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_칼 제라니에서 하유신으로
칼 제라니의 장례식은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에서 열렸다.
교황청 앞에는 칼 제라니의 석관이 있었고, 수많은 군중이 그 앞에 모였다.
장례에 대한 기본적인 절차를 끝낸 교황이 군중들 앞에 섰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영웅을 가이아께 보내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칼 제라니. 업적을 따지면 말로 다 하지 못하겠지만, 그는 가이아의 대리인으로서 혼란을 막기 위해 홀로 백만 오크를 사흘 동안 막았습니다. 그로 인해 혼란을 바라는 마족 숭배자들과 대척점에 서게 되었고, 적들의 꾀임인 것을 알고도, 사람들을 지키려다가 다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교황은 좌중을 한 번 둘러봤다.
군중들은 교황의 말에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였다.
어떤 이는 분노를 표출하기도, 또 어떤 이는 슬픈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렇게 한 차례 군중을 바라본 교황이 말을 이었다.
“그 악랄하고 비겁한 마족 숭배자들은 우리의 영웅 칼 제라니가 다친 틈을 타, 가이아의 축복으로 만들어진 교황청의 치료소를 급습하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칼 제라니는 자신이 마족 숭배자들을 막지 못하면, 더 큰 피해가 생긴다는 생각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그들과 함께 산화하였습니다.”
유신은 교황 뒤에 서 있으면서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칼 제라니는 자신이 정체를 숨기고 진행한, 이명이었다.
그리고, 작전상 장례식을 치르는 것도 알겠지만, 자신이 그 장례식에 온 것이 너무나 아리송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러분 칼 제라니가 다쳤을 때, 자신의 후임을 정하였습니다. 전설들과 함께 마족 숭배자들을 없앤 교황청 소속의 하유신입니다.”
교황이 손을 들어 뒤편에 있는 유신을 가리켰다.
유신은 이미 성녀에게 어떤 연기를 펼쳐야 하는지 이틀간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표정을 굳히며, 천천히 교황 옆에 다가섰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교황청 소속의 하유신입니다. 그리고 칼 제라니의 친구이자, 후계자이기도 합니다.”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마자 군중 안에 숨어 있던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손을 들었다.
유신은 그런 기자들을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기자님들께서 묻고 싶은 게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여기는 기자회견장이 아닙니다. 제 친구인 칼 제라니의 장례식이죠. 그래서 저는 오늘 칼 제라니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질문을 던지려고 했던 기자들은 유신의 말에 오기가 생겼지만, 군중들의 매서운 눈빛에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유신은 그 모습을 보며 단상 위에서 칼 제라니의 석관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칼 제라니 그는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쾌한 사람이었죠. 저는 그를 통해 많은 유머를 배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의 희생 정신과 유머는 따를 수가 없었죠.”
석관을 어루만지던 유신이 칠성검을 빼 들었다.
“이 검은 알다시피 칼 제라니의 검입니다. 여러분. 칼이 다쳤을 때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검을 빌려줄 테니, 그동안 인류를 위해 싸워달라고.”
이때, 군중들의 몇몇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신도 이틀간 스파르타로 받은 교육의 완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줄기의 눈물이 유신의 볼에서 흘러내렸고, 칠성검에 떨어졌다.
“제 친우인 칼 제라니에게 칠성검을 돌려주고 싶은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군중들의 절반이 눈물을 흘렸다.
이미 예상한 만큼의 효과는 봤지만, 아직 시나리오는 끝나지 않았다.
“여러분, 이 석관 안에는 시체도 남기지 못한 제 친구 칼 제라니의 가면이 있습니다. 그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이 칠성검에 맹세하겠습니다. 마족 숭배자들의 본부는 파괴하였지만, 숨어 있는 그들을 뿌리 뽑아, 제 친구의 혼을 달래겠다고요.”
말을 끝낸 유신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더 떨어졌다.
그리고, 군중들은 눈물을 흘렸고, 대성통곡하는 이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기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질문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을 좀먹는다는 걸 알기에 그저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
칼 제라니의 장례식을 끝내고, 유신은 교황청에서 제공해준 공간이동 게이트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기동대 본부의 훈련장에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렸고, 유신은 곧바로 거기서 튀어나왔다.
“어후~ 이건 적응이 안 돼.”
공간이동 멀미 때문에 유신은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훈련장을 바라봤다.
몇 달 만에 도착한 훈련장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내가 없는 동안 기동대에서 관리해줬나 보네.”
훈련장을 바라보며 유신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언론에서는 자신에 대해서 가이아의 축복을 받아, 최고의 재능과 능력을 받았다고 마음대로 떠들고 있었다.
하지만, 본래 자신은 [노오력가]라는 능력을 받은 약하디 약한 일반인이었다.
자신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의 도움이 컸다.
“선배들 보고 싶다.”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입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선배들에게 죽도록 두들겨 맞으면서 훈련했던 기억과 이러다가 정말 죽는 건 아닌가? 라는 상황들이 생각났다.
“아냐. 아직은 아냐. 지금 만나면 또 어떻게 두들겨 맞을지도 몰라. 아니 이제 강도가 더 올라갈 수도 있지.”
유신은 자신이 조금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모든 능력을 끊어내는 그 검을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선배들에게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면 되는 거였다.
“그때, 내가 정식 13기동 타격대가 될 거니까.”
마음을 다잡은 유신이 이내 훈련장 문을 열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누가 자신을 알아볼 줄 알았는데, 평범하게 생긴 유신을 사람들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바로 오늘 낮에 칼 제라니의 장례식이 전 세계인들에게 생방송으로 송출됐다.
거기에 나온 인물이 지금 한국에서 돌아다닌다?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몰라보니까 편하기는 한데, 이거 조금 섭섭하기는 하네.”
유신은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집으로 들어갔다.
몇 달 만에 돌아온 집이었고, 저녁 시간이라서 그런지 가족들은 모여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정겨운 유신의 말과 함께 박희선 여사가 달려 나왔다.
그리고, 유신을 보자마자 등짝 스매시부터 날렸다.
짜악!!
“크아아악!!”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다칠까 봐, 포스를 절제하기는 했는데, 이상하게 너무나 아팠다.
짜악 짜악 짜악
유신은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아팠는데, 박희선 여사는 말도 없이 계속 때렸다.
“어.엄마 진짜 아파. 너무 아파. 그러니까 제발 그만.”
하지만, 엄마는 멈추지 않고 때렸다.
그렇게 때리고 때리면서 엄마의 눈물이 보였다.
“이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하라고 했잖아.”
유신은 죄송스러운 마음에 정말 오랜만에 엄마를 안아줬다.
엄마는 몸 건강히 오랜만에 돌아온 큰아들을 껴안고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박희선 여사님. 그만 울어요. 이렇게 잘 다녀왔잖아요. 그리고 내 나이가 몇인데?”
“이제 겨우 23살밖에 안 되지, 그리고, 자식이 아무리 커도 부모에게는 어려 보일 뿐이야.”
“죄송해요.”
한동안 유신은 엄마를 달래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의 눈물이 멈췄을 때, 유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박희선 여사님. 이렇게 눈이 빨개져서 오늘 요리는 못하겠네. 엄마 밥이 먹고 싶었지만, 그건 내일로 패스하고, 오늘은 외식해요.”
“외식은 무슨 외식. 기다려 엄마가 밥 차려줄게.”
“아니요. 외식이요. 제가 밖에서 할 말도 있어요. 괜찮죠? 아빠?”
그렇게 우리 가족은 외식을 나섰다.
외식 장소는 유신이 집에 오기 전에 예약한 소고기 집이었다.
우리 가족은 누가 봐도 고급진 형태의 방에 자리를 잡았다.
“헉! 형 괜찮겠어? 여기 소고기 일 인분이 15만 원이나 하는데?”
“형 돈 많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먹어.”
“오예~!”
동생의 좋아하는 모습에 유신이 미소 지을 때 아버지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들아, 그래도 돈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니? 이건 너무 무리를 하는 것 같구나.”
“아빠. 저 월 1억 이상 벌어요.”
“여기 소갈비가 그렇게 맛있다고?”
태세 전환이 빠른 아버지였다.
그렇게 직원이 구워주는 비싼 소고기를 먹으며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끝날 때쯤이었다.
유신이 직원에게 눈짓하자, 눈치 좋은 직원이 조심히 자리를 비켜줬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아들. 엄마가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어?”
“…네 말씀하세요.”
“오늘 낮에 교황청에 있던 사람이 아들 맞지?”
숨길 생각도 없었고, 이미 전 세계적으로 얼굴이 알려졌다.
그래서 유신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맞아요.”
긍정을 표하자, 가족들은 예상했는지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사실을 숨겨서 죄송해요. 그래서 오늘 다 말씀 드릴려고요.”
“자.잠깐만 기다려 볼래?”
박희선 여사는 종업원을 불러서 소주를 시켰다.
그리고, 연거푸 세 잔을 들이켜고는 이내 유신을 바라봤다.
“그래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니?”
“사실은….”
가족에게 모든 걸 밝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유신은 13기동 타격대와 세계의 몇몇 진실은 숨기고 말을 이었다.
물론, 거짓말을 잘못하는 유신을 위해 성녀가 사람들을 시켜서 만들어준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니까, 형 말은 운 좋게 한국에 온 영웅 칼 제라니의 눈에 띄게 되어서 교황청 스카웃을 받게 됐다는 거지?”
“응. 그 후로 거기서 훈련받고, 임무를 하느라 집에 제대로 못 들어왔던 거야.”
“대박~!”
동생의 놀란 모습에 유신이 미소를 짓다가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제가 이제 적이 많아졌어요. 죄송해요.”
말을 끝내자, 엄마가 유신의 손을 잡아줬다.
“고개 들어. 넌 이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영웅이야.”
“엄마~”
부모에게 인정받은 자식이 됐다는 생각에 유신의 감정이 솟구쳤다.
하지만, 박희선 여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솔직히 엄마는 네가 그런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해.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겠지?”
“네. 죄송해요. 마음대로 선언해서.”
“아냐. 잘했어. 남자가 할 때는 해야지. 그래야 이 엄마의 아들이지.”
“고마워요. 그래서 그러는데, 엄마. 우리 이사 가요.”
***
유신은 허투루 이사 가자고 한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는 적이 많았다.
언제 그 적들이 자신이 아니라, 가족을 노릴지 몰랐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에 교황청을 통해 이미 이사 준비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여기가 제가 구한 집이에요.”
“허~ 방이 몇 개야?”
동생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방 3개에 화장실 2개의 낡았지만, 평범한 아파트에서 살던 우리였다.
물론, 서울에서 그런 집을 구했다는 게 경제적으로 부족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일단 평수만 200평으로 되어 있고, 고관대작부터 재벌들까지 살고 있는 고급 빌라촌이었다.
아파트도 좋지만, 이곳은 택한 것은 바로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총 3층으로 이루어졌고, 방은 7개야. 거기다가 짜잔.”
유신이 가리킨 곳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대에박~!! 집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그뿐인 줄 알아? 모두 여기로 와 보세요.”
가족들은 거실 중앙으로 모였다.
유신이 바닥에 깔려있는 카펫을 치우자, 지하로 통하는 문이 보였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로 대피하면 돼요. 이 아래에는 3개월 동안 먹을 식수와 식량이 있고요. 거기다가 여기 고급 빌라촌의 경비는 모두 전투 능력자니까, 안전할 겁니다.”
그 후로 유신은 집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가족들에게 집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렇게 한참 집구경을 한 후, 가족들이 거실에 모였을 때, 유신이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관리비랑 여길 관리해주신 분들의 월급은 여기서 나갈 거예요. 그리고 늦었지만, 아카입니다. 즉, 아들 카드니까, 편히 쓰세요.”
하지만, 아무도 유신의 카드에 손을 대지 않았다.
“엄마. 얼른 챙기세요.”
유신의 재촉에 뒤늦게 희선이 카드를 챙겼다.
그리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아들. 엄마가 걱정돼서 그러는데, 또 임무니?”
“눈치채셨어요? 사실 짧으면 며칠 쉬었다가 다시 떠나야 할 것 같아요.”
“이번에는 누구니? 마족 숭배자는 끝나지 않았니?”
희선의 질문에 유신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마족 숭배자 잔당들이 남았어요. 그리고 가이아께서 다스리는 이 지구의 암 덩어리는 마족 숭배자뿐만이 아니거든요. 이번에 상대할 적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