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_매혹의 저주(2)
스마일이 눈앞에 있다는 건 다른 말로 여기가 내 심상 세계라는 거였다.
심상 세계에서 사라졌던 스마일이 저주로부터 날 지키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고, 반가움과 함께 고마움이 몰려왔다.
“스마일. 내가 도와줄게!”
순식간에 칠성검을 만들어서는 중단세 자세를 취했다.
유성 찌르기
환한 공간에 별빛이 생겨나며 저주에게 검을 찔러넣었다.
뭉클
뭉툭한 이쑤시개로 단단하면서 탄력 좋은 고무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고, 반발력으로 몸이 튕겨났다.
콰앙!
“람이시여, 괜찮으십니까?”
스마일에게서 걱정 어린 말이 나왔다.
그런데, 람? 그건 거인족과 땅의 축복이 날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저는 땅의 축복입니다. 저 더러운 것을 막기 위해 허락 없이 람의 옥체를 따라 해서 만들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쉼 없이 저주와 싸우면서도 람의 대답은 끊김이 없었다.
그렇다고 땅의 축복이 저주와의 싸움에서 우세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봐도 박빙으로 보였고, 자세히 바라보면 미세하지만, 저주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그때, 땅이 축복이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설마…이게 봉인이야?”
“정확히는 봉인의 형상화입니다. 저는 지금 저주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래서 람의 검이 저 더러운 것에 닿기 전에 저를 거쳐서 람께서 튕겨나셨던 겁니다.”
“어? 그럼 설마 내가 방금 널 공격할 거야?”
“……”
땅의 축복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예상이 맞았다는 소리였다.
저주가 더욱 커지기 전에 뭘 해야 했다.
“내가 도울 건 없어?”
“네. 괜찮습니다.”
“그래도 내가 뭘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제게 강한 힘을 넣어주시면 봉인을 더욱 굳건히 만들 수 있습니다.”
“없앨 수는 없고?”
한동안 말이 없던 땅의 축복이 입을 열었다.
“지금 저 저주를 없애려면 제가 봉인을 푸는 순간, 일격에 저주를 없애야 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절 건들지 않고, 저주만 공격하던가요.”
“그래? 그럼.”
“네? 람이시여 뭘 하시려고?”
“잘 봐.”
다시 검을 들었다.
봉인을 건들지 않고, 저주만 공격하는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주만 벤다. 저주만. 땅의 축복은 건들지 않고.’
칠성검을 머리 위로 든 다음 천천히 내리그었다.
비기-절단검
포스도, 검기도, 오러도 아닌, 무형의 기운이 칠성검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그 기운은 땅의 축복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고, 깔끔히 지나친 후, 그대로 저주에게 박혔다.
“끼에에에에액!”
저주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기술은 성공적이었고, 땅의 축복에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역시 람이십니다.”
땅의 축복에게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었다.
비기를 사용해 저주에게 타격을 가했다.
그렇지만, 저주의 크기는 변함이 없었다.
“후우~”
길게 숨을 내뱉으며, 연속으로 절단검을 펼쳤다.
“끼에에에에에액~!!”
비명을 내지른 저주가 미비하게 작아졌다.
연속으로 다섯 번이나 비기를 펼치고 난 후였다.
그리고 두통이 몰려왔다.
“크…”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절단검을 펼칠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저주의 작아졌던 몸이 다시 회복되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저주를 언제 없앨지 기약이 없었다.
그때였다.
촤아아아악
심상 세계에 순백의 신성력이 쏟아졌다.
신성력이 나타나자, 저주가 겁을 먹었는지, 몸을 작게 웅크렸다.
“땅의 축복. 내가 신호하면 봉인을 거둬.”
“네? 람이시여. 그게 무슨 소리이십니까?”
“말 그대로야. 지금이 저 저주를 없앨 가장 좋은 타이밍인 것 같아.”
“…알겠습니다.”
땅의 축복은 더는 묻지 않았다.
그동안 쏟아지는 신성력을 향해 이화접목의 수법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신성력은 점점 칠성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심상 세계에 모여든 신성력을 칠성검에 모두 가둘 때였다.
“지금이야!”
“넵.”
봉인이 풀리자, 저주가 성급히 몸을 늘리며 사방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이화접목의 묘리를 살린 검무는 저주를 끌어당겼다.
“끼에에액~”
그렇게 저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칠성검에 모여들었다.
일차적인 상황은 끝났지만, 이대로 검무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지금 칠성검에는 신성력과 저주가 서로 부딪히고 있었다.
검무가 멈추는 순간 신성력과 저주가 풀려날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이제 칠성검에는 저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신성력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검무도 마지막을 향해 달렸고, 마지막으로 검을 정면에 찔러넣었다.
쇄애애애액
검 끝에 달려있던 신성력은 끝없이 느껴지던 심상세계의 저 먼 곳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눈을 떴다.
***
구름을 베개 삼은 아람이 교황청 하늘 위에 떠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 떠나기 전에 상급 마나석만 어떻게 구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예전에 받았던 상급 마나석으로 힘을 키우려고 했지만, 삼키자마자 유신에게 흡수됐다.
그게 못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길게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바로 앞에 도깨비불이 생겨나더니, 도깨비가 나타났다.
“중급 도깨비 아람이 맞나?”
드디어 자신을 찾아왔다.
때가 되었기에 찾아왔지만, 무언가 씁쓸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중급 도깨비 아람이 맞나?”
초면에 반말부터 하는 상급 도깨비에게 한마디 해주려다가 말았다.
자신은 무려 ‘대도깨비’였었던 존재였기에 이해하고 넘어가 주었다.
“네. 아람이 맞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신가요?”
“내 이름은 도담이다. 중급 도깨비인 널 인도할 상급 도깨비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알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활동할 수 있는 도깨비는 하급까지인걸요.”
“잘 아는군. 그럼 갈까?”
도담이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이제 저 손이 아래로 향하면, 차원의 틈이 열린다.
차원의 틈에 들어간 도깨비들은 이제 지구를 수호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인사라도 하고 싶지만, 뭐…어쩔 수 없지요.’
자리에서 일어나 차원의 틈이 열리기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찌르륵
이 신호는 유신이 자신을 부를 때였다.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뭐냐? 시간이 없다.”
“그건 제 사정이 아니죠. 그리고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주인이 있는 몸이라서요.”
“주인? 도깨비가 주인을 섬기고 있다고?”
당연히 도담은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도깨비가 누군가를 섬기는 건 말이 안 된다.
죽으면 죽었지만, 가이아를 제외하고 누군가를 섬기는 건 도깨비의 죄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감히! 가이아님을 배신한 거냐?!”
으르렁거리는 도담에게 미소를 지어줬다.
“무슨 소리입니까? 이건 가이아님과 가람님이 강제로 주인을 정해준 겁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거짓말? 도담님은 상급 도깨비가 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네요.”
“……”
도담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람의 예상대로 도담은 상급 도깨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상급 도깨비 도담님. 귀지 파고 잘 들으세요. 알다시피 도깨비는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정 못 믿겠으면 제가 다녀올 때까지 한 번 위에 문의해 보세요.”
빠르게 할 말을 끝내고, 유신의 부름에 답하기 위해 소환에 응했다.
홀로 남은 도담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서둘러 도깨비 거울을 꺼내, 차원의 틈으로 연락을 돌렸다.
***
아람은 나타나자마자 불퉁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불렀냐?”
내가 주인이었지만, 아람은 언제나 이랬다.
처음에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는 적응도 됐다.
“이제 중급 도깨비가 됐는데, 아직도 뚱해 있는 거야?”
“중급 도깨비가 된 거랑 내 기분은 다른 거다.”
캐나다에 다녀온 이후, 아람은 계속 이 상태였다.
“정말 왜 그러는데? 무슨 일 있어?”
저번에도 물어봤지만, 아람은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람의 기분을 풀어줘야 했다.
그래야 일을 시킬 때 편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하~ 펫의 눈치를 보는 주인이라니.”
“그렇게 싫으면 주인을 때려치우면 된다.”
“에휴~ 말을 말자. 일단 이거 받아.”
아람에게 건네준 것은 중급 마나석이었다.
그런데, 평소라면 기뻐 날뛸 아람이 이번에는 조용했다.
‘정말 뭐가 있나? 왜 그러지?’
유심히 중급 마나석을 바라볼 뿐, 아람은 딱히 마나석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왜? 싫어? 평소라면 벌써 가져갔을 거면서.”
“아니다.”
아람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손 위에 놓여 있는 중급 마나석을 낚아채 갔다.
그래서 새로운 중급 마나석을 하나 더 꺼냈다.
“뭐냐? 이걸 왜 또 꺼내지? 설마…”
“응. 맞아. 너 주려고.”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던 아람은 무언가 고민하더니, 이내 뻗어가던 손을 내렸다.
“뭘 부탁하려고 하는 거지?”
“헤헤~ 티 났어?”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부탁할 게 뭐냐?”
확실히 아람은 만만치 않았다.
한때 대도깨비까지 괜히 올라간 게 아니었다.
이럴 때일수록 빙빙 돌려 말하는 것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좋았다.
“마족 숭배자들을 좀 찾아줘.”
마족 숭배자 찾기.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집을 지어 달라는 요구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람은 중급 마나석을 챙기며 고개를 끄떡였다.
“좋다. 그렇게 하지.”
이렇게 쉽게 일이 해결되자, 어이가 없었지만, 따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여기서 꼬투리를 잡으면 한도 끝도 없었다.
“일주일 뒤에 널 다시 소환할 거야. 그렇게 일주일 단위로 다시 만나는 거 괜찮지?”
“좋다.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아람이 저렇게까지 말하면 무언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먼저 가지.”
끝내 대답하지 않고 아람이 떠났다.
“오늘따라 특히 이상하네. 뭐 어떻게 되겠지.”
그렇게 아람을 보낸 후, 오랜만에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릴라에게 물렸지만, 심상세계를 다녀오면서 치료가 된 목을 만져봤다.
“그 기술을 밖에서도 할 수만 있으면 정말 대박인데…”
평소라면 벌써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쉬고 싶었다.
최근 쉴 틈 없이 너무나 바쁘게 지내왔기 때문이었다.
***
유신과 헤어진 아람은 도담이 기다리고 있는 교황청 하늘 위에 다시 나타났다.
그런데, 도담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대…대도깨비였던 아람님을 뵙습니다. 제가 하급으로만 오랜 시간을 지내서 아람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설마 진짜로 연락했던 겁니까?”
“죄.죄송합니다.”
도담은 공중에서 구름을 향해 머리를 박았다.
물론 아프지 않을 테지만, 충분히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럼 이제 출발할까요?”
“아닙니다.”
“네? 뭐가 아니라는 거죠?”
“위에서 승인이 났습니다. 아람님은 따로 임무가 있어서 지구에 계시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어? 안 되는데??”
이럴 줄은 몰랐다.
솔직히 유신이 마족 숭배자를 찾아달라고 할 때, 기간을 정하지 않아서 그냥 차원의 틈으로 가려고 했다.
거기서는 아무리 자신을 불러도 지구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구에 남아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마족 숭배자를 찾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럼 아람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도…아니 저도 데리고 가세요.”
“역시 아람님 이십니다. 저희 도깨비를 이렇게 생각해주시다니… 하지만 괜찮습니다. 지금 차원의 틈은 예전에 비해서 많이 편해진 상황입니다. 그럼 지구를 부탁합니다.”
빠르게 사라지는 도담을 보며 좌절감이 들었다.
지금 지구는 무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차원의 틈은 예전과 다르게 평화롭다는 소리였다.
“꿀 빨 수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