚었다.
아주 잠깐 아사오 마호는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심장이 멈췄다.
숨이 끊긴 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사오가 나왔던 벽을 짚었다.
그러자, 벽이 열리며, 긴 통로가 보였다.
“프란시스코.”
“네. 람이시여.”
“아사오가 그러더군. 이 길을 따라서 쭉 앞으로 가면, 희대의 광인 이시이 히로를 볼 수 있다고.”
“그렇군요.”
“그를 이 지구상에 더 이상 숨 쉬게 만들고 싶지 않아.”
거인들 앞이라서 욕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같은 인간이라는 게 역겨울 정도였다.
“최대한 빨리 길을 뚫어줘.”
“알겠습니다. 람이시여.”
프란시스코가 방패를 앞으로 세웠다.
그런 다음, 방패 위에 창을 안착시킨 후,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던 프란시스코의 몸에 황금의 빛이 뿜어지더니, 금빛 섬광이 되어서는 앞으로 쏘아졌다.
콰앙
순식간에 반대편에 도착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괴상한 모습을 한 요괴들이었다.
“크하하하핫. 이제 내 차례군. 프란시스코. 교대다!”
오른손과 왼손에 각기 쥔 양날 도끼를 부딪히며, 타르가 앞으로 나서자, 프란시스코가 재빨리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럼 사냥을 시작해볼까?”
눈에 광기를 담은 타르가 도끼를 휘두르자, 회색의 부기가 일어났다.
양날 도끼를 가위처럼 앞으로 모으자, 부기가 앞으로 날아가며, 전방의 요괴들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그 상태에서 도끼를 넓게 휘둘렀고, 주위에 있던 요괴들의 몸이 갈라졌다.
“크하하하핫!! 좋구나!”
고블린 떼에 들어간 오우거가 저런 모습일까?
마구잡이로 휘두른 도끼에 요괴들은 제대로 반항하지도 못하고 죽어 나갔다.
그렇게 요괴들을 절반 정도 처치할 때였다.
요괴들 뒤편의 문이 열리며,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아시아인들이 정통 인도 복장을 하고선 나타났다.
“응? 마족 숭배자?”
내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나타나자마자 변이를 일으키더니, 마물이 되어서는 타르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타르의 도끼와 마물의 손이 부딪혔고, 처음으로 도끼가 멈췄다.
“이제야 제대로 할만한 놈들이 나타났군.”
자신의 도끼가 막혔는데도, 타르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부기를 더욱 끌어올리며, 그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수십의 마물과 타르의 격돌이 일어나는 동안, 살아남은 요괴들은 나에게 다가왔다.
슬슬 내가 나설 차례라고 느끼고 칠성검을 빼 들려고 할 때였다.
쾅 쾅 쾅
어느새 프란시스코가 창으로 다가오는 요괴들을 꿰뚫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는 동안 프란시스코는 모두 요괴들을 사살했고, 타르는 마지막 마물의 머리에 도끼를 때려 박았다.
“크하하핫! 이제부터 람을 계속 따라다녀야겠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전투가 가득하다니 말입니다.”
“매번 싸우기만 하는 건 아…냐.”
말을 내뱉고 보니, 내 인생이 언제나 전투로 점철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정말 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서, 애써 무시하고 길을 나서려고 할 때였다.
“타르! 피햇!!”
마물들이 나왔던 곳에서 거대한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방심하고 있던 타르가 내 말에 급하게 도끼를 엑스자로 교차해서는 불꽃을 막았지만, 뒤로 날아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타르. 괜찮아?”
벽에 부딪힌 타르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크하하하핫! 괜찮습니다. 그런데, 옷이 불에 타 버렸군요.”
타르는 거추장스러운 상의를 찢었다.
그러자, 온몸을 빼곡하게 도배한 흉터가 그의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사이, 입구를 통해서 꼬리 아홉 개 달린 거대 구미호가 나타났다.
“저 구미호는 이 타르가 맡겠습니다!”
도끼를 부딪히며, 구미호에게 타르가 달려들 때였다.
천장에서 철근 두께의 거미줄이 타르에게 쏘아졌다.
다행히 타르는 눈치채고 도끼로 거미줄을 막은 다음, 다른 손에 들린 도끼로 거미줄을 베어내기 위해 휘둘렀다.
거미줄의 끈끈함을 간과하고 말았다.
두 개의 양날 도끼 모두 거미줄에 붙들리고 말았다.
“내 무기가 그렇게 탐나면 둘 다 가져라!”
타르는 두 개의 양날 도끼를 우귀에게 집어던지고는 그대로 구미호에게 달려들었다.
구미호는 다가오는 타르에게 불을 뿜어냈지만, 타르는 화상의 고통을 무시하고, 그대로 구미호의 입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깨애앵!”
입이 돌아간 구미호를 향해, 타르의 무차별 주먹세례가 쏟아졌다.
제대로 반항하지도 못하고 맞고 있던 구미호를 구하기 위해 우귀가 거미줄을 발사할 때였다.
내 옆에 있던 프란시스코가 방패로 거미줄을 막았다.
“크아아아합!!”
프란시스코가 있는 힘껏 기합을 내지르더니, 방패에 붙은 거미줄을 한 손으로 쥐고는 그대로 우귀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쿠우웅
거대한 소리와 함께 거인들만큼 큰 우귀가 바닥에 거꾸로 떨어졌다.
프란시스코는 그대로 뛰어올라서는 창으로 거미의 몸통과 함께 바닥을 꿰뚫었다.
창이 박히고도 거미는 죽지 않았고, 뒤집힌 채 8개의 발을 버둥거렸다.
“나는 프란시스코. 람의 방패이다.”
말을 끝내자마자 방패로 우귀의 소머리를 찍어서, 터트렸다.
그렇게 잠깐 프란시스코가 우귀를 처치하는 모습을 보는 사이, 타르가 양손에 구미호의 피를 묻히고는 다가왔다.
“람이시여. 정리가 끝났습니다.”
이들이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특히, 일반 몬스터를 상대할 때의 이들의 전투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저번에 대련할 때보다 더 강해졌네요?”
“크하하하핫. 그때 그 대련 이후 많은 걸 배웠습니다.”
“하하하하. 그래요? 그럼 종종 대련하는 것도 좋겠네요.”
“영광입니다!”
타르의 열정 넘치는 눈빛과 프란시스코의 기대감 어린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는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언제까지 람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욱 정진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쿠르르르릉
거대 공동에 지진이 일어나더니, 우리 앞에 초록색으로 빛이 나는 뿔을 이마에 단 거대 뱀, 오로치마루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