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_릴라(2)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릴라는 방긋 웃으며 바리케이트로 향한 후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뭐 이제 곧 내 충성스러운 부하가 될 거니까 말해줄게. 원래는 널 강하게 키워서 마왕님을 깨울 제물로 사용하려고 했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억지로 용을 써서는 최상급 포션을 꺼내 상처에 들이부었다.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돼. 그런다고 쉽게 낫는 상처도 아니고 말이야.”
릴라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포션을 소환해서 사용할 때까지 분명 눈치를 챘으면서 가만히 뒀던 거였다.
“마…족 숭배…자였나?”
“자꾸 우리를 마족 숭배자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마신 숭배자야. 어디 마족 따위와 비교를 해.”
“그딴 게 뭐…쿨럭…라고”
“중요하지. 누가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를 낮게 부르면 정말 기분 나쁘잖아. 안 그래?”
하지만, 릴라는 실수한 게 있었다.
“흐흐…”
참으려고 했지만, 실소가 나왔고, 릴라가 의문을 표했다.
“왜 웃지? 죽기 전이라서 실성했나? 그러면 싫은데? 참고로 말하는데, 나는 하유신 널 죽이지 않을 거야. 내 종으로 만들거야.”
최상급 포션으로 약간의 힘이 돌아왔다.
그렇다고 상처가 치유된 것은 아니었다.
오크 로드에게 당한 것처럼 무언가 치료를 방해하고 있었다.
퐁
13기동 타격대의 붉은 포션을 꺼내 한 병을 상처에 들이부었다.
역시나 릴라는 내가 치료를 하는데,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붉은 포션을 한 병 더 꺼낸 후 마셨다.
“그런다고 쉽게 치료가 될 상처가 아니라니까. 그런데, 왜 자꾸 웃어?”
순식간에 고통이 몰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크! 바드득!! 우리는 지금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있어. 바드득 그러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거지.”
“그게 그렇게 문제가 돼?”
“당연하지. 크으윽… 파동의 힘을 벗어난 몬스터들이 이제 곧, 진격해서 너도나도 죽일 게 뻔하니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고통과 함께 구멍이 뚫린 배가 치료되기 시작했다.
지금 릴라가 공격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혈하는 것처럼 양손으로 뚫린 배를 감싸 안았다.
“뭐야? 겨우 그거였어? 호호호호~”
귀가 찢어질 듯한 웃음소리를 내뱉던 릴라가 자신에게 다가오며 턱을 쓰다듬었다.
“몬스터들이 왜 갑자기 공격했을까? 그것도 이 넓은 캐나다에서 여기를. 너무 우연이라고 생각 안 해?”
릴라가 내 머리채를 잡더니 강제로 일으켰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다가오는 바리케이트 쪽을 강제로 보게 했다.
“이…이럴 수가…”
순간 붉은 포션의 치유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랐다.
몬스터들이 모두 제자리에 서서는 이쪽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흉폭하고 본능만 있는 몬스터들이 지금은 순한 양처럼 보였다.
“이들을 조정하는 게 바로 나였거든.”
“바드드득!!”
“화를 내도 상관은 없는데, 이는 갈지 마, 난 동양인 특유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좋아하는데, 그렇게 이를 갈면 송곳니가 다 망가지잖아.”
“하나만 묻겠다.”
“그래. 내 종이 되면 더는 묻지 못하니까 마지막 질문 하나 정도는 들어줄게.”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손대지 않았지?”
“글쎄?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
제발 아니라고 손으로 계속 빌었다.
“거기에는 몬스터 세 마리만 보냈어. 내가 아끼는 몬스터야. 사이클롭스라고.”
순간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화가 났다.
사이클롭스가 한 마리만 나타나도 그들은 쉽게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세 마리나 보냈다?
“지금쯤이면 만났을 거야.”
“바드득! 목적은 나 아니었나? 그런데 왜?”
“유희라고 생각해. 그리고 이제 질문은 그만.”
말을 끝낸 릴라가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며 웃었다.
그리고 뱀파이어처럼 릴라의 송곳니가 자라났다.
“잘 먹겠습니다.”
아직 몸속에서 회복과 고통이 공존하고 있어서 반항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릴라의 송곳니가 목을 살짝 깨물었다.
“크윽…”
목에 이질적인 무언가가 들어왔고, 전신에 힘이 빠지면서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하고 그대로 릴라에게 안기고 싶었다.
왜 영웅이 되고 싶었는지, 전설과 함께하고 싶었는지 다 하찮게 느껴졌다.
그저 릴라. 그녀의 품에 안기고 싶어졌다.
“하아~~”
기분 좋은 신음이 나올 때였다.
퍼펑
푸른 도깨비불이 우리를 가격해서 떨어뜨렸다.
“까아아악!!”
비명을 내지른 릴라의 몸에 청염이 불타올랐다.
“이런이런 어디서 썩은내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마족이 된 인간이 풍기던 냄새였군.”
“아…람…?”
흐릿한 눈으로 바라본 아람은 평소와 달리 조금 더 커져 있었다.
예전에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였다면, 지금은 돌이 막 지난 어린아이 크기였다.
아람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찼다.
“하유신. 고작 저런 뱀파이어 따위에게 매혹될 줄이야. 이 대도깨비 출신이었던 아람이 도와줘야겠군. 이건 나중에 갚도록 해라.”
양손에 푸른 불꽃을 피운 아람이 릴라에게 도깨비불을 발사했다.
그녀가 도깨비불을 맞게 둘 수 없었다.
몸을 날려서 그녀 대신에 도깨비불을 맞았다.
퍼퍼펑
도깨비불을 맞았는데, 고통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아람은 쉬지 않고, 도깨비불을 계속 쏘아 보냈다.
퍼퍼퍼퍼퍼펑
맞을 때마다 몸이 뒤로 밀려나면서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람. 고맙다.’
조금 큰 도깨비불과 부딪히자, 과장되게 뒤로 날아갔다.
쿠다다탕
그때였다.
릴라가 아람의 도깨비불을 꺼뜨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천박한 도깨비 따위가 내 일을 방해해!!”
손톱이 길게 자라난 릴라가 아람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아람과 릴라의 싸움이 시작됐다.
몸을 일으켜서 아람을 도우려고 했는데, 릴라에게 물린 목에서 고통이 쏟아졌다.
“크윽!”
아람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릴라를 공격하려고 마음먹자, 고통이 몰려왔다.
이것도 릴라의 권능 중 하나라는 걸 느꼈다.
권능의 힘은 대단했다. 다시 몽롱한 표정이 되어서는 릴라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때 고개를 돌려서 아직 가만히 있는 몬스터 군단을 바라봤다.
‘그래. 이렇게 노예가 될 바에는 죽는 게 나아!’
아공간에서 최상급 마정석을 꺼냈다.
이곳으로 오면서 트윈 헤드 오우거를 잡고 나왔던 최상급 마정석이었다.
거기에 포스를 집어넣었다.
마정석을 폭탄으로 활용해본 건 최대가 중급 마정석까지였다.
그 이상은 시도해본 적도 없었고, 중급 마정석만 해도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자랑했다.
‘제길! 아무리 최상급 마정석은 처음이라지만, 이거 포스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 이러다가 들키겠어.’
아람의 육체에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끝없이 포스를 받아먹는 최상급 마정석은 붉게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최상급 마정석에 포스를 집어넣을 때였다.
“응?”
릴라가 눈치를 챘는지 아람과의 전투 도중 고개를 돌렸다.
“하유신. 지금 뭐 하는 거지?”
위이이이잉
드디어, 최상급 마정석이 붉게 달아올랐다.
“수류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게 최상급 마정석으로 만드는 거라서 폭발력이 장난 아니거든요. 그럼 조심하십시오.”
목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참으며 릴라가 다칠수도 있기에 몬스터 군단이 있는 곳을 향해 힘껏 던졌다.
수류탄이 된 최상급 마정석은 포물선을 그리며 몬스터 군단 중앙에 떨어졌다.
***
라스베이거스에서 조금 떨어진 세계 비밀 기지에는 일루시안과 연결된 게이트가 있다.
그 게이트 앞에 마리가 시계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게이트가 일렁이더니 세 개의 그림자를 뱉어냈다.
“생각보다 늦었네?”
마리의 말에 지구로 넘어온 존재들이 몸을 피더니 급하게 외쳤다.
“레이지 어디 있어?”
“유신이 어디 있어?”
라이언과 다리우스가 동시에 말을 하더니, 서로를 노려보다가 다시금 외쳤다.
“빨리 가자.”
“빨리 가자.”
“다리우스. 일단 레이지가 먼저야.”
“무슨 소리야. 유신 브로한테 가는 게 먼저지.”
“유신이한테 간다고 이루어진다는 보장이 없잖아.”
“수십 년을 기다려온 일이야. 그깟 며칠 더 못 기다려?”
“응. 나도 수십 년을 기다렸어. 더는 못 기다려.”
서로 한 치의 양보를 하지 않는 모습에 마리가 이마를 짚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라이언은 씻고 와. 오랜만에 동생 만날 건데 그 꼴로 갈 거야?”
“응? 왜?”
마리의 말에 라이언은 자신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누구 것인지 몰라도 말라비틀어진 핏자국과 먼지 가득한 옷.
오랜만에 동생을 만나기에는 부적절해 보였다.
“난 좀 씻을게. 근데 레이지는 지금 어디 있어?”
“교황청에서 안전하게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고.고마워.”
샤워장으로 라이언이 빠르게 사라지자, 마리의 고개가 다리우스에게 향했다.
다리우스 옆에는 그와 꼭 닮은 자가 있었다.
“이 친구가 데리우스야?”
“응. 데리우스야.”
다리우스는 평소의 쾌활함과는 다르게 슬픈 눈으로 데리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데리우스의 입이 열렸다.
“당신이 마리군요. 저는 데리우스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드디어 다리우스가 해냈군요.”
“아닙니다. 인간의 육신을 찾았지만, 제가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짧습니다.”
“그게 무슨?”
갑자기 데리우스가 양손에 어둠의 기운을 모으더니, 그대로 자신의 몸을 가격했다.
콰아앙
심각한 부상을 입은 데리우스가 추욱 늘어졌다.
다리우스는 그런 데리우스를 부축해서는 반듯하게 눕혔다.
그때 마리가 신성력을 일으켜 데리우스를 치료하려고 했다.
“마리. 안 돼.”
“무슨 소리야? 지금 데리우스가…”
“네 신성력이 쏟아지면 데리우스는 죽을 수도 있어.”
“그게 무슨?”
쓰러진 데리우스의 몸에서 어둠의 기운이 솟구치더니, 이내 데리우스를 어루만졌고,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이게 뭔 상황이지?”
“데리우스를 살리는데, 실패했어. 내가 너무 서둘렀나 봐. 지금까지 쌓아온 어둠의 힘들이 데리우스의 의식에게 파괴 욕구를 만들었어. 데리우스는 어둠의 기운을 조절하기 위해서 이렇게 계속 자신의 몸을 학대하고 있고.”
“방법은?”
다리우스가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최상급 마나석이 하나 더 필요해. 그래서 그런데 혹시 최상급 마나석이 있을까?”
“…없지.”
“역시… 유신이도 없겠지?”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건지 다리우스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유신이한테 물어보자.”
“응?”
“지구에서 마나석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라면, 하유신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럼 서둘러 유신이한테 가자. 유신이는 어디 있지? 한국?”
그때 샤워를 끝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어서 깔끔해진 라이언이 돌아왔다.
“다리우스. 유신이라고 바로 구한다는 보장 없다니까. 그러니까 우선 레이지한테 가자.”
라이언과 다리우스가 다시 으르렁거리면 싸우려고 할 때였다.
마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이동하자. 여기서 공간이동 게이트를 쓸 수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 유신이는 캐나다에서 임무를 진행하고 있어.”
“캐나다?”
“그래. 그리고 교황청에는 유신이 이동한 캐나다 좌표가 있으니까. 그 게이트를 이용하면 될 거야.”
“알았어. 마리 브로.”
***
휘이이이잉
폭발 직전 거센 바람이 최상급 마정석으로 몰려들었다.
“하유신. 넌 정말 또라이다.”
아람은 바람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반대 방향으로 하늘 높이 날아가서 도망쳤다.
그리고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최상급 마정석이 터지면서 몬스터를 깨끗하게 쓸어 버렸다.
하지만, 위력은 줄지 않았고, 유신이 있는 자리까지 몰려왔다.
릴라 또한, 도망치기 위해 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유신이 마지막 남은 힘을 발휘해 릴라의 옷깃을 잡았다.
“어디 가세요? 같이 가야줘.”
“놔! 놓으라고!!”
릴라가 유신을 향해 발길질을 휘둘렀다.
그래도 유신이 놓지 않자, 릴라는 자신의 옷 소매를 잘라내고는 도망쳤다.
하지만, 그 잠깐의 틈 때문에 릴라는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늦고 말았다.
그렇게 폭발은 유신을 삼키고, 릴라까지 삼켰다.
폭발은 그 뒤로도 한참을 뻗어 나가다가 마을까지 집어삼키고 멈췄다.
그렇게 폭발이 사라지고 후폭풍으로 반경 100km에 돌풍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