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_다리우스의 염원(3)
데리우스의 몸으로 마법진이 들이닥칠 때마다 몸이 육지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펄떡펄떡 뛰었다.
순식간에 마법진을 몸으로 받아들이던 데리우스가 눈을 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자위만 보였던 눈이 이제는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구분됐다.
거기다가 한 번씩 흘러나오던 흑마력도 이제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진짜 인간이 된 건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전투 준비를 하려고 포스를 돌리려고 하는데, 단전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람이시여. 쉬셔야 합니다. 지금 기운이 많이 쇠락해지셨습니다.]
땅의 축복이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칠성검을 아공간에서 꺼내와서는 자세를 잡았다.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다리우스 선배가 데리우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선배.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니. 데리우스야.”
말리려고 했지만, 보다빨리 다리우스 선배가 데리우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대로 꽉 껴안았다.
“다리우스?”
“그래. 데리우스. 나 다리우스야. 드디어. 드디어 성공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여긴 어디고? 근데 너 왜 울어? 천하의 다리우스가 울어?”
눈물을 흘리는 다리우스 선배와 어리둥절하는 데리우스의 만남.
나는 칠성검을 다시 아공간에 넣었다.
저 모습을 보니, 방금 걱정했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걸 느끼게 됐다.
드디어, 다리우스 선배의 염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
다리우스 선배와 데리우스는 오랜만에 만나서 정답게 대화를 나눴다.
“그렇다니까. 내가 네 심장을 터트려서 죽였다니까.”
“다리우스. 거짓말하지 마라. 네가 무혁도 아니고, 내가 너한테 죽었다고? 나보다 약한 너한테?”
“이거 소생 마법이 잘못됐나? 기억에 오류가 있는걸.”
순간 데리우스의 몸에서 흑마력이 솟구쳤고, 다리우스 선배도 지지 않기 위해 흑마력을 뿜어냈다.
다시 만난 형제가 정답게 주먹다짐 직전까지 간 것이었다.
“저기 그만들 하시면 안 될까요?”
“유신 브로~ 그만하기는 내가 오늘 데리우스의 버릇을 고쳐놔야겠어.”
“고쳐?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좋아요. 좋아. 오랜만에 만나 형제가 싸울 수도 있죠. 저도 어렸을 적에 동생이랑 많이 싸웠으니까요. 그런데, 왜 여기서 싸워요? 나가서 싸우세요!”
내 요청은 타당했다.
이들이 싸우려고 하는 곳은 거인들의 땅에서 내가 거주하는 곳이었다.
너른 들판도 있고, 평야도 많은데 왜 굳이 여기서 싸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그렇군. 말을 들어보니, 날 살리는데, 지대한 공을 한 게 자네인 것 같은데, 당연히 그 요청을 들어줘야지.”
“유신 브로가 많이 도와주기는 했는데, 데리우스. 널 살린 건 나라니까!”
“그래. 다리우스. 너도 좀 도와주기는 했지.”
“크아아아악!! 이러니 내가 네 심장을 터트렸던 거야!”
“워워~ 진정하라고, 네 후배 집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 거야?”
언제나 날 놀리기만 했던 다리우스 선배가 놀림을 당하는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렇다고 계속 가만히 두면, 이제 정말로 이곳이 날아갈 것 같다.
“다리우스 선배! 제발요.”
간절함이 통한 것일까?
다리우스 선배가 실체화된 흑마력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갑자기 궁금증이 들었다.
“그런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응? 뭐가 궁금한데?”
“왜 생사결까지 가도록 싸웠어요?”
내 말에 다리우스 선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돌렸다.
저 모습을 보니 더 이유가 궁금해졌지만, 더는 묻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일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데리우스가 별거 아닌 투로 말했다.
“싸워서 진 사람이 부두교를 잇기로 했거든.”
“이긴 사람이 아니라 진 사람이요?”
“응. 너도 들어봤지. 마왕과의 최후의 결전.”
“지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죠.”
“둘 다 죽으면 부두교의 대를 잇지 못하니까 진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전혀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었다.
“근데 왜…?”
“나야 모르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걸. 날 죽인 이유는 다리우스가 알겠지.”
데리우스가 대답을 종용하는 눈빛으로 다리우스 선배를 바라봤다.
하지만, 다리우스 선배는 그저 입을 꽉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뒤늦게 다리우스 선배의 새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바라보니, 피부에 주름도 많이 생겨 있었다.
“그런데, 선배. 괜찮으세요?”
다리우스 선배는 자신의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을 만지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이거? 괜찮아. 지금이야 이렇지. 다시 돌아올 거야.”
다시 돌아온다고 했지만, 자신의 염원을 위해 목숨을 건 다리우스 선배의 모습에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이런 분위기가 싫었는지 다리우스 선배가 화제를 전환했다.
“막내 브로~ 신세도 많이 졌는데, 이제 그만해야겠다.”
“네?”
“데리우스도 살렸고, 이제 아버지에게 가봐야지.”
“아… 그렇군요. 지금은 안될 것 같고, 나중에 찾아뵙겠다고 막시우스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그래. 그리고…”
다리우스 선배가 머뭇거리자, 데리우스가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아버지 집으로 가는데, 공간이동 마법은 내가 펼칠 테니까, 다리우스는 조금 있다가 나와.”
그렇게 데리우스가 방을 나서자, 그제야 다리우스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네? 다리우스 선배. 뭐라고요?”
“고맙다고.”
“너무 작게 말씀하셔서 잘 안 들리는데?”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13기동 타격대의 선배에게 고맙다는 소리와 함께 놀릴 수 있는 이 기회.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뚜두둑
하지만, 주먹을 움켜쥐는 다리우스 선배의 행동에 곧장 생각을 바꿔 먹었다.
“아직도 잘 안 들려?”
“아뇨? 아주 잘 들립니다.”
“그래. 그리고 이거.”
다리우스 선배는 사용하고 남은 최상급 마나석 열 개와 데리우스를 살리는 마법을 사용할 때 쓴 것과 같은 생명력 가득한 돌 하나를 내게 건넸다.
“어? 이걸 왜?”
“최상급 마나석은 원래 유신이 네꺼잖아. 그리고 지금까지 사용한 마나석의 보답으로 이걸 주는 거야. 일루시안에서는 이 돌을 생명의 돌이라고 불러.”
“생명의 돌이요? 이름만 들어보면 엄청 귀한 것 같네요.”
“지구에서는 구할 수 없고, 일루시안에서도 구하려면 힘들기는 해. 그래도 못 구하지는 않거든.”
내가 마법사나, 연금술사였다면, 이 생명의 돌은 정말 필요했을 거다.
하지만, 난 검사였다.
“이거 팔면 비싸게 받을 수 있을까요?”
“하하! 역시 유신 브로~ 맞아. 비싸게 받을 거야. 하지만, 이미 마나석으로 거부가 된 것 같은데, 그럴 필요는 없지.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으니 가지고 있어.”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선배 여기요.”
꺼내둔 최상급 마나석 중 절반을 다시 다리우스 선배에게 돌려줬다.
“뭐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은 없지만, 일루시안에서 이게 도움이 된다고 들었거든요. 다 드리고 싶지만, 저도 쓸 일이 있어서요.”
“…그래. 고마워. 일루시안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들릴게.”
“네. 그때는 교황청에서 봐요. 데리우스가 기다리겠어요. 빨리 가요.”
밖으로 나서자, 데리우스는 대단위 마법진을 만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고, 그렇게 다리우스 선배와 데리우스는 서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럼. 나도 이만 훈련을 해볼까.”
***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루키들의 대표.
새로운 영웅.
교황청의 검.
모두 나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만큼 강해졌다는 의미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거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 안주할 수 없었다.
“확실히 공격도 공격이지만, 방어력이 딸려.”
스스로 부족한 걸 파악했고, 이제 보완할 차례였다.
“땅의 축복.”
부르자마자 땅의 축복은 모습을 드러냈고 내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답했다.
[네. 람이시여.]
“람의 의식 대기실로 안내해줘.”
[알겠습니다.]
땅이 바닥에서 솟구치더니, 순식간에 날 원하는 장소로 이동시켜줬다.
이 능력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지구 곳곳을 이렇게 한 번에 이동하면 좋을 텐데.”
나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이었는데, 땅의 축복에게서 예상치 못한 답변이 들려왔다.
[람이시여, 가능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입니다. 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이동이 가능합니다.]
반가운 소식에 놀라고 있을 때, 땅의 축복이 부연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대신에 이동 거리에 따라서 제약이 있습니다.]
“제약?”
[네. 거인들의 땅에서는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 그만큼 힘을 써야 하기에, 마나석이 필요합니다.]
마리 선배와 다크 연합에 판매하기로 한 양이 있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마나석은 넘치도록 있었다.
“그럼, 여기서 교황청으로 가려면 얼마나 필요한데?”
[람이 정하신 마나석의 등급으로 따지면, 중급 마나석 오십 개 또는 상급 마나석 세 개면 됩니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비효율적이라고 해야 하나?
마정석을 이용해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상급 마나석 하나면 충분했다.
거기다가 한 번 게이트를 열어 놓으면, 거리에 크게 상관없이 중급 마나석 한 개만 있으면 이동이 가능했다.
그런데, 한 번 이동하는데, 상급 마나석을 세 개나 사용해야 한다는 거였다.
“일단은 참고할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땅의 축복을 돌려보낸 후, 아공간에서 하급 마나석 한 개를 꺼냈다.
그다음, 포스를 이용해서 하급 마나석을 깨뜨렸다.
휘이이이잉
미약하게나마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주위가 빛나기 시작하더니, 마나가 잠잠해졌다.
[람이시여. 제가 최상의 환경을 위해 요동치는 마나를 잠재웠습니다.]
다시 모습을 드러낸 땅의 축복은 내게 칭찬을 바라는지 평소보다 활기차게 움직였다.
“저기. 이거 훈련 때문에 하는 거야. 그러니까 안 그래도 돼.”
[앗! 죄송합니다.]
방해가 되기는 했지만, 날 위해 했다는 걸 알기에 웃으며 말했다.
“정 필요하면 말할게. 혹시, 마나를 요동치게 할 수 있어?”
[저는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이자, 만물을 포근히 안아주는 땅의 축복입니다.]
“안 된다는 소리네.”
[…죄송합니다. 람이시여.]
“아냐.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물러나 있어.”
[알겠습니다.]
땅의 축복이 모습을 감추자, 이번에는 하급 마나석 세 개를 꺼내서 포스로 깨뜨렸다.
휘이이이잉
하나를 깨뜨릴 때와는 달리 강한 돌풍이 불었다.
‘아직 부족해.’
아공간에서 중급 마나석을 꺼내서 또 깨뜨렸다.
그러자, 다리우스 선배의 마나 폭풍보다는 약하지만, 일반인이 서 있다면, 바로 몸이 찢겨 나갈 정도의 강한 기운이 움직였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몸에 호신강기, 포스막 등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채 그대로 마나 폭풍에 뛰어들었다.
***
인도의 왕이자, 13인의 전설 중 한 명인 조쉬 히라니.
그가 나른한 표정으로 자신의 왕좌에 앉아 있을 때였다.
문밖이 시끄러워지더니, 이내 비명이 들렸다.
콰앙
대전을 잇는 문이 부서지고, 화가 난 릴라가 들어왔다.
“조쉬. 그게 무슨 말이지?”
“대뜸 문을 부수며 들어와서는 질문도 제대로 하지 못하다니. 아직도 상처가 낫지 않은 건가?”
“적당히 하지? 내가 뭘 물어보는 건지 능구렁이인 넌 알고 있을 텐데?”
쳐다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은 릴라의 싸늘한 눈빛에도 조쉬는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으니까 이렇게 묻지. 대체 뭘 말하는 거야?”
“내가 분명 제물은 하유신이라고 했을 텐데?”
“그래. 그렇게 말했지.”
“왜? 제물이 하유신에서 앤드류. 그 멍청이로 바뀐 거지?”
조쉬는 미간에 힘을 줘서 나른한 표정을 날려버리며 말을 이었다.
“서둘러야 하니까. 알다시피 이번 제물은 준비 기간만 최소 일 년이야. 그런데, 하유신은 어디 있지? 여기 없네?”
“흥! 나도 귀가 있어. 앤드류는 제물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도망쳤다고 들었는데?”
“도망. 도망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말이지?”
답은 릴라의 뒤에서 들려왔다.
“무슨 말이긴 앤드류가 제물로 더 적합해서 벌써 삼 단계를 진행하고 있는 거지.”
릴라가 고개를 돌리는 거기에는 루이스가 서 있었다.
“나 없이 삼 단계로 바로 넘어갔다고?”
“이번에 개발한 M-17이 역할을 제대로 하더군.”
“벌써 거기까지 개발됐다고?”
“누군가가 자신의 유희에 빠져 살 때, 난 계속 연구를 했거든.”
“믿을 수 없어.”
“그럼 믿게 만들어야지.”
루이스가 짧게 박수를 치자, 앤드류가 대전 안으로 걸어서 들어왔다.
앤드류의 눈은 흐리멍덩하다가 날카롭게 빛나기도 하고, 한 번씩 살기를 띄기도 했다.
“삼 단계. 절대복종까지 끝났으니 이제 사 단계를 할 차례인가?”
릴라는 화가 나고 분했지만, 더는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렇다고 릴라의 눈빛이 수그러진 것은 아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쉬가 중재를 위해 입을 열었다.
“릴라. 그렇게 화를 내지는 말라고, 좋게 생각해. 이제 네가 온전히 하유신을 가질 수도 있어.”
“…쳇. 어쩔 수 없지. 그걸로 만족하겠어. 대신에 누구도 하유신을 건들지 마. 그는 내꺼야.”
“걱정하지 마. 그리고 하유신을 갖기 위해 내가 최대한 도와주지.”
“웬일로 내 일에 그렇게 적극적이지?”
조쉬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리의 일그러지고, 곤란한 표정이 보고 싶거든. 그럼 이제부터 이 세계에 혼란을 주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