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211화 (211/300)

211화_임무와 수련(1)

유신이 모터가 달린 작은 배를 끌고 바다를 가르면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모터의 소음 때문에 모터와 자신 사이에 기막까지 펼치고 말이다.

“대표 교체가 그렇게 스펙타클했다고요? 꼭 봤어야 했는데.”

[네. 재밌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문 뒤에서 숨어서 지켜봤죠.]

“좋네요.”

[네?]

“용호씨도 이제 좀 인생을 즐기는 것 같이 보이기는 하네요. 뭐 아직은 부족하지만, 차차 나아지겠죠.”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전화상의 용호씨는 부끄러운지 갑자기 어색한 말투로 말했다.

그 모습이 상상되어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분은 어떻게 됐나요?”

[비자금 조성 목록으로 다 빠져서, 전원 회사 이름으로 환수 조치했습니다. 저희가 손댈 수 없었던 것은 조미진의 8% 지분인데, 그건 제값에 넘겨받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강승찬이라는 놈은 어떻게 됐나요?”

[몰래 빼돌린 돈이 총 32억으로 그걸 회사에서 지급한 대출로 바꿨습니다. 앞으로 30년간 회사를 위해서 뼈 빠지게 일하면 탕감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부산물 해체 직원으로 보직 이동시켰습니다.]

“자업자득이네요. 아. 이만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도착하셨습니까?]

“아뇨. 몬스터가 나타나서요. 그럼 몇 달 뒤에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앞을 바라봤다.

지느러미 크기만 2미터에 육박한 해상 몬스터 메갈로돈이 다가오고 있었다.

메갈로돈은 이 작은 배와 함께 나를 꿀꺽 삼키기 위해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냈다.

***

“성녀님. 세계정부에서 젤 루커라는 사람이 찾아와서는 하유신을 찾고 있습니다.”

유신은 자신에게 임무이자, 수련 때문에 일본 규슈지방으로 떠난다고 말은 해줬다.

하지만, 현재 유신이 맡고 있는 일이 있어서 그런지 골치 아픈 일도 생겼다.

“에휴~ 세계정부는 유신의 주위에 속하지 않나 보네요.”

“네?”

“일단 이리로 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루카스는 더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루카스가 젤 루커라는 사람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약간 역겨울 정도로 진한 향수 냄새와 함께 집무실에 들어와서는 오만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허락도 없이 소파에 털썩 앉았다.

“저는 세계정부의 젤 루커입니다. 그런데, 교황청은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합니까?”

아무리 세계정부의 대표로 왔다고 하지만, 너무나 예의가 없었다.

세계 대통령인 토마스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예의 없고, 막무가내인 사람을 교황청에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짜증이 솟구쳤다.

“루카스. 손님에게 차를 대접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루카스가 밖으로 나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애욕 섞인 시선은 아니었지만, 나를 평가하려고 하는지, 위아래로 훑어봤다.

“교황청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듣기 위해 가만히 있었는데, 젤은 기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기고만장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럽니다. 일반 신도도 아니고, 다름 아닌 교황청의 검이라는 하유신이 어디로 갔는지 교황청에서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예의는 둘째치고 다짜고짜 시비부터 걸어왔다.

바로 이 자리를 파토낼까 고민했지만, 젤 루커에게서 은은하게 풍기는 역겨운 향을 어디서 맡아본 것 같았다.

이대로 이자를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 일단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몬스터 퇴치에 열의를 보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계적으로 인류화 작업에 열을 올리게 만든 사람 중 하나가 바로 하유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교황청에서도 힘껏 돕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징이 되는 교황청의 검. 하유신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교황청에서는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고요. 이거 교황청이 우리 세계정부와 척을 지고 싶어서 그런 겁니까?”

세계정부에서 교황청으로 보낼 인원이라면, 웬만한 고위층이라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교황청의 힘을 모르지 않을 터였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세계정부의 위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젤 루커라는 사람에게 의문이 들었고, 일단 상대에 대해서 더 알아보기 위해 조금 더 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방금 발언은 젤 루커 당신의 의견인가요? 아니면 세계정부의 공식적인 말인가요?”

“지금 세계정부의 대표로 온 절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라… 그건 제가 아니라 젤 루커 당신이 한 것 같은데요?”

뭐가 그렇게 불쾌한지 부들부들 떨던 젤 루커는 갑자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흥! 고작 부하 하나 관리 못 해서 말이나 돌리고…”

이 자는 내가 화내는 걸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자의 뜻대로 움직여 줄 생각은 없었고, 이제 희미하게 젤 루커에게서 나는 향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때, 루카스가 찻잔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고, 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과는 더는 대화할 마음이 생기지 않군요. 그럼 이만.”

“어디를 가시나요? 예의를 운운했던 사람이 기껏 내온 차를 마시지 않고 간다? 본인의 말과 다르네요.”

“아무런 권한도 없는 당신과는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드디어, 이 역겨운 향이 기억났다.

왜? 이자가 여기 와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구는지 그리고 세계정부와 교황청의 관계를 틀어버리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그래요? 그럼 권한이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시면 되겠네요. 루카스. 노인을 불러주세요.”

내 말에 평소에 잘 놀라지도 않는 루카스가 되물었다.

“노인 말씀이십니까?”

“네. 그분이 와야 할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루카스가 나가려고 하자, 젤도 나가려고 했다.

“젤 루커.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저도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가만있지 않으면 어쩌려…고……끄응…”

기세를 풀자마자, 젤 루커는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젤 루커의 행동에 제약을 줄 때였다.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다크 프리스트들의 수장인 노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목례로 인사를 끝내 노인은 젤 루커를 바라보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이런… 더러운 게 왜 성녀님의 방에 있는 겁니까?”

자신은 가물가물해서 이제야 기억이 났다.

하지만, 노인은 괜히 다크 프리스트의 수장이 아니었는지 단번에 젤 루커의 정체를 파악했다.

“내가 죽으면 과연 세계정부가 가만히 있을까? 그래. 좋아. 죽여봐. 마신을 위하…”

놈은 자살하려고 했지만, 노인의 손짓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역시 파수꾼이 맞군요.”

“파수꾼이라뇨. 그런 명칭으로 불리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인 마족의 앞잡이입니다.”

노인은 화가 난 어투였지만, 표정은 기대감으로 설레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놈을 데리고 간 후에 모든 정보를 받아주세요. 아시다시피…”

“알고 있습니다. 놈의 몸의 마계 벌레가 있는 것도요. 물론 그것부터 꺼내야겠죠. 일단 죽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신성력을 끌어모은 노인이 마족 앞잡이의 몸 여러 군데를 두들겼다.

그러자, 놈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피어오르다가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좋은 선물을 주셨는데, 원하는 정보는 일주일 안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하루면 충분할 테지만, 부탁하는 입장에서 그의 악취미를 가지고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좋아요. 대신에 다크 프리스트들을 좀 빌려주세요.”

“허허허~ 기분 좋은 부탁이군요. 감이 좋거나, 냄새를 잘 맡는 애들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노인은 또 다른 마족 숭배자를 찾겠다는 내 뜻을 이해하고, 부탁을 들어줬다.

그리고 한껏 기대되는 표정을 지으며 구속된 마족 앞잡이의 오른쪽 다리를 잡아서는 질질 끌며 응접실을 나섰다.

“루카스!”

“네. 성녀님.”

“지금 당장 다크 프리스트들을 빌려와서는 3심판대와 함께 또 다른 마족 앞잡이를 찾아오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서려고 하던 루카스가 잠시 멈칫하더니,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요?”

“마족 숭배자들은 저런 덜떨어진 놈을 왜 여기로 보냈을까요?”

“뭐 간단해요. 걸려도 좋고, 걸리지 않고 분탕질만 해도 교황청과 세계정부의 관계를 갈라놓을 수 있을 테니까요. 즉, 세계가 단합하지 못하고, 단체끼리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겠죠.”

루카스는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끄떡이고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나는 아까 읽던 서류를 다시 읽다가 이내 덮어 버렸다.

마족 숭배자.

사람들은 표면적으로 그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바퀴벌레가 나온 집은 아무리 박멸하였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바퀴벌레가 숨어 있기 마련이었다.

“하유신. 네가 돌아오기 전에 제발 큰일이 안 터지기를 빈다.”

***

메갈로돈을 잡은 이후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다른 해양 몬스터도 나타나지 않았고, 물고기도 보지 못했다.

“대한해협의 포식자가 메갈로돈이었나 보네. 과연 이건 얼마나 할까?”

몬스터 대백과사전에 메갈로돈에 대한 설명은 바다의 포식자였다.

크라켄이나, 거대 오징어의 경우에는 간혹 인간들에게 잡히기도 했지만, 메갈로돈이 사냥됐단 소식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강하면서 희귀하기까지 한 몬스터가 메갈로돈이었다.

“아공간 주머니 몇 개를 비어 와서 다행이네.”

몬스터들의 땅이 된 규슈지방을 돌면서 아공간 주머니를 채우려고 했는데, 메갈로돈이라는 양과 질이 뛰어난 몬스터를 잡아서 기분이 좋았다.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돈이라는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기 때문이다.

“아. 이제 육지가 보이네.”

땅의 축복이 이곳으로 바로 날 이동시킬 수 있었지만, 백각과의 힘겨루기 이후, 포스가 회복되는 게 너무 더뎠다.

이동하면서 해양 몬스터도 잡고, 포스 회복을 노렸지만,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규슈 지방에 도착한 후, 조심히 작은 배를 몰아서 해안가에 두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한쪽에 다 낡아 빠진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후쿠오카? 규슈 지방에는 잘 도착했네.”

몬스터들의 땅이라고 해서 도착과 동시에 경계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그저 아름다운 해안가가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이햐~ 예쁘기는 하네.”

잠시 해안가에 눈길이 쏠렸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곳은 백각의 임무와 함께 수련하기 위해 온 것이지, 관광을 온 게 아니었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반파된 도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에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아무리 몬스터들이 땅이라고는 하지만, 그 어떤 생명체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심하면, 풀벌레 소리까지 자취를 감췄다.

“가키가키가키.”

특이점을 눈치채자마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을 때였다.

얼굴, 팔, 다리는 깡말랐고, 배는 볼록 튀어나왔으며, 이빨은 톱날처럼 날카로운 몬스터가 뛰어왔다.

서걱

반사적으로 휘두른 검에 몬스터의 머리를 날려버렸는데, 몸은 그대로 힘을 잃고 쓰러졌으면서 얼굴은 한동안 이를 딱딱거렸다.

그 모습이 무언가를 씹어 먹으려고 하는 행동과 유사했다.

“이게 바로 아귀구나.”

몬스터 대백과사전에 아귀에 대한 설명은 눈살을 찌푸려지게 했다.

아귀. 몬스터라기보다 몬스터를 가지고 실험해서 탄생한 아종 몬스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오른손을 말아쥔 후에 포스를 날려서 아귀의 머리를 터트린 후, 주위를 둘러봤다.

아귀는 절대 혼자 다니지 않고, 무리 생활을 한다.

“가키가키가키가키.”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수많은 아귀가 벌써 다가와 있었다.

그대로 블레이드 샷을 아귀들에게 날리려고 했는데, 라이언 선배의 조언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모든 기술을 사용하지 말고, 천천히 한 걸음부터 다시 시작해. 어떤 식으로 해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어떤 식으로 해야 효율적인지 파악하라는 거야.’

기껏 끌어올렸던 포스를 흩어지게 했다.

그러자, 아귀들은 강맹한 기운이 사라진 날 보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포스를 최대한 자제하고, 칠성검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아귀를 공격했다.

다행히 아귀는 그렇게 빠르지도, 강하지도 그렇다고 체력이 좋지 않았다.

단지 숫자가 너무나 많을 뿐이었다.

*

*

*

도대체 몇 시간을 쉬지 않고 검을 휘둘렀는지 모르겠다.

끝없이 다가오는 아귀를 베다 보니,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었다.

그만큼 아귀의 사체는 작은 동산을 몇 개나 만들었고, 그럴 때마다 행동의 제약이 생겨서 자리를 피했다.

“하아 하악… 진짜 끝이 없네.”

싸우는 내내 몇 번이라도 포스를 활용할까 고민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게 육체를 한계까지 동원해서 싸울 때였다.

갑자기 아귀들의 동선이 눈에 보였고, 검이 조금은 더 자유롭게 움직였다.

후쿠오카현 이틀째 날.

아귀들과 쉬지 않고 싸운 시간이었고, 아귀들이 몰려오는 곳을 특정 지을 수 있었다.

후쿠오카현 사흘째 날.

이미 체력적으로 지치고도 남을 상황이었는데, 도리어 힘이 넘쳤다.

포스가 몸 안에서 돌며, 전투를 벌인 만큼 체력을 회복시켜줬다.

후쿠오카현 다섯째 날.

아귀들이 몰려오는 곳으로 천천히 걸으며 아귀들을 베어냈다.

어제까지 아귀들의 공격을 전투 슈트가 막아줬는데, 더는 공격이 내 몸에 닿지 않았다.

후쿠오카현 일곱째 날.

무작정 몰려오던 아귀들이 소수의 무리를 짓고는 일정한 시간대에 맞춰 공격했다.

이날부터 졸리기 시작했다.

후쿠오카현 열흘째 날.

심처에 가까워진 것 같았다.

어느 때보다 아귀들이 매섭게 공격했지만, 상대하기는 더욱 수월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약 4미터 크기의 여왕 아귀를 발견했다.

“오늘부로 몬스터 대백과사전에서 아귀 페이지는 사라질 거다.”

그저 검을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여왕 아귀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