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_동생을 위한 플렉스(1)
목울대를 통해서 침이 넘어갔다.
언제나 목말랐던, 강해지는 방법.
그것도 순식간에 강해지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과연 그게 뭘까?
“일단. 그 비기는 한동안 봉인해둬.”
“넵.”
강해지기 위해서 비기의 봉인 정도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네가 지금 몸을 혹사해서 기혈이 뭉치고 그랬잖아?”
“네. 그렇죠.”
“다시 처음부터 하자.”
“네??”
주어를 빼고 말하니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선배. 제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뭘 어떻게 처음부터 하라는 건가요?”
“쉽게 말해서, 모든 기술을 쓰지 말라는 거야. 직접 몸으로 움직이면서 오직 검에 포스를 싣기만 하라는 거지.”
검에 포스는 실어도 되는데, 기술은 쓰지 말아라?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포스를 조금만 더 운용하면 여러 가지 기술을 쓸 수 있는데, 그건 쓰지 말라고 하면서 포스는 또 사용해도 된다고 하니 말이다.
“얼굴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네?”
“네. 사실 그래요.”
이건 모르면서 아는 척할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유신이 네 경우에는 중간 과정이 너무나 짧아.”
“중간 과정이요?”
“그래. 그러니까 게임으로 비유하면, 레벨 1로 시작해서 2, 3 이렇게 천천히 레벨업을 하잖아? 그런데 너는 남들과 다르게 1부터 시작해 100까지 찍는 게 너무 빨리 진행됐어. 쉽게 말하면, 게임 초보자가 갑자기 100레벨 캐릭터를 가지고 시작하는 거지. 그래서 모든 게 미숙한 거야. 그리고 자신의 몸이 어떤 식으로 망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거지.”
게임 캐릭터로 비유한 게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순식간에 이해가 됐다.
쉽게 말해서, 어린아이가 S급 헌터의 몸을 가지고 있는 거와 같다고 보면 되는 거였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모든 기술을 사용하지 말고, 천천히 한걸음부터 다시 시작해. 어떤 식으로 해야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어떤 식으로 해야 효율적인지 파악하라는 거야.”
“아! 이해했어요.”
“쉽지는 않을 거야. 이제 일반적인 훈련으로는 스스로의 한계를 파악하기 어려울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조언이 끝났을 때였다.
누가 연락하지도 않았는데, 교황청과 연결된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렸다.
“그럼. 난 이만 갈게. 일루시안 가기 전에 한 번 보자.”
“네. 선배 조심히 들어가세요.”
라이언 선배는 공간이동 게이트 앞에 서더니 갑자기 날 바라봤다.
그리고는 입을 달싹이더니 힘들게 한 마디 내뱉고는 빠르게 게이트를 타고 사라졌다.
“헤헤~ 라이언 선배도 부끄럼쟁이네.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힘들게 하고.”
***
헝가리에 위치한 푸스타 초원에는 거대한 천막이 하나 있었다.
천막의 문을 대용하는 천이 걷어지며, 거대한 덩치의 용병왕 로저 시거가 걸어 나왔다.
“왔으면 들어올 것이지. 왜 서성이고 있는 것이냐?”
저벅저벅
천막의 뒤편에서 앤드류가 걸어 나와서는 자신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인사했다.
“일개 용병인 앤드류가 용병왕께 인사드립니다.”
일개 용병? 용병왕?
앤드류의 행동이 평소와는 달랐다.
“몇 달 동안 용병단과 함께 비밀 임무를 수행한다고 하더니, 갑자기 너만 나타났구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앤드류 네가 나한테 부탁을?”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알고 있는 앤드류가 맞는지 의심이 갔다.
“놀라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그 말이 맞다. 지금까지 네가 내게 한 부탁이라고는 자신을 입양해달라고 했을 때뿐이었으니 말이다. 넌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내게 부탁한 적이 없었지.”
“지금까지 부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구하는 건 쉽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앤드류는 입양된 10살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걸 홀로 구하고 처리해 나갔다.
그렇기에 앤드류가 하고자 하는 부탁이 궁금했다.
“그래. 내게 할 부탁은 무엇이냐?”
“먼저 들어 주신다는 확답을 받고 싶습니다.”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데, 확답을 달라?”
“네.”
첫째나 둘째가 이런 부탁을 했다면 흔쾌히 수락했을 거다.
그런데, 상대는 앤드류였다.
가슴에는 샐 수 없을 정도로 많을 뱀을 지니고 있고, 머리에는 동양의 신화에 나오는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를 품고 있는 막내 아들.
“내용을 모른 채 확답할 수는 없지. 서운하겠지만, 용병왕이 하는 말에는 그만큼 무게가 있다.”
이 대답으로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았던 앤드류와 사이가 더 멀리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앤드류에게 이 말이 들린 순간 자제심이 무너졌고, 자신도 모르게 앤드류의 목을 붙잡았다.
“지금 다른 사람도 아니라, 용병왕이자 전설이 나 로저 시거를 시험했다는 거냐?”
분노로 인해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다.
“대체 넌 언제 정신을 차릴 것이냐!”
챙그랑
그때 천막 위로 세 개의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렸다.
거기서 수많은 언데드와 기괴한 몬스터들이 땅에 내려섰다.
따끔.
손끝으로 정확히 동맥을 누르고 있어서 팔들 힘도 없었을 텐데, 앤드류가 보라색 단검으로 자신의 팔뚝에 상처를 입혔다.
빠르게 머리가 돌아갔고, 몬스터들을 불러들인 게 앤드류라는 걸 파악했다.
우두둑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지만, 앤드류의 목을 꺾어버리고는 그대로 몬스터들이 있는 곳으로 집어 던졌다.
“너와의 인연이 이렇게 끝날 줄은 몰랐다.”
앤드류와의 관계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조금이라도 내가 친근하게 아니, 부드럽게만 대했다면, 과연 이런 결말이었을까?
“역시 전설이시군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응?”
언데드 사이에서 멀쩡한 모습의 앤드류가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그것까지 제가 알려줄 필요는 없죠.”
“너도 언데드가 된 거냐? 네 용병단처럼?”
“이야~ 이걸 알아보시네요.”
알아보지 못할 일이 없었다.
앤드류를 보좌하라고 보냈던 베뉴가 검은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마족 숭배자들과 한편이 된 것이냐?”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날 죽이면 어디 한자리라도 준다고 하든?”
“정확히는 절 용병왕으로 만들어준다고 했습니다.”
욕심. 앤드류의 끝없는 욕심.
저 욕심 때문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앤드류와 거리를 뒀던 거였다.
“오늘 넌 욕심 때문에, 죽을 것이다.”
“죽는 건 제가 아닙니다.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줬는데도 그냥 차 버린 당신이죠.”
더는 대화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아서 아공간을 열어 대검을 꺼냈다.
그런데, 대검이 평소보다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혹시 검이 무겁다고 느껴지시나요? 맞아요. 이 단검에 저주가 있거든요.”
앤드류가 슬쩍 보여준 단검은 내 팔뚝에 생채기를 냈던 단검이었다.
“저주라…내가 너무 얕잡아 보였군.”
“그럼 이만 용병왕의 칭호를 제게 넘겨주시지요. 제가 할 부탁은 그거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렇게 해서 쟁취한 게 바로 용병왕의 칭호였다.
사람들은 13인의 전설이라고 높게 평가하지만, 자신은 용병왕의 호칭을 더욱 좋아했다.
“앤드류. 잘 들어라. 용병왕. 그건 끝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용병만이 가질 수 있는 칭호다. 용병을 버린 너 따위가 아니라!”
근력과 포스를 이용해 저주를 억눌렀다.
그리고, 검에 오러를 씌운 후 몬스터들에게 달려들었다.
***
기동대 훈련장 한쪽에서 신평이 땀을 뻘뻘 흘리며 창술을 연습하고 있었다.
“창술이 저번보다 날카로워졌네요.”
“기본기만 갈고 닦고 있으니까요.”
“용호씨는 따로 훈련할 시간이 있나요?”
“시간 날 때마다 하고는 있지만, 제자리걸음입니다.”
용호는 약간 씁쓸해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
4기동대를 나선 이후로 이렇다 할 훈련을 받지 못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러는데, 제가 좋은 선생님을 추천해도 될까요?”
“네? 선생님이요? 아…네 뭐 알겠습니다.”
탐탁치 않아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직접 겪고 나면 달라질 것이다.
“나오셔도 됩니다.”
테이블 밑에 있는 그림자가 길어지더니, 4기동대의 은빛 가면에 6개의 줄이 그어진 존재가 나타나자, 용호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허헙!”
“오늘부터 용호씨랑 평이를 봐줄 선생님입니다. 성함이… 아 맞다. 4기동대는 이름을 못 쓰죠?”
“그냥 지(地)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지와 내가 잠깐의 대화를 끝내고 용호를 다시 돌아봤다.
그런데, 용호는 지의 이름을 듣고 더욱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만 놀라세요.”
“아.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분은 4기동대의 역사와 다름없는 분인데… 그리고 4기동대의 기술은 함부로 유출하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 그래요?”
내가 뒤를 돌아 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지가 자신의 가면을 벗었다.
지는 흑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미남의 중년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가면을 막 벗어도 돼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하면 4기동대의 신분이 아니라, 그냥 일반인 신분이 됩니다.”
“신분이 너무 쉽게 바뀔 수 있네요?”
어떻게 보면 비아냥에 가까울 수 있었다.
용호는 4기동대를 나가는 조건으로 철저한 검사와 평생 감시를 받고 살아야 하는데, 이 사람은 거기에 구애받지 않는 것 같았다.
“4기동 대장도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전 가능합니다.”
지의 말에 용호가 고개를 끄떡였다.
내가 모르는 뭐가 있는 것 같았지만, 일단은 도와주기로 온 사람한테 계속 태클을 걸 수가 없기에 그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건 그쪽 사정이니, 넘어 갈게요. 그런데 부탁드린 건 어떻게 됐나요?”
“동생 건은 어제부로 조사가 끝났습니다.”
“그래요? 정말 괜찮은 회사인가요?”
“그게… 회사 자체는 문제가 없는 중소기업입니다. 그런데, 동생분을 취업시킨 게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유요?”
지는 품에서 서류를 꺼내, 내게 건네줬다.
“보시는 바와 같이 회사의 기밀 문서를 확인해 본 결과 유신님의 동생인 유민씨를 채용한 것은 유신님을 이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절 어떤 식으로 이용하겠다는 거죠?”
“마케팅이죠. 아무런 허락 없이 마케팅으로 사용하더라도, 설마 동생이 있는 회사를 고소하지 않겠지라는 생각일 겁니다.”
“이 내용을 유민이도 아나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충 예상하고 있어서 고민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고민한다는 말에 약간은 대견스러웠다.
가족이기에 부탁한다면, 충분히 수용해줄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동생으로서 형에게 누가 될까 봐 이러는 것 같았다.
“일단은 그냥 두세요.”
“그냥 두라고요? 지금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유신님의 이름을 쉽게 쓰려고 하는데요?”
“동생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제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동생. 유민이라면, 충분히 좋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래도, 이대로 두면 안 되겠죠?”
“당연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무런 문제 없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서류를 읽어 갈 때였다.
“어? 요즘 이 회사 힘든가 봐요?”
“네. 무리한 확장으로 자금이 부족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갑자기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저기 용호씨.”
“네?”
나와 지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용호가 나를 바라봤다.
“훈련도 훈련인데, 회사 사장님 한 번 해볼래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나는 휴대폰을 꺼내 은행 어플을 연 다음, 용호에게 건네줬다.
“지금 바로 전부 사용해도 되는 금액인데요. 그걸로 투자회사 한 번 차려봐요.”
“아니 갑자기 왜?”
솔직히 이럴 생각은 없었다.
그렇지만, 서류의 맨 뒷장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거기에는 중소기업인 이 회사의 문제점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그냥 꿈의 기업을 한 번 만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