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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00화 (200/300)

200화_세계 대통령과의 만남(2)

사람들은 세계 대통령이라고 하면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일의 전반을 진두지휘한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고, 오늘 하유신에게 그 부분에 대해서 크게 어필했다.

“전설들에게 치이고, 지부라는 이름의 각 나라에 치이고 있다네.”

“고생이 많으시네요.”

“하유신 영웅. 내가 이렇게 불러도 되나?”

일반인에게는 위엄을 보이는 편이지만, 앞에 있는 사람에게는 친근하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강한 젊은 영웅 하유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편히 부르셔도 됩니다.”

“감사하네.”

역시, 생각대로였다.

아직 젊은 사람이라서, 말의 힘을 잘 몰랐다.

누군가를 쉽게 부른다는 것은 그만큼 친해졌다는 근거가 될 수도 있고, 자신을 낮추는 느낌도 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길었는데, 사실은 한국 지부에서 안드로말리우스에게 우리를 지켜줄 때부터 자네를 영웅이라고 생각했네… 그놈의 협약이 뭐라고 자네 같은 젊은 사람의 앞길을 막는지.”

한껏 유신을 치켜세워주면서 나는 네 편이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유신이 손을 들어서 말을 막았다.

“저기 세계 대통령님.”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되네. 내 이름은 토마스 피어스. 그냥 편하게 토마스라고 부르게.”

편하게 부르랬다고 진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유신은 달랐다.

“네. 토마스.”

순간적으로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지만, 노련한 정치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반백 년이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지었다.

“역시 젊은 사람이라서 시원시원해서 좋군.”

말은 이렇게 했지만, 유신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런데 절 왜 찾으셨습니까?”

“하하. 다름이 아니라.”

잠시 말을 멈춘 후,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경계하듯 둘러봤다.

그리고는 유신에게 몸을 기울여서는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유신이 자네를 밀어주고 싶어서 그러네.”

유신의 뒤에 교황청도 있고, 13기동 타격대라는 곳이 있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세계 대통령으로 대외적으로 유신을 유명하게 만들 수 있었다.

아무리 평소에 전설들의 눈치를 보지만, 그 정도 힘은 있었다.

그런데, 유신은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날 바라봤다.

“유명세라는 게 얼마나 갈 것 같나? 지금의 전설들도 아무리 오래가봤자 이제 이십 년 정도 남았네. 그 이후에는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지금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거네.”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래서 난 젊은 영웅을 밀어주고, 자네는 날 밀어주게.”

“밀어달라…그게 정확히 뭘 말하는지?”

모른 척 자신을 떠보는 느낌이 강했다.

이것 또한 예상했던 반응이었고, 유신도 권력과 허명에 관심이 많은 인간일 뿐이었다.

“내가 따로 알아봤는데, 자네도 그리고 자네가 속해 있는 팀의 사람들도 모두 불합리하게 이리저리 당한 게 많은 거로 알고 있네. 그 불합리함을 치워야 하지 않겠나?”

“…어떤 식으로요?”

자신의 말에 관심이 가는지 유신은 아까와 다르게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내가 한시적인 힘이 아니라, 제대로 세계 대통령이 된다면 가능할 것 같네. 그들의 자유를.”

“그러니까 쭉 연임하고 싶다는 거죠?”

돌려서 말했지만, 유신은 자신의 뜻을 확실히 받아들였다.

“맞네.”

“제가 어떻게 하면 토마스를 밀어줄 수 있는데요?”

자신을 지지한다고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해달라 말하고 싶었다.

시간지에서 꼽은 현재 가장 핫한 사람이 바로 하유신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지지가 자신의 권력을 굳건히 해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성급한 대답은 지금의 관계까지 망칠 수 있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몬스터들이 문제지. 그래서 그러는데, 세계 정부의 협조 아래 몬스터 퇴치를 요청하네. 내가 세계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사람들에게 최대한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군.”

이 말이 끝나자, 유신이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거였어요? 난 또.”

“응? 뭐가 말인가?”

“사실 절 통해 교황청의 이름으로 선거에 힘을 실어 달라고 하는 줄 알았죠.”

‘그게 맞아!’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함정일 수도 있기에 가슴 한쪽에 경계심을 품었다.

“허허~ 그렇구만. 설마 내가 그런 부탁을 하겠나?”

“맞죠. 그럴 일이 없죠. 토마스는 세계 대통령인데.”

유신이라는 인물을 맹해 보이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분류했다.

“그런데 말이야.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묻는 거네. 내가 정말 그런 부탁을 하면 어떻게 할 거였나?”

한 편으로는 유신과 교황청의 지지를 원한다는 듯이 말했지만,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게 만들어 놨다.

“어떻긴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갔죠.”

내심 기대했지만, 역시나 거절이었다.

“그리고, 성녀님과 노사, 이자벨님, 크리스님, 리암님, 벨라님. 아 맞다. 마지막으로 아스본님께 그저 안부 전화를 하겠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에서 위험인물로 분류를 변경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쉽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완곡한 거절인 줄 알았던 대답이 협박성 깊은 거절이 될 줄은 몰랐다.

“허허~ 걱정하지 말게. 그저 몬스터 퇴치만 맡길 거니. 선거 유세는 정치인인 내 일이니. 자네는 자네가 잘하는 일을 부탁하네.”

“네. 그럼 자세한 상황은 교황청으로 보내주시고요.”

“그래. 들어가게.”

자리에서 일어난 유신이 문을 나서려고 할 때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아 그리고 세계 대통령님.”

“응? 왜. 왜 그런가?”

“아까 세계 정부의 협조 아래에서 몬스터 퇴치를 해달라고 했죠? 거기서 협조와 아래는 좀 빼주시고요. 세계 정부에서 교황청에 간곡한 협조 요청으로 바꿔주세요. 그럼.”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내뱉은 유신이 사라지고 나서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끝까지 만만치 않군.”

***

유신은 세계 정부에서 제공하는 비행기를 타고 교황청에 돌아온 후 바로 마리 선배를 만났다.

“그래. 세계 대통령을 만나 본 소감은 어때?”

“음…정치인. 딱 그 정도요.”

“그래. 맞아. 토마스 피어스는 정치인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못 하지는 않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아니,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무지 신경 쓰는 놈이지.”

세계 대통령에 대해 짧게 설명을 마친 마리 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근데 선배.”

“응?”

“토마스가 몬스터 퇴치 의뢰를 했어요.”

“설마…수락한 거야?”

“뭐…반 수락은 한 게 맞는데요. 일단은 내용 정리해서 교황청으로 보내 달라고 했어요.”

“능구렁이 영감 같으니… 알았어. 그런데 넌 어떻게 할 거야? 들어줄 거야?”

마리 선배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알면서도 물어보는 걸 거다.

“당연하죠. 그게 사람들을 위하는 건데요.”

“그래. 내가 괜히 물어봤네. 그럼, 일 하나만 해야겠다.”

“네? 갑자기요?”

“응. 원래는 며칠 쉰 후에 시키려고 했는데, 나중에 바빠질 수도 있으니까.”

“뭔데요? 또 어디 멀리 가는 거예요?”

“응. 시베리아.”

***

“올가. 추워?”

앞에서 자신을 걱정하는 소년 레프는 자신의 둘도 없는 짝이었다.

“아냐 괜찮아. 근데 나보다 네가 더 춥겠는데?”

“난 남자잖아. 괜찮아.”

레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자신보다 더 얇게 입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어 죽을 수도 있어.”

“괜찮다니까.”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걱정이 될 뿐이었다.

우리가 있는 마을은 러시아의 우랄 산맥 밑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시베리아에 위치해 있어서 다른 지역보다 더 빨리 추워지고, 쉴 새 없이 눈이 쏟아지는 곳이었다.

“근데, 아침부터 어디를 가자는 거야?”

“내가 어제 신기한 것을 봤거든. 올가도 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어디에 있는데?”

“저기로 가면 돼.”

레프가 가리킨 곳은 마을을 한참 벗어나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작은 동산이었다.

“저기는 너무 위험하지 않아? 요즘 어른들이 몬스터가 나타난다고 마을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잖아.”

“아냐. 괜찮아. 나 어제도 나갔다 왔는걸.”

솔직히 그냥 넘어가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를 빼고 홀로 모험을 떠났다는 게 왜인지 심통이 났다.

“아줌마한테 이를 거야.”

“올가. 제발.”

“알았어. 봐줬다. 빨리 갔다 오자.”

“그래.”

그렇게 레프와 함께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은 눈으로 인해 나무까지 모두 새하얗게 덮여 있었다.

“어디에 뭐가 신기한 게 있다는 거야?”

“어… 이 근처였는데…”

“레프는 거짓말쟁이!”

“아니야. 진짜 여기 있었어.”

“어디 있는데? 보이지 않잖아. 그리고 대체 뭔데 그렇게 신기하다는 거야?”

“사람 크기의 강철 로봇이었고, 막 움직이고 그랬다니까.”

평소 레프는 상상력이 뛰어났지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자신을 놀리는 거짓말쟁이 같았다.

“나 집에 갈래.”

“조금만 더 찾아보자.”

평소라면 아무리 레프라고 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을로 돌아갔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엄마가 새롭게 짜준 목도리와 장갑의 따뜻함에 조금만 더 참기로 생각했다.

“…알았어. 조금만이다.”

“응.”

한동안 찾아봤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정말 안 되겠다. 레프. 돌아가자.”

“힝~ 알았어.”

레프도 포기했는지 발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크르르륵.”

언제 다가왔는지, 수십 마리의 놀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레…레프 어떻게 해.”

“올가…”

겁을 집어먹은 우리는 도망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도망갈 힘이 있더라도, 놀에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붙잡히고 말 테지만, 말이다.

그저 둘이서 할 수 있는 거라고 울음을 터뜨리며 구조를 요청하는 게 다였다.

“엄마!!”

그 소리와 함께 놀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끼기끽

녹슨 소리 같은 게 우리 뒤에서 들렸지만, 그저 겁을 먹어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때 놀의 발톱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까앙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저 두 눈을 꼭 감고 벌벌 떨었다.

“깨깨깽.”

“깽깽.”

놀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어른들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왔는지, 슬쩍 눈을 떴다.

“어?”

온몸 검은색으로 칠해진 강철 인형이 우리를 보호하면서, 놀들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놀을 물리친 강철 인형은 놀들이 사라지자, 어깨를 푹 내리며, 다시 움직임을 멈췄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다시는 마을 밖으로 안 나갈게요. 제발 살려주세요.”

앞을 바라보니, 레프가 두 눈을 꼭 감으며,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놈의 호기심이 뭔지 겁 많은 레프가 어떻게 자신을 데리고 여기에 온 건지 모르겠다.

“레프. 눈 떠봐. 끝났어.”

“응?”

“괜찮아. 눈 떠봐. 다 끝났어.”

“우리 벌써 죽었어? 천국이야?”

평소에는 그렇지 않지만, 천국이라는 헛소리에 한껏 놀려주려다가 애써 참았다.

“아냐. 네가 말한 게 저 인형이야?”

“응?”

뒤늦게 눈을 뜬 레프가 앞을 바라봤다.

온몸을 검게 칠한 강철 인형의 왼팔에는 ‘Ⅰ’이 하얗게 적혀 있었다.

“응. 내가 말한 인형이 저거야. 어? 어? 우욱. 우웩~”

레프는 강철 인형을 보다가 주위에 널려 있는 놀의 시체를 보고는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저렇게 비위가 약하다는 게 조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이기에 넘어가 주기로 생각했다.

“레프. 일단 마을로 돌아가자.”

“으.응. 그. 그래.”

우리가 천천히 뒷걸음을 치며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강철 인형은 그때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앙!!!”

우랄 산맥이 울릴 정도로 몬스터의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빨리 마을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그 울음소리를 듣자,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그렇게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였다.

원래 멈춰있던 강철 인형이 두 눈을 빛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대로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쾅쾅

콰콰쾅

산맥을 울리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끼에에에액!”

몬스터의 비명이 울려 퍼졌고, 몸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레프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대로 마을을 향해 뛰었다.

그렇게 마을 입구까지 도착했을 때였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충분히 혼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 이 무서움을 달래줄 가족이 필요했고, 바로 눈앞에 엄마가 있었다.

그때였다. 엄마가 다급히 손을 들며 외쳤다.

“올가! 뒤를 봐 뒤를!!”

달리는 와중 레프와 함께 뒤를 돌아봤다.

하늘에서 검은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앙

검은 무언가는 마을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떨어졌다.

그리고 곧장 몸을 일으킨 것은 붉은 눈을 한 강철 인형이었다.

강철 인형은 우리를 보더니, 그대로 어깨를 늘어뜨리며 다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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