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_수호기사단 부단장 대리
칠성검이 도깨비불에 반응해, 청염을 일으킨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걸 파악하고 싶어도, 지금은 그게 급한 게 아니었다.
유신은 다가오는 언데드에게 청염을 휘둘렀다.
“크아아아악”
망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청염에 불타오르더니, 가루가 되었다.
오러와 검기를 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언데드들은 불타올랐다.
솨아아아악
칠성검을 휘두를 때마다, 청염은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언데드에게 붙은 청염은 다른 것에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는 언데드에게 옮겨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든 언데드가 불타올라 가루가 되었다.
그때, 언데드를 태우고 남은 잔불이 칠성검에 휘몰아치듯 모여들었다.
위이이이잉
청염을 흡수한 칠성검은 푸른 빛을 띄우더니, 점점 뜨거워지고, 차가워지기를 반복했다.
번쩍
유신의 가슴에서 황금빛이 뿜어지더니 칠성검과 호응했다.
그러자, 칠성검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잠시간의 정적 후, 얼떨떨한 유신이 아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갑자기 뭐지? 아람. 왜 이러는 거야?”
“네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넌 3천 년을 넘게 살았다며. 그럼 아는 것도 많을 거 아니야.”
“오래 산다고 모든 걸 아는 게 아니야.”
“너도 모르게 많구나.”
“이익!!”
화를 내는 아람을 일별하고 유신은 칠성검을 바라봤다.
칠성검은 평소와 같은 모습일 뿐이었다.
생각할 여유는 그렇게 길지 못했다.
언데드를 상대하는 동안 하늘 위로 적들의 공격이 몰려왔다.
“대체 적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유신은 하늘 위로 칠성검을 천천히 휘둘렀다.
사아아아
하늘을 뒤덮었던 수백 개의 마법 공격은 일검에 무효화됐다.
하지만, 공격의 맥을 끊은 유신도 멀쩡한 게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소모된 정신력 때문에 잠시 비틀거렸다.
“유신. 북서쪽이다.”
그 사이, 아람이 적들의 위치를 찾았는지, 유신에게 말했다.
“땡큐~”
자세를 고친 유신은 북서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이동하는 동안, 2번의 마법 공격이 더 퍼부어졌다.
충분히 대응할 수 있지만, 재빨리 움직여서 공격을 회피했다.
“찾았다.”
아람이 알려준 곳에 도착하자, 수십 명의 인원이 마법진에 5대력을 집어넣고 있었다.
이곳에 오는 동안 유신은 슬링백에서 몇 개의 최하급 마정석을 꺼내 미리 포스를 한계치까지 집어넣어 놨다.
휘이익
마법진 위로 최하급 마정석을 던져놓고,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콰콰콰쾅
최하급 마정석이 수류탄 효과를 내며, 마법진과 함께 마족 숭배자들을 날려버렸다.
“아람. 다음은 어디야?”
“여기서 서쪽으로 가면, 7층짜리 건물이 있다. 거기 옥상이다.”
“오케이~”
아람의 안내에 따라서, 마법진이 있는 세 곳을 더 돌고 나자, 확실히 적들의 공격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숨을 수 없게 된 마족 숭배자들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도시의 방어체계를 확인한 유신이 도시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서걱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마족 숭배자를 베었다.
그렇게 쉴새 없이 검을 휘두르다 보니, 파괴된 도시의 문이 보였다.
“그럼 다음에 보자고, 그리고 이건 내 선물~”
촤아아아악
슬링백에 있는 모든 마정석을 공중에 뿌린 유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마정석은 대폭발을 일으켰다.
콰아아아아아앙
적들에게 제대로 피해를 입힌 유신이 돌아오자, 수호기사단과 헌터들은 전열을 가다듬었다.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유신은 간단히 보고 후, 제이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걸 캐치한 아스본이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너무 멀쩡히 왔어. 좀 다치기라도 하지.”
옆에 있는 사람도 듣기 힘든 아스본의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유신은 환골탈태 후, 청력이 좋아져서 아스본의 혼잣말이 들렸다.
“저도 다치고 싶었지만, 운이 좋았습니다.”
“쓸데없이 귀까지 좋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잡소리는 됐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적들의 방어시설은 어떻게 되지?”
“마법진을 통해 대규모 마법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 발동되면, 약 30초간 공격은 멈춥니다. 그리고 제가 처리하기는 했지만, 땅에서 언데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아스본은 고개를 끄떡였다.
확실히, 유신의 능력은 좋았다.
하지만,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제이미와 엮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신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 작전대로 가면 되겠군. 헌터들이 도시를 감싸고, 길은 수호기사단이 뚫는 것으로 가지. 그렇게 길이 뚫리며, 최상위 헌터들이 투입된다. 이자벨 괜찮지?”
“원래 계획에서 변경된 것도 아니니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아스본과 이자벨이 말이 끝날 때쯤 유신이 조심히 말을 건넸다.
“이자벨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응? 뭐지?”
“수호기사단의 명령권을 제게 주십시오.”
이자벨 입장에서 유신의 요청은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마법 공격을 원활하게 막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수호기사단이 그렇게 약해 보였어?”
“아뇨. 강하기 때문에 요청 드리는 겁니다.”
잠시 생각하던 이자벨은 이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수호기사단의 명령권은 오직 수호기사단만이 가질 수 있어.”
“그래요? 그럼.”
유신은 품에서 엠블렘을 꺼내 이자벨이 잘 볼 수 있게 들었다.
꺼낸 엠블렘을 본 이자벨은 화들짝 놀랐다.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지?”
“마리 선배를 통해서 철호 선배에게 빌렸습니다. 이 엠블렘은 수호기사 부단장의 직위를 나타내는 거 맞죠?”
“난 인정한 적 없다.”
이자벨의 부정에 유신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러면 철호 선배의 전언을 전하겠습니다. 엠블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수호 기사 부단장인 나 박철호를 부정하는 것으로 알겠다.”
여기까지 말한 유신이 장난끼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말인지 그리고,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제가 더 입 아프게 떠들 필요는 없겠죠?”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 짓는 이자벨의 입장에서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는 사항이었다.
최강이 수호 기사이자 연인의 전언이었다.
공적으로 보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수호 기사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나는 단장과 부단장을 제외한 제 1수호 기사 안톤 볼케이노다.”
“네. 저는 수호 기사 부단장. 아니 어쩌면 곧, 수호 기사 부단장이었던 박철호의 대리 하유신입니다.”
생각에 빠져 있던 이자벨은 유신의 말에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단장의 모습을 바라본 안톤이 인상을 구기며 유신을 바라봤다.
“어린놈이 오만방자하구나.”
“위계질서가 엉망이네요.”
“뭐?”
“직위 해지가 되지 않아서 아직은 부단장 대리입니다.”
챙!
유신의 말에 안톤이 검을 뽑고 방패를 들었다.
“제 3수호 기사 안톤 볼케이노가 하유신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요? 곧 전쟁하는데 결투요? 생각이 없으세요?”
“명예를 모르는 놈이냐?”
“명예 따위 개나 주세요. 그리고 전 실리를 챙기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뭐 지금 당신을 꺾는 것도 제가 수호기사단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좋아요. 한판 붙읍시다.”
껄렁껄렁한 유신의 말에 안톤의 인상이 구겨졌다.
“검을 뽑아라.”
“검까지 필요 없습니다.”
“후회할 것이다.”
“두고 봐야죠.”
유신과 안톤이 서로를 마주 봤다.
그때 유신이 오른손을 들어서 덤비라고 손을 까딱였다.
자존심에 금이 간 안톤은 재빠르게 유신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안톤은 달려든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뒤로 튕겨났다.
“크으윽…”
신음을 내뱉던 안톤이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신은 제자리에서 다시 안톤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어떻게 당한 지 모르겠죠? 그게 바로 당신과 저의 실력 차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3천의 영웅이라지만, 전 13…휴~ 전 하유신입니다. 제대로 실력을 보이세요.”
안톤은 이를 악물더니, 양손으로 방패를 붙잡고는 그대로 유신에게 달려들었다.
실드 차지
수호기사단의 전매특허 기술이자, 기본기이며, 가장 강한 필살기.
하지만, 철호 선배의 실드 차지에 비해서 안톤의 실드 차지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이게 최선인가요? 그러면 너무 실망인데?”
유신은 안톤의 방패 정가운데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콰아아아앙
주먹과 방패의 부딪힘이었다.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안톤이 뒤로 밀려났다.
아까처럼 볼썽사납게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충분히 격차를 확인했을 거였다.
하지만, 유신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밀려난 안톤보다 더 빨리 움직여서 그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콰아앙
두 번의 주먹질로 안톤을 밀려나게 했고, 세 번째 주먹질로 기절까지 시켰다.
전투를 지켜보던 모두가 놀랄 때였다.
유신이 다른 수호기사단을 바라보며 외쳤다.
“오늘 위계질서를 확실히 잡을 건데. 너희는 뭐하냐? 안 덤비고?”
그게 시작이었다.
수호기사단은 유신이 강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높은 자존감 때문에 쉽게 도발에 걸려들었다.
그렇게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군끼리의 싸움이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콧대 높은 놈들이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났군.”
아스본은 유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수호기사단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서 유신을 응원했다.
뒤늦게 이자벨이 정신을 차렸지만, 그때는 제대로 서 있는 수호 기사는 쟌 한 명뿐이었다.
“쟌. 너는 내가 수호기사 부단장 대리를 하겠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나는 인정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틀렸다.”
“아니 아니지. 대답이 잘못됐어.”
“응?”
“아무리 너와 내가 친분이 있지만, 지금 난 수호 기사 부단장 대리다.”
“…….”
한동안 말이 없던 쟌은 이내 방패를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부단장 대리.”
“그래.”
유신은 주먹을 내린 다음, 이자벨만 눈치챌 수 있는 신호를 보냈다.
“이자벨님. 어떻게 합니까? 부단장의 엠블럼을 반납할까요? 아니면 제 직위를 인정해주실 겁니까?”
이자벨은 신호를 캐치하고는 연기를 시작했다.
인상을 쓰더니, 이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유신의 부단장 직위를 인정한다.”
“감사합니다. 단장님.”
수호기사단과의 볼일을 끝낸 유신이 이번에는 아스본을 바라봤다.
“뭐냐? 하유신? 이번에는 우리 헌터들과 볼일이 있냐?”
“아뇨. 없습니다. 그런데, 수호기사단이 이렇게 되었으니, 작전은 내일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신의 말에 아스본이 고개를 끄떡였다.
“알았다.”
대답을 끝낸 아스본이 몸을 돌려, 막사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자벨이 유신에게 다가왔다.
유신은 주위를 둘러본 후, 호신강기와 포스를 이용해 기막을 펼쳤다.
갑자기 기막이 펼쳐졌지만, 이자벨은 놀라지 않고, 그저 신기한 눈빛으로 기막을 바라봤다.
“소리를 차단하는 기막입니다. 여기서는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작전은?”
“내일입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수호기사단이라는 것들이 권력에 찌들었어, 저들을 없애야 진정한 수호기사단을 만들 수 있어.”
“…알겠습니다.”
“너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해서 미안해.”
이자벨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유신을 바라봤다.
하지만, 유신은 이자벨이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게 싫었다.
그래서 애써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아 그리고 철호 선배가 이자벨님께만 전해 달라는 전언이 있습니다.”
“철호씨가?”
“네.”
철호 선배의 전언이 있다는 말에 이자벨이 기대감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수호기사단은 명예를 아는 집단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올곧게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게 다야?”
“아뇨. 이제부터 할 말 때문에 기막을 펼쳤습니다. 그럼 계속 전하겠습니다. 지구의 시간으로 2년 후에 잠시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데…데… 아휴.”
유신은 차마 이 말까지는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전해야 하는 전언이기에 힘들게 입을 열었다.
“데이트를 하자고 했습니다. 한 달 동안이나. 절대 떨어지지 않고 30일 동안 쭉.”
마지막 전언까지 전한 유신은 홀로 하늘을 보며 속으로 외쳤다.
‘철호. 선배 모솔한테 이걸 전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