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_마족 숭배자(3)
“죽여!”
유신의 말을 듣지 않고 조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녀석들을 시작으로 손님으로 분장했던 모든 이들이 유신에게 달려들었다.
어떻게 이들을 상대할까 생각하던 유신은 이내 양손을 쫙 펼친 다음, 다가오는 놈들의 이마를 내리쳤다.
짝!
쿠타탕
짝!
쿠타탕
너나 할 것 없이 유신에게 달려들던 놈들은 공평하게 한 대씩 맞고 기절했다.
그렇게 절반 정도 당했을 때였다.
“이제 그만하는 게 어때? 이러다가 네 부하들이 다쳐.”
“그건 내가 할 소리군. 이제 슬슬 약효가 오겠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설마 맥주에 약탔어?”
“걱정하지 마라. 죽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죽여 달라고 빌어야 할 거야.”
조가 잔인한 표정을 지으며 웃고 있을 때였다.
“아~ 그래서 속이 이렇게 느글거렸구나. 카악~ 퉤!!”
유신이 무언가를 뱉어내자, 가게 안에 지독한 냄새가 퍼졌다.
주위에 있던 적들은 냄새가 퍼지자, 서둘러 코를 막고는 뒤로 물러섰다.
“내가 이야길 안 했구나. 나 사실 환골탈태해서 웬만한 독은 안 통하는 몸이 됐어. 그럼 계속할까?”
이번에는 유신이 먼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
서먼트는 동네에서 제일 부지런하며 친절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동네의 골치거리이기도 했다.
평소에 사람 좋은 서먼트는 이상하게 유색인종만 보면 돌변했다.
“이런 젠장! 그딴 동양인 놈은 한주먹도 안 되는데, 대체 날 왜 말려?!”
“서먼트 그만해.”
“뭘 그만해! 너희들도 봤잖아. 그놈이 내게 욕한 거!”
“네가 먼저 했잖아.”
“안 되겠어. 너희 여기서 기다려. 내가 그놈한테 확실히 사과받아야겠어.”
“야 서먼트! 서먼트!!”
서먼트는 유신을 찾기 위해, 동네를 배회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다 뒤져 봤지만, 유신을 찾지 못했을 때, 한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설마 저기에? 에이~ 저기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서먼트가 가리킨 선술집은 유신이 들어갔던 곳이었다.
아무리 앞뒤 생각하지 않는 단순한 서먼트도 저곳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저 선술집은 이 마을에서 암묵적 금지 공간이었다.
쿠타탕
선술집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서먼트는 혹시나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원래, 싸움 구경과 불구경은 언제나 사람들의 좋은 구경거리였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몰래 앞으로 다가갔다.
콰직!
피투성이의 남성이 문을 부수며, 선술집 밖으로 나와 서먼트를 스치고 지나갔다.
딸꾹!
그 모습에 서먼트가 얼마나 놀랐는지 딸꾹질을 멈추지 못했다.
저벅저벅
선술집 안에서 붉은 옷을 입은 동양인이 얼굴에 피를 묻히고 밖으로 나왔다.
서먼트는 멈추지 않는 딸꾹질 때문에, 두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그의 그런 행동을 보고 유신이 힐끔 서먼트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저씨도 이 사람들이랑 한패야?”
도리도리
“그럼 왜 여기 있는데?”
“딸꾹 그…그게 딸꾹…”
“일단 이따가 이야기하자고, 인종차별주의자 아저씨.”
서먼트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렇게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서먼트는 유신과 조의 모습을 바라봤다.
유신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의 다리를 덥석 붙잡았다.
“조. 분명 난 삼세번이나 기회를 줬다고, 그리고 도망가지 말라고 했잖아.”
“제.제발…”
“네 번째는 없어.”
우두뚝
다리뼈가 원래 자리에서 이탈하는 소리와 함께 조가 비명을 내질렀다.
“크아아악!”
서먼트가 보기에 유신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다.
유신은 한 손으로 조의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쉿! 조. 넌 너무 예의가 없어. 이러다 마을 사람들 다 깨겠어. 그러니까, 조용히 해. 알았지?”
조는 고개를 끄떡였다.
서먼트가 보기에는 그가 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긍정을 표한 것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유신은 그런 조에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선술집 안으로 조의 부러진 발을 잡고 들어갔다.
그렇게, 유신이 자신의 앞을 막 지나갈 때였다.
“아저씨. 아직도 구시대적인 발상인 인종차별이 옳다고 생각하세요?”
유신이, 동양에서 온 이 악마가,
말을 걸었다.
그것도 웃으면서…
조는 최선을 다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아까 제가 잘못해서 이렇게 사과하러 왔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유신은 조를 아주 다정다감하게 설득했다.
물론 다치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커서 13기동 타격대의 붉은 포션까지 사용했다.
그렇게 해서 조는 호주 시드니에 있는 마족 숭배자 세 곳과 호주 전체에 있는 열다섯 곳의 마족 숭배자들이 있는 곳에 정보를 알려줬다.
정보를 알게 된 유신과 크리스는 마족 숭배자의 본부를 한 번에 공략할 수 있었다.
“크하하핫. 유신이 네 덕분에 그들의 팔다리를 자를 수 있었다.”
호탕하게 웃는 크리스가 유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렇게 한 대씩 툭툭 칠 때마다 유신의 상체는 크게 물결쳤다.
“크. 크리스님. 아파요.”
“엄살은, 그래. 그 입이 무겁다는 조의 입을 어떻게 열었지?”
“진솔한 대화?”
“대화? 그래. 사내가 자신만의 비밀 수단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네.”
호주의 거인이자, 13인의 전설 중 한 명인 크리스가 몸을 일으켰다.
유신도 칠성검을 꺼내 들며, 앞에 있는 거대한 성을 바라봤다.
호주 지부의 마족 숭배자들이 모여 있는 성이었다.
여기를 공략한다면, 호주는 이제 청정지역이나 다름없게 된다.
“만만한 곳은 아닐 거다. 그럼 시작하지.”
크리스가 뒤에 있는 마법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성 위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저 마법진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이곳에서 공간이동 마법은 불가능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법진이 완성됐고, 크리스가 거인화를 시작했다.
안 그래도 거대한 크리스는 이내, 5미터까지 커졌고, 성큼성큼 마족 숭배자들이 있는 성으로 향했다.
애애애애앵
크리스를 발견한 마족 숭배자들의 성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하지만, 크리스는 벌써 해자 앞까지 도착한 상태였다.
충분히 해자를 건너뛸 수 있는 상황에서 크리스는 크게 발을 굴렸다.
쿠아아아앙
첫 번째 발구령에 해자의 둑이 무너지면서 물이 옆으로 빠져나갔다.
쿠아아아앙
두 번째 발구령에 흙이 솟구쳤고, 순식간에 해자를 메꿔버렸다.
그렇게 해자를 무용지물로 만든 크리스는 아주 편안하게 성문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성문을 잡았다.
“흐읍!”
아주 짧은 기합과 함께 성문에 연결된 도르래가 끊어졌다.
쿠우웅
성문이 내려온 소리가 유신에게까지 들릴 때였다.
수많은 원소 공격이 치켜들었다.
공격이 다가오자, 크리스는 고작 양손을 들어서 머리만 감싸 안았다.
콰콰콰콰쾅
원소 공격이 끝났지만, 크리스의 몸은 멀쩡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유신은 확실히 봤다.
머리를 감싸 안은 크리스의 몸에서 주황색 기운이 솟아나더니, 모든 원소 공격을 막았다.
그렇게 성문 앞에서 크리스가 탱킹 할 때였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신이 칠성검을 고쳐 잡으며, 상단세 자세를 취했다.
콰아아아앙
크리스를 지나쳐서 적진에 부딪힌 유신의 유성 찌르기가 단번에 원소술사들을 날려 버렸다.
유신은 지체하지 않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마족 숭배자들이 유신을 뒤쫓으려고 할 때였다.
크리스가 땅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쿠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땅이 갈라졌다.
마족 숭배자들은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는데 급급하느라, 유신을 뒤쫓지 못했다.
그리고 이 원흉을 만든 이를 바라봤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전설인데, 날 앞에 두고 다른데 신경을 써? 내가 그렇게 얕보였나?”
지구상 가장 거대한 인간인 크리스의 말에 마족 숭배자들은 꿀꺽 침을 삼켰다.
***
성안으로 진입한 유신은 작전을 떠올리며, 지하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여기에 마족 숭배자들만 있었다면, 크리스가 이미 성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조의 말에 의하면 여기에는 마족 숭배자 외에 납치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유신의 이번 임무는 납치된 사람들을 구출하는 거였다.
“침…”
촤아아악
이동하는 와중에 마족 숭배자를 보자마자, 유신의 검은 그의 목숨을 취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유신의 검에는 자비가 없었다.
지금은 시간 싸움이었다.
적들이 눈치채기 전에 사람들을 구해서 나와야 했다.
그렇다고 걸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삐이이익
호루라기 소리가 지하에 울려 퍼졌다.
이내 성안에 있던 마족 숭배자들이 유신이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유신도 당연히 가만히 앉아서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다가오는 족족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촤아아악
유신의 앞을 가로막은 마족 숭배자들의 몸이 순식간에 갈라졌다.
그들은 검기를 일으키고, 원소력과 마법을 발사했지만, 유신의 검에 걸리며 모두 사라질 뿐이었다.
적들을 죽이다 보니, 붉은 코트가 피로 인해 검게 보일 지경까지 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지하의 끝자락까지 도착했다.
유신의 뒤로는 인간의 사체와 검붉은 피가 쭉 이어져 있었다.
“젠장!”
애써 자신이 행한 행각에 눈을 돌리고 앞을 바라봤다.
두꺼운 철문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더욱 포스를 쏟아내며 문을 잘라냈다.
쿠웅
30cm가 넘는 두께의 철문이 쓰러졌고, 유신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개XX들!!”
유신은 방금까지 마족 숭배자들을 죽인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하지만, 이 상황을 보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게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철문 안에는 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죽어 있었고, 죽기 직전까지 어떤 실험을 당한 것 같았다.
“크크큭.”
귀에 거슬리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백발의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있는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생체 실험했는지, 양손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끝내 들키고 말았군. 그런데, 크리스가 아니라, 처음 보는 얼굴이야. 자네는 대체 누군가?”
유신은 노인이 있는 곳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겠습니다. 당신이 이곳의 책임자입니까?”
“크크큭! 내게 질문을 질문으로 답하다니, 아주 버릇없는 아이였군.”
“빨리 대답해 주시죠.”
“그건 지옥에 가서 듣거라.”
지하실에 넘쳐흐르던 피가 공중에 뜨더니, 노인의 손짓에 맞게 유신에게 쏘아졌다.
“그실.”
유신은 마도구를 사용한 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호신강기에 포스막까지 몸에 휘감았다.
쩌쩌정 쨍그랑.
그레이트 실드는 공격을 얼마 막지 못하고 깨져나갔고, 호신강기에 막혔다.
피는 액체로 되어서 어디로 공격이 들어올지 몰랐지만, 그것보다 더욱 까다로운 것은 시야에 제한을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무차별적인 공격이 멈췄고, 시야가 확보될 때였다.
“블러드 스피어!”
노인이 피로 이루어진 다섯 자루의 창을 유신에게 날려 보냈다.
계속 방어만 할 생각이 없기에 유신은 몸을 옆으로 꺾어서 창을 피한 후, 노인에게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노인을 베었지만, 이내 핏덩어리가 되어서 바닥에 퍼졌다.
거기다가 단발성인 줄 알았던 블러드 스피어가 유신의 등을 공격했다.
서둘러 몸을 돌린 유신이 검을 회전하듯 돌려서 블러드 스피어를 쳐냈다.
“크크큭. 그렇게 못난 놈은 아니었군. 하지만 시간 낭비일 뿐이야.”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노인은 유신이 이동한 곳과 정반대 방향에 서 있었다.
“가라!”
노인의 외침과 함께 어느새 열 자루로 불어난 블러드 스피어가 유신의 급소를 노렸다.
다급하게 막아도 블러드 스피어를 모두 막지 못할 때였다.
유신이 호흡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검을 들어서 천천히 내리그었다.
사아아아악
검이 지나간 자리에 푸른 빛이 지나갔고, 다가오던 블러드 스피어는 이내 피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상대의 기운을 끊어내는 이 일격은 안드로말리우스 이후 유신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수련했던 검이었다.
하지만, 수련한다고 쉽게 되는 일격이 아니었다.
적절한 기운을 검에 담아야 했고, 복잡하게 꼬이고 꼬인 상대의 기운을 끊어내는 건 꽤나 어려웠다.
‘이제야 감이 잡히는군.’
안드로말리우스 이후에는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이후로 여러 번 시도해도 쉽게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균열과 칠성검의 연결선을 보면서 뒤늦게 깨달음을 얻었고, 오늘 실전에서 처음 시도해봤다.
물론 실전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컸지만, 따로 믿는 게 있었다.
‘호신강기를 익힌 후로 방어에 한층 부담감이 줄었어.’
확실히 적을 끝장낼 수 있다는 생각에 유신이 검을 고쳐 잡으며 노인을 바라봤다.
“너.너…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노인은 블러드 스피어가 무용지물이 되자, 말까지 더듬거렸다.
하지만, 유신은 앞에 있는 노인을 보지 않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사지가 찢겨나가 있는 남성의 사체가 있었다.
얼마나 억울하게 죽었는지 눈도 감지 못하고 있었는데, 유신은 그 사체를 직시하며 말했다.
“거기 숨어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