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_다리우스의 염원(2)
자기기만과 분노. 그리고 허탈함이라는 감정이 한 사람에게 공존하면 어떻게 될까?
“크크크. 그런 바보가 바로 나. 앤드류 시거지.”
자신을 믿는 부하들을 손수 죽였다.
지옥이 존재한다면 바로 자신이 가게 될 곳이었다.
그때였다.
끼이이익 쿵
음식을 넣어주던 작은 구멍이 열리는 소리보다 컸다.
뒤늦게 고개를 돌리자, 활짝 열려있는 강철문을 볼 수 있었다.
“앤드류 시거. 이름값과는 다르게 사흘 만에 이 꼴이 되다니. 참 처참하군.”
“이 개X끼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없는 힘을 쥐어짰다.
그런 후, 날 여기에 가둔 루이스에게 달려들었다.
“컥!”
호기롭게 달려들었지만, 단 한 수에 목이 붙잡히고 말았다.
“내가…널 가…만…두…”
죽이고 싶었고,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울분이 차오르자, 눈앞이 새빨갛게 보이기 시작했다.
“오호~ 얼마나 억울하면 피눈물을 흘릴까? 과연 뭐가 억울했을까? 궁금한데?”
루이스가 놀리듯이 말하자,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별개로 반항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분노에 이성을 맡기는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뿌옇게 보였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정도 양이면 치사량을 넘어서게 됩니다.”
“이게 다 마신님을 위한 거네. 제물이 되지 못하면 죽어야지. 빨리 시작하게.”
“알겠습니다.”
치사량? 내게 뭘 주입하려고 하는 거지?
생각은 깊게 이어지지 못했다.
오른팔에 바늘이 들어가는 느낌이 들자마자 고통이 몰려왔다.
“크아아아아악!!”
목이 터져라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자, 놈들은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쑥덕이더니 내 입에 재갈을 물렸다.
“시끄럽게 언제 깨어난 거야? 빨리 재워.”
“알겠습니다.”
지속되는 고통 속에서 몽롱한 느낌이 들더니 정신을 잃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동식 침대에서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잠이 들었다.
“크으윽…”
온몸이 난도질당한 것 같은 고통에 눈을 떴다.
팔을 움직이려고 하는데,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쇠사슬에 온몸이 묶여 있었다.
“후보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후보? 설마 날 가리키는 건가?
대체 무슨 후보지?
“점점 내성이 생기는 것 같군. 50프로 올려서 주입해라.”
“지금도 위험합니다.”
“루이스 님의 언질이 있었다. 진행해.”
루이스? 그게 누구였지?
아! 날 이 꼴로 만든 분이었지.
분? 그게 무슨 소리야? 이런 처참한 모습을 만들었는데, 분이라니? 내가 왜 그런 극존칭을…
“크아아아아악!!”
온몸에 고통이 몰려왔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 벗어나고 싶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이었다.
몸을 움직이자, 오랜만에 자유롭게 움직였다.
약물도 주입되지 않았고, 쇠사슬에 묶여있지도 않았다.
그래. 지금이 어떻게 보면 도망칠 기회였다.
철커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자리에 누워서 잠든 척했다.
“에이~ 언제까지 이렇게 뒤치닥거리를 해야 해.”
“야 조용해. 그래도 제물 후보인데.”
“후보면 뭐해? 오늘내일하면서 죽어가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일단 다시 묶어놓자.”
녀석들이 내 몸을 만지려고 할 때가 기회였다.
손날에 검기를 일으켜서 놈들의 목을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툭. 투툭.
목들이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주위를 둘러봤다.
다행히, 다른 녀석들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갇혀 있었던 방 밖으로 나오자, 긴 복도가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어둠에 몸을 숨기고는 천천히 움직였다.
저벅저벅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최대한 몸을 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장한 놈들이 복도를 지나갔다.
순간 살심이 일어났다. 본능은 지금 저들을 죽이라고 했지만, 이성이 겨우 그걸 억눌렀다.
지금 저들을 죽이면 탈출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8번.
경계병들을 만난 후, 몸을 숨긴 횟수였다.
다행인 것은 단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는 거였다.
정말 운이 좋았지만, 제발 마지막 관문까지 이 운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저 문만 넘어가면, 밖이다. 근데 내가 여기 지리를 어떻게 알지? 아니. 의문은 뒤로하고 일단 움직여야 해.’
검기를 일으켜서 순식간에 경계병들의 목을 베어낸 후, 문을 열었다.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바로 옆에는 숲이 보였다.
그렇게 몸을 날리며 생각했다.
‘나의 주인이신 루이스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곧 당신께 돌아가겠습니다.’
***
다리우스 선배가 데리우스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깊은 땅속으로 들어간 지 벌써 사흘이 흘렀다.
그동안 나도 쉬지도 못하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가지고 온 식량을 지금처럼 먹으면 5년은 버틴다는 거지?”
“네. 아껴먹으면 7년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카마엘. 아끼기는 뭘 아껴. 5년 안에 다 먹어. 놔두면 썩을 뿐이야.”
“호호호. 역시 람이십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가지고 가실 마나석은 모두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재무부 장관의 일이니 당연한 겁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고개를 끄떡이는 것으로 긍정을 표하자, 카마엘이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갔다.
솔직히 네피림을 믿을 수는 없었지만, 카마엘을 재무부 장관으로 임명할 수밖에 없었다.
타이탄 족은 용맹하지만, 고지식했다.
내가 5년 치 식량을 1년 안에 먹으라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 먹을 정도로 충성심도 깊었다.
타르가 있는 티탄은 강인한 전사들이었고, 그저 전사이기만 했다.
네피림은 계산에 강했고, 유도리가 있었다.
‘속에 능구렁이들만 없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게 람의 업무를 처리해가고 있을 때였다.
바닥에서 땅의 축복이 솟구쳤다.
[람이시여.]
“왜 무슨 일이 생겼어?”
내가 람으로서의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땅의 축복에게 다리우스 선배를 부탁했다.
특별하거나 특이사항이 생기면, 바로 연락 달라고 했다. 그래서 약간의 불안감도 감돌았다.
[특별한 일은 없는데, 람의 선배라는 사람에게 한 번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이게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실패했구나.”
[실패했다고, 그렇다고 성공했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일단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어.”
하던 일을 멈추고 람의 의식이 거행된 공터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땅의 축복에게 외치듯이 말했다.
“빨리 보내줘!”
[알겠습니다. 람이시여.]
땅의 축복은 순식간에 날 다리우스 선배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흑마력으로 얼기설기 엉켜있는 복잡한 마법진이 가득했다.
거기서 다리우스 선배는 무엇 때문인지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흑마력으로 마법진을 유지하고 있었다.
“선배! 괜찮아요?”
“크윽…”
제대로 대답도 못 할 정도로 다리우스 선배가 힘들어하고 하자, 걱정되는 마음에 성큼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오지 마!!”
왜 오지 말라는 거지? 혹시 놓친 게 있나 주위를 둘러봤다.
자세히 바라보니, 데리우스를 중심으로 마나 폭풍이 불고 있었다.
‘마나 폭풍에 부딪히는 순간 몸이 갈려 나가겠는데?’
현재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이 공간을 자세히 바라봤다.
데리우스의 가슴에 놓여 있던 최상급 마나석이 깜박이고 있었고, 선배의 한 손에는 생명력이 강한 돌이 들려 있었다.
마나 폭풍을 뚫고 저 돌을 놔둬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다가 마나 폭풍을 일으킨 게 최상급 마나석과 다리우스 선배의 흑마력이었다.
지이이이익
기운이 빠진 건지 다리우스 선배가 깊게 발고랑을 만들며 마나 폭풍이 불지 않는 곳까지 미끄러졌다.
그러면서도 한 손으로 마법진을 유지하는 게 대단하다고 느꼈다.
“혹시, 선배가 들고 있는 걸 데리우스에게 놔야 하나요?”
얼마나 지쳤는지 다리우스 선배는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끄떡일 뿐이었다.
“땅의 축복. 날 보호해줘.”
간단히 명령을 내린 후, 선배의 손에서 돌을 빼앗듯이 가져왔다.
평소 다리우스 선배의 근력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배도 많이 지쳤는지 손쉽게 빼 올 수 있었다.
“안 돼! 브로!”
“됩니다. 마법진만 건들지 않으면 되는 거죠?”
“위험해!”
“말씀하는 시간에 마나 폭풍만 어떻게 좀 해보세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예전에 레이저 포인트를 피해 잠입하는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와 지금이 같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때는 피해서 전진하기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마나 폭풍을 뚫으면서 마법진을 피해야 했다.
‘호언장담한 것 같은데, 이거 장난이 아니네.’
실제로 마나 폭풍을 겪자, 왜 다리우스 선배가 뒤로 밀렸는지 알 수 있었다.
프레스 압축기와 분쇄기에 몸을 집어넣는 느낌이었다.
피부 위로 호신강기와 포스막에다가 땅의 축복 보호까지 받았는데,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들었다.
‘이대로 포기할 쏘냐!!’
이 돌만 데리우스의 몸에 올려두며 되기에 보호막에 포스를 욱여넣었다.
그렇게 호신강기가 분쇄되고, 재생되는 과정이 반복되자, 앞으로 걸을 수 있었다.
저벅저벅
드디어 마법진 앞까지 도착했다.
혹시라도 마법진에 몸이 닿으며 안되기에 긴장하고 있을 때였다.
마법진과 마법진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길을 만들었다.
슬쩍 뒤를 바라보니, 다리우스 선배가 양손으로 마법진을 조율하고 있었다.
“빨리 가!”
다리우스 선배의 외침에 간절함을 느끼며 다시 몸을 움직였다.
방금까지 헬모드를 하고 있었는데, 노멀 모드로 바뀌니 의외로 할만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뀌었다.
마나 폭풍은 데리우스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강하게 날 압박했다.
“크으으으윽…”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오면서 다리우스 선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까 분명 다리우스 선배는 데리우스의 근처까지 갔었다.
물론 마지막에 힘이 풀려서 다시 원점이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다리우스 선배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좀 편하게 온 것은 사실이었다.
저벅.
다시 한 걸음 내딛자, 순식간에 호신강기가 갈려 나가면서, 포스막까지 뒤흔들렸다.
두 번째 걸음을 내딛자, 포스막이 찢겨나갔고, 옷은 가루가 되었다.
다행히 땅의 축복이 몸을 보호하고 있어서 상처는 입지 않았다.
‘앞으로 다섯 걸음. 다섯 걸음만 버티면 돼.’
하지만, 한 걸음 더 내딛는 순간. 땅의 축복도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최대한도로 포스를 몸속에서 회전시켰다.
그런 후, 압축에 압축을 더해, 오러를 뿜어냈다. 오러의 힘 때문일까? 한결 괜찮아지자, 한 걸음 더 걸었다.
‘이제 네 걸음.’
무식하게 뽑아내고 있던 오러가 제대로 힘을 못 쓰기 시작했다.
이만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고자 뒤를 돌아봤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다리우스 선배의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어떤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마지막 기회 같이 느껴졌다.
‘좋아 어디 한 번 가즈아!!’
일단 앞으로 누웠다.
중력이 온몸을 짜부시키는 것 같았지만, 서 있는 것보다 버틸만 했다.
이제 기어갈 시간이었다.
보기 흉하더라도, 이게 그나마 마나 폭풍을 견디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조금 전까지 전신을 마나 폭풍에서 견뎌야 했는데, 이제는 등만 버티면 됐다.
촤아아악
마나 폭풍이 등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오러를 뒤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걸을 때보다 여유롭게 앞으로 기어가려고 할 때였다.
촤아악
촤아아악
여유롭다는 말 다 취소다.
쉴 새 없이 마나 폭풍이 내 등을 공격했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마나 폭풍의 공격이 거세진 거였다.
촤아아악
“크으윽…”
마나 폭풍의 공격에 등에 상처를 입었다.
‘이대로 마나 폭풍에 죽을 수 없어.’
단전이 아려올 정도로 포스를 몸 밖으로 뿜어냈다.
포스와 마나 폭풍이 부딪히자, 잠깐의 진동 상태가 이뤄졌다.
아주 짧지만, 기회가 생겼기에 최대한 빨리 앞으로 기어가서는 오른손을 길게 뻗어서 돌을 데리우스의 복부에 올려놨다.
그리고 나는 아직 끝나지 않는 마나 폭풍에 휩싸여서 벽에 부딪혔다.
‘커헉!’
각혈이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포션 때문에 단련되어서 참을 만했다.
그러자, 12개의 복잡한 마법진이 회전하면서 커지고,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그 어떤 CG와 능력보다 화려하게 움직이던 마법진은 블랙홀이라도 생긴 것인지, 데리우스의 몸으로 몰아치듯 박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