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_릴라와 도미니크(3)
얼음술사들이 나타난 이후로 전투는 점점 격렬해졌다.
백여 명에 달하는 얼음술사가 수천에 달하는 좀비를 막아줘서 그마나 숨통은 틔였다.
“하유신을 도와라!”
드미트리가 앞에 있는 수십 마리의 좀비를 한 번에 얼리며 외쳤다.
그러자 후미에 있던 얼음술사들이 도미니크에게 냉기의 화살을 날렸다.
나 또한 그에 맞춰 오러를 뿜어냈다.
그때 다가오던 냉기들이 급하게 선회하더니 도미니크가 아니라 날 공격했다.
콰직!
서둘러 호신강기를 운용해 냉기를 막았지만, 도미니크의 주먹이 호신강기를 후려쳤다.
다행히 피해는 없었지만, 발고랑을 만들며 한참 뒤로 미끄러졌다.
도미니크와 거리가 벌어진 사이, 놈은 염력으로 집채만 한 바위를 들어 올려서 좀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얼음술사들의 머리 위에 떨어뜨렸다.
저대로 놔두면 얼음술사들은 납작한 쥐포가 될 게 뻔했다.
블레이드 샷, 블레이드 샷, 블레이드 샷
콰아아앙
순식간에 검격을 날려서 바위를 살상력이 적은 돌멩이 크기로 만들었다.
그렇게 얼음술사들을 구했지만, 멀리서 도미니크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돌멩이들이 떠오르더니, 토네이도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제길!”
어떤 식으로 저 많은 돌멩이를 처리할지 골치가 아플 때였다.
드미트리가 앞으로 나서더니, 얼음벽을 생성했다.
콰콰콰콰콰콰콰
돌멩이가 얼음벽에 부딪혀서는 가루가 되었다.
그렇게 도미니크의 공격을 막았지만, 드미트리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했다.
한 번만 더 그런 공격이 쏟아지면, 막지 못할 게 분명했다.
“크헉~”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얼음술사들이 좀비들의 숫적 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
솔직히, 얼음술사들이 도와준 것은 고마웠지만, 이들이 내 기술에 휘말릴까 봐 마음 놓고 활개 치기가 어려웠다.
이대로는 릴라와 도미니크를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죽을 수도 있기에 서둘러 드미트리에게 다가갔다.
“드미트리씨.”
“네?”
“얼음술사들을 한곳에 모이게 하신 후에 방어에 집중해주십시오.”
“아닙니다. 저희는 모습을 받쳐서 하유신씨를 도와 조국을 지키겠습니다.”
드미트리는 내가 뭘 걱정하고,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방해되니까 그러는 겁니다.”
“네? 방…해요?”
열정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열정이 방해되고 있었다.
“네. 그러니까 빨리요.”
“…알겠습니다. 모두 여기로 모여라!”
명령이 떨어지자, 얼음술사들은 좀비들을 견제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고, 도리어 너무나 느렸다.
“지금 사용할 게 아닌데, 어쩔 수 없지.”
“네? 그게 무슨?”
드미트리가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지금은 대답보다는 행동이 먼저였다.
비토 형이 준 시계를 조작해서 9개체의 강철인형 전부를 불렀다.
모든 강철인형이 소환되자, 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좀비들을 처리해.”
명령을 하달받은 강철인형들은 두 눈을 빛내며 좀비들에게 치켜들어갔다.
순수 무력으로 따지면, S급 헌터보다 약하지만, 통각이 없고, 두려움이 없는 강철인형은 좀비에게 천적이었다.
이빨도, 손톱도 모두 강철인형에게 통하지 않았다.
강철인형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좀비들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저거 하나에 천억 가까이한다고 했지?’
잠깐 딴생각을 한 후에 다시 드미트리를 바라봤다.
“왜…왜 그러십니까?”
“여기 오기 전에 볼 때 얼음 굴 같은 걸 만들던데, 지금도 가능합니까?”
“네…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원소력을 다 쏟아부으면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해주세요.”
“네?”
“빨리요!”
드미트리가 얼음굴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을 때 나는 빠르게 도미니크에게 달려갔다.
“아람! 피해!!”
릴라와 도미니크의 협동 공격에 거의 걸레짝이나 다름없이 변한 아람이 마지막이라는 듯 강한 힘을 쏟아내고는 공중으로 도망쳤다.
비기-절단검
보이지 않는 절삭의 힘이 날아갔다.
지금까지 내 기술을 방어했던 도미니크가 높게 점프했고, 비기에 의해 왼팔이 잘린 릴라는 몸을 숙였다.
그렇게 아람은 구했지만, 적들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다.
꽈드드득
그렇게 잠깐의 시간을 버는 동안 드미트리가 얼음의 방어막을 완성했다.
“유신. 다음 작전은 뭐냐?”
언제 다가왔는지 아람이 상처 입은 몸으로 내 옆에 둥둥 떠 있었다.
아람의 모습은 처참했다.
오른쪽 허벅지와 왼쪽 팔은 금방이라도 뜯겨나갈 것처럼 덜렁거렸고, 그 상처 부위에서 푸른 불꽃이 조금씩 새어 나왔다.
“괜찮아?”
“아니. 이제 도깨비불 한두 방만 쓰면 힘을 다할 것 같다.”
“일단 이거 받아.”
중급 마나석을 꺼내 아람에게 건네줬지만, 아람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상태에서는 마나석을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도 일단 받아. 나중에라도 사용하면 되잖아.”
“알았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어떻게 하긴 가지고 있는 수를 다 써야지.”
“응?”
잠시간의 대화가 오고가는 동안 릴라와 도미니크가 자세를 가다듬고는 무시무시한 눈빛을 한 채 날 바라봤다.
“이렇게 할 거야. 땅의 축복.”
[네. 람이시여.]“좀비부터 처리하자.”
[람의 힘을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케이!”
땅의 축복이 몸 안에 있던 포스를 끌어갔다.
순간적으로 약 30프로의 포스가 사라졌고, 우리가 있던 곳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좀비를 무시하고, 저들을 공격해라.”
주먹으로 좀비들의 머리를 깨뜨리던 강철인형들이 릴라와 도미니크에게 달려들었다. 그동안 땅의 진동은 심해졌고, 좀비들이 있던 곳의 땅이 갈라졌다.
“쿠에에엑~”
땅에 생긴 균열은 무자비한 포식자가 되어서 좀비들을 집어삼켰다.
“땅의 축복. 버프 좀 부탁할게.”
[람이시여. 방금 너무나 큰 에너지를 소비해서 겨우 10분 정도만 가능합니다.]
처음 버프를 받았을 때 3시간 동안 유지가 됐었다.
하지만, 지진을 한번 일으켰다고 시간대가 너무나 짧아졌다.
역시 땅의 축복은 활용도는 좋지만, 극악의 효율을 자랑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황금빛 에너지가 가슴을 시작으로 전신으로 퍼졌다.
그동안 강철인형들은 릴라와 도미니크에게 당해서 한 대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저게 한 대에 천문학적인 금액이 드는 걸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모든 강철인형이 부서지고 나서야, 땅의 축복에 버프가 활성화됐다.
“아람! 도깨비불!”
릴라와 도미니크에게 당하게 있어서 인지 아람은 군말하지 않고 도깨비불을 내게 보내주었다.
이 도깨비불을 이화접목으로 받아들이자, 어느새 칠성검은 청염으로 불타올랐다.
“이제 제대로 시작해볼까?”
***
교황청의 순간이동 게이트 관리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대체 언제 열리는 거야?”
“이제 막 좌표 확인이 끝나서 각인 중입니다.”
“아직도 각인 중이라고?”
순간 욱해서 말하기는 했지만, 앞에 있는 교황청 공간이동 관리자인 미켈 모르네의 표정이 구겨졌다.
“뭐야? 불만 있어? 늦은 건 늦은 거잖아.”
팩트를 말했을 뿐인데, 미켈의 표정은 도무지 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벌써 10분이 넘었는데도,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우리 13기동 타격대의 하나(?)뿐인 막내이자, 오늘 자신의 집으로 나와 레이지를 초대할 하유신의 구조요청이 들어왔는데, 이들은 너무나 느긋했다.
“그만해.”
“마리. 사실은 사실이잖아.”
“후~ 우리 교황청의 공간이동 마법사들은 전세계에서 알아주는 사람들이야. 다른 곳이었다면, 아직도 좌표 확인도 못 하고 있었을 거야.”
“지구의 능력이 그렇게 떨어진다고?”
“아니? 13기동 타격대의 눈이 높은 거야.”
솔직히 인정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일루시안의 마법적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지구의 마법사가 더욱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이 본 지구의 마법사는 13기동 타격대이자, 원소술사인 알프레도와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네크로맨서 다리우스가 전부이지만 말이다.
“아…우리 막내 유신이 다치면 안 되는데…”
“지금? 이 구조요청을 하유신님이 하신 건가요?”
계속 툴툴거리던 미켈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어왔고, 대답은 옆에 있던 마리가 해줬다.
“응. 맞아”
“이런… 하유신님의 구조 요청이었다. 더욱 서둘러라. 몸을 갈아 넣어서라도 해. 다음 공간이동이 없다는 식으로 하라고!”
갑자기 열정적으로 바뀐 미켈과 또 그에 호응하는 공간이동 마법사들이었다.
그렇게 열정과 마나를 갈아넣자, 5분도 되지 않아서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렸다.
“헤엑~ 헤엑~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헤엑~”
“그…그래. 고생했어.”
대체 뭘 어떻게 했는지 미켈은 5분 만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빨리 가셔서 하유신님을 구해주십시…”
끝내 미켈은 말을 마치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평소의 성격이라면, 쓰러지든 말든 무시했을 테지만, 왜인지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부축한 후, 조심히 눕혔다.
“마리. 괜찮은 거야?”
“여기는 나한테 맡기고 어서 유신이한테 가봐.”
“응. 알았어. 근데 갑자기 왜들 이래?”
“이들에게 유신은 특별한 존재라고 보면 되거든.”
자신에게 유신은 사랑하는 동생을 찾아준 은인이자, 부대의 막내이기에 특별했다.
대체 유신은 이들에게 뭘 했길래 이렇게까지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에휴~ 알았어. 궁금증은 나중에 풀고, 이만 갔다 올게.”
모든 해답은 유신이 가지고 있기에 그대로 게이트에 뛰어들었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뒤로하고, 도착한 곳에서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유신이 푸른 화염으로 불타오르는 검을 들고 상대를 압박하는 모습이었다.
“뭐야?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네?”
유신과 적들은 정신없이 싸움을 벌이고 있어서 자신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단 한 명은 눈치챘다.
재빨리 몸을 움직여 그녀의 앞으로 다가간 후, 목을 틀어잡았다.
“크윽…”
신음을 내뱉을 뿐, 목줄이 잡혀 있어서 그런지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더러운 반마족이 왜 여기에 있지?”
“릴라님!!”
“선배!!”
적으로 보이는 남성과 유신이 싸움을 멈추고는 날 돌아봤다.
“유신 안녕~”
“아니 어떻게?”
“어떻게는 네가 구조요청 보냈잖아.”
“아…그래서 선배가 직접 오신 거에요? 제가 위험할까 봐?”
뭐 백프로 맞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혹시나 유신이 다치기라도 하면, 오늘 자신과 레이지에게 저녁 초대를 못 하기에 서둘러 온 것도 있기는 했다.
그때, 뾰족한 송곳 같은 것들이 내게 날아왔다.
충분히 쳐낼 수 있지만, 귀찮은 감도 있어서 반마족의 몸을 휘둘렀다.
“크헉~”
“릴라님!! 이놈 릴라님을 놓치 못할까?”
“쟤는 왜 저렇게 흥분해? 야, 공격은 내가 한게 아니라, 네가 했어. 그러니까 얘를 다치게 한 건 내가 아니라 너야.”
“이익!!”
화를 내는 놈을 바라본 후, 유신을 바라봤다.
자연의 기운이 유신의 온몸을 덮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운이 그렇게 길게 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짧은 시간 강한 힘을 부여하지만, 그만큼 육체의 무리가 가는 힘이었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그래. 어찌 보면 능력도 재능도 없는 유신이 너한테 가장 어울리는 능력이다.”
“오랜만에 뵙는데, 팩폭은 너무 합니다!”
“됐고, 빨리 쟤부터 처리해.”
“제가요?”
“응!”
유신은 잠시 무언가 포기한 표정을 짓더니, 검을 들어서 놈에게 겨눴다.
그런데, 이대로 전투가 진행되면, 저 악당은 내가 목을 틀어쥐고 있는 반마족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좋아. 이렇게 하지. 야 너. 이름이 뭐야?”
“감히!!”
제대로 대답이 나오지 않자, 그대로 손에 힘을 줘서 반마족의 목을 더욱 강하게 조였다.
“커어억…”
“봤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얘는 죽어. 그래도 좋다면, 지금처럼 반항해.”
“도미니크다.”
“좋아. 도미니크. 네가 유신이를 이기면, 이 반마족 이름이 랄라라고 했나?”
“맞다. 릴라님이시다.”
“그래. 릴라 풀어 줄게.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선배!”
유신이 황당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지만, 생각을 돌릴 생각은 없었다.
“하유신. 난 널 믿는다. 그러니까, 이겨.”
“…휴우~ 알겠습니다.”
선배의 응원에 한숨을 내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은 참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유신이 힘을 낼 수 있게 한마디 해주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유신이 네가 이기면, 상품도 있으니까. 진짜 파이팅!”
“……”
유신은 사춘기인지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도미니크에게 검을 겨눴다.
누가 신호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쾅쾅쾅쾅쾅
검과 주먹.
검기와 차크라.
오러와 염력.
둘 다 모두 최선을 다해서 서로를 죽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자, 답답함이 느껴졌다.
버프로 인해 뛰어난 신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총량.
모두 유신이 훨씬 유리했다.
그래서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가끔 유신이 한 박자씩 빠르거나, 늦게 움직여서 동수를 이루고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 알겠네.”
저녁 식사 초대를 받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조언해주는 게 먼저인 것 같았다.
“유신아 일단…”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신의 검에서 무형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도미니크의 목을 잘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명확하게 승자는 정해졌다.
더 이상 반마족을 잡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기에, 손에 힘을 줘서는 반마족 자체를 이세상에서 소멸시켰다.
그리고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유신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너 대체 지금까지 어떤 수련을 해온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