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_4기동대와의 거래(3)
4기동대의 위세는 예전 같지 않게 됐다.
유신은 그게 이상해서 교황청을 통해 알아봤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은 모든 시작점은 캔 브레이커였다.
‘4기동대가 캔 브레이커와 엮인 후로 그들은 본질을 잃고 타락했지.’
지금까지 4기동대는 언론 플레이를 통해 버텨왔지만,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인류화 작업과 전설들의 경호?
말은 좋지만, 그들의 업무와 맞지 않았다.
“라이징 길드의 불법적인 일들을 누구보다 4기동대가 먼저 알아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셨죠? 그게 아니라면 알면서 그냥 넘어갔던가.”
빠르게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천소희의 손이 멈췄다.
“예전의 4기동대의 위세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는 이 자료가 필요할 겁니다. 어떠십니까? 이제 저와 거래하시겠습니까?”
천소희는 서류를 내려놓고 뒤에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여섯 개의 줄이 그어진 4기동대는 천소희를 향해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좋습니다. 원하는 대원의 직위를 해지하겠습니다. 대신에 저희도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전 충분히 보상한 것 같은데?”
“4기동대와 동맹을 맺어주시면 됩니다.”
“네??”
예상외였다.
그저 실버를 데리고 오고, 골치 아픈 수사를 4기동대에 떠넘길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동맹을 맺자고 한다.
“그…동맹이라는 걸 꼭 맺어야 하나요?”
“네.”
“절 뭘 보고요?”
“사신 강문님의 후배라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죠.”
강문 선배가 4기동대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4기동대에서 동맹을 맺겠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천소희가 계속 말을 이었다.
“계약서는 필요 없습니다. 그저 사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를 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4기동대와 하유신님은 신뢰로 묶이게 되는 겁니다.”
유신의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다고 선배의 이름을 파는 게 조금 걸리기는 했다.
그때, 지금까지 강문 선배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유신아~ 리모컨~’
‘뭐하니? 고기가 타잖아.’
‘이 포션이 참 좋은 포션이야.’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기 그냥 맹세 없이 저랑 동맹만 맺으면 안 될까요?”
“그렇게 되면, 저희는 하유신님의 부탁을 하나도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잠시만요.”
유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민을 거듭했다.
복잡한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에 4기동대가 있다는 것을 무시하고는 칠성검을 꺼내서 휘두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가로베기, 세로베기, 찌르기를 각각 천 번씩 하다 보니, 머리가 조금은 개운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설마 강문 선배 이름을 팔아서 동맹 맺었다고 내게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뭐 나쁜 일도 아니니까.’
칠성검을 아공간에 집어넣은 유신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좋습니다. 까짓것 동맹 맺겠습니다.”
“맹세를 해주세요.”
천소희의 말에 유신이 크게 호흡을 들이마신 다음 말을 이었다.
“강문 선배. 그러니까, 사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저와 4기동대는 신뢰로 묶여 있는 동맹이며, 서로가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맹세가 끝나자, 천소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로써, 4기동대와 하유신님의 동맹은 체결되었습니다.”
천소희의 말이 끝나자, 호리호리한 남성도 같이 허리를 숙였다.
***
실버가 가면을 벗자, 앳띤 얼굴이 나왔다.
그렇다고 실버가 어린 건 아니었다.
30대였지만, 탁월한 동안이어서 어리게 보였던 것뿐이었다.
그렇게 가면을 벗은 실버가 4기동 대장인 천소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 거 제가 죄송합니다. 장용호씨.”
천소희가 실버의 실명을 부르자, 실버 그러니까 용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4기동대의 은퇴식은 이걸로 끝이었다.
모든 간부가 있는 곳에서 맨얼굴과 본명이 밝혀지는 걸로 시작하고, 끝이 난다.
십 년 이상 지내던 곳에서 너무나 간단히 진행된 은퇴식.
용호는 쓸쓸히 4기동대를 나왔다.
그리고 문 앞에서는 유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용호씨 맞나요?”
“네. 맞습니다. 그런데 누구신가요?”
“전 하유신입니다. 당신을 스카웃하고 싶은 사람이죠.”
은퇴식이 거행되기 전, 용호는 대장과 별도로 면담을 했었다.
누군가 자신을 원하고, 그로 인해 4기동대에 떠나야 한다는 걸 장황한 설명과 함께 들었다.
그렇다면,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잘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용호는 자신도 모르게 유신의 멱살을 잡았다.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기에…당신 때문에…당신 때문에….”
주먹이 올라갔지만, 화풀이를 해봤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하유신은 자신이 존경하는 칼 제라니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난 그저 내 업무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모두 절 가만히 두지 않는군요.”
모든 게 갑자기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먹을 내리고, 멱살을 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저기 용호씨 잠깐만요.”
뒤에서 유신이 자신을 따라붙으며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도 하기 싫었다.
그때였다.
“전 칼 제라니의 부탁으로 당신을 4기동대에서 뺀 겁니다.”
유신은 칼 제라니라고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칼 제라니.
“칼 제라니님이요?”
“네. 맞습니다. 이제야 썩은 동태 눈에서 벗어났네요.”
뒷말이 많이 거슬렸지만, 용호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해주십시오.”
“아…”
유신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썩은 동태 눈에서 벗어났다고, 제가 생각해도 너무 한 말이네요. 사과드립니다.”
“그거 말고요. 그전에 했던 말이요.”
“아. 칼 제라니의 부탁으로 당신을 4기동대에서 뺐다고요.”
“지금. 칼 제라니님은 살아계십니까?”
자신이 물어보고도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일말의 희망을 품고 질문을 던진 거였다.
그렇지만, 현실은 씁쓸했다.
“아시잖아요. 그는 이제 없습니다.”
칼 제라니의 친우인 하유신의 확답에 용호는 더욱 힘이 빠졌다.
유신은 그런 용호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칼 제라니가 인류화 작업을 끝내고 와서 제게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한국 지부에서 좋은 친구 두 명을 만났다고, 한 명은 용호씨도 알고 있는 블랙. 신평이라는 본명이 있죠. 어떻게 우연이었는지 신평은 제 아카데미 동기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4기동대의 실버였습니다.”
그 순간 용호는 자신도 모르게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그가 병상에 있을 때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실버를 챙겨달라고. 그리고 실버는 4기동대와 어울리지 않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스카우트하려고 합니다. 칼 제라니를 대신해서.”
용호는 다친 상황에서도 자신을 잊지 않은 칼 제라니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그리고, 용호가 보기에 유신은 칼 제라니와의 추억을 되새기는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유신은 신평과 용호와 함께 짧은 재회를 마치고는 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그들이 서류를 보고 있을 때, 4기동대에서 서류가 왔다.
서류 안에는 한국 지부 마약범들의 뒷배를 봐주는 리스트가 작성되어 있었다.
간단히 서류를 훑어본 유신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4기동대에서 해결해달라고 서류를 줬는데, 왜 다시 저한테 넘어오는 거죠?”
“그들의 무력은 지금 1기동대를 견제하느라 어쩔 수 없습니다.”
“하~ 대체 한국은 얼마나 썩은 거지.”
말을 하면서도 서류를 읽던 유신이 서류철을 덮으며 말했다.
“이들을 한 번에 잡기는 힘들겠죠?”
유신의 말에 전직 4기동대이자, 코드명 실버인 용호가 대답했다.
“네. 아무리 4기동대가 전력으로 도와주더라도 쉽지 않을 겁니다.”
“음…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평소처럼 그냥 쳐들어가서 이들을 잡는다면 아주 편안할 거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었다.
몇 명을 잡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갈 수도 있었다.
“일망타진. 그게 관건이네요. 그리고, 베일에 싸인 1기동대가 원래 이런 놈들이었습니까?”
“사람들은 모르지만, 그들은 강자라기보다는 권력에 찌든 권력자입니다. 그래서 예전 사신이 모두 처리했던 겁니다. 지금은 새로운 1기동대를 4기동대가 전력으로 견제하는 중이고요.”
예전 사신이라고 불리는 강문 선배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좋은 정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잡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작전을 짜야 했다.
“혹시, 이중 가장 인싸 그러니까 정보책이나 사람을 모으는 자가 누군가요?”
“잠시만요.”
용호는 서류를 뒤져서 유신이 원하는 사람을 건네줬다.
“거삼 그룹의 막내아들입니다.”
서류를 확인하던 유신은 더럽다는 듯이 서류를 내팽개쳤다.
“와~ 이놈은 완전 악질이네.”
“네. 그리고 양현도 그는 그들의 정보책이자, 행동대장이기도 합니다.”
“이놈 자주 가는 곳 좀 알아봐 주세요.”
“설마 친해져서 다가가려고 한다는 작전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는 욕심이 많지만, 그만큼 의심도 많은 자입니다. 특히, 영웅은 병적으로 싫어합니다.”
유신은 용호의 걱정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누가 애랑 친해지고 싶데요? 그냥 집을 털려고요.”
“네?”
“지금 가장 중요한 게 정보의 부재잖아요. 그러니까 이놈의 집을 털어서 증거 자료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네요.”
“양현도의 집은 4기동대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방비가 엄숙합니다.”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미션 임파서블~”
***
사람들이 능력을 가지게 되자, 액션 영화 산업은 망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반대로 더욱 흥행하게 됐다.
예전에는 영화니까 가능한 일들이 실제로 가능하게 영화로 찍을 수 있게 됐다.
그 이후 영화는 더욱 발전하게 됐고, 제일 먼저 망할 줄 알았던, 첩보 영화와 액션 영화는 더욱 빛나게 됐다.
유신도 그런 액션 영화를 봐왔던 존재로 웬만한 액션 영화는 다 봐왔다.
“내가 에단이 될 차례군.”
유신의 혼잣말에 헬기를 운전하고 있던 용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후훗. 5년에 한 번씩 나오는 ‘불가능한 임무’라는 영화를 모르시나요? 전 1편부터 지금까지 다 챙겨봤습니다.”
영화 때문에 목숨을 건 침투 작전을 한다는 유신의 말에 용호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아…그러시군요. 이제 곧 목표 지점입니다.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윙슈트를 착용한 유신이 검은 복면까지 덮어썼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헬기의 문을 열었다.
약 100M 아래로 목표지점의 펜트하우스가 보였다.
“지금입니다.”
용호의 외침에 유신이 조용히 뛰어내렸다.
윙슈트의 날개를 펴고는 그대로 하강했다.
그렇게 펜트하우스에 손쉽게 도착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펜트하우스에서 무언가 날아와서는 유신과 부딪혔다.
다행히 유신은 다치지 않았지만, 윙슈트가 찢겨나갔고, 그로 인해 균형이 무너졌다.
“으아아악~!!”
유신은 비명을 지르면서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떨어지는 와중에 예전 북한에서 있었던 낙하를 떠올리며, 포스를 뿜어냈다.
하늘 위에서 겨우 균형을 잡았지만, 이내 아파트와 부딪히게 생겼다.
유신은 포스막을 뿜어내고는 일단 벽과 부딪혔다.
콰아앙
아파트 벽에서 튕겨 나가려고 할 때, 유신이 손가락에 포스를 집중해서는 그대로 벽을 움켜잡았다.
콰드드드득
조금 미끄러졌지만, 이내 유신은 멈춰 섰고, 아파트 벽면에 매달리게 됐다.
“휴우~ 불가능한 임무 4번째 시즌이 이거였지?”
방금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추락사할 뻔했던 주제에 유신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는 벽면을 움켜쥐며, 펜트하우스를 향해 기어 올라갔다.
“오늘은 내가 바로 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