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_릴라(3)
짜아악
누군가 뺨을 때렸다.
그리고 찢어질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짜아악
온몸이 아파서 그럴까?
뺨을 맞았는데도 그렇게 아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계속 가만히 뺨을 맞기도 뭐해서 힘들게 실눈을 떴다.
“아니. 그냥 일어나지 마. 유신이 이대로 죽으면 나는 자유의 몸이 되는 거군. 잠깐! 그러면 더는 마나석을 구하기 힘든데.”
오락가락하며 고민하는 아람의 모습이 보였다.
팔을 들려고 했는데,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몰려왔다.
고통.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힘들게 곁눈질로 몸을 살펴보니, 폭발 때문에 온몸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어떻게 든 포션을 먹어야 해.’
고통이 희미해지려는 정신을 붙잡았고, 겨우 아공간에서 최상급 포션을 소환했다.
“아…아…라…ㅁ”
성대까지 화상을 입었는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쇠를 긁는 듯한 소리만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람이 목소리를 듣고 눈치챘다는 거였다.
“응? 유신 정신 차렸어?”
“퍼…셔…ㄴ”
눈치 좋은 아람은 오른손 쪽에 놓여 있는 최상급 포션을 가져와서는 뚜껑을 열어서 입에 흘러 넣어줬다.
“쿨럭~”
확실히 성한 곳이 없었다.
제대로 삼키지 못한 최상급 포션을 뱉어내고 말았다.
하지만, 아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포션을 입에 들이부으며 말했다.
“무조건 삼켜라. 안 그러면 넌 죽는다.”
죽음.
언제나 내 옆에 있으면서 현실감을 느끼지 못했던 단어였다.
그렇지만 오늘은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고통과 싸우면서 남은 포션을 힘들게 삼켰다.
최상급 포션의 효능은 확실했다.
몸이 약간 치료되면서, 죽은 신경이 살아났는지 더욱 고통이 몰려왔다.
‘크어어어억’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며 이번에는 13기동 타격대의 붉은 포션을 아공간에서 소환했다.
붉은 포션을 잡아챈 아람은 뚜껑을 열더니 머뭇거렸다.
“유신. 지금 이걸 먹으면 쇼크사할 수도 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머뭇거릴 수도 없었다.
최상급 포션으로 치료를 하면 할수록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육체가 죽어간다는 걸 말이다.
‘더는 시간을 끌어봤자, 죽는 건 매한가지야.’
최대한 고통을 참으며 아람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아람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가이아님. 이건 제 책임이 아닙니다.”
짧게 기도를 끝낸 아람이 붉은 포션을 입에 흘러 넣었다.
붉은 포션은 순식간에 입과 식도를 치료한 후, 전신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와 달랐다.
‘상쾌해. 어? 간지럽네? 으드득! 개미가 내 전신을 뜯어 먹는 것 같잖아!’
“크아아아아악!”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다가 이제는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붉은 포션의 고통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몸의 상처가 깊었는지 고통은 배가 되었다.
아니. 배 이상이었다.
‘크으윽.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이걸로 부족할 수도 있어.’
조금이라도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포스 호흡까지 운용했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치유의 고통은 끝이 났다.
겨우 육체와 정신을 추스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억 허억…”
단지 일어나기만 했을 뿐인데, 지쳤다.
거기다가 옷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고, 알몸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그런 대폭발에서도 칠성검은 무사했다.
“아…람…몬…스터?”
아직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람은 뭘 물어보는지 확실히 아는 것 같았다.
“다 죽었…그런 표현보다는 이게 정확할 거다. 모두 소멸했다.”
“소…?”
“응. 최상급 마정석의 폭발에 가죽 하나, 살점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다…”
힘을 줬던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그렇지만 끝난 건 아니었다.
“리…라?”
“누구? 아! 그 냄새나는 흡혈귀? 도망쳤다.”
목에서 고통이 치솟으면서 인상이 써졌다.
릴라를 욕하는 건 아무리 아람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근데, 왜 용서하면 안 되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몸을 돌보는 게 먼저였다.
아공간에서 하급 마나석을 하나 꺼내, 아람에게 건네줬다.
“흥! 지금까지 지켜주고, 도와줬는데, 고작 한 개냐?”
아람은 불평불만을 토로하면서, 하급 마나석을 삼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붉은 포션을 하나 더 꺼냈다.
그러자, 아람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유신! 미쳤나? 그걸 하나 더 먹겠다고? 그러다가 정말 죽을 수도 있다.”
무언가 더 말하는 게 들렸지만, 무시하고, 포션을 들이켰다.
“크으윽…”
붉은 포션으로 인한 고통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지만, 버텨냈다.
몸의 회복도 중요했지만, 먼저 간 사람들을 최대한 빨리 뒤쫓아야 했다.
그렇게 다시 십 분이 지나자, 몸은 많이 회복되었고, 아공간에서 여분의 옷을 꺼내 입었다.
“아람. 사람들이 간 길을 알려줘.”
“내가 이 말을 하는 게 너무나 어색하기는 한데, 정말 그러다가 죽는다. 쉬어야 해.”
“부탁해.”
뚱한 표정을 지은 아람은 한참을 고뇌하더니 이내 한쪽으로 손으로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면 된다.”
“고마워.”
아람이 가리킨 곳으로 몸을 움직일 때였다.
“유신. 마지막으로 권하겠다. 그러지 말고 좀 쉬지?”
“웬일로 내 걱정이야?”
“걱정? 내가? 이 대도깨비였던 아람이 널 걱정한다고? 착각도 자유네? 잘 들어. 지금 네 상태는 걱정이 아니라, 불쌍할 정도야.”
“응?”
“응?은 무슨 응이야? 지금 널 봐봐. 제대로 걷지 못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잖아.”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여기까지 걸어온 발자국이 반듯하지 않고, 술에 취한 사람처럼 두서가 없었다.
그렇다고 멈출 생각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사이클롭스 세 마리가 갔다고 했어. 빨리 가봐야 해.”
어기적거리며 움직이려고 할 때 균형을 잃고는 넘어졌다.
그때, 가슴 정중앙에서 황금빛이 솟구쳤다.
[람이시여. 괜찮으신가요?]
“땅의 축복이구나.”
[일단은 쉬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옥체가 많이 상했습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아직 할 일이 남았어.”
[땅의 축복인 전. 람에게 조언을 하는 존재. 그러면서 람의 어떠한 결정도 따르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제가 람의 힘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할 때였다.
땅의 축복이 몸 주위를 뱅글뱅글 돌았다.
[지금 람의 옥체에 이상한 기운이 침범하고 있습니다. 일단 그 힘부터 막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한 기운은 분명 릴라가 때문일 것이다.
릴라를 떠올리기만 했는데, 목에 통증이 올라왔다.
“크윽… 부탁할게.”
대답이 떨어지자, 땅의 축복이 다시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렇게 황금빛은 가슴을 시작으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반항할 생각도 그렇다고 반항할 힘도 없기에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몸속에서 땅의 축복이 지나간 자리에 기운이 넘쳐났다.
[람이시여. 인간의 시간으로 전 고작 세 시간 정도 람의 힘이 되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안에 람의 고뇌를 해결하시고, 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람의 목에 있는 불길한 기운은 임시방편으로 봉인을 해두었습니다.]
그리고 더는 땅의 축복에게서 어떠한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람. 앞으로 세 시간 동안은 멀쩡할 거다. 그러니까 다시 길 안내 좀 부탁할게.”
“이제는 이상한 것까지 데리고 다니는구나. 알았어. 이쪽이다.”
아람이 가리킨 곳을 바라본 후, 앞으로 달렸다.
‘앞으로 세 시간 안에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제발 무사하기를…’
***
라이언과 레이지의 만남.
그들은 서로를 보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다가가 껴안았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흘렸다.
“오빠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남매의 만남에 교황청 사람들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때, 눈치를 보던 다리우스가 마리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마리 브로~ 이제 유신한테 가자. 빨리.”
마리는 이 감동적인 모습을 보고, 아무렇지 않은 다리우스를 째려봤다.
“다리우스. 지금 유신한테 간다고 해서 최상급 마나석을 구할 수는 없어.”
“알아. 아는데…되든 안 되든 빨리 알고 싶어. 더는 데리우스가 괴롭지 않게.”
13기동 타격대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오늘 동생을 찾고 싶다는 라이언의 사연이 해결됐다.
다리우스의 사연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유신이 유일할 수도 있었다.
“알았어. 대신에 유신이 최상급 마나석을 구하지 못한다고 해도 화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해.”
“당연하지. 맹세도 할 수 있어.”
솔직히 다리우스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약속이든 맹세든 언제나 쉽게 어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제약을 걸어두면, 다리우스가 화를 내기 전에 최소한 한 번은 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지금쯤이면, 좌표 입력이 끝났을 거야. 가자.”
“고마워 마리 브로~ 라이 읍!”
다리우스가 라이언을 부르려고 하자, 손을 들어 다리우스의 입을 막았다.
키와 덩치 차이 때문에 그 모습이 어린 소녀가 거대한 곰에게 손을 뻗는 모양새였다.
그렇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라이언과 레이지 남매의 감동에 빠져,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뭐 하는 거야? 라이언을 왜 불러?”
“퉤퉤~ 마리 브로~ 그게 왜?”
“남매가 몇십 년 만에 재회했잖아. 둘이 얼마나 할 말이 많겠어? 우리끼리 가자.”
“역시 성녀 브로야~ 그렇게까지 생각할 줄이야.”
눈을 흘긴 후,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같이 가~”
그렇게 움직여서 도착한 곳은 캐나다로 향하는 게이트였다.
거기서는 교황청 소속의 공간이동 마법사들이 게이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과 다리우스를 발견한 교황청 소속의 공간이동 마법사인 미켈 모르네가 다가왔다.
“준비 끝났습니다.”
“그럼 가동해.”
“알겠습니다.”
공간이동 마법사들이 마정석에 기운을 불어넣을 때였다.
푸른 빛을 발휘하며 열리던 게이트가 갑자기 빛을 잃었다.
“무슨 일이지?”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미켈은 대답과 동시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움직였다.
가만히 있으면 곧 마법사들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가져올 것이다.
하지만, 다리우스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게이트로 다가가서는 확인하기 시작했다.
“마리 브로~ 이건 좌표가 사라져서 그런 거야.”
“좌표가 사라져?”
“누군가 좌표를 강제로 없앤 거지. 좌표가 뒤틀릴 정도의 힘을 발휘하거나, 거대한 폭발로 인해 지형이 완전히 바뀌면 이런 일이 발생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새로운 좌표를 입력하면 되지.”
그때 미켈이 뛰듯이 달려와서는 보고하기 시작했다.
“좌표가 사라졌습니다.”
“그건 다리우스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 새로운 좌표는?”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걸리지?”
“30분…아니 최대한 빨리하면 20분 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켈의 말에 게이트를 살피던 다리우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렇게 길게 기다릴 시간이 없어. 유신 브로~가 위험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마법사 브로~ 마정석을 활성화 시켜.”
다리우스의 요청에 미켈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자신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거였다.
그래서 작게 고개를 끄덕여 수락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활성화 시키겠습니다.”
그렇게 미켈이 마정석을 다시 활성화 시키고 있을 때였다.
다리우스가 게이트에 다가가서는 슥 한번 확인하더니, 흑마력을 끌어올려서 게이트의 몇 곳을 건드렸다.
그러자, 게이트가 다시 푸른 빛을 뿜어냈다.
“그럼 마리 브로~ 다녀올게.”
짧게 인사를 건네 다리우스가 데리우스를 업었다.
“기다려!!”
하지만, 외침이 늦었다.
벌써 다리우스가 데리우스를 데리고 게이트에 들어간 뒤였다.
“이거 불안한데…”
솔직히 쫓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해야 할 업무는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다리우스가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서 불안하기도 했다.
13기동 타격대에는 몇몇 폭탄 같은 존재가 있고, 그중 제일가는 폭탄이 다리우스였다.
“어쩔 수 없잖아.”
지금 다리우스를 풀어두면, 이틀만 고생하면 될 일들이 한 달이 걸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다급하게 게이트로 뛰어들었다.
***
최상급 마정석의 폭발에 릴라 또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피부는 전체적으로 붉게 화상을 입었고, 왼쪽 손목은 통째로 보이지 않았다.
“그 황금빛은 뭐였지?”
폭발에 온몸이 화상을 입으며 죽는 줄 알았다.
그때 유신의 몸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와서는 폭발의 에너지를 모두 흡수했었다.
그로 인해, 겨우 목숨을 부지했었다.
“도깨비만 아니었으면… 하유신도 그 황금빛도 다 내 껄로 만들 수 있었는데…”
유신이 무슨 계약을 맺은지 모르겠지만, 도깨비가 유신의 편을 든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하유신과 연결된 끈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자신이 살았듯이 하유신도 살았다는 것이었다.
“하유신의 성격이라면, 곧장 인간들에게 가겠지. 그들을 활용해야겠어.”
곧바로 사이클롭스에게 공격 중지 텔레파시를 보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간단한 명령은 가능했다.
“다시 보자 하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