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_암덩어리(2)
유신의 집이 습격당하고 이틀이 지났다.
가족들을 마리 선배에게 부탁해서 잠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교황청에서 보호하기로 하고선, 일차적으로 한국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양현도를 만나야 했기에 늦은 밤 시골길을 따라 움직였다.
그때, 멀리서 구조 요청 소리가 들려와서 고민하지 않고 몸을 틀었다.
“안인섭. 너는 죽을 죄를 지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아니. 늦었어. 지옥에 떨어져 자신의 잘못을 뉘우쳐라.”
하도 맞아서 얼굴의 형상도 제멋대로가 된 청년을 향해 건장한 중년인이 사시미를 들이밀고 있었다.
‘일단 구하고, 이유를 묻자.’
생각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고, 상대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넌 누구야? 누군데 감히 우리 일을 방해해?”
악당들의 진부한 대사에 기가 찼지만, 그 말에 호응해서 답해줬다.
“나?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기는 한데, 그걸 묻는 게 아니지? 내 이름은 하유신이라고, 뭐 들어는 봤을 거야.”
그들은 내 이름을 듣자마자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목격자는 없어야 한다. 자! 모두 저자를 공격해라!”
“와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솔직히 약하게 때려서 그런지, 저들은 내가 만만해 보였나 보다.
“어쩔 수 없네.”
그래도 일반인이기에 기절시킨다고 계속 때릴 수는 없기에 손가락에 포스를 집중했다.
그 상태에서 움직이며 점혈을 시도했다.
파파파파파팍
번개처럼 움직이는 손가락이 사람들의 혈도에 적중했고, 이내 사람들은 픽픽 쓰러졌다.
그렇게 열댓 명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나자, 사시미를 들고 있었던 사람이 홀로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 같은 놈한테 손속에 사정을 둘 필요는 없겠지.”
검지에 포스를 모은 후 총을 쏘듯 포스를 발사했다.
피이잉
퍼억!
포스가 전도사의 오른쪽 허벅지에 적중했고, 이내 앞으로 뒹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모두 제압한 후, 폭행당했던 안인섭을 바라봤다.
“감사합니다. 가이아시여. 언제나 당신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홀로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자, 속으로 괜히 도와줬나 후회됐지만, 일단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저기 괜찮으세요?”
“네? 네.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이아의 사자시여.”
“아…제가 교황청 소속인건 맞는데…가이아의 사자는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절 구해주셨는데요. 정말 감사합니다.”
구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과분한 인사는 부담됐다.
“그런데, 왜 맞고 계셨어요?”
그 말이 트리거가 되었는지 안인섭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니, 이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달래주고 싶어도, 너무나 서럽게 울기에 하는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상대는 감정을 추스르고 말을 꺼냈다.
“제 이름은 안인섭이고, 사회부 기자입니다. 흐끅. 그런데, 여기에 사이비 종교가 있다고 해서 잠입 취재 도중에 정체가 발각돼서 이런 꼴을 당하게 됐습니다.”
“사이비 종교요?”
예전이라면 대충 기동대와 경찰에 신고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대내외적으로 자신은 교황청에 소속된 인물이었다.
교황청의 인물이 사이비를 보고 그냥 넘어가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수도 있었다.
“일단 이것 좀 마시세요.”
아공간에서 중급 포션을 꺼낸 후, 안인섭에게 건네줬다.
“이.이건 포션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중급 포션입니다.”
“중급 포션이요?”
“네. 그러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안인섭은 하도 많이 맞아서 그런지, 손을 부들부들 떨며, 포션을 받지 않았다.
“아무리 그렇게 말씀하셔도 이거 한 병에 수백만 원은 하지 않습니까? 제 월급보다 몇 배 비싼 이걸요? 제가 그렇게 돈이…”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고, 이건 빨리 회복하라고 드리는 겁니다. 지금 상태로는 움직이지도 못하잖아요.”
감동한 채 포션을 받아든 안인섭은 마실 생각도 하지 않고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빨리 마시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포션을 들이켜는 안인섭을 보며, 나는 아공간에 있는 포션을 정리했다.
지금 아공간 팔찌의 3분의 1은 포션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수가 적으면서 효능이 떨어지는 포션은 중급 포션이었다.
웃기게도 최상급 포션보다 효능도 좋고,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13기동 타격대의 붉은 포션이었다.
그렇지만, 이 포션은 함부로 쓸 수 없었다.
‘잘못 쓰면 쇼크사한다고 했지.’
그렇게 아공간에 있는 포션을 정리하는 동안 안인섭이 중급 포션을 다 마셨다.
그러자, 찢어졌던 상처가 아물고, 부러졌던 뼈가 약하게나마 붙었는지 이제는 일어설 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고, 일단 몸부터 피하세요.”
“네? 그게 무슨?”
안인섭의 의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쪽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그들은 방금 상대했던 신도들과 다르게 복장부터 남달랐다.
“와~ 헌터나 기동대가 입을 법한 전투 슈트와 무기를 들고 있네요.”
“저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안인섭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에 신도들이 나타나자,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유신님. 피하십시오. 저들은 정말 위험합니다.”
“네?”
“세뇌된 헌터와 기동대입니다. 저들의 전투 능력은…”
겁에 질린 안인섭의 말을 끊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깐만요. 세뇌라고요?”
“네? 네. 세뇌 됐습니다. 이 사이비 종교 교주의 이름은 김정태로 능력이 세뇌입니다. 저들을 구하려면 세뇌를 풀 사람을 구해 와야 합니다.”
적들이 다가오고 있는 급박한 와중에 유신은 느긋하게 안인섭을 바라봤다.
“근데, 안인섭씨는 왜 세뇌가 되지 않으셨어요?”
“제 능력 때문입니다. 제 능력 [멘탈 관리]는 아무리 세뇌가 되고, 피로도가 극에 쌓여도 한숨 자고 나면 세뇌 등 뭐든 바로 풀립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이거요.”
아공간에서 4M 귀마개를 꺼낸 후, 안인섭에게 건네줬다.
“이게 뭡니까?”
“뭐긴요. 귀마개입니다. 빨리 착용하세요.”
“귀마개를요?”
“네. 어서요.”
어두운 밤인데도, 적들은 재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안인섭은 적들을 바라보다가 재빨리 귀마개를 착용했다.
안인섭이 귀마개를 착용한 것을 보고 양손으로 귀를 막으라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아무리 신입 사회부 기자라지만, 기자 선배들 덕분에 눈치가 생긴 안인섭이 양손으로 귀를 막았고, 사자후를 내뱉었다.
“크아아아아앙!!”
다가오던 적들은 사자후에 세뇌가 깨지면서 달려오던 상태에서 그대로 넘어졌다.
그들은 기절했는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반대로 기절했던 전도사가 사자후에 정신을 차리고는 기어서 도망치려고 했다.
“넌 가면 안 되지.”
전도사가 도망치는 걸 보자마자, 그의 마혈을 짚었다.
그리고 본인은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상대는 마족보다 더욱 사악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다.
***
수 십 대의 모니터 앞에서 아나탁스는 주름살 가득한 늙은 오크처럼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도미니크님에게 뭐라고 말씀드리지…”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어둠의 성녀는 교황청이 데리고 가버려서 이제 찾지 못하게 되었다.
거기다가 도미니크가 지원해준 인원 중 절반은 모두 유신에게 몰살당했다.
“다행히. 멕시코는 어떻게 정리가 됐는데….”
그때였다.
애애애애앵
아나탁스가 있는 방에 붉은빛이 점멸했다.
컴퓨터를 조작한 아나탁스는 자신이 있는 곳의 모든 CCTV 화면을 띄웠다.
그러자, 화면에 검정색으로 칠해진 강철 인형이 자신의 부하들을 학살하며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이 한 번 어그러졌다고, 계속 어그러지는군.”
아나탁스는 서랍에서 손바닥만 한 기계를 꺼내서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기계에서 60이라는 숫자가 뜨더니, 이내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킨 아나탁스는 다른 서랍에서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내더니 그대로 찢어버렸다.
콰아아앙
아나탁스가 사라지자마자, 강철 인형이 문을 뚫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강철 인형이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기계의 카운트 다운이 끝나고 주위를 향해 전기를 내뿜었다.
콰르르릉
전기가 뿜어지자, 강철 인형은 방어 동작을 취했지만, 이내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기계는 이 방에 있는 모든 컴퓨터만 태워버렸다.
강철 인형이 주위를 둘러볼 때였다.
방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더니, 이내 대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앙
그렇게 러시아에 위치한 작은 소도시 하나가 사라졌다.
10km 떨어진 곳에서 강철 인형을 조정하던 제 2심판대는 인상을 구기며 보고했다.
“비토님. 신호가 끊겼습니다. 파괴의 규모로만 보면 완전파괴된 것 같습니다.”
“아다만티움으로 제작된 강철 인형이다. 적들에게 부품 하나라도 들어가면 안 되니, 철저히 확인하도록.”
“알겠습니다.”
“1호의 능력이 최소한 영웅급의 전투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확인됐군.”
그렇게 교황청에서 폭발 장소로 향할 때였다.
폭발로 인해 무너져 내린 땅이 들썩이더니 강철 인형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강철 인형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다가 북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
이번 양현도 개고생시키기 작전의 팀장을 맡은 4기동 팀장이 산 정상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4기동 대원이 조심히 다가와 보고하기 시작했다.
“인가로 내려가는 모든 길목에 대원들을 배치 시켰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그의 능력은 불길함 감지다. 그 능력을 십분 활용해서 도망칠 수는 있겠지만, 계속 불길함이 감지되면, 괴로울 수밖에 없을 테지. 그렇게 그가 쉬지 못하게 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런데…”
“뭐지?”
“하유신님께 연락이 왔는데,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올 수 없다고 합니다.”
4기동 팀장의 가면 속, 맨얼굴이 찌푸려졌다.
양현도 관련 작전은 자신들이 만든 작전이 아니었다.
모두 하유신의 머리에서 나왔는데, 오기로 한 날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전을 실행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부하에게 마저 명령을 내렸다.
“오지 않는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작전대로 토끼몰이부터 시작한다.”
“알겠습니다.”
부하가 사라지자, 4기동 팀장은 양현도가 있는 장소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양현도. 네가 이 고생을 하는 것도 하유신 탓이지만, 우리가 그에게 화풀이를 할 수 없으니 네가 응석 좀 받아줘야겠다.”
양현도 입장에서는 억울했지만,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언제나처럼 하루의 마무리를 목욕으로 끝내던 김정태는 갑자기 수면을 강하게 내리쳤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 받는군.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는 그 버러지를 그 자리까지 올려놨더니 감히 나를 내치려고 해?”
이근택의 능력이 [마리오네뜨]라는 건 알고 있었다.
별 볼 일 없는 그 능력을 자신과 신도들의 도움으로 극대화시켜서 정*재계를 조정할 수 있게 도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을 토사구팽하려고 했다.
“이근택 멍청한 놈. 사람들만 관리할 줄 알지. 도청 장치가 있는 줄도 모르고 그딴 소리나 내뱉고 말이야.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이를 부드득 갈며, 어떻게 하면 이근택을 제압할지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자신은 이근택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정확히는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이근택을 따를 수가 없었다.
그는 [마리오네뜨] 능력과 [차크라], [살기]를 가진 다중 능력자였다.
“마리오네뜨 기술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한 놈이었는데, 어떻게 차크라와 살기까지 다루게 됐지. 수상해.”
분명 이근택의 뒤에 자신 외에 무언가 더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뜨거운 물에 계속 있으니 잘 돌아가던 머리도 더는 돌아가지 않고, 힘만 빠질 뿐이었다.
그래서 탕에서 나온 후, 수건 한 장 걸치지 않고,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갑자기 비릿한 피 냄새가 맡아졌다.
“응?”
피 냄새 때문에 흐려졌던 정신이 돌아와서, 주위를 둘러봤다.
목욕탕의 경호를 서야 할 자신의 부하들이 모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 원흉을 찾아보니, 사진과 영상으로 봤던 하유신이 서 있었다.
“하유신?”
“오~ 날 아네. 근데…”
유신은 자신의 발밑부터 머리끝까지 훑어본 후, 살짝 비웃듯 말했다.
“그렇게 대놓고 다닐 정도로 자신 있는 몸매는 아닌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