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_라이징 길드와 신평
유신은 교황청에서 받은 며칠 간의 휴가 기간에 쉬지 않았다.
정확히는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집을 나와 신평이 속해 있는 라이징 길드로 향했다.
라이징 길드에 들어서자, 안내데스크의 안내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라이징 길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길드장님을 만나고 싶어서요.”
“약속은 하셨나요?”
“아뇨.”
당당하게 말하는 유신의 말에도 안내원은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웃으며 응대했다.
“죄송합니다. 길드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지 않으면, 만나실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길드장이 여기에 있다는 말이군요.”
“제가 함부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유신.”
“네?”
“제 이름은 하유신입니다. 하유신이 만나고 싶다고 전해주세요.”
안내원은 하유신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내, 하유신이라는 이름을 기억했다.
“호.혹시? 교황청의 하유신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자.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유명하다는 것은 이래서 좋았다.
몇 달 전에 이렇게 찾아왔다면, 분명 문전박대를 당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라이징 길드의 길드 마스터가 손수 내려왔다.
유신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기에 이런 말도 안되는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라이징 길드의 길드 마스터 이재호라고 합니다.”
이재호는 대뜸 유신에게 악수를 권했다.
당연히 악수를 피할 필요가 없기에,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교황청의 하유신입니다.”
“무슨 연유로 이곳에 온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위로 올라가시죠.”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유신은 이재호의 안내에 따라서 길드장실로 들어갔다.
화려하게 꾸며진 그곳은 이재호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이었다.
‘겉으로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고 적혀 있었지.’
교황청의 비밀 정보 부대가 보내 준 서류를 다시 되짚어 본 유신은 이내 소파에 앉았다.
라이징 길드는 우리나라의 한 축을 담당하는 10대 길드다.
한국에서는 무시 못 하지만, 세계 규모로 봤을 때는 하유신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명성이라는 게 좋기는 하군. 예전이라면 번호표를 뽑아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쉽게 만나고.’
인터폰을 통해 음료를 주문한 이재호는 자리에 앉으며, 유신을 바라봤다.
“공사가 다망하신 하유신씨께서 라이징 길드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말투가 비꼬는 것 같군요?”
이재호에게 유신은 하늘 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유신은 어려 보이기도 했고, 순해 보였다.
그래서, 긴장감이 풀렸고, 평소 아랫사람을 대하듯 말했더니, 유신이 바로 공격적으로 응수했다.
“죄송합니다. 제 말투가 오해를 일으킨 것 같군요. 저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입니다.”
“네. 주의 부탁드립니다.”
“네….”
이재호 입장에서는 이가 갈리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겉으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그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이보다 더한 상황도 있었기에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사람을 찾습니다.”
“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이재호와 유신에게 커피를 내려놓고는, 한쪽에 있는 향초를 피우고 밖으로 나갔다.
비서가 나가고 난 이후에야 이재호가 입을 열었다.
“제 비서가 향초를 좋아합니다. 물론 저도 좋아하고요. 혹시 싫으시면, 끌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럼. 하유신님께서는 누굴 찾길래 라이징 길드에 오신 겁니까?”
“아 별거 아닙니다. 라이징 길드에 제 친구가 소속되어 있거든요. 연락해도 받지 않아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그건 제가 도울 수 있을 것 같네요. 친구분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나요?”
“신평입니다. 아! 제가 있다는 말은 비밀로 해주세요. 놀래켜 주고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재호는 곧바로 인터폰으로 연락해, 신평을 데리고 와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속으로 안도했다.
혹시나 유신이 자신의 불법적인 일 중 하나를 알게 돼서 찾아온 줄 알고,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서가 말해주기를 친구분이 한동안 내근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 곧 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 이후, 이재호가 유신에게 치근덕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욕심 많고, 눈치 빠른 이재호가 새로운 영웅으로 추대 받고 있는 인물 중 한 명과 안면을 틀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약 십 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똑똑
“친구분이 온 것 같네요. 들어오세요.”
이재호의 말에 문이 열렸다.
“라이징 길드. 제 6 전투 지원단 신평입니다.”
하늘 같은 길드장 앞이기에 신평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인사했다.
그래서 앞에 유신이 있다는 걸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옷으로 가려도 신평의 온몸이 상처와 멍으로 가득했다
당연히 그 모습을 이재호와 유신은 같이 보게 되었다.
“상처? 길드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건가요?”
“그.그게….”
유신의 성난 목소리에 이재호는 서둘러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사실 라이징 길드가 평판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가 능력이 부족한 녀석들이 스스로 나가게 하는 거였다.
그래서 밑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걸 알고 있었고, 이재호가 부추기기까지 했었다.
이대로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을 거다.
“야! 신평. 네가 뭘 잘못했길래 고개를 숙여? 고개 들어!”
신평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려고 하다가, 들지 않았다.
라이징 길드에서는 윗사람에게 눈만 잘못 마주치면, 호되게 당한다.
그런데, 지금 길드장 앞이었기에 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신평 고갤 들라고! 네 친구 앞에서도 고개를 그렇게 숙일 거야?!”
화난 유신의 말에 신평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더니, 그 앞에 자신의 친구이자, 영웅이 된 하유신이 있었다.
“유.유신아… 네가 왜 여기에?”
유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신평의 상처를 요목조목 바라봤다.
“이 상처들 뭐야?”
“아…그러니까….”
대답은 뒤에 있는 이재호에게서 들렸다.
“레이드를 뛰다가 다친 모양입니다.”
“당신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분명 길드장님이 한동안 내근직이라고 말했는데, 방금 생긴 상처가 보이는데, 그게 변명거리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매서운 눈빛과 찬바람이 부는 목소리로 이재호의 입을 다물게 한 유신이 다시 신평을 바라봤다.
“이 상처 뭐냐고?”
“길드장님 말이 맞아. 레이드 하다가….”
“자꾸 거짓말할래?”
“지.진짜야.”
거짓말하는 신평의 모습에 유신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재호를 바라봤다.
“이재호 길드장님.”
“네. 하유신씨.”
“정말 레이드 때문에 생긴 상처가 맞나요?”
“그.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유신은 이번에 신평을 바라봤다.
“잘 들어. 신평. 블랙이 죽기 전에 그런 말을 하더라고, 내 친우이자, 자신의 친구인 레드를 잘 부탁한다고.”
‘레드’라는 말에 신평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네 친구 하유신은 오늘 널 라이징 길드에서 교황청으로 섭외하러 왔어. 그래도 사실을 말하지 않을 거야?”
신평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내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더니,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유신아 사실은…”
한번 말을 내뱉자, 신평의 말은 끝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괴롭힘과 라이징 길드에서 억지로 만든 빚까지 모든 걸 내뱉었다.
유신은 아낌없이 토해낸 신평의 등을 두드려줬다.
신평을 안심시킨 유신이 이재호를 바라봤다.
“이재호 길드장님. 이게 다 사실입니까?”
“거짓입니다. 모두 거짓말입니다. 우리 라이징 길드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문밖에 헌터들이 모여 있을까요?”
유신은 말을 끝내고, 길드장실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완전무장한 수십의 헌터들이 무기를 꺼내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재호는 이미 글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보험은 드러났기에 평소의 자신이 마무리 짓던 방식대로 외쳤다.
“뭐해? 환각초가 타고 있는 동안 빨리 쳐!!”
길드장의 명령에 헌터들이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움직이는 존재가 있었다.
유신이 포스를 가득 담은 주먹을 헌터들에게 내질렀다.
포스는 거대한 주먹으로 유형화되어서 헌터들에게 날아갔다.
퍼어억
한 방에 중앙에 위치한 헌터들이 모두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헌터들이 그 일격에 당황하는 사이 유신이 양손에 포스를 집중해서 각기 채찍을 만들었다.
채찍의 편대에 가시 모양까지 만드는 디테일을 보인 유신이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촤아악
콰아앙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유신의 포스에 제압되기까지 1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서 나자빠졌다.
유신은 고개를 돌려, 이재호를 바라봤다.
그는 입을 벌린 채, 얼이 빠져있었다.
“어떻게?…환각초를 피웠는데…?”
안 그래도 밉상인데, 독까지 사용했다는 말에 유신의 주먹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나갔다.
퍼억
한 방에 이재호는 가지런한 치아를 뱉어내며, 벽까지 날아갔다.
“설마 환각초를 피우면 절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이재호가 모르는 게 있었다.
유신은 환골탈태한 후에 웬만한 독에는 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라이징 길드의 최고위 헌터들을 박살 낸 유신이 신평을 바라봤다.
“너. 사직서는 가지고 있냐?”
“아. 아니.”
“그래?”
유신은 이재호의 테이블 위에 있는 작은 종이와 펜을 들어서 신평에게 건네줬다.
“받아 적어.”
“응?”
“빨리.”
“아.알았어.”
신평이 펜을 잡자, 유신이 입을 열었다.
“사직한다. 프럼 신평. 이렇게.”
“응? 이렇게 적으라고?”
“빨리.”
“자.잠깐만. 그냥 내가 알아서 쓸게.”
작은 종이 안에 빼곡하게 무언가를 적은 신평은 사인까지 하고선 테이블 위에 펜과 함께 올려놨다.
유신이 신평과 함께 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아. 맞다. 이재호 길드장님. 제 친구가 사직하는 데 불만은 없죠?”
이재호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떡였다.
“좋아요. 그럼, 저도 몇 가지 더 확인 좀 해볼게요.”
“네?”
아리송한 말을 내뱉고 유신은 신평을 챙겨서 라이징 길드에서 나왔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타고 기동대 훈련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 유신이 휴대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상대는 전화를 받았다.
“아. 나야. 혹시 자는 시간이야? 내가 깨웠나?”
-아냐.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고 했어.
“그렇구나. 혹시 길드가 불법적인 일을 하면, 세계헌터협회에서 어떤 제재를 가할 수 있나?”
-당연히 있지. 모든 길드는 세계헌터협회에 가입해야 하고, 가입 수칙이 웬만한 사전보다 두꺼운걸.
“그래? 그럼 한 곳을 신고하려고.”
-어디인데?
유신은 자신의 친구 신평을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한국 지부에 있는 라이징 길드라는 곳이야. 그곳에서 길드원을 폭행하고, 강제로 빚을 만들어서, 못 나가게 한다고 하네.”
-그런 곳이 있다고?
“응 그러니까 부탁할게.”
-당연히 세계헌터협회에서 해야 하는 일이야. 그래도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밤늦게 개인 전화까지 해서 부탁했네?
“하하. 미안해. 혹시나 나중에 나한테 할 부탁이 있으면 언제든지 해.”
-좋아. 약속이다.
“응. 그럼 부탁할게. 제이미.”
-알았어. 유신.
신평은 유신이 전화를 끊자마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뭐야? 너 언제 그렇게 영어를 잘했어?”
마도구 팔찌의 힘이었지만, 유신은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너 아까 사직서에 뭐라고 적었어?”
“아? 그거? 내가 아는 모든 욕설을 다 적어 놓고, 마지막에 그런 이유로 사직합니다 라고 했는데?”
유신은 좁은 택시 안에서 신평에게 어깨동무했다.
“역시 내 친구.”
“악! 아까 거기 당한 곳이라서 진짜 아파!”
“나쁜 놈들. 일단 여기서는 그렇고, 가서 치료하자.”
“우리 지금 어디 가는데?”
“가 보면 알아.”
***
기동대 안에 위치한 13기동 타격대의 훈련장 문이 열리고 유신과 신평이 들어왔다.
“유신아. 여기는 왜 왔어?”
“왜 오긴? 너 취직시켜주려고 왔지. 일단 이거부터 마셔.”
유신이 건네준 것은 13기동 타격대의 붉은 포션이었다.
“이 비싼 포션을 마시라고? 아냐 괜찮아. 시간 지나면 나아.”
“걱정하지 마. 나 포션 많아. 그리고 이 포션은 부작용이 좀 있거든. 그래서 그렇게 안 비싸.”
“그래도 포션이잖아.”
“평아. 지금 네 상처 겉보기에는 멍인데, 속은 완전히 망가져 있어. 그러니까 잔말 말고 마셔. 그리고 나 하유신이야. 하유신. 새로운 영웅으로 불리는 하유신!”
마지막은 장난스럽게 말한 유신이었지만, 신평은 유신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다.
“유신아…”
“그런 아련한 눈으로 보지 말아라. 포션 마시고, 내 욕하지 말고.”
“내가 네 욕을 왜 해. 고마워.”
퐁
신평은 다시 한번 유신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낸 다음 포션을 마셨다.
포션을 다 마신 걸 확인한 유신은 신평의 입에 재갈을 물려줬다.
“이게 도움이 될 거야.”
두근
두근두근
순간적으로 신평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하더니, 고통이 시작됐다.
그때, 유신은 그런 신평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고통이 심한 만큼 네 상처가 깊다는 거야. 그러니까 힘내!!”
신평은 눈이 찢어지도록 크게 뜨며 유신을 노려봤다.
유신은 그런 신평을 보며 자신만의 감상평을 남겼다.
“이게 바로 눈으로 욕하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