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_릴라와 도미니크(2)
릴라와 도미니크는 이제 터만 남아있는 다 무너진 곳에 있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공격하고 싶었지만, 지금 공격하면 제대로 된 뒤통수를 칠 수 없었다.
저들이 방심하고 당할 수밖에 없는 최상의 타이밍을 찾아야 했다.
“아람. 저들 머리 위에 있다가 내가 신호하면 도깨비불로 공격할 수 있어?”
“조금 위험하다. 특히, 저 남자가 감각이 뛰어나다.”
“멀리 떨어져서는?”
“최소 공중에 백미터 이상은 올라가야 안 걸릴 거다.”
백미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거리였다.
하지만, 기습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있기는 한데, 이게 힘이 많이 들어서. 최상급 마나석만 있으면…”
대체 도깨비의 욕심은 어디가 끝일까?
아공간에서 상급 마나석을 하나 꺼내줬다.
“최상급 마나석이 누구 개 이름도 아니고. 이거면 되지?”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에휴~ 싫으면 말아.”
상급 마나석을 다시 아공간에 넣으려고 하자, 아람이 자신의 작은 손으로 내 손목을 잡았다.
“어허~ 못 본 사이에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해졌어.”
“어렵다며.”
“맞아. 근데, 어렵다고 했지 못한다고는 안 했어.”
처음 봤을 때 아람은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다.
장난끼 가득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했었다.
하지만, 대도깨비의 지위를 잃고, 내 펫이 된 후로 뭐라고 해야 할까?
‘좀 약아졌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건 생각으로 끝냈다.
입 밖으로 내뱉으면 지금까지 어르고 달랬던 아람과의 관계에서 금이 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부탁할게. 내가 공격하면 바로 도깨비불로 릴라를 공격해줘.”
“걱정하지 마라.”
아람은 상급 마나석을 받자마자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할 것인지, 얼른 입 안에 넣고는 몸을 숨긴 채 하늘 위로 날아갔다.
강철인형들도 꺼낼까 생각해봤지만, 그건 보류하기로 했다.
아무리 기술력이 집약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 움직일 때 약간의 소음을 내기 때문이었다.
“땅의 축복.”
[네. 람이시여.]
“내게 저번에 걸었던 버프를 걸면 얼마나 지속되지?”
[그동안 주신 마나석으로 꽤 많은 양이 모여서 약 다섯 시간 정도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오케이. 알았어. 근데, 전부터 궁금했는데, 너도 싸울 수 있어?”
땅의 축복은 꽤나 활용도가 높았다.
손가락 두 마디 정보 밖에 하지 않지만, 다양한 능력이 가지고 있었다.
공간이동, 방어, 버프, 저주 봉인, 추적에다가 치유까지. 그런 땅의 축복이 공격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면?
[죄송합니다. 딱히 공격 능력은 없습니다. 그저 지진을 일으키거나, 땅이 솟구치게 하는 게 전부입니다.]
지진과 땅을 솟구치게 한다고 했다.
본인은 별거 아닌 능력으로 치부하고 있지만, 조금만 다르게 보면 꽤나 뛰어나 기술이었고, 충분히 공격 능력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아니야. 그거면 충분해. 너도 혹시 모르니까 이걸로 에너지 축적해둬.”
[알겠습니다. 람이시여.]
내가 땅의 축복에게 건네준 것은 상급 마나석이었다.
상급 마나석이 땅의 축복에게 얼만큼의 효율을 발휘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뭐든지 대비할 때였다.
그리고 싸우다가 여차하면 최상급 마나석을 활용해 도망가는 것도 염두해뒀다.
“슬슬 끝나가는군.”
이것저것 준비하는 동안 릴라의 주문이 끝이 났다.
대체 몬스터도 없는 이곳에서 뭘 그렇게 공을 들이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두고 봤다.
그때 눈 덮인 땅에 반쯤 썩은 손이 솟구쳤다.
“쿠어어어엉~”
수천을 훌쩍 넘는 좀비가 땅에서 일어났다.
내가 당황하는 사이, 릴라가 약간은 지쳤는지 팔을 내렸고, 도미니크가 그런 릴라를 부축했다.
‘지금!’
최대한 빠르게 앞으로 쏘아지면서 검을 중단세로 들어 올렸다.
유성 찌르기-변형 유성 폭발
공격 기술 중 가장 빠르면서 폭발력이 강한 기술을 선보였다.
좀 멀었지만, 이 거리라면 충분히 검이 릴라에게 닿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도미니크의 염동력이 조금 더 빨랐다.
콰지지직 콰앙!
염동력으로 일으킨 땅을 뚫는 동안 릴라와 도미니크는 뒤로 물러나서 공격을 손쉽게 피했다.
재차 검을 휘두를까 하다가, 일단 뒤로 물러났다.
돌가루가 가라앉자, 릴라는 날 보게 됐다.
그녀는 뭐 때문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두 눈이 충혈되어서는 날 매섭게 노려보며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유신 이놈!!!”
화르르륵
콰아앙
날 신경 쓰는 동안 아람의 도깨비불이 릴라에게 닿았다.
“끄아아아악!!”
“릴라님!!”
도깨비불은 그 이후로 전투기가 작전 지역에 폭격을 쏟아붓듯이 한동안 계속됐다.
나도 마냥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칠성검을 들어서 언제든지 공격할 준비를 끝냈다.
도깨비불 폭격은 한순간 멈췄고, 그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비기-절단검
단순한 휘두름이었지만, 내가 가진 모든 깨달음을 이 한 번의 검격에 넣었다.
서걱!
확실하게 무언가를 베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지만, 고작 릴라의 왼팔 하나를 떨어뜨렸을 뿐이었다.
“크윽…”
릴라가 오른손으로 잘린 왼팔을 지혈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몸 이곳저곳에는 아람의 도깨비불이 조금씩 타오르고 있었다.
“아깝네. 확실히 죽일 수 있었는데…”
내 딴에는 철저하게 준비했지만, 고작 팔 하나가 다였다.
그렇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칠성검을 고쳐 쥐며, 릴라에게 달려들려고 할 때였다.
“하유신!!”
도미니크가 귀청이 떨어질 듯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양손을 위로 들어 올리자, 주위에 있던 바위들이 같이 떠올랐다.
“감히! 넌 절대 쉽게 죽을 생각하지 말아라!!”
바위들이 도미니크의 손짓에 따라 내게 날아왔다.
검 끝에 일점술의 묘리를 담아서 바위들을 부수고 앞으로 한 걸음씩 다가갈 때였다.
집채만 한 바위가 공중에서 떨어졌다.
베어낼 수 있지만, 그저 앞으로 쏘아지듯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블레이드 샷!
콰콰쾅
바위들과 블레이드 샷의 폭발로 인해, 먼지가 피어올랐다.
먼지를 뚫고 릴라에게 검을 찔러넣으려고 할 때였다.
언제 다가왔는지 도미니크의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급하게 검병으로 주먹을 막았다.
쾅!
릴라를 해치울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날아갔지만, 그와 별개로 도미니크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도미니크를 상대하는 동안 아람은 다친 릴라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런 비겁한 놈들!!”
다른 사람도 아니라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마족 숭배자에게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이렇게 욕할 정도면 확실히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에에에엑.”
그때 좀비들이 내게 다가왔다.
서걱
순식간에 검을 휘둘러서 좀비의 머리를 베어냈지만, 아주 잠깐의 틈을 보였는지 도미니크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쾅쾅쾅쾅쾅
검과 주먹의 부딪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다시 도미니크와 내가 호각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쿠에에엑!”
위협은 되지 않지만, 신경을 거슬리는 좀비들이 우리 주위를 포위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몸을 회전해서 검기를 뿌렸다.
포스 소모가 많은 만큼 도미니크에게도 위험이 됐는지 뒤로 몸을 피했고, 검기는 뒤에 있는 좀비들에게 닿았다.
“어? 방금 피한 거야? 이건 부담이 됐나 보네?”
“언제까지 그렇게 기고만장할 수 있는지 두고 보마.”
도미니크가 손을 들어 올리자, 뒤에 있던 좀비들이 떼거지로 떠올라서는 내게 다가왔다.
좀비들은 내게 아무런 해가 될 수도 없을 정도로 약하지만, 수천에 달하는 좀비들은 도미니크와 싸우는 데 많은 악영향을 줬다.
그렇게 거슬리는 좀비를 상대하고 있을 때, 도미니크가 허를 찌르듯 공격했다.
콰앙
공격을 막자마자 서둘러 반격을 가했지만, 도미니크는 좀비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아람!! 여기로 도깨비불 하나만 보내줘!!”
좀비들을 한 번에 죽이기 위해 아람에게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슬쩍 아람과 릴라의 싸움을 지켜봤다.
릴라가 왼팔을 잃은 채 선전하기 시작했고, 아람이 밀리기 시작했다.
실수로라도 도깨비불을 여기에 보낼 여력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수단으로 땅의 축복에 버프를 받으려고 할 때였다.
“조국을 지키자!!”
갑자기 얼음술사들이 나타나서는 좀비들을 얼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선두에는 드미트리가 얼음 결정체를 뿌리며 빠르게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도미니크는 갑자기 나타난 얼음술사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는 아공간에서 푸른색 보석을 꺼내서는 깨뜨렸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교황청에서 지원 요청이 올 것이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되지만, 그동안 가만히 있을 생각도 아니었다.
“네 상대는 나야!”
얼음술사들에게 다가가는 도미니크에게 검기를 날려 견제했다.
그렇게 얼음술사들의 도움으로 다시 도미니크와 일 대 일 상황에 놓였다.
***
라이언은 요즘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반쯤은 포기했던 동생 레이지를 찾아서 다시 만나게 됐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즐거운 시간까지 보내니 더할 나위 없었다.
“쇼핑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오늘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아냐. 괜찮아.”
“괜찮기는 식당도 예약해놨어.”
“오빠…”
힘없이 말하는 레이지의 모습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근 십 년간 납치되어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고 하는데, 자신도 모르는 병이 생긴 것이 아닌지 걱정됐다.
“어디 아파? 내가 마리한테 부탁해서…아니. 지금 바로 이거 마셔.”
“아냐. 괜찮아. 피곤해서 그래.”
“그래? 정말 괜찮은 거지? 어디 몸이 안 좋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응. 정말 괜찮아.”
아무리 레이지가 괜찮다고 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전에는 만나면 그렇게 자주 싸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싸웠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거 마셔.”
“대체 이게 뭔데?”
“아! 포션이야 포션. 몸에 좋아.”
“포션?”
레이지는 내가 억지로 건네준 포션을 마실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유심히 바라만 봤다.
“빨리 마셔. 이게 체력 회복에도 도움이 돼.”
“하지만, 포션은 비싸잖아. 나 조금 피곤한 것뿐인데…”
“이 오빠 돈 많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동생한테 고작 포션 하나 못 줄 것 같아?”
“알았어…”
거듭 권하고 나서야, 레이지가 포션을 들이켰다.
그렇게 포션을 다 비우는 모습을 보자, 조금은 안심이 됐다.
“그런데, 오빠. 이거 무슨 포션인데 이렇게 투명해?”
“별거 아니야. 그냥 피로 회복용이야.”
“응. 그렇구나… 그래도 고마워. 마시고 나니까 힘이 나는 것 같아.”
당연한 거였다.
방금 레이지가 마신 것은 불치병도 낫게 할 정도로 치유력이 좋은 ‘성녀의 축복 받은 포션’이었다.
물론 이 포션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한 달에 세 병이 보급이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이지에게 주는 거, 먹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오늘은 피곤한 것 같으니까 식당 예약은 취소하고, 들어가서 쉴까?”
“응. 알았어…”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 이 오빠가 그래도 요리 솜씨가 좀 있는데…”
“사실은…”
“사실은?”
요 며칠 같이 지내면서 먹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그렇게 닦달을 해도 한마디 하지 않았던 레이지였다.
그래서 속으로 어떻게 해서든 레이지가 먹고 싶은 것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였다.
“하유신씨네 집밥.”
“응? 하유신씨네 집밥? 그…하유신이 내가 알고 있는 그 하유신?”
“…응.”
레이지는 이 말을 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얼굴까지 붉히고 있었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오늘 저녁 초대 받아서 가면 되지.”
“아니. 괜찮아. 내가 괜한 말을 했어.”
“괜찮기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나 유신이랑 친해. 부탁하면 바로 들어줄 거야.”
“하지만… 알았어. 부탁할게.”
“그래.”
요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면서 레이지의 첫 부탁이었다.
‘그래 이 오빠가 해줄게.’
***
“뭐? 유신이 임무에 나갔다고?”
“응. 왜? 유신이한테 볼 일 있어?”
“응. 부탁할 게 있어서. 언제 돌아오는데?”
“확답을 못 하겠네. 아까 유신이한테 전화가 와서 마족 숭배자들을 쫓는다고 했거든. 일단 위험할 것 같아서, 지원을 보내기는 했는데… 근데 무슨 일인데?”
마리의 말이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분명 방금까지 레이지한테 오늘 유신이네 집에 초대 받아서 집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그리고 레이지가 기대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꼭 들어주고 싶은데,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끙끙거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낙담하고 있을 때였다.
응접실 문이 벌컥 열리며 마리의 부관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성녀님. 하유신님에게서 긴급 구출 신호가 들어왔습니다”
“뭐?!”
화들짝 놀란 마리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오늘 저녁을 레이지와 함께 유신의 집에서 먹을 수 있는 아주 쉽고 간단한 방법이 떠올랐다.
“마리. 안내해. 내가 직접 유신이를 구하러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