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_배틀필드 참가전(2)
유신은 갑자기 흔들리고 무너지는 토끼 굴에서 살아남기 위해 출구를 바라봤지만, 출구는 이미 막혀 버렸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생매장당할 게 뻔했기에 일단 더 깊은 곳으로 달렸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토끼 굴은 구불구불해서, 제대로 속도를 내지도 못했다.
“캬아아악”
거기다가 자신의 집이 무너지자, 크레이지 래빗들도 날뛰기 시작했다.
“2, 3, 4……10, 11, 12…….”
유신은 계속 달리면서 나타나는 크레이지 래빗을 단번에 사냥했고, 사냥과 동시에 아공간에 넣었다.
그렇게 유신이 토끼 굴에 깊게 들어왔을 때였다.
드디어, 지진이 멈췄고, 더 이상 토끼굴은 무너지지 않았다.
“호주도 지진이 일어나는 곳인가?”
혼잣말하면 자신이 들어온 곳을 바라봤다.
거대한 공동이었고, 수십 개의 토끼굴이 있었다.
그리고, 붉은 보석 같은 수십 쌍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노다지구나.”
크레이지 래빗을 보자, 유신은 토끼 굴의 출입구가 막힌 것을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앞에 있는 크레이지 래빗을 잡는 것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바로 앞에 있는 크레이지 래빗을 향해 유려하게 검을 놀려서 쓰러뜨렸다.
그리고 사체를 밟고 높이 뛰어올랐다.
천장이 낮아서 금방 닿게 되었고, 유신은 공중에서 몸을 뒤집어서 천장을 딛고는 그대로 크레이지 래빗 무리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콰앙!
땅을 향해 검을 내지르자, 그 충격파로 뭉쳐있던 크레이지 래빗들이 벽에 부딪혔다.
땅에 두 발을 디딘 유신이 몸을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순식간에 크레이지 래빗 무리가 전멸했고, 유신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대박! 괜히 좋은 검을 쓰는 게 아니구나.”
다시 한번 검의 절삭력에 감탄한 후, 아공간에 크레이지 래빗 사체를 넣으려고 할 때였다.
쿠르르릉
좁은 땅속에서 유신이 뿜어낸 포스로 인해 땅굴이 무너지려고 했다.
다급함을 느낀 유신은 아깝지만, 크레이지 래빗의 사체를 두고, 여러 개의 굴 중 가장 큰 굴로 몸을 던졌다.
몸을 피하자마자 작은 공동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켁켁 에취~!!”
피어오른 먼지 때문에 유신은 기침을 내뱉더니 뒤를 돌아봤다.
지금까지 왔던 모든 토끼 굴이 무너져 내렸다.
여기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에, 유신은 재빨리 움직이기로 했다.
대 몬스터 백과사전에서 크레이지 래빗은 자신들의 토끼 굴에 여러 탈출구를 만들어 놓는다고 했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 유신은 발을 놀렸다.
“뭐가 이렇게 길어!!”
유신은 시계가 없어서 얼만큼 달린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달리다 보니 벌써 여러 번 배가 고팠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리다가 지겨울 때쯤, 크레이지 래빗이 나타났고, 심심해질 때쯤, 갈림길이 나왔다.
휘이잉
달리는 와중 바람 소리가 들렸다.
곧장 자리에서 멈춘 후 청력에 포스를 집중했다.
휘이잉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포스까지 사용해 달리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빛이 보이자, 더욱 속도를 냈다.
그렇게 유신은 토끼 굴을 벗어나며 양팔을 벌리며 외쳤다.
“프리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찰싹
어린아이 팔뚝 굵기의 거미줄이 토끼 굴 앞에 처져있었고, 유신은 거미줄에 걸렸다.
구석에서는 수십 개의 초록 눈을 가진 거대 거미가 유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거미줄에는 유신만 걸려 있는 게 아니었다.
사람 크기만 한 고치 수십 개가 매달려 있었다.
유추해보자면, 지금 거미줄에 걸려 있는 저 고치들은 크레이지 래빗일 게 분명했다.
그때 거대 거미가 유신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와~ 이거 산 넘어 산이네.”
유신은 거미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거미줄의 끈끈함이 움직임을 방해했고, 도리어, 더욱 달라붙었다.
그 사이 거대 거미는 유신에게 다가와서는 거대한 이빨을 들이밀었다.
“꺼져.”
한기가 맴도는 한마디에 거대 거미는 순간 움찔했지만, 인간의 말을 모르기에 그대로 유신을 공격했다.
거대 거미의 바라보며 유신은 포스를 실체화했다.
툭두뚝뚝
거미줄이 포스에 끊어지자, 유신은 거대 거미의 이빨을 피해 땅에 내려섰다.
거대 거미는 공격을 피한 유신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뒤늦게 몸을 피했다.
유신은 그런 거대 거미를 한 번 바라보더니, 이내 주위를 둘러봤다.
“숲속이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너무 깊게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고 토끼굴을 통해 다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아공간에서 돌도끼를 꺼내고는 포스를 주입했다.
“나와라. 아람 네비!”
펑
도깨비가 된 아람은 공중에 떠서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유신을 지긋하게 바라봤다.
평소와 다른 아람의 분위기에 유신은 살짝 위축된 느낌이 들었다.
“저기….”
“뭐냐?”
평소에도 불통 거리면서 대답하는 아람이었지만, 오늘은 더욱 퉁명스러웠다.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모르는 거냐?”
유신은 최대한 머리를 굴려봤다.
대체 뭘 잘못했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의심 가는 게 없었다.
하지만, 딱 하나 걸리는 게 있어서 조심히 입을 열었다.
“혹시…이제야 아공간에서 꺼낸 것 때문에 그런 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분명 내가 아공간은 싫다고 했는데. 왜 두 달 만에 날 찾은 거지?”
“미안 미안. 사실은 깜박하고 있었어.”
“깜박? 까암바악?”
“진짜 미안해. 정말 미안해.”
고개까지 숙여 사과했지만, 아람의 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때 아람이 작은 손바닥를 쫙 펼쳤다.
“상급 마나석 5개.”
“응?”
“내 말을 못 들었나? 상급 마나석 5개. 그럼 내 친히 용서해주지.”
아람의 요구에 유신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그게….”
“설마 없다고 하지는 않겠지?”
“…정말 없는데… 상급 마나석이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거기다가 저번에 너한테 준 게 마지막 상급 마나석 이었어.”
허탈한 표정이 된 아람은 이내 포기한 듯 입을 열었다.
“내가 널 살리기 위해, 상급 마나석을…아휴 됐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더 말해봤자, 뭐하냐? 좋다. 도깨비 인심 썼다. 중급 마나석… 설마? 그것도 없냐?”
“미안… 잠깐! 내가 왜 계속 미안해해야 하지? 너 나한테 마나석 맡겨놨어?”
“약속을 어긴 건 너다.”
“그렇네.”
잠깐 반항하려고 했지만, 유신은 쉽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아람. 대신에 마나석 구하면 꼭 너 줄게.”
“설마?? 하나도 없는 거냐?”
유신이 민망한 듯 고개를 끄떡였다.
“도움도 안 돼. 매번 부탁만 해. 상급 마나석을 써서 겨우 목숨까지 살려줬는데….”
냉랭한 아람의 말이 유신에게 비수처럼 꽂혔다.
다른 사람들에게 유신은 희생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아람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 유신과 아람의 관계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였다.
“내가…내가! 1년 안에 상급 마나석을 꼭 구해서 줄게.”
“흥! 허튼 소리하지 마라.”
그렇게 유신과 아람이 말다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거대 거미가 다시 앞발을 세우고는 그대로 유신을 덮쳤다.
이미 다가오는 걸 느끼고 있던 유신은 재빨리 발검해서는 거대 거미를 반으로 나눠버렸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날 만만 하게 보네.”
“지금 그 말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냐?”
유신은 아람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긍정을 표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한 게 있어서 시치미를 뗐다.
“무슨 소리야. 그러지 말고, 정말 내가 1년 안에 구해 온다니까.”
“아공간에 넣지 않겠다고 말했던 약속을 어겼는데, 어떻게 그 말을 믿지?”
확실히 3천 년을 산 도깨비라서, 유신은 말빨에서 밀렸다.
하지만, 되려 당당히 나가기로 했다.
“구했잖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구했잖아. 한 번 구했는데 또 못 구할까?”
“흥! 그건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말을 믿을 정도로 내가 멍청하지 않다.”
“에휴~”
아람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유신이 거인들의 땅에 가서 손쉽게 마나석을 구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곳에는 마나석이 널려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아람에게 마나석이 거기에 있다고 말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비즈니스 관계에 사업 밑천을 알려주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내가 1년 안에 못 구해 오면, 네 소원 들어줄게?”
“응? 뭐라고?”
“네 소원 들어준다고!”
갑자기 아람이 실실 웃기 시작했다.
“이런이런. 승리의 도깨비는 내 편이 되어주겠군.”
“그럼 너는?”
내기는 서로가 서로에게 거는 게 있어야 했다.
그래서 아람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내뱉었다.
“영원히, 네 펫이 되어주마.”
“내가 바보냐? 지금도 내 펫이잖아.”
“쳇! 쓸데없는 부분에서 멍청하지 않군.”
잠깐 인상을 찡그린 유신은 이내 자신의 요구 조건을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내가 어떤 일을 시켜도 군말 없이 하기 어때?”
잠시 고민에 빠진 아람은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좋다. 그런데, 정말 상급 마나석이 없는 거 맞지?”
“의심하지 마. 진짜야.”
“교황청에도?”
“거기에는 있지만, 교황청의 물건을 손댈 생각은 없어.”
“흐음…”
아람은 당연히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몇 가지 요구 조건을 더 걸고서야 내기를 진행했다.
유신과 아람 사이에 푸른 불꽃으로 이루어진 끈이 연결됐다.
“자. 그럼 이제 부탁 좀 하자.”
“그래 뭐냐 인간?”
“헤헤~ 사실은…길을 잃어버렸어.”
“……”
“좀 도와줘~”
길게 한숨을 내뱉은 아람이 유신을 보며 마지못해 물었다.
“어디로 가면 되냐?”
“호주 다윈. 거기로 가면 돼.”
아람은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해의 방향과 나뭇가지들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안내를 시작했다.
유신은 그런 아람의 길 안내를 믿고 움직였다.
하지만, 도깨비의 장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와~ 거대 거미 군락지다!”
“저건 도마뱀이야? 아님 공룡이야? 크기가 우와~ 역시 호주구나.”
“엥? 뱀 등에 손바닥만한 날개가 달려있네?”
“대백과사전에서 표현한 크기를 진짜로 볼 줄이야.”
유신은 앞으로 향하면서 다양한 몬스터를 봤고, 수도 없이 쓰러뜨리며, 전진했다.
다윈으로 쉽게 가는 길은 널려 있었다.
그렇지만, 아람은 최대한 많은 몬스터들과 유신이 조우하게 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고 해가 중천에 뜰 때쯤, 유신은 드디어 아람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너 길 안내 잘하고 있는 거 맞지?”
“못 믿겠으면 믿지 마라.”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너 아니면 누굴 믿냐.”
“그래. 나도 네가 상급 마나석을 꼭 구해 올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잘 따라오기나 해라.”
너무나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유신은 아람을 더 캐묻지 않았다.
그렇게 식인 식물과 변이동물 그리고 몬스터를 잡으며 밤새 걷고 있을 때였다.
띠띠삐!
유신의 가방에서 기계음이 울렸다.
서둘러 가방을 연 유신은 드디어 전파가 통하는 곳까지 왔다는 걸 확인하고 가까운 도시를 확인했다.
“다윈까지 가깝네. 이제 GPS 보면서 가면 되겠다. 아람 고생 많았어.”
“유신. 난 만 하루 동안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러니 이 은혜를 잊지 말아라.”
“당연하지.”
유신은 정신을 집중해서 아람에게 선행점수 1점을 추가해줬다.
선행점수를 받은 아람은 미간을 씰룩이더니, 이내 하늘 위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신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휴대폰을 꺼내서 날짜를 확인해봤다.
“뭐야? 오늘이 접수 마감날이잖아!”
서둘러 짐을 다시 챙긴 유신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낸 후, 포스를 폭발시키며 목적지를 향해 쏘아졌다.