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177화 (177/300)

177화_어둠의 성녀(2)

어둠의 성녀.

그녀는 교황청의 마리처럼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떤 독이든 바로 해독해버리는 인류 최강의 정화 능력자였다.

하지만, 그녀는 성녀라는 타이틀과는 다르게 자유가 없었다.

“자! 균형 무너지지 않게 조심히 내려.”

“대체 안에 든 게 뭡니까?”

“알면 다쳐. 그러니까 조용히 시키는 일이나 해.”

“네.네. 알겠습니다.”

인천항에서 근무하는 크레인 기사는 상사의 요청대로 컨테이너를 조심히 움직여서 수송차량 위에 올려놨다.

그러자, 일반 화물 기사가 아닌, 누가 봐도 조폭스러운 사람들이 차량에 컨테이너를 고정한 후에 출발했다.

컨테이너 수송 차량은 두 대의 호위 차량과 함께 인천항을 벗어났다.

그렇게 수송 차량이 사람 없는 한적한 곳에 들어설 때였다.

-유신님 1km 안에 사람은 없습니다.

용호의 무전에 복면을 쓴 채 몰래 뒤를 쫓던 유신이 속도를 내서 차량의 앞을 가로막았다.

끼이이익!

유신과 호위 차량이 부딪히기 직전 운전기사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로 인해, 뒤따라오던 모든 차량이 멈춰 섰다.

“야이 새X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

운전기사가 밖으로 나오며 유신을 향해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다.

그렇지만, 곧 이상함을 눈치챘다.

복면을 쓴 인물이 앞을 막았다? 그건 고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앞 차량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헌터 출신의 한가닥 하는 존재들이었다.

“누가 보낸 건지 몰라도 오늘 좋게 못 갈 줄 알아라.”

조폭들은 이게 함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정이라고 해도 그걸 깨부술 생각이었다.

그만큼 그들의 자존감은 높았고, 이놈을 처리하고 재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했다.

그렇게 그들이 능력을 사용하려고 할 때였다.

누구보다 빠르게 유신이 움직였다.

툭툭툭

철푸덕

유신의 점혈에 앞 차량에 있던 조폭들이 모두 쓰러졌다.

맨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차량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유신을 향해 악셀를 밟았다.

급발진해서 달려오는 차량을 보고 유신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타이밍 맞게 양 손바닥으로 차량의 본네트 내리쳤다.

콰아앙

차량은 유신의 포스를 이기지 못하고, 앞 타이어는 다 터지고, 본네트가 땅에 박혀 들었다.

조폭들은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혹시 모를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에 유신은 차량 안으로 손을 넣어서 기절한 그들에게 점혈까지 했다.

빠아아앙

경적과 함께 컨테이너 수송 차량이 유신에게 달려들었다.

유신은 포스로 차량을 막을까 했지만, 뒤에 있는 컨테이너가 넘어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에 막지 않고 회피했다.

‘용호가 그랬지? 어둠의 성녀는 피해자라고.’

트럭 위로 점프한 유신은 트럭과 컨테이너의 연결 부분에 탄검기를 날렸다.

촤아아아악

끼이이이익

트럭은 컨테이너의 무게가 사라지자, 급발진해서는 가로수를 들이박았다.

뒤에 있던 컨테이너는 점점 속도가 떨어지더니 이내 멈춰 섰다.

그렇게 주위를 다 정리한 유신이 컨테이너 문으로 가서는 자물쇠를 부숴버렸다.

끼이익

거친 쇠소리와 함께 컨테이너 문이 열렸다.

생각했던 거와 다르게 컨테이너 안은 환한 빛을 뿜어냈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서자, 유신을 맞이한 것은 갈색 머리에 무표정한 얼굴을 한 여성이었다.

유신은 고개를 살짝 숙여 그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유신은 컨테이너 안을 둘러봤지만, 다른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이 어둠의 성녀인 건 양현도의 파일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혹시 몰라 질문을 던졌다.

“죄송한데 몇 가지 좀 묻겠습니다. 혹시 어둠의 성녀세요?”

그녀는 어둠의 성녀라는 말에 인상을 구겼다.

그렇지만, 이내 본래의 무표정으로 돌아가며, 고개를 끄떡였다.

유신은 표정을 구긴 걸 놓치지 않았지만,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다.

“맞으시구나. 잘됐다. 혹시 지금 따로 챙길 거 있으신가요?”

도리도리

“그럼. 죄송하지만, 납치 좀 하겠습니다.”

당당하게 납치한다는 말에 어둠의 성녀는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둠의 성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 들고는 컨테이너를 떠났다.

***

어둠의 성녀가 납치됐다는 소리에 양현도는 자신의 손톱을 깨물었다.

그렇게 불안에 떨고 있을 때였다.

똑똑

“누구야!”

“김비서입니다.”

“빨리 들어와.”

납치 현장에 다녀온 김비서가 들어왔다.

“어떻게? 어떻게 된 거야?”

“어둠의 성녀가 납치된 게 확실합니다.”

“이송하던 새끼들 전부 전투 능력자 아니야?”

“네 맞습니다. A급 헌터들로 구성된 인원이었습니다.”

“A급이라고? 그럼 매달 받아 가는 돈이 장난 아닐 텐데? 그깟 호송도 제대로 못 해?!”

화가 난 양현도가 한쪽에 놓여 있는 골프채 중 드라이버를 꺼내 들어서는 주위의 물건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정한 양현도가 김비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후우~ 범인은?”

“아직 특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호송 임무를 했던 인원들의 증언은 확보해 놨습니다. 그들의 말로는 한 명에게 능력을 사용하기도 전에 제압당했다고 합니다.”

“한 명? 역시 돈이나 축내는 쓸모없는 새끼들!”

“사장님. 현재 추적팀을 파견했으니, 곧 결과가 나올 겁니다. 그런데…”

언제나 명확하게 말하는 김비서가 말끝을 흐리자, 양현도는 어서 말하라는 눈빛으로 재촉했다.

“이송 직원들의 증언을 토대로 확인해보니, 삼합회 쪽일 수도 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삼합회? 중국?”

“네. 점혈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점혈?”

전투 능력에는 크게 관심 없는 양현도는 점혈은 들어봤지만, 자세히 알진 못했다.

자신이 모르는 게 있으면 불같이 화부터 내는 게 양현도였다.

하지만, 김비서가 오랫동안 양현도의 오른팔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곳일 수도 있지만, 중국 쪽이 대체적으로 내공 능력자가 많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거기다가 아시다시피 점혈은 혈도 공부도 해야 하고요.”

모든 설명을 양현도가 이미 안다는 식으로 보고하는 거였다.

그러면서 아주 간단하게 점혈에 대한 함축적인 설명도 곁들이면, 양현도의 불같은 성격은 잠잠해지고, 대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삼합회가 왜?”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이번 어둠의 성녀 대여에서 삼합회와 저희가 같은 날짜를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저희 손을 들어줬고요.”

“제길! 그렇다고 납치를 해? 그 며칠을 기다리지 못해서? 그렇다면 삼합회 놈들도 보복당할 수 있을 텐데?”

“유통 쪽에서는 문제가 생겨도 일주일 후 삼합회에서 어둠의 성녀를 찾았다고 하면 그냥 조용히 넘어갈 겁니다.”

책상을 내리친 양현도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돈만 밝히는 새끼들!”

그렇게 한참 욕설을 내뱉더니, 자신의 머리칼을 부여잡으며 김비서를 바라봤다.

“끄으윽… 김비서 찾을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최고의 요원들을 파견했습니다.”

김비서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양현도는 김비서의 표정에 약간이나마 안심했을 때였다.

자신의 휴대폰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갑자기 무슨 전화야?”

휴대폰을 들어서 전화를 끊으려고 할 때였다.

“사장님. 혹시 모릅니다. 납치범일 수도 있으니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길!”

양현도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어둠의 성녀가 한국에서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 찾지 못하면, 네 모든 걸 걸어야 할 거다.”

음산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울려 퍼졌고, 그대로 전화는 끊어졌다.

양현도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어둠의 성녀를 관리, 유통하는 쪽이었다.

하얗게 질린 양현도가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번호라는 안내 음성만 나왔다.

“김.김비서 어떤 수를 써서라도 좋으니 어둠의 성녀를 찾아.”

“네? 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이 문제가 아니야. 어둠의 성녀를 찾는데, 있는 돈 없는 돈 다 써도 좋으니 찾아! 찾지 못하면… 나도 자네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김비서는 지금까지 양현도를 보좌하면서 이렇게 겁에 질린 표정을 처음 보게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위험하다는 걸 느꼈다.

***

어둠의 성녀를 납치한 유신은 그녀를 기동대에 위치한 13기동 타격대의 훈련장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어둠의 성녀를 데리고 온 유신은 그녀를 훈련장 구석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쉬게 했다.

유신은 용호와 함께 어둠의 성녀와 떨어진 곳에서 대화를 나눴다.

“그러니까. 어둠의 성녀라는 타이틀은 뒷세계에서만 그렇게 부른다고요?”

지금까지 설명을 들은 유신의 질문에 용호가 대답해줬다.

“네 그렇습니다. 어둠의 성녀는 딱히, 치료 능력이 있지 않습니다. 단지, 어떤 것도 해독하는 정화 능력이 있죠.”

“정화요? 그게 어둠의 성녀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해요?”

“네. 듣기로는 약으로 인한 금단 증세까지 사라지게 한다고 합니다.”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네요.”

설명을 들은 유신이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용호는 당연하게도 어둠의 성녀가 어디서 지낼지에 대해서 물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자신의 상사는 전혀 다른 답변을 내뱉었다.

“어떻게 하긴요. 작전대로 양현도가 혼자 살아남기 위해 남에게 죄를 덮어쓰게 하는 던지기를 해야죠.”

가끔 이렇게 동문서답을 할 때마다 답답함을 느꼈지만, 한두 번도 아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생각했다.

“제가 묻는 건 그게 아닙니다.”

“네? 그럼 뭔데요?”

용호는 눈짓으로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어둠의 성녀를 가리켰다.

“계속 여기에 둘 수도 없지 않습니까?”

“안되나요?”

“네. 이곳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기동대 본부인데 안전하지 않다고요?”

보통의 사람들도 당연히 이곳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라, 기동대 본부이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뽑으라고 하면, 당연히 빠지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유신님. 이제는 아시지 않습니까? 기동대만큼 권력에 약한 곳도 없다는 걸요.”

“하지만, 여기는 아무나 함부로 못 들어오는 곳이잖아요.”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지만, 하유신님이 안 계시면, 누구든지 침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것도 그렇네요.”

“거기다가…여기에 여성 혼자 있기는 불편한 게 많습니다.”

“아…그게 크겠네요.”

유신이 출근을 여기로 할 뿐이지, 여기는 훈련장이었다.

기본적으로 샤워장이나 화장실은 있지만, 딱히, 잘만한 곳도 쉴만한 곳도 없었다.

예전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이 있을 때야, 이동식 컨테이너 사무실 때문에 지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호텔로 가야 하나?”

“호텔도 위험합니다. 사람들에게 쉽게 공개될 수 있는 장소가 호텔입니다.”

용호는 어둠의 성녀를 한 번 흘끔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은 얌전히 있지만, 어둠의 성녀가 함부로 빠져나갈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된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요? 흠…”

유신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손가락을 부딪히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일단 다른 건 모르겠고, 가장 안전한 곳은 알고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입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유신은 용호의 질문을 뒤로하고 어둠의 성녀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지내는 건 괜찮으세요?”

어둠의 성녀는 대답 없이 그저 멍한 표정으로 유신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조금 쓸쓸하다고 느낄 때였다.

유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죄송한데, 여기는 안전하지 않아서요. 따로 갈 곳이 있는데, 괜찮겠어요?”

그저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인 어둠의 성녀를 데리고 유신은 훈련장을 벗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