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_규슈 지방 정화(1)
최대한 빨리 백각이 맡긴 일을 처리하고, 물의 정수를 받은 후, 교황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욕심 때문에 일을 맡았지만, 마족 숭배자들이 어딘가에 더 숨어있을 수도 있었다.
“위성전화라도 되면 어떻게 연락이라도 한 번 해보겠는데…”
이상하게 규슈 지방에 들어온 후, 위성 전화가 먹통이 되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스스로 위안하고 있을 때였다.
[람이시여. 찾았습니다.]
“그래? 그럼 바로 이동시켜줘.”
[그게 람이시여. 꽤 강한 힘이 여럿 몰려 있습니다.]
“여럿이라고?”
[네. 총 세 개체로 이들이 힘을 합치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흠…그래?”
갑자기 승부욕이 자극되면서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상호협의 하에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대련이 아니었다
“지금 프란시스코와 타르 그리고 카마엘을 여기로 데려올 수 있어?”
[네.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람이시여. 상급 마나석 6개만 주시면 됩니다.]
아무렇지 않게 상급 마나석을 요구하는 땅의 축복이 처음으로 밉상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안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아공간에서 상급 마나석을 꺼내 건네며, 전부터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근데 말이야. 네가 아람도 아니고, 나한테 마나석을 뻥튀기로 받는 거 아니지?”
[뻥튀기가 무엇입니까?]
말을 뱉어내고는 미안한 감정도 함께 솟구쳐서 일단 말을 돌렸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잘 갔다 와.”
[네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내가 의심한 것일 거다.
땅의 축복은 극악의 효율을 자랑한다고 스스로가 말했다.
그런데, 텔레포트와 탐색에 같은 분량의 마나석이 필요하다는 게 조금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의심하지 말자. 한 번 의심을 시작하면 끝이 없어.’
자기반성을 하고 있을 때, 땅이 솟구쳤다.
“람을 뵙습니다.” X 3
거인 프란시스코와 타르 그리고 카마엘이 나타났다.
“잘들 지냈어?”
내 물음에 프란시스코가 앞장서서 대답했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오늘 너희를 여기에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위험한 부탁을 하려고 할 때였다.
가만히 있던 카마엘이 날개를 씰룩이며, 다급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람이시여.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응? 카마엘. 부탁이라니 뭔데?”
“지금 제가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여기로 불려왔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 이런 부탁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생각해보니, 이들의 의사를 구하지도 않고, 이곳으로 불러모았다.
아무리 람이라는 신분으로 거인들을 다스리고 있다지만, 약간은 독불장군 같은 면모를 보인 것 같아서 미안했다.
“죄송하기는 무슨. 내가 미안하지. 땅의 축복. 카마엘은 다시 돌려보내줘.”
“감사합니다. 람이시여.”
[상급 마나석이 2개 필요합니다.]
중급과 하급은 많이 남아 있지만, 이제 상급 마나석은 채 30개가 남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아공간에서 상급 마나석을 꺼내 땅의 축복에게 건네줬다.
“카마엘 일생일대의 실험이라는 게 뭐야? 아니다. 바쁜 사…거인한테 별걸 다 물어봤네. 빨리 가봐.”
“제가 연구하고 있는 것은 람께서 주신 포션입니다. 현재 그 포션들을 복…”
카마엘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너무나 말을 잘 듣는 땅의 축복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카마엘을 복귀시켰다.
“쩝. 나중에 다시 물어보지 뭐.”
벌써 돌아갔지만, 카마엘은 분명 ‘복’이라고 했다.
입술 모양을 보면, ‘제’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설마 포션 복제에 성공했다는 소리라면,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포션은 교황청에서만 만들 수 있는 독과점이었다.
그런데, 카마엘이 포션을 만들 수만 있다면, 교황청 소속인 내가 교황청과 포션으로 경쟁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래. 카마엘. 꼭 성공해라.”
“람이시여. 저희는 뭘 하면 되겠습니까?”
물 대신 돈이 가득한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상상에 허우적거리다가, 프란시스코의 말에 현실로 돌아왔다.
“나 혼자서는 부담되는 몬스터들이 있어서 도움 좀 받으려고.”
“크하하하핫! 람이시여. 그렇다면 이 타르가 앞장서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없이 조용히 있던 타르가 각기 한 손에 거대 양날 도끼를 들고는 호탕하게 말했다.
“역시, 전투는 티탄족이야!”
내 엄지척에 타르는 더욱 크게 웃었고, 프란시스코가 인상을 찡그리더니, 등 뒤에 착용하고 있던 창과 방패를 꺼냈다.
“어디입니까? 람의 적은 제 원수입니다.”
프란시스코와 타르가 전투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모습에 든든함이 느껴졌다.
[람이시여.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언제 다녀왔는지 땅의 축복이 돌아와서는 밝게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 그럼 이제 가야지. 근데 걸어가는 것보다, 순간이동으로 가서 뒷통수를…”
내가 말을 꺼내고선, 입을 막았다.
땅의 축복이 얼마나 많은 마나석을 요구할지 몰라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중급 마나석 6개만 주시면 적진 한복판으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매번 상급 마나석에서 중급 마나석을 달라고 하니, 저렴한 느낌이 강했다.
물론 중급 마나석도 가격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급 마나석의 재고는 꽤 많았다.
“자. 여기. 그럼 지금 바로 가볼까?”
중급 마나석을 호로록 삼켜버린 땅의 축복이 우리의 땅으로 덮었다.
***
명령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귀와 구미호가 도착했다.
이곳을 수호하는 오로치마루는 자신들의 형제가 온 게 기분 나쁜지 자꾸 ‘쉑쉑’ 거렸다.
“나의 아들 오로치마루야.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단다. 내가 너의 다른 형제들을 이곳으로 오라고 한 것은 다 같이 형제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다.”
아귀여왕, 청적오니와 텐구. 뇌신풍신. 모두 자신이 두 손으로 만들었다.
오로치마루와 만든 시기도 비슷하고, 그만큼 힘을 기울였다.
“네가 형제들의 우두머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강화까지 했던 놈들이 죽어서 불안하니, 이참에 미뤄왔던 강화를 해주마.”
자신은 마족 숭배자이면서, 마족을 신봉하지는 않았다.
오직 이득을 위해 이 단체에 가입했다.
그들에게 실험 재료를 공급받고,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마물들을 만들어서 공급해줬다.
그렇게 그들이 원하는 결과물을 가져다주면, 놈들은 간혹, 괴이한 기운을 가진 신비석을 제공하기도 했다.
“마족 숭배자 놈들도 언제 또 구할지 모르지만, 오로치마루 너에게 이걸 심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구나.”
성인 남성의 한쪽 다리만 한 티타튬 케이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초록색의 거대한 뿔 모양의 돌이 들어 있었다.
“역시 뱀하면 독. 그리고 이 신비석에는 독의 기운이 가득하지. 너와 상성이 잘 맞을 거다.”
옆에 놓여 있는 날만 1미터 크기의 수술용 칼을 잡았다.
예전 인간에게 무언가를 이식할 때는 이렇게 큰 칼이 필요 없었고, 오직 평범한 수술용 칼이면 충분했었다.
이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수술을 하다 보니, 칼은 점점 커졌다.
거기다가 오로치마루의 입은 성인 남성 두 명을 한 번에 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기에 지금 들고 있는 수술용 칼도 작아 보였다.
“고개를 숙이거라.”
말 잘 듣는 오로치마루가 이마를 자신에게 내밀었다.
그렇게 수술을 위해 칼을 오로치마루의 이마에 박아 넣으려고 할 때였다.
“주인님. 침입자입니다.”
아사오의 말에 일단 수술용 칼을 내려놨다.
“침입자?”
“지금 기지에 거인들과 하유신이 나타났습니다. 현재 우귀와 구미호가 그들에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들이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온다고!!”
“화면을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아사오가 컴퓨터를 조작하자, 화면에 텅 빈 공간이 나왔다.
그 상태에서 바닥에 있는 흙이 솟구치더니, 두 명의 거인과 함께 하유신이 나타났다.
“게이트 마법도 아니고, 저게 뭐지?”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으흠…”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
구미호와 우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하유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 정도만 해도 불안한데, 하유신의 앞뒤로 거인들이 있었다.
“거인? 아사오. 하유신의 주위에 있는 거인들을 비춰봐라.”
“네. 주인님.”
컴퓨터를 조작하자, CCTV를 통해 거인들의 모습이 나왔다.
“확실히 신화에나 나왔던 거인이 맞군. 거인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불안함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불안함보다, 거인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솟구쳤다.
“일단 구미호와 우귀에게 대기하라고 해라. 오로치마루의 시술이 끝나면 그때 같이 움직이도록 한다. 그동안 아사오 네가 최대한 막아라.”
“제…제가요?”
“그래. 모든 걸 다 동원해도 좋다. 시술이 끝날 때까지만 어떻게 해서든 막아라.”
“…알겠습니다.”
평소와 다르게 아사오의 대답이 조금 늦었고, 약간의 활기가 있었다는 걸 이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
땅의 축복이 이동시켜준 곳은 어두운 동굴 안이었다.
빛이 없어지자, 시야가 좁아졌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에서 당황스러웠지만, 지금은 달랐다.
극대화된 감각이 주위를 훑어보고, 포스가 지형지물을 확인했다.
“다행히, 여기에는 함정도 요괴도 없나 보네.”
[네 그렇습니다. 람이시여. 이곳은 적들의 본거지 초입이지만, 가장 안전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잘했어. 그럼 어디로 가면 돼?”
[이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땅의 축복이 화살표 모양으로 바뀌어서 우리를 안내했다.
그때 프란시스코가 방패 들며 앞으로 나왔다.
“람이시여. 여기서부터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앞장 서겠다던 타르는 양손 도끼를 꺼내서는 내 뒤에 자리를 잡았다.
“뒤는 이 타르에게 맡겨주십시오.”
“웬일이야? 타르가 앞으로 나서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네. 맞습니다. 람이시여. 제가 앞서고 싶지만, 제 본능보다 람의 안전이 더 중요합니다.”
전투가 있다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타르가 이런 말을 하니, 약간의 감동이 밀려왔다.
프란시스코도 타르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내가 람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러는 거면 괜찮아.”
“크하하하핫. 람이시여. 우리는 바뀔 수 있지만, 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응?”
타르의 말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자, 앞으로 나선 프란시스코가 부연 설명했다.
“타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겁니다. 우리 거인들의 대표이신 람께서 언제까지 앞장 설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에 불려왔을 때 가장 최우선으로 여기는 건 람의 안전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람이니까요.”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리더십과는 달랐다.
“나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러니까 괜찮아.”
“람께서 제게 불구덩이에 뛰어들라고 하면 생각도 하지 않고 뛰어 들 수 있습니다. 지옥까지 따라오라고 하면, 기쁘게 웃으며 따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신하가 자신의 람의 뒤에 숨어만 있습니까?”
“아니. 그래도…”
“람이시여,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도 별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믿어 달라는 저 말을 들으니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좋아. 프란스시코 선두를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람이시여.”
“타르. 후방을 맡아줄 수 있지?”
“그 어떤 것들도 람의 뒤로 다가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좋아.”
간단히 포메이션을 정한 후, 우리는 앞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 때, 화살표 모양이었던 땅의 축복이 갑자기 느낌표로 바뀌었다.
“땅의 축복 무슨 일이야?”
[람이시여, 앞에 함정들이 있습니다.]
“함정?”
길게 쭉 늘어져 있던 길목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함정에 있던 길목의 일부분이 무너지고, 화살이 쏘아지고, 화염이 뿜어졌다.
그렇게 한동안 함정이 발동되더니, 언제 함정이 발동했는지 모를 정도로 멈췄다.
방금까지 함정이 발동됐다는 게 무너진 바닥과, 불의 그을림. 그리고 벽에 박힌 화살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게 왜 이러지? 우린 여기에 가만히 서 있는데, 함정이 알아서 발동된다고?”
아무런 피해 없이 허공에다 삽질한 함정을 바라보며, 땅의 축복을 바라봤다.
“땅의 축복. 네가 이렇게 한 거야?”
[아닙니다. 저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럼, 왜 그런 거지? 고장인가?”
“아닙니다. 제가 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길목의 끝부분에 있던 벽이 돌아가며, 자신의 몸통만큼 목이 긴 여성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사오 마호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