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_하유신이 선배에게 준 선물
일루시안 차원의 후방 방어 도시 미스틱.
이곳에는 일루시안과 지구를 연결하는 유일한 게이트가 열려있는 곳으로 최후의 방어 시설이 있는 곳이다.
평소에는 느긋함을 느낄 정도로 평안한 이곳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크캬캬캬!”
수만의 마수들과 수천의 하위 마족 그리고 백여 명의 상위 마족이 쳐들어왔다.
이 정도 규모의 적들이 몰려오면, 반나절도 되지 않아, 일국은 풀 한 포기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72악마 중 두 명의 악마까지 와 있었다.
콰콰콰쾅
도시 미스틱을 지키는 인간과 이종족들이 성벽을 기점으로 방어진을 펼쳤지만,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도시 중앙에서 하늘 위로 밝은 빛이 솟구쳤다.
빛은 공중에서 또 다른 태양을 만들었다.
마수들과 마족들은 빛에 영향을 받았는지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망루에서 화살을 쏘던 하이엘프가 그 빛을 보더니, 금세 미소 띤 얼굴로 외쳤다.
“성녀님께서 오셨다. 지금이 기회다. 모두 공격해라!!”
이종족들과 인간들은 그 소리에 힘을 내며 모든 걸 쥐어짜고 있을 때였다.
낡았지만, 거대한 카이드 실드가 날아오더니, 성녀가 만든 빛 바로 위에 멈췄다.
“거대한 성벽”
카이드 실드는 공중에 뜬 상황에서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다가 이내 방어시설 전체를 뒤덮었다.
“놈들이다! 후퇴해라!!”
악마들이 카이드 실드를 보자마자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이내 도망치기 위해 움직였다.
악마 무르무르는 공간이동을 시도했고, 다른 악마 하겐티는 빠르게 몸을 돌려서 도망쳤다.
그런데, 무르무르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왜 안돼?”
공간이동이 발동되지 않자, 무르무르가 하겐티를 원망하며 서둘러 몸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툭
먼저 도망친 48위 악마 하겐티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봉, 검, 도, 창, 룬 등 총 열여덟 가지 무기가 공중에 떠서는 무르무르를 겨냥하고 있었다.
“나는 제 54 악마….”
푹푹푹푹푹푹…
무르무르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새 열여덟 개의 무기들이 무르무르의 몸을 꿰뚫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쉽게 죽지도 않았다.
이내 신무가 무르무르에게 다가와 몸에 박혀 있는 검을 뽑았다.
울컥
검이 뽑힌 곳에서 피가 쏟아졌다.
신무는 아무런 감흥 없는 표정으로 검에 기운을 집중해 붉게 만들어서 그대로 마왕을 조각조각 내버렸다.
그때 하늘 위로 또 다른 방패가 떠올랐다.
방패는 방어막을 미친 듯이 공격하는 마족과 마수들에게 떨어졌다.
쿠콰콰콰쾅
단 일수에 대부분의 마수는 죽고, 하위 마족은 치명타를 입었다.
살아남은 상위 마족은 공격하기보다는 도망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앞에서 검은 손이 나타나더니, 상위 마족 중 가장 덩치가 큰 마족을 우왁스럽게 잡았다.
“크…사. 살려줘. 우리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야….”
“헤이~ 마족 브로~ 그게 더 기분 나빠. 우리 대장 브로가 일루시안에서 꺼지라고 명령했는데, 그 말은 안 들은 거잖아.”
“제.제발.”
다리우스의 팔뚝에 핏줄이 섰다.
촤아아아악
오직 팔힘으로 상위 마족을 찢어버린 다리우스는 이내 다른 상위 마족을 향해 미소 지었다.
“너희들한테 소개할게. 내 형제 데리우스야.”
아주 검고 어두운 언데드가 상위 마족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마족들의 전유물 중 하나인 데스 블레이드를 뿜어냈다.
서걱
“헤이~ 거기 마족 브로~ 도망 못가니까 괜히, 공간이동한다고 마력 날리지마~ 여기는 블링크도 다 막혀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상위 마족이 데리우스의 데스 블레이드에 머리가 갈라져서 운명을 다했다.
“그럼….”
다리우스는 양손을 하늘 위로 뻗더니 이내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손을 모으자, 악마들과 상위 마족에게서 검은 에너지가 뽑혀 나와서는 손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인 에너지를 다리우스가 검은 언데드, 데리우스에게 집어넣었다.
데리우스의 몸에서 잠깐 검은 빛이 솟구치더니, 안광에서 빛을 뿜어냈다.
“다‥리‥우‥스…….”
단 한마디만 내뱉은 데리우스의 눈빛은 이내 검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데리우스 조금만 참아. 이제 곧 모든 이지를 되찾을 거니까.”
다리우스가 말과 동시에 어둠의 마나를 데리우스에게 집어넣었다.
데리우스의 검붉은 안광이 점점 검게 변했다.
그리고, 다리우스의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끄떡였다.
그때, 마수와 하위 마족을 확인 사살하고 돌아온 철호가 방패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다가왔다.
“해골부터 시작해서 듀라한. 거기다가 데스 나이트를 넘어섰군.”
“응. 이제 곧 데리우스가 될 거야. 그런데, 더 이상 데스 오라를 넣으면 안 될 것 같기는 해. 점점 파괴본능이 강해져서 컨트롤하기가 힘드네.”
“그걸 잠재우기 전에는 대장이 가만히 안 둘 것 같다.”
“응.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봤지만, 빨리 최상급 마나석이나 그에 준하는 물건을 구해야 할 것 같아.”
“쉽지 않겠군.”
다리우스는 애잔한 눈빛으로 데리우스를 바라보다가 평소처럼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브로~ 답답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리도 신무를 따라서 보급품 확인하러 가야지. 그리고 저 빛을 보니까 광녀도 왔어 브로~”
“마리 앞에서 그 말 하면, 오늘 네가 죽거나, 데리우스가 사라질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
“당연하지.”
다리우스와 철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성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수많은 엘프와 인간 그리고 드워프가 그들을 마중 나왔다.
그때, 인파가 홍해 갈라지듯 갈라지며, 망루에서 명령을 내리던 백금발의 엘프 남성이 다가왔다.
“세계수의 열매가 13기동 타격대를 뵙습니다. 제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이엘프 브로~ 운이 좋았어. 그냥 온 건데, 녀석들이 쳐들어오는 거랑 맞았을 뿐이야.”
다리우스는 진실을 말했다.
하지만, 하이엘프는 단단히 오해해서는 이들이 소문과 달리 겸손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먼저 오신 신무님은 벌써 안으로 들어가 성녀님과 이야기 중이십니다.”
“광.아.아니 성녀 마리가 온 건 알고 있어. 아직 저 빛이 사라지지 않았잖아.”
다리우스의 손끝에는 아직 마을 중앙에서 화사한 빛을 뿜어내는 구체가 있었다.
하이엘프는 성녀의 빛을 보며 미소 짓다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저 때문에 시간을 많이 빼앗았군요. 모시겠습니다.”
하이엘프의 안내에 따라, 철호와 다리우스가 따라갔다.
안내를 통해 간 곳은 게이트 앞이었다.
그곳에는 지친 표정의 마리가 서 있었다.
“요~ 마리 브로~ 오랜만이야.”
“하악… 왜 이렇게 늦었어?”
“브로도 알면서 왜 그래? 마족들 좀 죽이느라~ 벌써 감을 잃은 거야?”
마리는 다리우스를 한 번 째려보더니, 보급품 상자를 열어서 자신이 만든 ‘성녀의 축복이 깃든 포션’을 꺼내 마셨다.
“어? 마리 브로~ 그거 우리 보급품 아니야?”
“꿀꺽~ 여유롭게 챙겨왔으니까 걱정하지 마.”
“하하~ 조크야 조크!”
그들의 대화를 듣던 철호는 신무와 함께 보급품을 확인하더니,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평소보다 많군.”
“그래. 이게 다 유신의 활약 덕분이지.”
유신이라는 말에 다리우스의 귀가 쫑긋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응? 우리 막내 브로?”
“그래. 유신이 이번에 대량의 마나석을 구했거든. 그래서 덕분에 보급이 늘었어. 아 그리고 유신이 너희한테 주라는 선물도 있어.”
마나석이라는 말에 다리우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막내 브로가 마나석을 구했어?”
“응. 꽤 많이 구했더라고.”
“어.어떻게?”
“뭐 대충 예상은 가는데, 본인이 말을 안 하니, 나도 따로 물어보지는 않았어.”
“마나석도 보냈어?”
“직접 확인해봐. 이 상자가 유신이 보낸 선물이야.”
다른 누구보다 빠르게 다리우스가 상자에 다가가서는 뚜껑을 열었다.
거기에는 아공간 마법이 들어간 백팩 세 개가 있었다.
다리우스는 곧장 하나의 백팩을 뒤집어 깠다.
“뭐야? 참치캔은 왜 이렇게 많아? 통조림 햄도 있네. 우리가 십 년 동안 이것만 먹어도 다 못 먹겠는데?”
첫 번째 백팩에서는 쉴새 없이 인스턴트 음식의 향연이 이어졌다.
그렇게 두 번째 백팩을 열어봤다.
거기에는 김치부터 시작해서 장 종류와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등 다양한 종류의 밀봉된 고기가 나왔다.
“설마 이것까지는 아니겠지?”
다리우스는 마지막 백팩을 열며 속으로 계속 빌었다.
그렇게 마지막 백팩을 열었을 때, 다리우스가 그렇게 원하던 마나석이 나왔다.
“최상급. 최상급은?”
하지만, 상급 3개에 대부분이 중급과 하급 마나석이었다.
실망한 다리우스가 축 처진 어깨를 할 때였다.
철호가 그를 달래기 위해 다가갈 때, 마리가 품에서 최상급 마나석을 꺼내서는 다리우스에게 건네줬다.
“최상급 마나석이야. 유신이 너희들 쓰라고 준비해놓은 거야.”
지구보다는 마나석이 조금 더 발견하기 쉬운 곳이 일루시안이다.
하지만, 최상급 마나석은 일루시안에서도 백 년에 한 번 발견될까 말까 한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지구에서 구한 유신 때문에 언제나 무표정한 철호와 신무까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리우스는 최상급 마나석을 보자, 욕심이 일었다.
“브. 브로들. 이거 알프레도한테는 말하지 말고, 내가 쓰면 안 될까? 제발 부탁이야. 데리우스를 인간으로 만들 수 있어.”
거대한 덩치의 다리우스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지만, 철호와 신무는 애써 눈빛을 피했다.
물론 다리우스의 말대로 최상급 마나석이라면, 데리우스는 인간처럼 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는 모든 곳이 전장이고, 최상급 마나석 하나의 효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제발 부탁이야. 응? 내가 무릎이라고 꿇을까?”
다리우스가 무릎을 꿇으려고 하자, 마리가 황급히 제지했다.
“다리우스. 그만해.”
“마리. 제발 부탁이야. 제발. 응?”
“더는 장난 못 치겠다. 알프레도에게 줄 거는 따로 있어. 그래서 너한테 최상급 마나석을 건네준 거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지금 최상급 마나석이 2개라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맞아. 자 여기.”
마리가 품에서 또 다른 최상급 마나석을 꺼내서는 이번에는 철호에게 건네줬다.
“유신이 최상급 마나석을 3개나 구해왔어. 그중 하나는 협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설들에게 팔았지만, 두 개가 더 있다는 것은 그들도 몰라.”
모든 설명이 끝나자, 다리우스는 최상급 마나석을 꼭 껴안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유신 브로~!! 내가. 내가 정말 잘해줄 거야!!”
펑펑 울기 시작하는 다리우스에게 철호가 다가가서는 어깨를 두드려줬다.
“평생의 숙원을 이룰 때가 왔군. 다리우스. 데리우스가 완성되면, 너의 흑마력도 자유를 되찾게 되는 거겠지?”
“응. 그렇고말고.”
“전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거야. 뭐해? 빨리 가서 데리우스를 완성해야지.”
“알았어. 정말 고마워.”
다리우스는 품 안에 최상급 마나석을 들고는 데리우스와 함께 사라졌다.
마리 그리고 철호와 신무가 사라져가는 다리우스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마리가 철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박철호. 부탁할 게 있어.”
“응? 내게 부탁할 게 있다고?”
“그래. 우리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널 좀 사용해야겠어.”
마리는 철호에게 지구 상황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철호는 고개를 끄떡이더니, 품에서 엠블럼을 꺼냈다.
“유신이 이 엠블럼을 통해서 목표를 달성하고, 수호기사단을 깨우쳐주기를 바란다.”
수호기사 부단장의 직책을 상징하는 엠블럼을 받은 마리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잘 사용할게. 그런데 이자벨에게 전할 말이라도 있어?”
“몇 가지 전달하고 싶은 게 있다.”
“뭔데?”
“내 전언은 …… 이걸 꼭 전해주길 바란다.”
전언을 들은 마리가 얼굴을 붉히며, 철호에게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 말이 쉽게 나와?”
“어려울 게 뭐지? 고작 데이트일 뿐인데?”
“…아니다. 됐다. 유신한테 잘 전하라고 할게. 몸들 조심하고.”
“알았다. 아 그리고 가기 전에 유신에게 이게 필요할 거다.”
철호가 건네준 것은 13기동 타격대가 사용하는 붉은 포션이었다.
포션을 본 마리가 살짝 이마를 찡그렸지만, 이내 챙겨서는 지구로 귀환했다.
그때, 신무가 유신이 보내준 물품을 확인하던 중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철호는 자신이 무표정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신무가 미소를 짓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몰래 다가가 신무가 보고 있는 걸 확인했다.
신무는 사진을 보고 있었고, 거기에는 노사와 리우가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