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_마족과 아스본(1)
능력해방단의 단장이자, 마족 숭배자 간부인 테드 피시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여있는 보라색 알약 두 개를 바라봤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 이 약을 먹고 버티기만 하면, 내가 마족이 될 수 있어.”
하지만, 테드는 쉽게 알약을 먹을 수 없었다.
실패하게 된다고 해도, 자신의 평생소원인 마족이 되기는 한다.
단지, 마족에게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까지 빼앗기지만 말이다.
그래서, 테드는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도 알약을 입안에 털어놓을 수 없었다.
“후우~ 후읍~”
알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테드의 호흡은 거칠어졌다.
갑자기 테드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마인드 컨트롤로 조정하던 일반인들의 신호가 끊기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없군.”
테드는 지금까지의 고민을 무색하게 입안에 알약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스무 명도 넘게 들어갈 수 있는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욕조는 이내 인간의 검붉은 피로 가득 찼고, 테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됐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욕조 가운데에 붉은 파동이 일어나더니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차르르 촤아아아악
퍼어엉
검붉은 피는 이내 사방으로 비산했다.
욕조에는 인간이었던 테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두 개의 뿔이 달린 사내가 있었다.
“인간의 몸에 강림하기는 또 처음이군. 그래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 제물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 그래. 네가 원하는 건 뭐지? 아~ 그렇군. 좋아. 그 소원 이 에디 게인이 들어주지.”
인간의 욕심?
마족 숭배자들의 계획?
어떤 이유에서건 지구에 새로운 마족이 강림했다.
***
유신이 수호기사단을 버리고 홀로 움직이는 모습을 아스본이 포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호기사단이 마법 공격에 당하는 모습을 보고 아스본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계속 그 상황을 지켜보던 제이미가 질문을 던졌다.
“아빠. 왜 도와주지 않으세요?”
“누구? 유신?”
“아뇨. 수호기사단이요.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요?”
“수호기사단? 여기에 수호기사단은 이자벨 뿐인데?”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스본은 예전 추억을 떠올리고는 자신의 딸에게 설명을 이었다.
“마왕을 없앨 당시 가장 많이 살아남은 건 수호기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친 전설들과 영웅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모두 목숨을 바쳤지. 그때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이자벨 로메뿐이야.”
“하지만, 지금의 수호기사단은 저들이고, 이자벨님께서 직접 키웠잖아요.”
“아니.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거다. 이자벨은 대외적으로 저들의 단장이지만, 본인도 인정하고 있지 않지. 저들은 세계정부에서 내세우는 그저 이름뿐인 수호기사단일 뿐이야. 진짜는 따로 있을걸?”
수호기사단의 비밀을 알게 된 제이미가 놀란 표정으로 아스본을 바라봤다.
“그걸 이렇게 함부로 말해도 돼요?”
“함부로라니, 우리 딸이 궁금한 걸 풀어준 건데, 아 맞다. 진정한 수호기사단의 실드 차지와 실드는 저렇게 허약하지 않아. 저 중에 그나마 가장 유사하게 그 기술을 발동한 건 뒤에 실려온 이자벨의 제자인 쟌 아르켄시스가 유일할걸.”
“아빠. 그렇다고 저들을 구하지 않는 걸로 이유는 설명이 안 돼요. 지금은 전쟁 중이잖아요. 한 명이라도 더 아쉬운 상황 아닌가요?”
“아니. 유신의 말이 맞아. 전쟁 중 명령불복종을 하는 놈을 도울 필요는 없지. 우린 실리를 따른다. 저들은 그저 자존심만 쎈 멍청이들 뿐이야. 그래서 이제 곧 죽을 거야. 모두.”
아무리 짝퉁 수호기사단이라고 해도 마법 공격에 목숨을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붉은 옷을 입은 마족 숭배자들이 나타나자, 그들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까지 안톤이 발악하였지만, 그의 목은 이내 떨어지고 말았다. 아스본의 말대로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두 죽게 된 것이다.
그렇게 수호기사단의 죽음을 끝까지 바라본 아스본이 입을 열었다.
“이제 됐군. 자 사냥할 시간이다! 우선 맛보기부터 보여주라고!”
아스본의 외침에 지금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시를 방어하던 헌터들이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이내 캐스팅 또는 원소력을 모았다.
“발.사~”
무전기에 장난스럽게 말한 것과 다르게 결과는 장난스럽지 않았다.
마족 숭배자들이 수호기사단을 무장해제시킨 마법 공격은 그저 바다에 뛰어든 호숫물밖에 되지 않았다.
쿠콰콰콰쾅
한 차례의 공격으로 도시는 반파되었다.
“자~ 한 번 더 갈 겁니다. 준비들 하세요…모두 준비가 끝났으면, 발.사~”
아까보다 더욱 강한 공격이 도시를 향했다.
그런데, 이번 공격은 갑자기 생성된 붉은 실드에 막혀 버렸다.
“오~ 마족 숭배자들이 방어를 시작했군. 그럼 이제 몸을 움직여 볼까?”
그렇게 큰 활약이 없던 300명의 헌터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기지개로 몸을 푼 헌터들은 아스본의 명령이 없어도 도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설마 친위대분들이었어요?”
“뭐야? 못 알아차렸어?”
“제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으니까요. 저도 말만 들었는걸요.”
“그럼 오늘 친위대의 실력을 한 번 보도록 해라. 많은 공부가 될 거다.”
제이미는 대답 없이 도시에 들어가는 헌터들을 바라봤다.
***
세계헌터연합에서 선별한 헌터들은 달랐다.
외각을 둘러싸고 있는 헌터들도 최소 A급 헌터였고, 고르고 고른 정예들은 S급이었다.
거기다가 그들은 마족 숭배자들이 있는 도시에 들어서기 전 삼삼오오 모여서 진입했다.
“전쟁이 아니라 레이드를 준비했네.”
유신의 말 그대로였다.
그들은 전쟁보다는 마족 숭배자라는 몬스터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있는 사람 중 수호기사단이 최약체였구나. 그러면서 자존심만 강했고.”
제대로 된 시체도 남기지 못한 수호기사단을 일별하고, 유신은 다시 몸을 돌렸다.
‘저들이 쓸모없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버려도 되는 건가요? 이자벨 로메씨?’
이자벨은 이름뿐인 수호기사단이 없어져야 한다고 했다.
유신은 처음에 이 작전을 거부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벌인 패악질을 관한 서류를 읽은 순간 수긍할 수밖에 없었지만.
‘뭐가 정의고, 뭐가 맞는 건지 이제는 모르겠다.’
복잡한 머리를 비우기 위해 유신은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새로운 마법진을 찾아내고, 부시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고민과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서 유신을 괴롭힐 때였다.
같은 복색에 공장에서 찍어낸 것이기라도 한 듯 똑같은 무기를 든 백여 명의 마족 숭배자가 앞에 나타났다.
“지금은 여기에 집중할 때지. 안 그래?”
그들은 대답이 없었고, 유신도 대답을 바라진 않았다.
그저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답답함을 풀 수 없을 뿐이었다.
위이이이잉
초장부터 오러를 뽑아낸 유신이 적들을 향해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악
콰아아앙
그저 검을 휘두르며 오러를 뿜어냈을 뿐이었다.
마족 숭배자들은 나타난 것과 다르게 너무나 쉽게 당했다.
‘내가 강해진 거야? 아니면 저들이 말도 안 되게 약한 거야?’
순식간에 적들을 물리치고, 다른 마법진으로 향하려고 할 때였다.
꿀렁
분명 직접 베었고, 죽은 걸 확인했다.
그런데, 모든 사체가 꿀렁이며 움직였다.
이건 좀비도 아니고, 구울도 아니었다.
그때, 시체들이 슬라임처럼 움직이더니, 서로를 흡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 명의 사체가 모여서, 거대한 좀비가 되었다.
“어보미네이션?!”
마기가 풍족한 땅에서 수많은 시체가 변형을 일으켜서 만들어지는 괴물.
지구에 딱 다섯 번 등장했고, 모두 마왕이 강림했던 시기에만 존재했던 몬스터.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어보미네이션이 유신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피할 수는 있었지만, 만만하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주먹질 한 방에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날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유신은 오러를 길게 만든 후, 그대로 어보미네이션을 향해 휘둘렀다.
촤아아악
쿠웅
일검에 어보미네이션의 오른팔이 잘렸고, 이내 땅에 떨어졌다.
“크어어어어엉!!”
아파서인지 아니면 화가 나서인지 어보미네이션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떨어진 오른팔을 잡아서 잘린 곳에 가져다 댔다.
절단된 부위에서 촉수 같은 것이 솟구치더니, 오른팔을 붙이기 시작했다.
몬스터 대박과사전에서 어보미네이션을 상대하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중심핵을 찾아서 부숴버리거나, 강한 한 방으로 세포 하나 남기지 않으면 된다고 했지.”
중심핵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후자가 쉬운 것도 아니었다.
어보미네이션은 너무나 거대해서 포스 미사일로 가능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볼까?’
유신은 몬스터 대백과사전에도 없는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 검을 들었다.
그리고 검무를 추듯 천천히 검을 움직였다.
처음 칠성검에는 아무런 기운도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새 검기가 피어났다.
검기는 오러가 되었고, 오러는 점점 커지고 압축되더니,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유신이 검무를 추는 동안 어보미네이션은 오른팔을 완전히 붙였다.
“서로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이제 붙어 볼까?”
거대 주먹과 칠성검이 부딪쳤다.
쩌어어어억
오른손을 시작으로 어보미네이션의 몸에 금이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인간의 사체로 나누어지더니, 땅에 떨어졌다.
수많은 핏물과 함께 시체가 가득 쌓였고, 정신력을 소모한 유신이 머리를 움켜잡았다.
“크어어어엉!”
“크어어어엉!”
어보미네이션의 괴성에 유신은 머리가 아픈 상황에서도 고개가 돌아갔다.
헌터들이 상대했던 마족 숭배자들이 어보미네이션으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그들을 도와야 하기에 유신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땅을 박찼다.
쾅
어보미네이션과 싸우고 있는 첫 번째 헌터 팀에 도착했다.
그들은 어보미네이션을 마법으로 묶어두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씩 어보미네이션이 움직일 때마다 마법사 헌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벡터. 조금만 참아. 곧 핵을 찾을 것 같아.”
“알…알았어. 그런데 조금만 서둘러.”
헌터들이 어보미네이션을 공격했지만, 큰 상처가 되지도 않았고, 핵을 찾지도 못했다.
그때, 유신이 어보미네이션의 뒤에 나타나서는 머리에 칠성검을 박아 넣었다.
푸우욱
쩌저적
촤아아악
일검에 어보미네이션은 다시 인간의 사체로 나누어졌다.
벡터라고 불리는 마법사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고. 고맙습니다.”
팀의 리더가 유신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지만, 유신은 벌써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제 3곳 남았어.’
유신의 다음 목표물은 가장 사납게 날뛰고 있었다.
얼마나 심하면, 주위에 있는 건물들이 모두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다행히, 헌터들은 무사했다.
그들은 이 건물, 저 건물 옥상을 뛰어다니면서 공격했고, 그게 어보미네이션의 화를 돋웠던 거였다.
하지만, 헌터들이 언제까지 피해 다닐 수만은 없을 거다.
‘날뛰는 것부터 멈춰야겠지?’
크게 호흡을 들이마신 유신이 기합을 내지르며 높게 점프했다.
그리고, 오러 대검을 만들어서 어보미네이션의 머리부터 배꼽까지 크게 갈랐다.
좌우를 완전히 가르려고 했지만,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한 수로 어보미네이션은 사납게 날뛰는 걸 멈추고 뒤로 쓰러졌다.
쿠웅
어보미네이션은 쓰러지자마자, 촉수를 일으켜서 절단된 곳을 이어 붙였다.
그동안 유신은 칠성검에 정신을 집중해서는 가슴에 찔러넣었다.
푸욱
쩌저저적
다시 인간의 시체로 돌아간 어보미네이션을 확인한 후, 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마법 공격에 이 기술을 사용했던 게 너무 무리가 갔어.’
일단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조절해서 어지러움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괜찮으십니까?”
“어디 다친 곳이라도?”
“힐!”
따뜻한 기운이 몸을 씻겨내는 것 같았다.
두통은 사라져 갔지만, 어지러움은 여전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직 어보미네이션은 두 마리가 남았기에 힘들게 눈을 떴다.
“감사합니다. 이제 힐은 안 해주셔도 됩니다. 그럼 이만.”
다음 목표물을 향해 움직이려고 할 때였다.
건물 사이로 보이던 어보미네이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어보미네이션들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벌써 한 마리 처리했고, 다른 한 마리는 처리 중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네? 어떻게?”
“어보미네이션을 없앤 헌터들은 세계헌터연합 최강의 헌터들이거든요. 아 제 소개를 안 했군요. 저는 탐 리콜슨입니다. 그냥 편히 탐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하유신입니다.”
유신과 탐 그리고 다른 헌터들이 서로 소개할 때였다.
도시 중앙. 하늘 위로 검붉은 피가 솟구치더니 뿔이 두 개 달린 마족이 나타났다.
주위를 둘러본 마족은 미소를 짓더니 입을 열었다.
“인간들이여 절망하라!”
마족의 하늘 위로 핏빛의 안개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 회복되지 않았지만, 유신이 마족에게 다가가려는데, 후방에서 거친 기운이 솟구쳤다.
“하하하 네 상대는 나다.”
거침없이 기운을 풀어 헤친 아스본 레스넌이 거검을 들고는 마족에게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