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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08화 (208/300)

208화_동생을 위한 플렉스(2)

유민은 오늘도 출근하면서 정말 이 회사를 다녀야 하는지 고민했다.

아무리 사회생활 경험이 일천하다고 하지만, 이 회사는 자신에게 정말 이상했다.

“아이고! 유민씨 출근했구나. 여기 앉아. 여기.”

버선발로 뛰어나온 사람은 이 작은 회사의 전략기획부의 강차장으로 그는 쉽게 말해 이 회사 사장님의 아들이었다.

회사 사장 아들이 이제 막 들어온 신입사원한테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한 척하는 건 전부 형 때문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스스로가 너무나 미웠다.

“그래. 출근길은 힘들지 않았고?”

“네. 덕분에 괜찮았습니다.”

“에이~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래도 혹시 힘들면 말해 나랑 카풀하면 되니까.”

강차장과 회사는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집에서 회사는 차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내가 너무 부담 줬나?”

“아닙니다.”

“그래? 그럼 커피나 한잔할까?”

“제가 타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강차장이 내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무슨 소리야? 가만히 있어. 근데 커피 취향은 어떻게 되지?”

“전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아메리카노? 라떼?”

막무가내로 물어봤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놔주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 처음 만났을 때, 이런 유사한 이유로 한 시간이 넘게 계속 질문만 던진 적도 있었다.

“아.아메리카노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차가운 거? 따뜻한 거?”

“차가운 거면 됩니다.”

“키하~ 얼죽아구나. 나도 얼죽아인데, 잠깐만.”

살짝 몸을 일으킨 강차장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날 이곳에 소개 시켜 준 박찬준 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박주임. 가서 아아 두 잔 사와.”

“네? 저요?”

“왜 이렇게 눈치도 없고, 빠릿빠릿하지 못해? 그러면서 회삿돈이나 축내고. 빨리 안 가?”

“네. 다녀오겠습니다.”

벌써 일주일째 같은 패턴이었다.

입사했는데, 단 한 번도 일을 한 적도 없고, 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그저 출근과 동시에 강차장과 노가리를 까면서 회사 사람들에게 피해만 줬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물어볼 게 있는데…혹시 하유민씨 형이 그 유명한 젊은 영웅 하유신 맞아?”

여기서 거짓으로라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분명 내 모든 조사가 끝났을 거다.

“…네. 맞습니다.”

강차장은 해맑은 미소로 보이며,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그래서 말인데… 유민씨한테 부탁할 게 있어.”

“…네. 뭔데요?”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고, 저기 회의실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힘없이 일어나 강차장을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에 들어선 강차장은 블라인드를 쳐서 바깥과 이 공간을 분리했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제발 속으로는 아니길 바랐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곳을 때려치울까? 생각했지만, 언제까지 부모님과 형에게 기대서 한량처럼 지내는 건 몹쓸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유민씨.”

“네. 차장님.”

“유민씨의 형님인 하유신 영웅님을 제가 정말 존경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하유신 영웅님을 저희 회사 마케팅에 조금 활용해도 될까요?”

예상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벌써 몇십, 몇백 번이나 속으로 되뇌이며, 준비했던 말이 있었다.

“형과 상의해보겠습니다.”

“그래요?”

강차장은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신의 아랫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그때, 찬준 선배가 회의실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커피 왔습니다.”

찬준 선배는 분위기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는 조심스럽게 커피를 강차장 앞과 내 앞에 두고는 후다닥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박주임.”

“네. 강차장님.”

“이게 뭔가요?”

“네? 아…차장님께서 말씀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강차장은 자신의 앞에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어서는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그대로 출입문을 향해 집어 던졌다.

문에 부딪힌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넓게 퍼지며, 찬준 선배를 적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얼음이 왜 이렇게 많아?”

“죄송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얼음이 많은 건 당연한 건데, 그걸로 화내고, 또 죄송하다는 찬준 선배.

평소였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굳었다.

“뭐해? 안 움직이고? 빨리 가서 다시 사와!”

“알겠습니다.”

찬준 선배가 다시 회의실을 나선 후, 강차장은 길게 숨을 내뱉고는 미소 지었다.

“유민씨. 우리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방금까지 찬준 선배에게 화를 낸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 홍보 관련해서 형한테 물어본다고 대답만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야기 좀 잘 부탁해요. 요즘 회사 사정이 안 좋아서요. 이러다가 누군가를 잘라야 할 것 같아요. 쉽게 말해서 정리해고요. 아! 유민씨는 이제 막 들어왔는데, 그런 걱정 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아 맞다. 오늘 유민씨 입사 기념 축하 회식 있어요. 당연히 참석할 거죠?”

여기서 참석하지 못한다고 하면, 분명 다른 사람을 괴롭힐 게 분명했다.

“네. 가능합니다.”

“그럼 저녁에 봐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강차장은 회의실에 나만 두고 밖으로 나갔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될 때였다.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커피 자국과 땀 때문에 범벅이 된 찬준 선배가 들어왔다.

“어? 강차장님은?”

“나가셨어.”

“그렇구나.”

찬준 선배는 커피를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한쪽에 놓여 있는 티슈를 꺼내서 커피 범벅이 된 바닥을 닦았다.

나는 찬준 선배를 도와 커피를 닦으며 입을 열었다.

“선배. 왜 이렇게 지내? 회사가 여기뿐이야?”

내 말에 커피를 닦던 찬준 선배의 손이 멈추더니, 이내 다시 움직였다.

“미안하다.”

“뭐가 미안해?”

“여길 그만둘 수 없는 내가 멍청해서 미안하고, 널 여기에 끌어들여서 미안하다.”

“그러니까 그만두자. 그만두면 되잖아.”

솔직히 이런 고민할 필요 없이, 찬준 선배와 자신이 여길 그만두면 된다.

근데, 이 답답한 사람은 왜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여기 있는 걸까?

“빚이 있어.”

“빚?”

“응.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최저금리로 대출을 해주거든. 너도 알다시피 며칠 전에 아버지가 아프셨잖아. 그래서 큰 돈이 필요했는데, 회사 대출로 겨우 병원비를 메꿨어. 그런데, 내가 지금 여기를 그만두면, 대출을 일시불로 다 상환해야 해.”

“빚이 얼마인데?”

찬준 선배는 날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젖은 휴지들을 쓰레기 통에 넣으며 무심히 말했다.

“3억.”

“대기업도 아닌데, 그렇게 큰 금액을 대출해준다고?”

“너도 봤잖아. 여기서는 직원들을 막 대해. 그래서 대출을 목적으로 그만두지 못하게 만들어. 그뿐인 줄 알아? 어찌어찌 대출을 다 갚고 퇴사를 하면, 동종업계에서는 다시 취업하지 못하게 만들어. 미안하다.”

회사에 대한 분노와 함께 찬준 선배에게 안쓰러움이 느껴질 때였다.

내 전화기가 울렸다.

“어? 형이네.”

“하유신 영웅님? 제발 잘 좀 말해줘. 알았지?”

“…알았어. 여보세요?”

[동생~ 뭐하냐?]

“뭐하긴? 출근해서 일하고 있지.”

[그래? 이 형이 오늘 점심때쯤 너희 회사 근처로 갈 것 같은데, 점심이나 같이하자.]

“아냐. 괜찮아.”

[괜찮기는 이따가 점심시간에 보자. 아 그리고 혼자 나와~ 다른 사람 데리고 오지 말고.]

“형. 정말 괜찮…”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렇게 끊어진 전화기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찬준 선배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더니, 후다닥 회의실을 나섰다.

블라인드를 살짝 내려서 확인해보니, 찬준 선배가 강차장에게 무언가를 일러바치고 있었다.

“하~ 미친.”

갑자기 회사와 찬준 선배에게서 오만 정이 떨어졌다.

악독한 회사야 그렇다고 치지만, 자신이 편하려고 날 파는 찬준 선배를 보니, 사람은 모두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언제나 전투복만 입다가 오늘은 조금 다르게 입었다.

검정 정장에 검은 와이셔츠. 거기다가 얼굴의 반을 가려주는 선글라스까지.

완벽하게 블랙으로 차려입고, 동생 유민을 기다렸다.

“유민아 여기다.”

살짝 오른손을 들어서 동생을 불렀다.

내 모습을 본 동생이 얼굴을 붉히더니, 후다닥 달려왔다.

역시, 내가 생각해도 완벽히 잘 차려입었는지 남동생까지 반한 것 같았다.

“그 꼴은 뭐야?”

“그 꼴이라니? 이 멋지고 위대한 형님한테.”

“위대하기는 갓만 쓰면 완전 저승사자 패션이구만. 사람들은 형이 이런 거 알아?”

한 대 쥐어박을까? 고민했지만, 애써 참았다.

“가자. 내가 좋은 곳으로 예약해놨어.”

“에휴~”

동생의 한숨이 심히 불쾌했지만, 애써 참으며 식당으로 발길을 옮길 때였다.

“유민씨. 점심식사 가려고?”

누군가 알은체하면 우리에게 다가왔고, 동생은 와락 표정을 구겼다.

나는 뒤늦게 동생의 옆구리를 찌르며 속삭였다.

“야. 사회생활. 사회생활.”

그제야, 동생은 어설프게 웃으며 상대를 맞이했다.

“강차장님. 식사 가시나 봐요?”

“하하하. 이렇게 마주칠 줄이야. 혹시 옆에 분이 그 유명한 하유신 영웅님?”

“아…네.”

마지못해 대답한 동생을 뒤로하고, 강차장이라는 사람이 내게 악수를 권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유민씨 상사되는 강승찬 차장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내가 악수도 거부하고 그대로 몸을 돌려서 가려고 하자, 강승찬이 재빨리 움직여 내 앞을 가로막았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식사 대접을…”

“아뇨. 괜찮습니다. 이미 예약을 해둔 상황이라서요. 그리고 혹시나 따라올 생각은 하지 마세요. 딱 2명만 예약해둔 상황이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비켜주시죠.”

아직도 내 앞을 막고 있는 강승찬은 굳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미소를 띠며 옆으로 비켜섰다.

그렇게 동생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

형이 데리고 온 중식당은 독립된 공간이었다.

나는 이곳에 올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솔직히 아까 강차장을 대하는 형이 조금은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남들이 보면 연예인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야. 하유민.”

평소처럼 형의 부름에 퉁명스럽게 답했다.

“왜?”

“회사는 할 만하냐?”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아니. 그만두려고.”

“그만둬? 왜?”

형은 내가 그만둔다는 말에 갑자기 기운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형은 잘 모르겠지만, 무역 유통 사업을 하는 곳이라서 배울 곳은 많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이상해. 회사도 이상하고.”

“그래?”

겉은 건실해 보였지만, 속은 가족 경영으로 썩은 곳.

그러면서 로얄인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사람들만 넘치는 곳.

지금 회사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정도인 회사였다.

“응 그리고…”

형을 무료 또는 적은 금액으로 홍보로 사용하려고 한다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끝내 말하지는 목했다.

“하여튼 오늘부로 그만둘 거야.”

“에휴~ 알았어.”

그때 음식이 식탁 위에 차려지기 시작했다.

겨우 두 명이서 먹을 건데, 너무나 많은 요리가 테이블 위를 꽉꽉 채웠다.

그리고 그동안 형은 전화기를 들어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네. JK무역회사 인수건 중지해주세요. 네. 동생이 그만두겠다고 하네요. 네.”

JK무역회사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곳이었다.

“형. 그게 무슨 소리야? 인수건이라니?”

형은 작은 집게로 깐쇼새우를 들어서 접시에 놓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솔직히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네가 그만둔다고 하니까. 그냥 말할게. 내가 따로 알아봤는데, 회사가 문제 많더라고, 그래서 인수해서 깨끗하게 만들어서 너 다니기 편하게 만들려고 했지. 오~ 향 좋다.”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평소에도 형이 장난이 심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좀 아니라고 느꼈다.

“장난치지 마. JK무역회사가 아무리 비상장이라고 해도,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유민아. 넌 가족이라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형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엄친아지.”

뒷말에 이상한 소리를 한 것 같았지만, 그저 귀에 이 소리만 계속 반복됐다.

‘형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다.’

아카데미를 다닐 때까지만 해도 참 믿음이 가지 않는 형이었다.

그런데, 기동대 면접을 보고 온 이후로 집을 비우는 시간도 많아지고, 어느새 교황청의 검이 되어 있었다.

그것만 해도 정말 놀랄 놀자인데,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영웅으로 불리고, 어떤 커뮤니티에서는 차세대 전설로까지 거론되는 사람이 자신의 형이었다.

“형. 하나만 물어볼게.”

“두 개 물어도 된다. 오~ 여기 난자완스 맛있다.”

방금까지 믿음과 신뢰감이 가득한 형이었는데, 과연 이 형을 믿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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