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195화 (195/300)

195화_앤드류(2)

‘죽여? 누굴?’

조쉬 히라니의 갑작스러운 명령에 고개를 들어서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 있던 근위병들이 무장한 채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조쉬 히라니는 왕좌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앤드류님.”

바로 뒤에 있던 베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물어보듯 자신을 불렀다.

“일단 기다려라.”

이건 어찌 보면 조쉬 히라니의 시험일 수도 있었다.

더 납작 엎드려서 목숨을 구걸할 것인지? 아니면 반항할 것인지.

그 순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조쉬 히라니가 아무리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지만, 이렇게 무턱대고 공격한다? 그것도 다른 전설들보다 더욱 평판에 신경 쓰는 전설이?’

어떻게 생각해도 지금은 가만히 있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이곳에 올 때 의뢰 조건 중 하나가 누구도 모르게 비밀리에 와야 한다는 게 기억났다.

“모두 전투 준비!”

뒤늦게 명령을 내렸지만, 자신의 용병단은 이미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기에 순식간에 무기를 뽑아 들고는 대형을 갖췄다.

“오호~ 이제야 반항할 생각을 하는 건가?”

나른해 보이는 표정으로 말하는 조쉬 히라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항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발악이죠.”

“그 대답 마음에 들군. 좋아. 난 가만히 있겠다. 너희가 내 근위병을 이긴다면 살려주지.”

살려준다고?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변덕으로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여기서 우리를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기회가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눈 상황이었지만, 아직 실질적인 피해가 없기 때문이었다.

“조쉬 히라니님. 대체 저희에게 왜 이러십니까?”

“왜라니? 그저 유희야.”

유희라는 말에 속으로 욕지거리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전투, 싸움, 피, 광기 그게 내가 원하는 거지. 그런데, 자네는 로저 시거와 다르군. 아주 말이 많아…피가 섞이지 않아서 그런가?”

순간 울컥할 뻔했다.

하지만, 전설 앞에서 내 힘이 얼마나 무력한지 알기에 그저 참을 뿐이었다.

그게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네의 그 눈빛. 많이 쌓여있군.”

“뭐가 말입니까?”

“그건 자네가 더 잘 알겠지.”

아주 잠시 대화가 끊어진 채, 서로 눈을 마주치며 바라봤다.

그때 조쉬 히라니가 금으로 된 왕좌의 팔걸이에 손가락을 두드렸다.

“개인적으로 자네가 좋아지기 시작했어. 하지만,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이야. 빨리 처리해라!”

조쉬 히라니의 말이 끝나자, 다가오던 근위병들이 멈춰 섰다.

근위병들은 몸이 꿀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약 3미터 정도로 크기가 커졌고, 머리에는 굵은 소의 뿔이 자라났고, 온몸은 검은 털로 뒤덮였다.

그 모습이 서유기의 우마왕의 모습과 흡사했다.

“마…족?”

단원 중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였다.

콰직.

그 한마디가 단원의 유언이 되었다.

소괴물로 변한 근위병의 손짓에 머리가 박살이 나고 말았다.

“내 비밀을 알았으니, 자네들이 죽을 이유는 충분하지?”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대로 죽을 생각은 없었다.

조쉬 히라니가 비밀을 밝히면서까지 자신과 용병단을 죽일 이유가 뭘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어.’

꺼냈던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되려 단원들이 놀랐다.

“앤드류님 지금 무슨?”

손을 들어 단원들의 입을 막은 후 조쉬 히라니를 바라봤다.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제게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크크크. 이렇게 눈치가 빠를 줄이야. 그 눈치가 자네의 목숨줄을 연명했어. 크하하하하하.”

정답이었다.

지금까지 난 조쉬 히라니에게 나와 용병단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여기서 용병단을 제외하고, 나에게만 집중하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럼 어떻게 정답을 유추했나?”

“우선 조쉬 히라니님은 제 말에만 대답을 해주셨고, 제 부하들의 말에는 일체의 반응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게 다르게 말하면, 다른 이들은…”

대답을 하기 전에 부하들을 돌아봤다.

몇 년 동안 동고동락을 해왔지만, 이제는 헤어질 때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들보다 내 목숨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조쉬 히라니의 표정이 바뀌었다.

역시 에둘러 말하는 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답을 정정하겠습니다. 제 부하들은 이미 살아있는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앤드류님!”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불평은 부하 용병들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마족으로 변한 근위병들이 한걸음 그들에게 다가가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크크크. 역시, 자네는 로저의 핏줄이 맞아. 로저처럼 눈치가 빨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드디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부하들이 죽는 건 아쉬웠지만, 우선 내 목숨이 최우선이었다.

“그럼 이제 앤드류 자네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겠나?”

“네.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왜 제게 이러는지 궁금합니다.”

“궁금증은 자네가 지금 해야 하는 일부터 하고 듣는 건 어떤가?”

“알겠습니다. 대신에 이거 하나만 약조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뭔가?”

“절 용병왕으로 만들어주십시오.”

내 당당한 요구에 조쉬 히라니는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용병왕뿐인가? 이 세계의 또 다른 전설로 만들어주지.”

“알겠습니다.”

다시 무기를 뽑았다.

그러자, 운이 좋게도, 용병단에서 자신 다음 가는 강자인 베뉴가 눈치 없이 다가왔다.

“앤드류님. 대체 무슨 말을…컥…이게…무…”

베뉴는 말을 끝내지 못하고, 심장에 박힌 검을 바라보다, 쓰러졌다.

“어쩔 수 없어. 내가 살기 위해서는 아니, 용병왕이 되기 위해서는 너희들의 희생이 필요해. 좋게 생각해. 내가 전설로 올라가는 밑거름이 된다고.”

아무리 용병단이 날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했지만, 죽어주는 거와는 달랐다.

그들은 어리숙한 모습을 집어 던지고, 곧장 내게 무기를 휘둘렀다.

*

*

*

“하아 하악…”

마지막 용병단원의 목에 검을 박아넣어서 목숨을 끊었다.

아버지, 로저 시거의 용병단만큼은 되지 않았지만, 그들도 용병 중에서는 최정예였다.

그들의 반항에 내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되기에 몸을 꽃꽂이 세워서 조쉬 히라니를 돌아봤다.

“하악… 이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이유는 간단하네. 자네가 필요했거든.”

“왜 접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난 욕심 많고, 자신밖에 모르면서, 누군가에게 깊은 원한이 있는 사람이 필요했거든.”

알고 있었다.

조쉬 히라니가 나열했던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어진 말을 듣게 되자,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전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저들과 같은 마족이 되는 겁니까?”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왜 저딴 조잡한 것들이 된다고 생각하나? 내가 말하지 않았나. 자네는 이 세계의 전설이 될 거야. 아 이제 도착했군. 들어오게.”

굳게 닫혀있던 대전의 문이 열리고, 로브를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서로 통성명하게.”

조쉬 히라니의 말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로브의 사내에게 다가간 후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앤드류 시거입니다.”

“반갑군. 나는 마신 숭배자의 장로 루이스라고 하네. 자네가 이번에 새롭게 선택된 자로군.”

***

하드리우스의 안내를 받고 거인들의 도시로 들어서게 되었다.

다리우스 선배는 동굴에 들어선 이후로 자꾸 주위를 둘러봤다.

“선배. 왜요?”

“응? 뭐가?”

“아니, 자꾸 주위를 둘러보니까요.”

“아. 특이해서.”

“특이하다고요?”

“응. 동굴을 기점으로 작은 차원을 형성하고 있어서.”

의미 모를 말을 내뱉은 다리우스 선배를 빤히 바라봤지만, 선배는 설명해 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일단 곧장 마나석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데리우스를 살리기 위해, 다리우스 선배는 마법사의 호기심을 자제하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앞서가는 하드리우스에게 말을 건넸다.

“하드리우스.”

“네. 람이시여.”

하드리우스는 대답과 동시에 몸을 돌려서 오체투지 자세를 취했다.

내가 거인들의 세계에 있었던 것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거기다가 잠깐 머무는 동안 그렇게 빡빡하게 군 기억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시간 없어. 마나석을 모아둔 곳으로 바로 갈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하드리우스는 앞장선 후, 뛰기 시작했다.

기럭지가 길어서 그런지, 빠르게 앞으로 휙휙 움직였다.

물론, 아무리 빨라서 하드리우스를 놓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하드리우스를 따라 마을을 지나칠 때는 수많은 거인의 인사를 받았고, 거인들 기준으로 작게 만들어진 창고 앞에 도착했다.

“람이시여. 여기에 찾으시는 게 있습니다.”

“그래?”

문을 열려고 창고에 다가가려고 할 때였다.

하드리우스가 펄쩍 뛰더니, 문 앞으로 다가갔다.

“제가 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나선 하드리우스가 창고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람이시여!”

“람께서 오셨다!!”

타이탄의 대표 프란시스코와 티탄의 대표 타르가 빠르게 뛰어왔고, 네피림의 대표 카마엘이 두 날개를 활짝 펴며, 땅에 내려섰다.

“오신다는 기별을 하셨으면, 저희가 마중을 나갔을 텐데.”

“아냐. 잠깐 들른 거야.”

“잠깐이라고 해도 람께서 돌아오신 겁니다.”

내게는 극진하게 말하던 프란시스코가 하드리우스를 매섭게 노려봤다.

“하드리우스! 또 늦잠을 잔 것이냐?”

“죄.죄송합니다.”

하드리우스가 벌벌 떠는 모습이 불쌍하게까지 느껴졌다.

“애한테 너무 뭐라고 하지 마.”

“알겠습니다. 람이시여.”

“근데, 너희들 예전보다 키가 더 큰 것 같다? 아니 몸이 좋아졌다고 해야 하나?”

“모두가 다 람의 은혜 덕분입니다.”

하드리우스를 시작으로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뭐만 하면 다 람의 은혜니, 뭐니 이렇게 말하자, 광신도들을 보는 것 같아서 무섭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래도 그나마, 네피림의 대표 카마엘은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부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람이시여. 이게 다 람께서 떠나기 전에 주고 간 식량 덕분입니다.”

“식량?”

“네.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세 부족은 모두 다 식량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람께서 잠시 외출하고 돌아오신 후, 그 식량난을 해결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뭐…그렇긴 하지.”

“그 이후, 모두가 잘 먹게 되자, 키도 크고 더 강인해지게 된 것입니다.”

의식주 중에 식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몬스터든 누구에게나 꼭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작 적정 식사량만 맞춰줬을 뿐인데, 강해졌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너희도 키가 커진 거니?”

“네. 거인족은 태어나서 죽기 직전까지 자랍니다.”

설명을 듣다 보니,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람께서 돌아오셨으니, 오늘은 축제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프란시스코의 말에 고개를 돌려 다리우스 선배를 바라봤다.

그리고 여기에 온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아. 내 선배야.”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람의 오른팔인 프란시스코입니다.”

“프란시스코, 무슨 소리냐! 람의 오른팔은 나 타르다!”

“람을 처음 먼저 알게 된 거인은 나 프란시스코니 당연히 내가 오른팔이다.”

프란시스코와 타르의 어처구니없는 싸움에 한숨을 나오려고 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다리우스 선배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이 모습을 보고 히죽이죽 웃었을 선배가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그만! 지금 손님 모셔놓고 뭐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람이시여.”

“죄송합니다.”

단 한마디에 의견 다툼을 일단락시키고, 몸을 돌려 창고를 바라봤다.

“하드리우스. 마나석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문을 열어라.”

안 그렇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나 또한 명령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고 물릴 생각은 없었다.

내가 죽기 직전까지 이들을 책임져야 하고, 다시는 람의 의식이라는 싸움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약간의 위엄도 보여야 했다.

끼이이익

창고의 문이 열리고, 눈앞에는 창고 가득 쌓여있는 마나석이 보였다.

“세상에.”

“오! 지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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