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_마족과 아스본(2)
아스본 레스넌
그가 도시 외각에서 마족 에디 게인이 있는 도시까지 오는 게, 너무 느렸다.
물론 일반인보다 빠르기는 했지만, A급 헌터보다는 느렸다.
그 모습에 유신이 한숨을 내쉴 때 탐이 작게 말을 걸어왔다.
“많이 늦죠?”
“네. 네?”
“저희 협회장님이 지금 오리지널 기술을 준비하고 있어서 저렇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아…그렇군요.”
변수였다.
아스본이 무슨 기술을 준비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곳까지 오는데 아무리 빨라도 2~3분은 걸릴 것 같았다.
“도착하고 준비하면 되는 거 아니었을까요?”
유신의 질문에 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좀 걸리는 기술이거든요.”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잠시라도 마족을 막아야 했기에 유신은 칠성검을 뽑았다.
“뭐 하시나요?”
“막아야죠.”
마족이 내뿜는 핏빛 기운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공간을 뒤덮기 시작했다.
이대로 마족을 가만히 두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랐다.
그래서 칠성검을 들고는 예의 그 검을 펼치려고 했지만,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파왔다.
“크…”
“괜찮으십니까?”
탐이 걱정스럽게 유신을 부축했다.
유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괜찮습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좀 쉬세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콰콰콰쾅
마족이 내뿜은 핏빛 안개를 향해 헌터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검강과 원소력이 핏빛 안개와 부딪힐 때마다 굉음이 터져 나왔다.
헌터들의 공격은 핏빛 안개를 저지했고, 마족에게 타격까지 가했다.
“홀로 다 할 필요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헌터들에게 맡기세요.”
탐의 말에 유신이 고개를 끄떡일 때였다.
“크아아악! 하찮은 인간 놈들! 감히 나 에드 게인에게 상처를 주다니, 가만 놔두지 않겠다.”
비명을 내지른 마족 에드 게인이 헌터들에게 피로 이루어진 에너지체를 발사했다.
마족을 상대하는 헌터들은 괜히 S급 헌터가 아니었다.
“아쿠아 실드!”
“불의 장막.”
“철의 보호.”
순식간에 만든 보호막들이 마족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모든 공격을 막은 건 아니었다.
헌터 중 한 명이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마족이 쏜 피를 살짝 뒤집어썼다.
“크악!!! 피.피햇!!”
마족의 피를 뒤집어쓴 헌터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주위에 있던 동료 헌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동료를 공격하는 헌터에게 유신이 세뇌를 깨는 사자후를 뱉어냈다.
“크아아아앙!”
헌터는 잠깐 비틀거리더니, 이내 다시 동료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유신이 만든 잠깐의 틈으로 헌터들은 대비를 끝냈다.
인간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고 마족이 비웃듯 외쳤다.
“그런 하찮은 동료애가 너희를 죽게 할 것이다.”
동료에게 신경을 쓰는 동안 마족이 피로 이루어진 수천 발의 화살을 만들어서 헌터들에게 발사했다.
“실드 캐슬!”
어느새 다가온 이자벨의 방패에 마족의 공격은 막혔다.
이자벨은 세뇌된 헌터의 뒷목을 가격해서 기절시켰다.
하지만, 헌터는 이내 고장 난 꼭두각시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육체 지배였군. 그렇다면, 홀드 홀드 홀드 홀드 홀드.”
총 다섯 번의 홀드 마법에 헌터는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동안 에드 게인의 마법은 지속적으로 이자벨의 방패를 두드렸다.
“내가 언제까지 방어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이제부터 내가 널 직접 처단할 거다. 수호기사단의 원수!”
수호기사단을 제일 먼저 없애자고 제안한 게 이자벨이었다.
지금은 여러 헌터가 있기에 저렇게 말하는 걸 거다.
이런 모습들을 보니 유신은 이자벨이 너무나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에너지 볼트!”
시동어를 외치자, 어린아이 몸통만 한 에너지 볼트 십여 개가 마족에게 향했다.
퍼엉 퍼엉
대부분의 에너지 볼트는 중간에 사라졌지만, 단 2개의 에너지 볼트가 마족에게 도달했다.
에너지 볼트는 마족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팔을 터트렸다.
“크아아아악!! 인간! 감히 두 번이나 이 마족 에드 게인을 다치게 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에드 게인이 떠있는 땅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 피는 그대로 에드 게인에게 흡수됐고, 사라졌던 육체를 복구시켰다.
하지만, 이내 에드 게인은 좌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쪼개졌다.
촤아아아악
드디어 세계헌터협회 협회장 아스본 레스넌이 도착한 것이다.
“내가 침 발라놨는데, 건들면 안 되지. 이자벨.”
“늦은 주제에.”
“이제 도착했으니 내꺼야.”
“수호기사단의 원수야.”
“나도 눈치는 있다고 그러니, 내가 그 복수 대신해주지.”
이자벨은 아스본을 노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마음대로 해.”
마족 에드 게인은 너무나 화가 났다.
아무리 마계에서 하급 마족이지만, 하찮은 인간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로 자신은 약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래고래 고함치고 싶었지만, 몸이 갈라져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속으로 외쳤다.
‘모두 죽여버리겠다. 그냥도 아니라, 갈기갈기 찢어서!’
땅에서 다시 피가 솟구치고, 에드 게인은 다시 피를 흡수해서 회복됐다.
그리고 회복과 동시에 목이 날아갔다.
“크하하하. 피로 회복하네? 그래. 그럼 계속 회복해봐.”
호주에서 유신이 상대했던 적과 비슷한 능력의 마족이었다.
그때 유신은 정신력을 사용하는 검으로 적을 회복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아스본은 에드 게인이 회복하며 족족 도려냈다.
수 분간 검을 휘둘러 움직임을 방해할 때였다.
“이 정도면 스트레스는 풀렸고, 그럼 이만 끝낼까?”
말을 끝낸 아스본의 거검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글이글 불타는 거검은 에드 게인의 정수리부터 꼬치 꿰듯 그대로 박혔다.
“굿바이.”
화르륵
장작이 되어버린 에드 게인은 그대로 재가 되어 타버렸다.
그렇게, 에드 게인은 인간계에 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사라졌다.
멍하니 그들의 싸움을 보던 유신에게 탐이 어깨를 살짝 쳤다.
“우리 아스본 협회장님이 저 기술을 쓰려면 최소 5분은 힘을 모아야 하거든요.”
“아 그렇군요.”
“이걸로 다 끝났으면 좋겠네요.”
“네?”
탐이 뜻 모를 말을 내뱉자, 유신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탐은 언제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아닙니다. 그럼 수고 많으셨어요. 어제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머지는 저희한테 맡기시고 좀 쉬세요.”
화제를 돌리는 말이었다.
탐은 더는 캐묻지 말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뒤를 부탁드립니다.”
“네. 들어가세요.”
스스로에게 이제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갑자기 정신적으로 긴장감이 풀려서 지금이라도 주저앉고 싶어졌다.
유신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재빨리 도시를 벗어나 야영지로 몸을 돌렸다.
그렇게 힘들게 발을 내디디며 가고 있을 때, 제이미와 마주치게 됐다.
“왜 여기 계세요?”
“우리 편하게 말하기로 했잖아.”
제이미의 말에 유신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네. 왜 여기 있어 제이미?”
“글쎄?”
모호하게 대답하는 제이미를 보고 유신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지나치려고 했다.
그때, 머릿속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고, 유신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유신. 정신 차려. 하유신!”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 제이미의 목소리가 들렸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
호주에 위치한 교황청 직할 치료소.
그곳에 검은 그림자들이 스며들었다.
그들은 앞을 가로막거나, 보이는 모든 존재를 처리하고는 칼 제라니의 병실 앞에 모였다.
한 명의 손짓에 맨 앞에 있던 그림자가 병실 문을 열 때였다.
푸욱
문을 열던 그림자의 심장에 검이 박혔다.
그리고, 문틈 사이로 비추는 빛과 함께 칼 제라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밤 손님이 찾아왔네?”
그림자들은 칼 제라니의 목소리에 흠칫했지만, 이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죽여라!”
순식간에 병실 안으로 그림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있는 것은 칼 제라니의 가면을 쓴 목각 인형이었다.
끼기끼끽
180도로 고개가 돌아간 목각인형이 그림자들을 바라볼 때, 녹음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올지 알았어. 그럼 지옥에서 보자고.”
목각인형이 검을 들고 그림자들에게 달려들었다.,
푸욱
제일 앞에 있던 그림자가 반응하기 전, 가슴에 검이 찔렸다.
그림자는 그 상태에서 목각인형의 검을 붙잡았다.
다른 그림자들은 그 틈에 목각인형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카카컁
나무 재질인데도, 그림자들의 철제 무기가 튕겨 나갔다.
“마기를 사용해라.”
그림자 대장의 말에 그림자들의 무기에 이글거리는 검은 기운이 솟아났다.
이내, 검은 기운을 띤 그림자들의 무기가 목각인형에게 다시 휘둘러졌다.
목각인형은 어느새 검을 회수한 후 몸을 회전해서 그림자들의 무기를 막았다.
그러고는 다시 그림자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푹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그림자가 하나의 목각인형을 상대하다보니, 그림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림자들은 이내 이 상황에서 적응하고는 목각인형의 몸에 검을 박아넣었다.
콰직 콱콱
목각인형은 몸에 무기가 박힌 상태에서도 원활히 움직여서 세 명의 심장을 꿰뚫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함정이다. 일단 여기를 벗어난다.”
대장의 명령에 그림자들이 치료소를 벗어나려고 할 때였다.
자신들이 죽였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목각인형으로 변해 있었다.
“일루션? 제길!!”
그림자 대장의 욕설과 함께 수십의 목각인형과 삼백의 그림자가 맞붙었다.
***
수백 대의 카메라가 있는 방안.
여러 사람이 목각인형과 그림자들의 전투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뒷자리에서 비토 제라니가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비토님. 모든 출구를 막았습니다.”
“모든 게 성녀님의 말씀대로 되는군.”
“그렇습니다. 이제 마무리 지을까요?”
“잠깐만 기다리지. 프로토 타입의 전투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기회니까.”
“알겠습니다.”
비토는 영상을 바라봤다.
목각인형이 그림자들의 심장에 구멍을 냈지만, 이내 적들의 손에 부서졌다.
같이 영상을 보던 보좌관이 탄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아깝네요.”
“뭐가 말이냐?”
“아무리 프로토 타입이라고 해도 저거 하나에 천만 달러잖아요.”
가격에 대해서 논하는 보좌관의 말에 비토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재화의 가치만 따지면, 아까울 수 있지.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데이터를 수집하다보면 더 좋은 실험체가 만들어지지.”
“다른 식으로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적당히 하는 건 지금까지 실험으로 가능했다. 아무리 실험체라고 하지만, 저렇게 처절하게 싸워야지. 그래야…인류의 피가 덜 흐르게 된다.”
보좌관이 감동한 표정으로 비토를 바라봤고, 비토는 그게 어색했다.
“물론 나도 아깝다네. 그리고 이 모든 건 내가 아니라 성녀님의 말씀이지.”
“아…”
그때, 상황실의 한 명이 비토를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모든 프로토 타입이 파괴됐습니다.”
“나도 봐서 알고 있네. 그럼. 마무리 짓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상황실의 인원이 무언가 조작하기 시작하더니, 비토의 책상 위로 붉은 단추가 올라왔다.
비토는 지체하지 않고, 붉은 단추를 눌렀다.
그리고 영상을 바라봤다.
부서진 목각인형들이 갑자기 붉게 변하기 시작했고, 살아남은 그림자들은 그 모습에 당황하는 게 보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치료소에서 1km나 떨어진 상황실이 흔들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모든 영상의 화면이 꺼졌다.
비토는 자신의 검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혹시 살아남은 잔당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제 2심판대는 치료소로 향한다.”
“네. 알겠습니다.”
모든 상황실 요원들이 전투 복장을 착용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토를 따랐다.
그리고 비토는 떠나기 전 보좌관을 보며 말했다.
“자네는 남아서 이곳의 흔적을 지워주게.”
“…알겠습니다.”
***
유신은 꼬박 이틀을 자고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통신구를 통해서 성녀에게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소식을 들었다.
“네? 제가 칼 제라니. 그러니까 제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