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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173화 (173/300)

173화_4기동대와의 거래(1)

유신과 그의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있을 때였다.

텔레비전에서 화면이 전환되며, 뉴스 속보가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뉴스 속보를 전할 앵커 노석대입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한국지부 10대 길드에 등재된 라이징 길드가 세계헌터협회을 통해서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고 합니다. 라이징 길드의 이재호 길드장은 현재 기동대에 구속된 상황입니다.”

텔레비전 화면은 이재호가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들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얼핏 보인 이재호의 표정은 넋이 나가 있었다.

“라이징 길드는 앞에서 건실한 길드인 것처럼 보였지만, 조사를 통해 드러난 실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마약 제조, 유통 그리고 인신매매와 사채업까지 모든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댔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뉴스 속보는 라이징 길드에 대해서 몇 가지 사실을 더 알려주더니, 이내 끝이 났다.

하현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혀를 찼다.

“쯧쯧. 말세야 말세.”

“그러게요.”

유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맞장구를 치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 기본 벨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가족들은 모두 유신을 바라봤다.

“왜요?”

“형. 우리 집에서 기본 벨은 형뿐이야.”

“그래?”

“응. 벨 소리 좀 바꾸지?”

“나중에~”

“빨리 전화부터 받아.”

“그래~”

유신이 협탁 위에 놓여 있는 휴대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네. 네. 알겠습니다. 네 거기서 봐요.”

전화를 끊은 유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가족들이 모두 유신을 바라봤다.

“왜요? 무슨 하실 말 있으세요?”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신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준비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희선이 입을 열었다.

“늦게 들어오니?”

“가봐야 알 것 같아요.”

“그래. 늦으면 연락만 좀 줘.”

“네~”

희선은 애써 유신이 나가는 모습을 무시했다.

혹시나, 지금 여기서 유신을 마중하면, 저번처럼 한동안 못 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좋게 생각하자, 우리 아들은 영웅이야. 영웅.”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남편 하현도와 아들 하유민에게는 숙연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희선이 스스로 감정을 정리한 후, 축 처져있는 하씨 집안 남자들을 보며 당당히 외쳤다.

“언제 유신이 집에 와서 밥 달라고 할지 모르니까. 일단 장 보러 갑시다.”

“저녁 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밤 8시가 넘었어.”

“당신! 뭐 내일은 밥 안 먹어요? 그리고 원래 이 시간에 장 보러 가지 그럼 언제 가요?”

“아. 알았어.”

현도가 서둘러 자동차 키를 챙기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희선이 아직 가만히 있는 유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넌 뭐하니?”

“나도 가야 해?”

“짐 많을 것 같다. 아니, 짐 많아. 어서 일어나.”

“아니. 그래도…”

순간 희선의 부릅뜬 눈빛에 유민은 재빨리 일어나서 각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자신이 한마디 거들기는 했지만, 평소와 달리 재빨리 움직이는 하씨 집안 사람들을 보며 희선이 미소 지었다.

***

집을 나와 유신이 향한 곳은 종로에 위치한 낡은 건물 사이에 있는 골목길이었다.

그곳에 도착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계절에 맞지 않은 바바리 코트에 중절모를 눌러쓴 사람이 있었다.

유신은 상대를 확인하자마자 손을 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거기 있었네?”

“쉿!”

상대는 유신의 입을 검지로 막은 다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침묵을 지키며 따라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래된 카페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손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에 앉자, 상대는 양팔을 괴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제이미. 언제까지 이럴 거야?”

유신의 말에 바바리 코트를 입고 있던 제이미가 중절모를 벗으며 말했다.

“한국 영화보면 이런 거 많이 하잖아. 재미있어 보여서 따라 해봤지.”

“그. 그래.”

이 모습을 보고 누가 얼음꽃 제이미라고 말할까?

지금의 모습은 한없이 어린 아이 같았다.

유신은 그런 제이미의 모습이 신기해서 빤히 바라봤다.

뒤늦게 유신의 눈빛을 느낀 제이미가 부끄러운지 볼을 발그레 붉혔다.

그리고 스르륵 눈을 감으려고 하는데,

탁!

“뭐해?”

“어? 어? 소피구나.”

“소피씨도 오랜만입니다.”

“됐어. 빨리 일부터 끝내자.”

소피는 방금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서류 중 하나를 유신에게 건넸다.

“우선 아스본님께서 유신이 네가 직접 부탁해서, 세계헌터협회를 움직이게 한 것에 대해서 감사를 표명하셨어.”

“에이~ 무슨 큰일이라고.”

별거 아닌 투로 말하는 유신의 모습에 소피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비꼰 거야.”

“저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부끄러워하는 중입니다.”

“어디서? 아니다. 말하지 마. 알면 머리만 아플 것 같아.”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피는 답답한 마음에 유신을 노려보다가 제이미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이해하지 못 할 말을 내뱉었다.

“못 볼 걸 봤어.”

“네?”

“아냐. 무시해. 이제 본론이야. 여기 보면 라이징 길드에서 마약부터 시작해서 참 다양한 일들을 건드렸지?”

유신은 재빨리 서류를 훑어봤다.

뉴스에서 간략하게 말은 했지만, 세계헌터협회에서는 이미 그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져 있었다.

“심각하네요.”

“그래. 심각하지. 그리고, 보다시피 이 일로 엮여있는 길드가 꽤 많더라고.”

“바쁘시겠어요.”

무사태평한 유신의 말투에 소피는 인상을 구기더니 말을 이었다.

“유신. 라이징 길드의 문제를 알려준 것을 세계헌터협회를 대신해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지금 그 태도를 보니 너무나 얄미운데?”

직접적으로 말하는 소피의 말투에 유신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소피는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얄미운 건 둘째치고, 덕분에 바빠졌으니, 의뢰하려고.”

“의뢰요?”

“응. 정식으로 요청할게. 우리는 한동안 이 사건을 해결하느라 바쁠 것 같은데, 네가 몇 가지 좀 해결해 줘야겠어.”

유신은 자신이 소피를 놀린 것도 있고, 미안한 감도 약간은 있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이걸 계기로 세계헌터협회에 약간의 빚을 잡아두는 것도 계산에 있었지만 말이다.

“제게 뭘 요청하시려는 거죠?”

“여기 자료를 보면 알겠지만, 마약범이랑 인신매매가 어디서 활동하고 있는지 좀 알아봐 줘. 괜찮으면 소탕해도 좋고.”

마음속으로는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아직 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피는 유신이 벌써 일을 맡은 것처럼 말했다.

“이런 어려운 일을 얼렁뚱땅 넘기시네요.”

“그래 맞아. 어려우니까. 그래서 당신에게 맡긴 거야. 새로운 영웅 하유신. 당신이 아니면 이 일을 맡길 사람이 없어.”

소피의 띄어주기는 어린애들이나 당할 법한 말이었다.

유신은 쉽게 당하지 않을 생각으로 거절하려고 했다.

그런데, 옆에서 제이미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다가 덥석 자신의 손까지 잡았다.

“유신. 정말 고마워. 이제 한시름 놨어. 사실 누군가는 그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데, 우리 모두 손이 모자라서.”

제이미의 공세까지 가세했다.

거부권을 행사하고 싶은 생각이 희미해졌다.

‘아 이게 바로 미인계구나.’

솔직히 미인계는 아니었지만, 유신 홀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미인계에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 이 서류는 다 가져가면 되나요?”

“응. 다 보고 폐기해줘.”

“네.”

유신은 서류를 아공간에 집어넣고는 카페를 나섰다.

제이미가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따라 나오려고 했지만, 소피가 팔을 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제이미. 적당히 해.”

“하지만, 소피.”

“그렇게 들이대면 매력 없다고 했어.”

“응? 그래?”

“응. 그래.”

소피의 확언에 제이미가 풀죽은 표정을 짓다가 의문을 표했다.

“근데 소피 너도 연애는 한 번도 안 해봤잖아.”

“연애를 꼭 직접 해봐야 해? 책에 다 적혀 있어.”

“그래? 나도 그 책 좀 빌려줘.”

이때까지 제이미와 소피는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바로 유신이 수사할 정도로 그렇게 똑똑하지 않다는 걸 말이다.

***

카페를 나선 유신은 오랜만에 답답함을 느꼈다.

자신이 해결사로 여러 사건을 해결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수사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언제나 무력과 꾀로 사건을 해결했을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해야 하지? 나 아카데미에서 1등이었는데, 왜 아무것도 모르겠지?’

고민이 깊어진 유신은 집으로 향하려다가 몸을 돌렸다.

이렇게 답답할 때는 땀을 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에 기동대에 위치한 훈련장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렇게 훈련장에 도착하자, 평소와는 다른 감각들이 잡혔다.

‘누구지? 갑자기 날 왜 감시하는 걸까?’

유신은 아무렇지 않게 스트레칭하면서 수상한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눈에 포스를 집중한 후, 훈련장을 훑어보듯 상대가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그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솟구쳤다.

‘지금 조금 귀찮아도 이게 확실하겠지?’

천장, 화장실, 문 쪽과 바닥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유신이 외쳤다.

“나오세요. 다 알고 있으니까.”

“……”

하지만, 상대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유신은 그나마 숨어 있는 사람 중 가장 희미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바닥을 바라봤다.

“언제부터 4기동대가 여기를 감시해도 되는 거였죠?”

“……”

“자꾸 그렇게 하시면, 어쩔 수 없이 실력 발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을 끝낸 유신은 잠깐 기다렸다.

하지만, 상대는 자리를 피하지도, 그렇다고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오른발을 살짝 든 유신은 그대로 훈련장 바닥에 진각을 밟았다.

콰앙

진각으로 땅에 포스를 흐르게 해서 바닥에 숨어 있는 사람을 공격했다.

예전이라면 꿈도 못 꿈 기예였지만, 이제는 평온하게 진행할 정도로 능수능란한 전개였다.

“크윽…”

땅에 있던 4기동대는 마스크 아래로 한줄기의 피를 흘리며 튀어나왔다.

그는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말없이 유신을 노려봤다.

유신은 그 모습에 피식 웃더니, 순간적으로 모습이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천장에서 두 명, 화장실에서 한 명, 문 쪽에서 한 명. 도합 네 명의 4기동대원이 바닥에 쓰러졌다.

“이 훈련장에 숨어 있었던 이유를 들어봐도 될까요?”

이렇게까지 했는데, 4기동대 팀장은 말이 없었다.

여기서 아무리 어르고 달래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에 유신은 붉은 포션을 꺼냈다.

유신은 자신이 아는 가장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4기동대에게 다가갔다.

그때야 4기동대 팀장이 입을 열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왜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니면 지금처럼 계속 입을 다물고 있어도 됩니다.”

“일반인이 그 포션을 먹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 포션에 대해서 아세요?”

유신이 포션 병을 흔들며 물어봤고, 4기동대 팀장은 고개를 끄떡였다.

13기동 타격대의 포션을 안다는 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걸 어디서 봤죠? 아니 어떻게 알죠?”

“사신이 쓰는 걸 봤습니다.”

“사신?”

어디서 들어본 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신은 사신이 강문 선배의 별명이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강문 선배…아니 사신을 어떻게 알죠?”

“사신은…”

4기동대 팀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사신은 우리 4기동대의 전설이기 때문입니다.”

“전설이요?”

“네. 그는 최고의 암살자이자, 최고의 요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신 그러니까 강문 선배의 과거를 듣는 건 색다른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유신은 우선 포션의 뚜껑을 다시 닫았다.

“좋아요. 계속 그렇게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죠. 왜 절 감시했습니까?”

“감시가 아닙니다.”

“감시가 아니면 뭔데요?”

“제 역할은 이곳을 지키는 겁니다.”

“지키는 거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요?”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느낀 유신은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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