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_강철의 기사(2)
몬스터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철 인형에 대한 대답을 뒤로 미룰 수 있었지만, 수많은 몬스터가 마을로 향하는 건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몬스터라니요?”
슬라브는 믿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걸 믿으라고 하면,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한다.
여기서 슬라브를 설득시키기 위해 시간을 소모하는 게 아깝게 느껴질 때였다.
쓰러져 있던 강철 인형이 없는 왼팔을 대신해서 오른팔을 땅에 짚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몬스터다. 모두 마을 안으로 들어가라.”
내 말을 믿지 않던 슬라브가 급하게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고작 강철 인형이 일어났다고 갑자기 내 말을 믿는 게 황당했지만, 지금은 전투 준비를 할 차례였다.
우선 아공간에서 흑색창 다섯 자루를 꺼내서는 언제든지 집어 던지기 편하게 바닥에 박아 넣었다.
“괜찮겠지?”
포스 미사일이나, 화려한 광역기를 사용했을 때, 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어서 주변 지형을 확인했다.몬스터가 오는 방향은 상관없었지만, 산맥의 특성상 울림으로 인해, 눈사태가 일어나면 마을까지 피해가 갈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네.”
꺼내놨던 흑색창을 다시 아공간에 집어 넣으려고 할 때였다.
강철 인형이 내게 다가오더니, 꽂혀 있던 흑색 창 하나를 뽑아 들었다.
“무기술도 입력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 가능할까?”
역시나 강철 인형에게서는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물론 대답을 바라지 않았지만, 궁금증은 생겨났다.
창술은 얼마만큼의 힘을 발휘할지, 임무 중이던 강철 인형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는 뭔지.
일단은 궁금증을 뒤로하고 이제 육안으로 보이는 몬스터. 그러니까 예티 무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넌 여기서 마을 사람들을 지켜. 그러니까 단 한 마리도 마을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별로 기대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강철 인형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이는 것 같았다.
호기심은 나중에 충족하기로 하고 일단은 몬스터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몬스터 대백과사전에 나온 예티는 단체 생활을 하지만, 자신들의 영역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단체로 이곳으로 소풍 온 건 아닐 거고.”
본인이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단 자리를 박찬 후, 앞으로 쏘아졌다.
그렇게 순식간에 예티 무리에 도착한 후에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눈사태만 생각하지 않았다면, 광역기를 사용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 싸울 수 없기에 계속 검을 휘둘렀다.
마을로 접근하려고 하는 예티들의 목숨을 취하자, 남은 예티들은 슬슬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도 그냥 보내주고 싶은데, 나중에 다시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까.”
칠성검을 허리춤에 착용해서는 발검 자세를 취했다.
그 상태에서 검에 힘을 집중한 다음, 발검과 동시에 탄검기를 뿌렸다.
검기는 선이 되어서 이곳저곳으로 날아갔고, 도망가던 예티들의 몸을 갈랐다.
모든 예티를 처리한 걸 확인하고 마을로 돌아왔다.
“심하게 고장난 것 같은데,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마을 입구 앞에는 강철 인형이 오른쪽 눈을 빛내며 흑색창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오른쪽 눈에 뿜어지던 빛이 사그라지더니,
쿠타타탕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하유신님. 이게 무슨 일인가요? 그리고 이 로봇? 이랑 무슨 관계이신가요?”
내 입으로 대답하기 곤란했다.
역시 이럴 때는 지원군 요청이 최고였다.
“잠시만요.”
나는 위성 전화기를 꺼내서 비토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역시 형이라는 존재는 참 좋은 것 같았다.
게이트를 통해 도착한 비토 형은 제 2심판대원들과 함께 순식간에 상황을 수습했다.
“그러니까, 1호가 여기서 마을 사람들을 지켰다고?”
“그런 것 같아요. 망가진 상황에서 몬스터가 나타나니까 전원이 들어왔어요.”
“흠…특이한 일이군. 일단 알았네. 뭐 겉으로 보기에는 마나석이 다 되어서 파워가 부족한 거였는데, 정확한 것은 교황청으로 데리고 가서 확인해 봐야지.”
“아~ 그럼 제 임무는 이렇게 끝나네요. 오랜만에 집에 가서 좀 쉬어야겠어요.”
눈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벗어나 엄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질 때였다.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토 형이 보였다.
“설마… 바로 임무가 내려온 거예요?”
“임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구나.”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자 여기.”
비토 형은 품에서 공문 서류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걸 안 받고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라, 비토 형이 건네주기에 받아서는 펼쳐봤다.
그리고 곧장 후회가 몰려왔다.
“와~ 세계 대통령의 일처리가 이렇게 빠를 줄 몰랐네요.”
“하하하. 유신이 자네라면 빨리 해결할 수 있을 거네.”
공문의 내용을 간추리면, 현재 여러 나라에 몬스터가 자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민간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뒷장을 넘기니 해결해야 하는 나라들이 적혀 있었다.
“어? 그런데 한국은 없네요?”
“한국은 아직 개발이 덜 된 북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미 안정화되어서 그렇네.”
“그렇군요.”
명단을 쭉 읽어 내려가니, 이 지역의 몬스터들도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일단 이 지역도 명단에 들어가 있네요?”
“혼자서는 모든 지역 커버가 불가능할 거네. 그래도 각 지부에서 세계 정부에 협조해서 지부 별로 움직일 거야. 그리고, 러시아 지부에서도 얼음술사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군.”
“다행이네요. 그럼 전 이만 일어나 볼게요. 여기만 빨리 처리하고 집에 좀 갔다 와야겠어요.”
“이걸 가지고 가게.”
비토 형이 건네준 것은 손목시계였다.
“시계요? 마음만 받으면 안 될까요? 검을 쓰는데, 시계를 착용하면 손목이 약간 부자연스럽던데.”
“다음에는 참고해서 만들도록 하지. 그래도 도움이 될 거네. 그 안에 강철 인형 열 개체가 들어 있네. 시계를 통해 부를 수 있고, 명령을 내릴 수 있지.”
교황청에서 마나석으로 개발하고 있는 전투 인형으로, 한 개체가 S급 헌터에 가까운 힘을 발휘한다고 알고 있었다.
빠르고 완벽하게 임무를 처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아티팩트였고, 이런 것은 절대 사양하면 안 됐다.
“그렇다면 감사히 쓰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우리는 마을의 촌장이 빌려준 회관에서 나왔다.
제 2심판대는 벌써 상황을 정리했는데, 떠날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마을을 지키던 강철 인형 1호는 관짝과 비슷하게 생긴 커다란 함에 정리됐다.
“그럼. 여기서 헤어지겠네요.”
“다음에 보도록 하지.”
임무를 위해 이만 헤어지려고 할 때였다.
올가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우리 사이에 끼어들더니, 외치듯이 말했다.
“강철의 기사님을 어떻게 하시려고 하는 거예요?”
비토 형이 올가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빤히 바라 볼 때였다.
내가 조심히 다가가서 비토 형에게 귓속말로 이 상황을 알려줬다.
“저 소녀가 1호를 강철의 기사라고 해요. 들어보니까, 1호가 소녀의 목숨을 몇 번 구해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군.”
상황 파악을 끝낸 비토 형은 자세를 낮춰서 올가와 눈높이를 맞췄다.
“올가라고 했나? 성이 어떻게 되지?”
“스텐. 올가 스텐이요.”
“그래. 올가 스텐. 너도 알다시피 강철의 기사는 많이 다쳤단다. 보이지?”
올가는 비토 형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망가진 1호가 있었고, 아이의 눈빛에는 슬픔이 묻어나왔다.
아이의 눈빛에서 슬픔이 묻어 나왔다.
“네…”
“강철의 기사가 올가에는 어떤 존재니?”
“…기사님이요.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를 지키는 기사요.”
“그래. 그 기사님이 많이 다쳤어. 그런데, 기사님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이 아저씨가 있는 교황청이거든. 이 아저씨를 믿고 올가의 기사님을 맡겨줄래?”
잠시 고민하던 올가는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강철의 기사님을 꼭 치료해 주세요.”
“응. 걱정하지 마렴.”
비토 형은 올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황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심판자 중 한 명이 1호를 아공간에 넣으려고 했는데, 비토 형이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그럼 유신. 먼저 가도록 하마.”
“네. 들어가세요~”
교황청과 연결된 게이트가 열렸다.
비토 형이 손수 1호의 관짝을 들고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고, 다른 심판자들도 모두 게이트를 통해 사라졌다.
솔직히, 비토 제라니라는 사람을 자신의 의형으로 삼은 것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한 손에 꼽는다고 생각했다.
‘임무 중에는 그렇게 무섭다는데, 일반인들에게는 정말 친철하구나.’
모두가 떠난 그곳에 뻘줌하게 계속 있을 수 없기에 홀로 조용히 마을 입구로 향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마을을 떠나려고 했지만, 내가 떠난 후, 이 마을은 무방비 상태가 되고 만다.
그래서 시계를 조작해, 강철 인형 하나를 불렀다.
“너는 다른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여기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막으며 마을 사람들을 지켜라.”
강철 인형은 눈을 빛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아공간에서 흑색창을 하나 꺼내 강철 인형에게 쥐어 주고는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
릴라는 왼쪽 얼굴만 덮는 가면을 쓰고, 왼손을 장갑으로 가렸다.
일반적인 공격이거나 화상은 순식간에 치유할 수 있었지만, 유신의 마지막 일격으로 생긴 이 상처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릴라님. 준비 끝났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도미니크를 바라봤다.
자신의 부하 중에서 유일하게 노예의 인을 박아 넣지 않았는데, 끝까지 자신만을 위하는 인물이었다.
“도미니크.”
“네. 릴라님.”
“지금까지 내 옆에서 많은 일을 했던 걸로 알고 있다. 혹시 원하는 게 있느냐?”
“없습니다.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부하라면 한 번 튕기는 걸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정말로 저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게 자신의 오른팔인 도미니크였다.
“나중에라도 내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으면 편하게 말해라.”
“…알겠습니다.”
대화를 끝낸 후, 도미니크가 준비해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수백 마리에 달하는 설원의 오크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오른손을 편 후, 설원의 오크 부족을 향해, 핏빛 파동을 발사했다.
파동에 닿은 오크들은 고통스러운지 괴성을 내지르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렇게 모든 오크가 기절하고 나서야, 릴라가 도미니크를 바라봤다.
“다음은 어디지?”
“이제부터 추위가 심해지는 곳입니다. 릴라님께서는 이만 들어가서 쉬시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니. 나도 움직이겠다. 가만히 있으면 날 이렇게 만든 놈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거든. 조쉬와 루이스는 아직 유신을 건들지 말라고 했나?”
“네. 하유신이 13기동 타격대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어서 건들면 위험하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놈의 13기동 타격대.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교에서 유일하게 전설들과 같은 급으로 경계 명령을 내려놓은 놈들이었다.
“겁쟁이들 같으니라고. 일단 움직이지.”
“…알겠습니다. 모시겠습니다.”
그렇게 도미니크와 함께 설원의 오크들이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촉감으로 느끼는 몬스터들의 이동.
아무리 다리우스 선배가 잘 알려줬어도 쉽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이곳은 시베리아로 눈 때문에 촉감을 느끼는 게 더욱 어려웠다.
“어쩔 수 없네. 아람이라도 불러야지.”
마족 숭배자에 대해 조사하는 아람을 부르는 게 미안했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
오른손을 앞으로 뻗을 때였다.
“취이이이이익!!!!”
산맥을 울리는 오크들의 단체 합창 소리가 들려왔다.
“땅의 축복!”
[네. 람이시여.]
“혹시 지금 들리는 오크들의 울음소리가 어디서 나는 지 알고 있어? 아니 그곳으로 이동 시켜 줄 수 있어?”
[네. 가능합니다.]
“오케이.”
[중급 마나석 2개가 필요합니다.]
순간 멈칫했다.
땅의 축복은 정말 다재다능하지만, 한 번 사용하기 위해서는 비쌌다.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아공간에서 중급 마나석을 2개 꺼냈다.
“빨리 이동 시켜줘.”
[알겠습니다.]
흙더미가 솟아나고, 가라앉았다.
눈앞에 수백의 오크가 무기를 들고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