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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157화 (157/300)

157화_배틀필드(3)

유신은 1,092마리의 크레이지 래빗을 잡고, 348등을 기록했다.

이 수는 인공위성과 연결된 드론이 측정한 것으로 거의 틀릴 일은 없었다.

하지만, 드론은 기계이기에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상위 능력자들은 무조건 교차 검증을 진행해야 했다.

“칼 제라니씨. 부정한 방법으로 크레이지 래빗을 잡았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요. 죄송하지만, 제일 먼저 검증 부탁드립니다.”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여기서 화를 내면, 하지도 않은 잘못을 인정하는 꼴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유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떡였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여기 수정구 위에 손을 올려주시면 됩니다.”

셋 중 가운데 앉아 있는 남성의 말에 유신이 수정구 위에 손을 올렸다.

이내 수정구에서 크레이지 래빗 그림이 뜨더니, 2,173이라는 숫자가 떴다.

“어?”

남성이 당황한 듯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더니 왼쪽에 있는 여자 동료와 작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저기 칼 제라니님.”

“네. 왜 그러시나요?”

“아 그게…교.교차 검사 좀 하겠습니다.”

그때, 왼쪽에 앉아 있던 여성이 유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 손을 잡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유신과 여성이 손을 맞잡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2,173”

숫자를 내뱉은 여성이 질린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떴다.

그러자, 중앙에 앉아 있는 남성이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남성을 바라봤다.

“제가 보기에도 2,173입니다.”

오른쪽 남성의 말에 중앙에 앉아 있는 남성이 고개를 끄떡였다.

“칼 제라니님. 드론 착오가 있었던 게 맞습니다. 1,092마리가 아니라, 2,173마리입니다. 지금 당장 숫자를 변경해 드리겠습니다.”

말을 끝낸 남성이 컴퓨터를 두드렸다.

그러자, 전광판에 9등이었던 앤드류의 이름이 10등이 되고, 9등에 칼 제라니가 명시됐다.

유신은 잠시 변경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남성이 축하의 말을 건네왔다.

“탑 10에 드신 걸 축하드립니다.:”

“아닙니다. 그럼.”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유신이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앤드류가 이를 갈았다.

제보는 본인이 했는데, 알고 보니 유신은 배 이상의 크레이지 래빗을 잡았던 거였다.

자신은 용병대의 도움으로 겨우 9등을 했다.

그런데, 유신은 어떤 수를 썼는지 자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바드득

앤드류의 이 가는 소리가 주위를 잡아먹고 있을 때였다.

탑 10의 전광판이 또다시 바뀌었다.

“네. 30등 밖에 있던 리수진 선수가 9등으로 올라갔습니다. 빌리. 칼 제라니 선수와 리수진 선수의 등수가 오른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당연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우선 리수진 선수의 주특기 마법인 어스퀘이크가 많은 수의 크레이지 래빗을 잡았지만, 어스퀘이크라는 마법의 특성상, 드론이 땅속에 있던 크레이지 래빗까지는 카운트를 못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칼 제라니 선수는요?”

“존. 혹시 칼 제라니 선수가 돌아올 때 땅에 검을 찔러넣어서 터트렸던 거 기억나시나요?”

“그럼요. 갑자기 힘자랑하는 줄 알았습니다. 설마?”

“네. 맞습니다. 칼 제라니. 선수는 그렇게 토끼굴을 무너뜨린 겁니다.”

“그게 드론에는 나오지 않고, 교차 검증을 통해 그런 결과가 나온 거군요.”

사회자 존과 해설자 빌리의 말에 시청자들은 유신과 리수진의 결과에 감탄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앤드류는 밑에 있는 부하들을 시켜서 이의를 제기했다.

대회 측에서는 유신이 검을 꽂아 넣은 곳과 리수진이 어스퀘이크를 발휘한 곳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빌리의 추론이 사실인 게 밝혀졌다.

“젠장!!”

앤드류는 탑 10에 충분히 들 줄 알았다.

그렇지만, 리수진과 유신 때문에 자신이 탑 10에 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를 화나게 했다.

“칼 제라니!! 이 새끼는 왜 내 앞길을 방해하는 건데!!”

배틀필드 대회 참가 신청을 시작으로 자꾸 자신의 앞길을 막고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물론, 실력적으로 칼 제라니가 확실히 뛰어나다는 건 앤드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앤드류는 절대 하면 안 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숙소로 돌아온 유신은 TV화면에서 리수진과 리진수 남매를 보게 됐다.

“잘 지내고 있나 보네.”

직접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혼잣말로 달랜 유신은 다시 TV를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그들을 찾아가 아는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하유신이 아니라, 칼 제라니였다.

가끔 이렇게 아는 사람을 만나도 모른 척 해야 하는 게 답답했다.

이 생활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13기동 타격대원이기에 감수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그렇게 홀로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였다.

퍼엉

아람이 유신 앞에 나타났다.

“유신! 내 하급 마나석 어디 있냐?”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탑 10에 들면 하급 마나석을 상품으로 준다고 했잖아.”

약속한 게 있기에 유신도 하급 마나석을 아람에게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줄 수 없었다.

“아! 그거 모든 대회가 끝나고 준다는데?”

“뭐!!”

아람이 흥분한 채 화를 내려고 할 때였다.

똑똑

갑작스러운 노크에 유신은 가면을 다시 점검했고, 아람은 조용히 사라졌다.

물론 사라지기 전에 한껏 인상을 찡그리기는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유신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네. 누구신가요?”

“저는 리우라고 합니다. 혹시 방해가 안 되면 잠시 문을 열어주시겠습니까?”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 찾아왔다.

유신은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리우가 미소를 짓더니 손을 모아 포권했다.

“중국의 리우가 교황청의 칼 제라니님을 뵙습니다.”

지금 리우가 있는 곳은 숙소 복도였다.

자신의 정체를 숨겨주기 위해 리우가 이런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신도 마주 포권했다.

“반갑습니다. 칼 제라니라고 합니다. 문 앞에 계속 세워 둘 수도 없으니 잠시 들어오시겠습니까?”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리우가 방에 들어오자마자, 유신은 방문을 잠그고 가면을 벗었다.

어린아이처럼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리우가 유신의 두 손을 꼬옥 잡았다.

“역시 형님입니다. 남들에게 핸드캡을 주기 위해 경기 시간의 절반이 지난 6시간 후에 크레이지 래빗을 잡기 시작하셨는데, 탑 10이라니. 이 리우 언제나 감명받고 있습니다.”

철저한 리우의 오해에 유신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게 아니라….”

“겸손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형님의 그 마음 제가 알고 있으니까요.”

“저기 리우야.”

“네. 형님.”

유신은 부담스러운 리우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야.”

“형님. 제 앞에서까지 그렇게 겸손할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제 스승이신 노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내가 언제까지 겸손만 할 수 없다고….”

이대로 놔두면 리우의 말이 끊임없이 쏟아질 것 같기에 유신은 빽 소리를 질렀다.

“야! 말 좀 하자!!”

그제야, 리우가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는 걸 깨우치고는 입을 다물었다.

“휴~ 그렇게 좋게 생각해 준 건 정말 고마운데, 사실은 누가 내 GPS를 고장 낸 것 같아.”

“네? 고장이라니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로야. GPS에서 가리키는 곳으로 가도 크레이지 래빗이 한 마리도 안 보이더라고.”

“그럼 어떻게 뒤늦게 크레이지 래빗을 찾으셨습니까?”

유신은 리우에게 아람에 대한 말을 꺼낼까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 누군가에게 이 비밀을 말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뜻 모를 고갯짓을 한 후 말을 이었다.

“GPS에서 유독 빈 곳이 많기에 그곳으로 가봤더니, 크레이지 래빗이 있더라고.”

“흠…그냥 고장 난 것은 아니고요?”

“대회 측에서 나만 고장이 난 걸 준다고?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

리우는 유신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며 미간에 내천자를 그렸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그런데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이미 첫 번째 경기도 끝났으니까.”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형님 늦었는데, 제가 너무 많이 붙잡고 있었군요. 이만 쉬십시오.”

유신은 대회의 피로도도 거의 없었다.

거기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기만 했다.

하지만, 리우가 피곤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작별 인사를 했다.

“응. 너도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 그리고 늦었지만, 탑 10 축하하고.”

당연히 건넨 말에 리우가 감동 받은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짜식! 들어가~”

“네. 형님.”

리우가 유신의 방에서 나오고, 방문이 닫혔다.

지금까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던 리우의 표정이 무섭게 바뀌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대회 운영 측 몰래 이번에 있었던 첫 번째 경기 GPS 해킹 조사하도록 하세요. 비원대까지 전부 동원해도 좋으니,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 결과물을 가져오세요.”

유신은 리우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진지 잘 모르고 있었다.

전설들은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노사는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리우는 그런 노사의 막내 제자이지만, 그의 모든 걸 물려받기로 내정된 존재였다.

반대로 앤드류는 로저의 용병왕 자리의 수많은 후보 중 한 명일 뿐이었고.

***

첫 번째 경기에서 분류된 천 명은 하루의 휴식이 주어졌다.

그렇게 휴식을 즐긴 다음. 두 번째 경기인 생존 게임이 진행됐다.

두 번째 경기는 호주의 여러 숲 중 하나에서 진행된다.

수많은 숲 중 천 명의 참가자가 두 번째 경기에 투입될 숲은 가장 많은 크레이지 래빗이 나오는 곳이었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경기 시작 전 모두 유언장을 작성했다.

“네. 새로운 아침과 함께 존이 인사드립니다. 빌리 참가자들이 유언장을 작성하는 이유가 뭔가요?”

“존. 그건 이제부터 대회 측의 보호를 100%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방송으로 참가자들의 활동 반경은 볼 수 있지만, 제때 구하러 가기는 어렵거든요.”

“네? 이해하기 어렵네요. 첫 번째 경기 때는 수많은 텔레포트 능력자로 참가자들을 보호했잖아요.”

“두 번째 경기가 열리는 숲은 마력 때문에 텔레포트에 많은 어려움이 있거든요.”

잘 짜여진 대본에 맞게 존과 빌리는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줬다.

거기다가 존의 걱정스러운 연기는 일품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아직 대본은 끝나지 않았다.

시청자들에게 걱정과 불안감을 심어 주었으니, 이제는 안도감을 줄 차례가 됐다.

“유언장에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대회 측이 너무 무책임한 건 아니나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대회도 대회지만, 호주의 골칫거리인 크레이지 래빗을 잡기 위해 진행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세요. 그렇다고 대회 측에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닙니다.”

“역시 뭔가 대비를 했죠?”

“네. 맞습니다. 존. 우선, 이번에는 생존이 목표이기 때문에 팀으로 같이 움직여도 무방합니다. 거기다가! 호주의 거인 크리스와 3천의 영웅 삼십여 명이 미리 숲에 투입돼 있습니다.”

“오~ 주최 측에서 지구의 구원자들까지 움직이게 했군요.”

“존. 아직 놀라기에는 멀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위해 다크 연합에서 수십 명의 공간 능력자를 파견했죠. 그들이라면 5분 안에 마력 방해를 뚫고 텔레포트를 시킬 수 있죠.”

“오~ 엉덩이가 무거운 다크 연합까지 움직이다니, 그 정도면 완벽한 보호 아닌가요? 그런데 왜 유언장을 쓰게 한 거죠?”

“혹시 모를 상황과 5분 안에 참가생이 죽을 수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참가자 분들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바로 나누어준 붉은 폭죽을 터뜨려주세요. 그러면 대회 측에서 5분 안에 여러분을 구하러 갈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참가자 중에 안도하는 사람은 없었다.

순간의 실수가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게 몬스터 사냥이었다.

“그럼 3일 동안 부디 무사하기를 바랍니다.”

대회 운영진의 말과 함께 참가자들은 모두 숲을 바라봤다.

그때, 검은 가면에 검정 롱코트를 걸친 유신이 누구보다 빠르게 홀로 숲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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