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_릴라(4)
사람들에게 달려가면서 사실은 마음이 약해졌다.
어딘가에서 쉬거나,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 시간의 리미터가 주어지자, 오히려 약해지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반 정도 움직였을 때였다.
사람들의 차량이 멀리서 보였는데, 바람을 타고, 비릿한 혈향이 코끝을 찔렀다.
“이게 뭐야?”
자동차는 모두 부서져 있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고는 죽어있는 사이클롭스 사체 하나와 서른 명의 헌터와 기동대원들의 사체가 전부였다.
눈 앞에 펼쳐진 잔혹한 참상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너무나 허탈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몸 안에는 힘이 넘쳐났지만, 정신은 점점 붕괴되는 것 같았다.
그때, 아람이 유신의 옆으로 다가왔다.
“유신. 정신 차려라.”
“나 때문에…나 때문에…”
“응?”
“모두 나 때문에 죽었어.”
“무슨 소리냐? 네가 잘못한 것은 없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람의 위로는 도움 되지 않았고, 그저 스스로에게 욕설을 내뱉고 싶어졌다.
그때였다.
“호호호. 역시 여기로 올 줄 알았어.”
릴라가 불쾌한 웃음을 내뱉으며 나타났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릴라에게 달려들어서 오러를 휘둘렀다.
따악.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릴라가 핑거 스냅을 하며 뒤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오러는 릴라의 목 바로 앞에 멈췄다.
“지금 뭐 하는 짓이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혹시 몰라 인질을 그대로 둔 건데 어떻게 내게 반항할 수 있지?”
질문을 던진 릴라가 땅의 축복이 걸어둔 봉인을 유심히 바라봤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누가 봉인을 걸어뒀네. 근데 얼마 버티지 못하겠어.”
“빨리 저들을 풀어.”
“종 따위가 주인에게 명령하네?”
“안 그러면 당신을 죽여 버리겠어.”
검날을 목에 더욱 바짝 붙였다.
칠성검의 날카로움에 살갗이 베었는지 릴라의 목에서 한 방울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래. 할 수 있으면 해봐.”
릴라는 오른손을 들어서는 그대로 핑거 스냅을 했다.
따악!
그러자, 인간들을 인질로 잡고 있던 몬스터들이 무기를 높이 들었다.
몬스터들이 무기를 내리면, 그대로 남은 사람들의 머리가 수박 깨지듯 터져나갈 것이다.
이대로 적에게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저들이 피해를 보더라도 앞에 있는 이 여자를 죽일 것인가?
바드득.
이가 갈릴 수밖에 없었다.
강해지면 모든 걸 쉽게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강하다고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난 아직 약해서 그럴 거야.’
더 강해져야 한다. 인질이 있더라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송곳니가 갈려 나가는 게 싫다니까? 그만 봉인을 풀고 복종해. 그러면 저들은 살려줄게.”
이백 명이 넘던 사람은 이제 마흔 명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은 살려달라고도, 괜찮다고도 말하지 않았고, 그저 멍한 시선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들에게 뭔 짓을 했지?”
“마지막으로 말할게. 질문은 주인인 나만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넌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그러니까 검 내려.”
***
다리우스가 데리우스와 함께 게이트를 열고 내린 곳은 유신과 똑같은 페이토 호수였다.
단지 다른 점이라고 하면, 유신은 그대로 추락했고, 다리우스는 어둠의 마나로 데리우스와 함께 공중에 떠있었다.
“흠…좌표는 이곳이 아니었는데, 이 근처로 공간이동을 하면 한동안 여기로 떨어지게 해놨네?”
공간이동 좌표를 강제로 조정한다는 것에 오랜만에 마법사로서 흥미가 생겼다.
그렇게 마법사의 탐구 욕구가 점점 일어날 때였다.
게이트에서 마리가 튀어나왔다.
“마리 브로~도 여기 왔어?”
자신을 따라온 마리를 바라보는데,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다.
“마법사가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해~!!!”
떨어지던 마리는 급하게 성호를 긋더니 등 뒤에서 빛의 날개가 솟아났다.
사아아아악
빛의 날개는 마리가 페이토 호수에 빠지기 전에 멈춰서게 했다.
“다리우스 좌표 제대로 입력한 거 맞아?”
마리가 의문을 표할 때였다.
호수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생겨났다.
“브로~ 조심해~”
위험을 알렸지만, 거대 물고기가 마리를 삼키고 난 후였다.
“흠…저렇게 큰 민물고기는 일루시안에서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저 물고기는 삼켜도 왜 마리를 삼켜서는…”
콰아아아앙
물속에 가라앉으려고 했던 거대 물고기가 펄쩍 뛰어올랐고, 물벼락이 떨어졌다.
“실드.”
마법으로 간단히 물벼락을 막아낸 후, 막내 브로를 찾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동안, 거대 물고기는 헤엄을 치는 것처럼 페이토 호수를 펄떡펄떡 뛰어다녔다.
콰아아앙
콰아아아앙
“찾았다.”
유신이 있는 곳을 찾자마자, 거대 물고기의 움직임도 멈췄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거대 물고기의 배가 신성력에 의해 갈라지더니, 마리가 거기서 나왔다.
“다리우스!”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는 마리의 모습에 장난끼가 발동했다.
“마리 브로~ 요즘 훈련 안 해? 왜 이렇게 약해졌어?”
순간적으로 마리의 손에서 신성력이 뿜어졌다.
콰직.
단 한 방에 실드에 금이 갔다.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마리는 역시 지구 한정 최강자였다.
“브로가 일루시안에서도 아무런 제재 없이 힘을 사용했다면, 벌써 마족들을 마계에 쫓아냈을 텐데.”
진실 반, 아부성 발언 반이었지만, 마리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연속으로 신성력이 뿜어지고 있었다.
실드로 막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몰랐다.
거기다가 자신은 마리와의 상성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항복. 항복! 미안해. 마리 브로~ 정말 미안해~ 아임 쏘리. 플리즈. 멈춰줘!!”
어떤 말을 해도 마리의 화를 풀기는 어려웠다.
“유신 브로~ 우리 막내 구하러 가야지.”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멈추지 않았던 신성력이 유신을 거론하자, 멈췄다.
“어디 있지?”
“저쪽으로 약 200km 정도 가야 해. 그리고 빨리 가야 할 것 같은데? 계속 이동하고 있어.”
마리는 유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더니, 빛의 날개로 공중에 떠서는 먼저 날아갔다.
“같이 가~!!”
서둘러 마리를 쫓았다.
하지만, 속도를 맞춰서 뒤쫓기는 어려웠다.
지금 자신의 힘 대부분은 데리우스를 컨트롤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리가 자신을 기다려줬다.
“마…”
마리가 검지로 입을 막으며, 조용하라고 신호하면서 어디를 보고 있었다.
슬쩍 바라봤지만,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초인적인 시력에 보이지 않는다는 건 더 멀리 뭐가 있다는 소리였다.
-이글 아이.
마법으로 5km 떨어진 곳을 보자, 유신이 어떤 여자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뒤로는 인질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 굳이 조용할 필요가 있을까?
메시지 마법으로 마리에게 말을 걸었고, 마리가 인상을 찡그리다가 신성력으로 공중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족인 것 같아.
-마족?
마리 또한 마족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마족 중에서 저런 마족은 없었다.
마치…마족도 인간도 아닌 존재인 것 같았다.
“반마족이군.”
-조용!
“그렇게 조심할 필요 없어. 반마족이야.”
“반마족?”
누군가 자신에게 반마족에 대해서 묻는다면, 어떻게 해서든 놀렸을 거다.
하지만, 지금 마리를 놀리는 순간 그 뒷감당은 쉽지 않을 거였다.
거기다가 지금은 놀리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다.
“응. 인간이 마족의 힘을 가지게 되면 그게 바로 반마족이지. 그래도 반마족치고는 완성도가 높은데? 파괴 본능보다는 인간성을 중시했어.”
“그래서 마족과 반마족은 어떤 차이가 있지?”
“보통 마족보다 약하지. 일루시안에서도 반마족이 있기는 했는데, 언제나 문제를 일으켜서 우리가 다 죽였어.”
마리는 믿지 못하는 눈빛을 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브로~ 뭘 못 믿겠는지 모르겠지만, 반마족은 진짜로 있고, 대장이 다 없앴어… 물론 살아남은 몇몇은 마계로 도망친 걸로 알고 있는데, 뭐 지들이 어떻게 하겠어. 인간도 마족도 아닌 놈은 당연히 어딜 가나 따돌림당할 텐데.”
대장이라는 말이 거론될 때부터 마리는 의심의 눈빛을 지웠다.
자신이 이렇게 신뢰성이 없다는 게 조금은 한탄스러웠지만, 따로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돼? 유신 브로~가 위험해 보이는데?”
“내가 유신을 맡을 테니, 다리우스 네가 사람들을 구해줘.”
“그럴 필요 없어. 잠깐만 기다려.”
어깨를 푼 후, 유신과 반마족이 있는 곳을 향해 뛰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자신이 왔다는 걸 동네방네 자랑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텔레포트!”
순식간에 눈앞에 있는 풍경이 바뀌었다.
나무들만 가득한 곳에서 사이클롭스와 다양한 중대형 몬스터들이 눈에 보였다.
감이 좋은 건지, 아니면 마법에 익숙한지 반마족 여자가 텔레포트를 눈치채고는 고개를 돌렸다.
“유신 브로~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
“다리우스 선배! 위험해요!!”
사이클롭스의 거대한 주먹이 자신에게 치켜들었다.
오른팔에 힘을 준 상태에서 상대의 주먹을 향해 똑같이 주먹을 내뻗었다.
콰앙!
“우어어엉!!!”
오른팔이 터져나간 사이클롭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뒤늦게 다른 몬스터들이 사람들을 공격하자, 양손을 뻗었다.
“실드!”
검정 광택의 실드가 사람들을 휘감았다.
탱탱탱탱탱
실드에 몬스터들의 공격이 튕겨 나갔다.
“자! 이제 유신 브로~ 차례야!”
***
갑자기 나타난 다리우스 선배를 보자 반가운 마음도 들었지만, 놀란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기회가 생겼다는 거였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그대로 검을 휘둘렀지만, 릴라가 조금 더 빨랐다.
칠성검의 검날에 약간의 생채기만 입으며 검을 피했다.
“넌 누구지?”
릴라는 검을 피하면서 다리우스 선배를 주시했다.
그리고 다리우스 선배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분명 릴라에게 보인 웃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웃는 것 같았다.
자격지심일 수도 있지만, 지금 릴라와 싸우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나였다.
“네 상대는 나야!!”
거칠게 검을 휘둘렀지만, 릴라는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했다.
다리우스 선배에게 내가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릴라를 제압하기 위해 칠성검을 더욱 꽉 움켜잡았다.
유성 찌르기-변형 유성 가르기
별빛 가득한 오러가 넓게 퍼져나갔다.
지금까지 피하기만 하던 릴라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서는 핏빛 파동을 일으켰다.
콰아앙
유성 가르기와 핏빛 파동이 공멸하며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 한 방에 이길 수 있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미 칠성검을 중단세로 취한 후, 그대로 앞으로 내질렀다.
유성 찌르기
콰앙
푹
재차 공격한 찌르기가 방어막을 뚫고, 릴라를 찔렀지만, 얕았다.
약간의 승기를 잡은 상태에서 칠성검에 오러를 키운 후, 채찍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쾅쾅쾅쾅
막기 급급하던 릴라가 인상을 찡그리더니 몸 주변에 파동을 일으켰다.
오러가 더는 릴라에게 유효한 타격을 가하지 못하게 됐고, 서슬 퍼런 눈빛을 한 릴라가 손을 휘저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콰득 콰드득
릴라의 육체가 울퉁불퉁 솟구치기 시작했다.
변신하는 징조였고, 보통 이때 상대는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유성 찌르기-변형 유성 던지기
주먹만 한 별빛 오러가 릴라에게 꽂혔다.
콰아아앙
유성 던지기는 릴라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공중에 몸을 띄우게 했다.
그사이 변신을 끝낸 릴라는 머리 위로 산양의 뿔이 달려있었고, 남성 보디빌더의 몸처럼 탄탄해졌다.
어떤 공격이 다가올지 모르기에 호신강기를 만든 상태에서 재차 공격 준비를 할 때였다.
릴라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황당했지만, 등을 보인 릴라를 향해 재차 검을 내질렀다.
유성 찌르기-변형 유성 던지기
블레이드 샷
즉발성 원거리 공격을 가했지만, 릴라는 손쉽게 피하고 도망쳤다.
그때 릴라의 반대편에서 신성한 기운이 넘치더니, 릴라에게 다가와서는 그녀의 머리를 꽉 움켜쥐고 땅에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크레이터를 중심으로 돌풍이 풀더니, 마리 선배가 튕겨 나왔다.
“선배!”
먼지가 가라앉고, 사리 분별이 가능해지자, 크레이터 중심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있었다.
그곳에는 도미니크가 쓰러진 릴라를 안은 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